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평소에 비해 일찍 끝난 방과 후의 교정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체전이 열리고 있으니 그럴 만했다. 인사 한 번 나눈 적 없는 사이라 할지라도 남들과 경쟁할 땐 그래도 같은 곳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을 응원하고 싶은 법이다. 그랬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간 얼굴도, 이름도 몰랐을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근처의 시민회관에 가 있었다. 동문으로서 응원하지 못해줄 것도 없지만 게바는 시민회관으로 가는 대신 텅 빈 테니스 코트와 운동장 사이를 가로질러 교내의 체육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2체육관이었다. 비가 올 때나, 실내 운동을 할 때 사용하는 것은 보통 1체육관으로 2체육관은 게바가 학교에 입학한지 2년이나 지났음에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방문한 적이 드문 장소였다. 그랬기에 출입문 앞에 섰음에도 게바는 쉽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2체육관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한정되어 있었고 철저히 외부인인 게바로서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들어간다고 해서 선생님들에게 혼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게바는 옆으로 빙 돌아 내부를 살피기로 했다. 높은 곳에 창문을 내 안을 보기 힘든 1체육관과 달리 2체육관은 한 쪽 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었기에 어려울 것은 없었다. 게바가 유리벽에 바짝 붙어 섰다.
2체육관은 체육고가 아닌 일반계 고등학교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훌륭한 실내 수영장이었다. 여러가지로 유명한 이 학교가 수영에서도 꽤 명문이라는 것은 입학하기 전에도 알고 있었기에 게바는 그 호화로움에 감탄하는 일 없이 내부를 면밀하게 살폈다. 수영부의 학생들은, 지금 있을 본선에 참가해 있을 것임에도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조심스러웠던 움직임이 무색하게도 게바는 거침없이 돌아가 출입문을 밀어 열었다.
조금 더운 공기와 수영장 특유의 냄새가 코를 간질이다 이내 사라졌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투명한 수면에 부딪혀 반짝이는 것이 예뻤다. 수영장 중앙에 멍청하게 멈춰서 있는 녀석만 아니었다면, 게바는 조금 더 속 편하게 그 광경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껏 온 게 결국 여기야?”
턱 끝까지 차오른 한숨을 간신히 밀어 넣고 던진 물음에, 고요히 서있던 이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수영모는 어디에 팔아먹고 왔는지, 그대로 드러난 머리카락이 물에 젖어 구불거리고 있었다. 수경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수영복을 챙겨 입을 정신이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별 일이네. 네가 여기까지 찾아오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태연한 얼굴로 자신을 맞는 얼굴에 게바는 결국 크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가엘. 한숨과 함께 터진 부름에도 가엘은 대답하는 일 없이 수면 위로 드러눕듯 몸을 띄웠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움직임이었다. 평정을 되찾은 게바가 말했다.
“혹시, 울고 있을까봐. 손수건이라도 주려고 왔지.”
“위문품이라면 늦었는데. 베아탱이 먼저 주고 갔어.”
“베아탱이? 왔었어?”
“20분 쯤 전에.”
가엘은 수면을 가볍게 휘젓던 손을 들어올려 수영장 한편의 벤치 위를 가리켰다. 게바가 걸음을 옮겼다. 과연. 행방이 궁금했던 수영모, 수경과 함께 에너지 드링크와 이온 음료가 든 보틀이 대여섯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럴 땐 진짜 연상 같단 말이지. 게바는 또 다른 소꿉친구를 떠올리며 벤치에 앉았다. 나 이거 마신다? 이온 음료 하나를 집어 들며 묻자 마음대로,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게바가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들이켰다. 야무지게도 얼려온 것인지 살얼음이 껴 있어서 관자놀이 부근이 찡해졌다.
“….”
하릴없이 수면 위에 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엘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딱히, 무슨 영법으로 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 그저 해파리처럼 느리게 부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레인의 끝까지는 금방이었다. 언제 흐느적거렸냐는 듯 가엘은 발을 뻗어 우아하게 턴했다. 방향을 바꾸자 마자 격하게 시작된 스트로크에 사납게 물보라가 일었다. 게바는 그것이 꼭 화를 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뭐, 당연한 일이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생에게도 지는 일 없이 당연하게 1등을 하던 녀석이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시니어 데뷔를 한 작년에는 현역 실업 선수들까지 제쳤다. 내년에 있을 세계선수권과 후년의 올림픽 출전이 확실시 되었을 땐 학교 뿐만 아니라 일대에 플랜카드가 걸렸다. 최연소, 신기록 보유자, 국가대표, 떠오르는 신예. 가엘의 이름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따랐다. 전국체전 예선 탈락은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이었다. 주목받는 어린 선수의 ‘실수’에 언론은 큰 대회를 준비하며 몸을 정비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을 보며 게바는 코웃음을 쳤다. 가엘은 보고 있는 사람이 열 받을 정도로 요령이 좋은 놈이었다. 그런 주제에 더 욕심내는 일 없이 남들이 하는 만큼만 할 줄 알게 되면 깨끗이 털고서는 다른 흥미거리를 찾아 다녔다. 그런 가엘이, 겨우 유치원이나 다녔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유일하게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이 수영이었다. 취재진은 커녕, 관중 하나 없는 시 대회에서도 이미 자신과 기량 차이가 상당한 또래 선수들을 부득불 이겨가면서까지 1등을 놓지 못하는 녀석이었다. 몸을 사려? 다른 선수들은 어떨지 몰라도 가엘 샤젤에게는 해당이 없는 말이다.
그러니까, 저건 단순한 슬럼프다. 모두 입 밖에 내기를 꺼려하고 있었지만 그냥 슬럼프였다. 게바는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다고 멈춰서는 일 없이 달려온 우직한 가엘에게 꼭 필요했던 것이었다. 가엘 본인이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게바의 생각이 닿을 일은 없었다. 읽힌다면 모를까.
두어 번 더 레인을 왕복하던 가엘이 움직임을 멈췄다. 이상이라도 생겼나? 게바가 고개를 갸웃하며 보틀의 뚜껑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격하게 움직였음에도 가엘은 평온한 얼굴로 수영장 바닥에 손을 짚고는 그대로 물 밖으로 나왔다.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성큼성큼 게바가 앉은 벤치로 다가온 가엘이 늘어선 보틀 중 아무거나 집어 들며 게바를 내려다보았다.
“샤워만 하고 나올 테니까, 기다려.”
“…가려고?”
사실 가엘 본인이야 조금 더 연습하고 싶었겠지만, 집중을 하면 주변을 거슬려 하는 가엘이 얌전히 자신을 기다리고만 있는 게바를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가엘은 대답 대신 게바가 했던 것과 비슷한 한숨을 돌려주었다. 거슬리게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쉬게 하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더 탓하는 일 없이 가엘은 마시던 보틀의 뚜껑을 닫아 게바에게 건넸다. 제 계획대로 돌아가는 일에 즐거워져 웃는 게바를 보며 가엘 또한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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