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스프레소 더블 샷
“씨발. 쓸데없이 넓어갖고.” 지나가는 이가 아무도 없는 탓에 가니메데스는 목 끝까지 올라온 험한 말을 시원하게 뱉어냈다. 짜증스러운 손길로 넓은 모자챙을 꾸욱 눌러쓴 그가 지도 앱을 켰다. 앱을 실행해봐도 선수촌 내부의 자세한 지도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국가대표라는 신분으로 10대 시절부터(그때는 상비군이었지만.) 제집처럼 뻔질나게 드나드는 놈
소년이 사는 지역은 일 년의 반절은 비가 오는 곳이었다. 비가 오지 않아도 흐린 날이 많아 제대로 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점점 광맥이 말라가는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 외의 사람들은 거의 근처 도시로 떠났다. 상단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는 펠리스 영지의 끝자락에 남은 것은 다 허물어져 가는 펠리스 남작의 별장뿐이었다.
이제 겨우 1학기의 시작일 뿐이었는데 졸업 학년이 된 건축학과 5학년들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졸업작품을 준비하기로 했을 때부터 예고되어 있던 강행군이었다. 마지막 학년.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따라 학점을 채웠다면 한창 전공을 들어야 하는 저학년에 비해 시간표에 여유가 많았다. 그렇게 남는 시간은 고스란히 졸업작품을 위한 시간이 되었다.
방송 장비를 세팅하려는 사람들이 체육관 입구부터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리그가 한창일 때나, 2주에 한 번씩 업로드되는 구단 자체 컨텐츠를 위해 촬영을 하는 일은 많았지만, 현장을 오가는 이들의 얼굴이 낯설었다. 그리고 선수가 나타난다면 말을 거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그들은 지금 막 체육관에 들어온 모로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각자의 일에 열
문득 느껴지는 허전함에 모로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자신의 옆자리를 쓸었다. 차갑지는 않았지만 느껴지는 온기는 없었다. 상대방의 패턴을 생각해보자면 지금 시각이라면 가벼운 조깅 후, 샤워까지 끝내고 나갔을 시간이다. 세계선수권이 끝나자마자 선수촌에 입소한 첫날이었음에도 몸에 익은 루틴은 깰 수 없던 모양이었다. 먼저 들어와 기다린 사람을 위해 하루 정
올림픽 폐막 하루 전이었다. 선수단 숙소의 분위기는 한껏 들떠 있었다. 마침 오늘 있었던 남자 배구 결승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종목을 따지지 않고 모두가 축하하기 바빴다. 포디움의 가장 높은 곳. 그 자리에 서는 순간의 기쁨은 같은 선수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희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내일 있을 폐막식을 준비하기 위해 모두가 잠자리에
성 내는 고요했다. 변경백이 병사들을 이끌고 출전할 때 마다 으레 있는 일이었으나 치즈펠은 평소와 다른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포식자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기이한 정적이었다. 한낮임에도 느껴지는 한기에 그는 괜스레 자신의 팔을 한 번 쓸었다. 근처의 숲을 한바탕 휘젓고 온 후라서 햇빛과 체온으로 달궈진 팔은 따뜻했다. 병사들은
“아무리 우리가 친하다지만, 너무 사생활에 관한 질문 아냐?” 난데없는 질문에 내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지만 모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얼굴로 아니, 하고 고개를 저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7년째 알아오고 있는 놈이지만 가끔 이렇게 웃기지도 않은 질문을 할 때가 있었다. 얘는, 정말로 모르는건가. 조금 복잡한 기분이었다. 갑자
아직도냐. 옷깃 사이로 늦겨울의 바람이 파고들자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어 떨려오는 턱을 진정시켰다. 추운 날씨에 움츠러들 법도 하지만 남자는 꼿꼿이 허리를 펴고 섰다. 커피라도 사올걸. 마침 가까운 카페 건물이 보였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슬슬, 사람들이 나올 시간인데다 휴대폰과 다른 짐을 들고 있는 모로에게 테이크 아웃 커피잔을 들 손은 남아있지 않았다.
이거 좀 괜찮은데. 시향지의 향이 마음에 든 샘플용 향수를 가볍게 손목 안쪽에 뿌려 보았다. 독하지 않고, 적당히 청량하면서도 부드러운 향이었다. 2월도 막바지. 지금 뿌리고 다니기엔 너무 시원한 향이 아닌가 싶지만 그것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주는 내 마음에 들면 됐지. 가끔 훔쳐 써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만족스레 향을 맡고는 두
작게 소란이 일었다. 위험한 짓을 할 만한 이는 없었지만 모로는 일단 그들을 진정시키며 치즈펠의 옆에 앉아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그 뿐만 아니라, 본당 안 모든 이의 시선이 ‘손님’을 향해 있었다. 그들은 모로와 달리 손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아니, 말 뿐이면 다행이었다. 정부 건물의 지하 깊은 곳에 갇혀 잠들어 있던 여자. 그를 빼내기 위
평소에 비해 일찍 끝난 방과 후의 교정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체전이 열리고 있으니 그럴 만했다. 인사 한 번 나눈 적 없는 사이라 할지라도 남들과 경쟁할 땐 그래도 같은 곳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을 응원하고 싶은 법이다. 그랬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간 얼굴도, 이름도 몰랐을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근처의 시민회
팔을 뻗을 때 마다 손끝으로 모여드는 물살을 갈라내는 손길이 사납다. 그와 호응하듯 강하게 수면을 차는 발에 거친 물보라가 일었다. 물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을 무겁게 붙잡아 매고 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가뿐하게 그것을 떨쳐내며 나아갔다. 목표하고 있는 것은 하나 뿐이었다. 가까워진 것을 깨달은 그가 손을 뻗자 단단한 벽이 닿는다. 경기장이 울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