데스피테
(1)
세상이 망했다. 그 흔한 좀비 때문에. 여느 창작물에서 자주 보이던 그 비현실적인 생명체는 이제 얇은 문 너머로 언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새로운 목소리가 비명을 지르곤 한다. 늦은 밤, 이불 한 장으로는 그 소리를 덮을 수 없었다.
지난 한 달, 나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괜히 나갔다가 한 쪽 눈을 대롱거리며 걷는 저들처럼 될까봐. 별 이유는 없다. 달리기도 느리고, 운동에는 눈길도 줘본 적 없는 사람이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좀비들 틈을 비집고 원하는 곳까지 갈 수 있을지 조금만 생각해도 답이 나와서. 굳이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전파도 안 터지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알 방법도 없었고 말이야. 하숙생을 들일 정도로 꽤 큰 집에서 혼자 지내니 공간도 널널하고, 여럿을 먹여야 해서 미리 사뒀던 음식과 물 덕에 그리 부족함은 없었다. 가끔 햇빛이 그리워지면 2층에 올라가 커튼을 열었다. 1층에 있는 창문은 피로 범벅이 되어 창문을 열지 않으면 밖을 볼 수 없었으니까.
아무튼 이렇게 나름대로 잘 버텨왔는데…. 음식이 다 떨어졌다. 조금 더 남아있는 줄 알았는데, 어제 먹었던 게 마지막이었나. 여기서 더 버틴다고 새롭게 발견되는 음식을 없을 거다. 이미 지난주에 이 집 전체를 뒤져서 모아뒀던 거니까. 아까 보니 정수기 물색도 좀 이상하던데…. 이젠 나갈 수밖에.
긴팔에 긴바지를 입었다. 곧 겨울이기도 하고, 좀비한테 물렸을 때 옷 위라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가방에는 물과 손전등을 챙겼다. 물은 예전에 정수기가 고장 났을 때 룸메이트가 수돗물은 못 먹겠다며 묶음으로 샀던 물이다. 그때는 뭘 그렇게 유난이냐며 타박했는데, 지금 와서는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겠다. 그 형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어쩌면 가족이랑 웃으면서 있을지도 모르지. 손전등은 시험 삼아 켜보니 꺼질락 말락 깜빡이는 게 건전지를 갈아야 할 것 같았다. 나가서 챙길 물건이 하나 들었다. 다행히 우리 집 근처에는 조금 큰 마트가 하나 있다. 거기로 가서 먹을 것과 물, 건전지를 챙겨야겠다.
나름의 무기도 하나 챙겼다. 쇠 지렛대, 흔히 빠루라고 부르는 공구. 우리 집에 물건을 버리고 사라진 룸메이트의 물건이다. 그땐 귀찮아서 건드리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었을 줄이야. 그 덕에 나갈 용기가 생겼다.
바람이 분다. 이제는 조금 차가워진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트린다. 오후를 향해 달려가는 하늘엔 구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바깥은 한 달 전만큼 좀비가 많지 않다. 그 많던 좀비가 어디로 사라진 건지 간간이 몇 마리만 보인다. 전에 드론을 보냈을 때 달려들었던 걸 보면, 소리만 조심하면 될 것이다.
조금만, 진짜 조금만 조심하면….
빠각.
아, 이런.
하아, 평소에, 운동….
윽, 좀…. 할,껄!
하아, 하아….
젠장. 좀비란 이름값을 하는 건지 끈질기기도 하다. 마트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다. 앞으로 2분정도면 도착, 이런!
팔을 물려는 좀비의 목을 빠루로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뼈라도 하나 부러졌을 게 분명한데 아랑곳 않고 달려드는 모습이 두렵다.
기괴한 모습의 생명체지만 한 때 사람이었던 자들이다. 죽일 수 있을리가.
피가 얼굴에 묻었다.
정말…. 사람을 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전투 소리를 듣고 좀비가 더 몰리는 건 기분 탓일까? 셋 정도였던 좀비가 두배가 되어간다. 젠장, 젠장, 젠장! 운동 좀 할껄!
아니, 심리적인 이유인가.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무기를 휘두르던 오른팔의 움직임이 둔해져갔다. 더이상 휘두르기는 커녕 들어올리는 것조차 버겁다.
…여기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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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반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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