왱알왱알

웡윤(약간의 몽윦)

ㅎㅇㅌ by 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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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잘생긴 거 좋아하던 정우영은 정윤호가 좋았다.

잘생겨서 좋았고, 키 커서 좋았고, 똑똑해서 좋았고, 운동 잘해서 좋았고, 게임 잘해서 좋았다. 이유를 더 부르라면 얼마든지 더 부를 수 있었다. 사람 좋아하는 정우영은 한 번 좋아지면 좋은 점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윤호야 난 네가 숨 쉬는 것도 좋아...

첫 만남은 새 학기 첫날이었다. 이제 막 중학생 타이틀을 단 우영은 도키도키한 마음으로 교실로 들어섰다. 같은 초등학교 출신인 애들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친구는 뭐 다시 사귀면 되는 거니까. 그건 정우영 전문이었다. 힘차게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선 바로 그때,

쪽.

키미노토리코니.

정우영은 정윤호에게 첫눈에 반했다. 쟤 진짜 잘생겼다. 낯가림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던 우영은 누가 가로채기 전에 재빨리 윤호의 옆자리에 가방을 턱 올려놨다.

나 여기 앉아도 돼?

우영을 물끄러미 올려다본 윤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히히 신난당. 그렇게 우영은 새 학기 첫날부터 윤호의 옆에 찰딱 들러붙었다. 옆에서 왱알왱알왱알왱알. 성격이 모나지 않은 윤호는 그냥 웃으면서 우영의 말을 들어줬다. 그게 한동안 쭈욱 반복됐다. 어느 순간부터는 윤호도 본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젠 둘 사이엔 비밀 공유가 자연스러워졌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숨기고 싶은 비밀을 서로에겐 털어놓게 됐다. 우리 사이엔 비밀이 없어야지. 그게 약속처럼 굳어졌다.

사랑은 쟁취해내는 거야.

우영은 결국 윤호를 쟁취해냈다.

(반 정도만.)

왱알왱알

중삐리 정우영은 사랑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우영아 나 너 좋아해.

그으래? 나도 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우리 사귀까?

그러다 안 맞으면 헤어졌다. 안 좋게 헤어진 경우도 크게 없었다. 그냥 다시 친구로 지내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벗 우, 꽃부리 영. 이름 값을 하는 건지 우영의 인맥은 꽃처럼 만개했다. 사람이 많은 만큼 좋은 사람도 많았다. 사람 좋아하는 정우영이 딱 좋아할 환경이었다. 정우영의 사랑은 큰 걸림돌 없이 순탄하게 흘러갔다. 옆 여고에 다니는 미연이 누나 짝사랑 할 때나 좀 어려웠지, 나중엔 그 누나와 말 튼 지 한 달만에 연애에 성공했다.

그랬던 정우영은 고등학교로 넘어오며 사랑이 좀 어려워를 주제곡으로 달고 사는 고삐리가 되었다.

사랑이 좀 어려워~

엔시티드림 선배님들은 좋겠다. 사랑이 좀 어렵구나. 난 조올라 어렵다. 노담인생 외길로 걸어온 우영은 요즘 들어 담배 땡긴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 지 알 것 같았다. 이름에 여전히 벗 우, 꽃부리 영을 달고 있는 우영을 이리 힘들게 하는 이는 누구인가. 바로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매점 레이스를 달리고 온 정윤호 되시겠다. 우다다다 달려나가는 윤호의 뒤통수를 우영은 아련하게 쳐다봤다. 윤호야, 나 니가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어... 난 네가 달리기 잘해서 좋아.

솔직히 정우영은 정윤호를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누군가를 보자마자 '내가 작살나는 짝사랑을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우영은 중삐리 시기까지 윤호의 옆자리에 엎드려 여친과 카톡을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 우영이 어쩌다 윤호를 좋아하게 됐을까.

운명인건지 뭔지 중학교 3년 내내 우영과 윤호는 같은 반이었다. 그때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다. 중삐리 정우영은 윤호가 친구 이상이 되고 싶다고 했어도 베스트프렌드가 되자고 했을 위인이니까. 그러다가 고등학교 원서를 쓰던 시즌에 윤호는 우영과 다른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고 했다.

거기가 세특을 더 잘 써준다구 하더라구...

이때까지도 좀 아쉬운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자각을 한 건 중학교 졸업식이었다. 정우영, 정윤호. 19번, 20번. 딱 붙어있는 번호 덕에 우영은 졸업장을 받고 내려오자마자 윤호가 졸업장을 받는 모습을 봤다. 제 졸업장을 받을 때는 옆구르기로 입장을 해서 쌩쑈를 해도 별 생각이 안 들었는데, 윤호가 걸어나와 졸업장을 받고 교장선생님과 악수를 하는 걸 보니 눈물이 차올랐다. 우리 이제 끝인건가. 같은 교실에서 옆 자리에 앉아서 쪽지도 못 날리는 건가. 쉬는 시간에 매점으로 뛰어가는 것도 못하나. 강당은 묘한 힘이 있다. 빨지 않은 커튼에서 풍기는 케케묵은 냄새와 묘한 조명과 그 아래로 반짝반짝 빛나는 먼지들은 하나로 결합해 정우영의 감성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흐어엉 윤호야 고등학교 가지마. 그냥 나랑 살아아아.

졸업장을 받고 단상을 내려온 윤호의 목에 우영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물론 우영의 오열쇼는 친구들한테 영상이 찍히고 윤호가 사실 같은 고등학교라고 알려준 뒤에 허무하게 끝난다. 그때서야 우영은 윤호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윤호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아이였다. 어른스러운 형처럼 굴다가도 밥을 먹다가 춤을 추는 감자탕집 놀이방 잼민이 같은 모습을 선보였다. 또 항상 모범적인 학생처럼 교복을 꼭꼭 챙겨입고 다니다가도 명찰을 까먹었다며 갑자기 담을 넘기도 했다.

윤호야 걍 내 명찰 줄게...

전교에 정우영 모르는 사람이 어딨다고. 바로 걸릴 걸?

나중에 교실에서 봐. 그러곤 가방을 담 너머로 휙 던지고 본인도 담을 훌쩍 뛰어넘었다. 생긴 건 우영이 담을 넘고, 윤호가 교복을 단정히 챙겨입고 교문을 통과할 것 같은데 어째 둘은 생긴 것과 영 딴판으로 굴러갔다. 저번에도 윤호가 다리를 달달 떨어서 우영이 허벅지를 쫙 내려친 적이 있었다. 우리 아무래도 운명인가봐. 상호보완 관계. 우영은 그렇게 우겼다. 윤호는 그냥 허벅지나 한 번 쓸었다. 좀 아프게 때렸나? 우영은 그날 하루 죙일 윤호의 눈치를 봤다.

사랑이 가득한 우영은 의외로 남자를 좋아하는 게 처음이었다. 윤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 자각한 그날, 우영은 미연이 누나(우영의 전여친으로 갑자기 여친 생겼다고 헤어지자고 한 전적이 있음)에게 달려가 상담을 부탁했다.

누나 나 남자 좋아하는 것 같아...

걔도 니가 좋대?

아니?

모르겠는데

ㅎㅇㅌ

우영은 미연이 누나에게서 절망을 배웠다. 너, 좋아하는 사람한테 혐오 받아본 적 있어? 무작정 포기하라고 하는 게 좋은 조언이 아닌 건 나도 아는데, 근데 괜히 아웃팅 당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보단 포기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우영은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다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물었다.

"근데 누나... 샤우팅을 왜 당해?"

"하 씨발"

"욕은 하지 말구..."

"너 왜 모르면서 심각한 척 듣고 있었냐?"

"그냥 심각한 이야기 같길래..."

새끼 게이 정우영은 미연이 누나에게 호모로 살아남는 법을 2차 수강하고 나서야 풀려났다. 짝사랑은 진짜 힘든 거구나... 다음 날 아침 윤호를 마주친 우영은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윤호야 나 이렇게 어려운 사랑은 네가 처음인 것 같애. 그러던 어느 날 우영은 점심시간에 도서관에서 그토록 사랑하던 정윤호에게 폭탄발언을 듣게 된다.

남들이 다 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있을 시간에, 평소 같았다면 뛰어가서 앞줄을 차지했을 윤호는 우영을 끌고 도서관 책장 사이로 몸을 숨겼다. 어느 순간부터 굳어진 비밀 이야기 루틴이었다. 그러니까 상대가 도서관 가자고 하면 무슨 사정이 있어도 무조건 같이 가주는 게 둘 사이의 규칙이었다.

"우영아 나 할 말이 있어."

그래놓곤 망설이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윤호를 보던 우영은 쪼옴... 서운했다. 우리는 모든 비밀을 공유하기로 한 거 아니었냐고. 나는 무슨 일 생기면 다 얘기하는데. 지금 너 좋아하는 거 빼곤 다 얘기했는데.

"아 뭔데 그래? 빨리 얘기해봐."

"나 남자 좋아하는 것 같아."

"...처음부터 다시 얘기해봐."

우영아, 나 남자 좋아하는 것 같아. 귀를 아무리 박박 긁어도 들은 이야기의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우영아 네가 들은 게 맞아... 우영이 윤호에게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두 콧잔등이 맞부딪히기 직전 아슬아슬한 위치에 멈춰섰다.

"어떻게 된 건데?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그냥 갑자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쿵. 우영은 심장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어떤 사람인데?"

"키가 좀 작고... 막 쌍꺼풀이 진하게 있는 건 아닌데 눈은 크고..."

쿵쿵쿵. 내려앉았던 우영의 심장이 다시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데?"

"그건 말 못 해..."

윤호의 귀 끝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쿵쿵쿵쿵. 설마. 혹시 모르니까. 학교에 갇혀있는 몇 시간 내내 같이 있었는데 그만큼 붙어있었으면 좋아할 수도 있지. 얼굴로 피가 쏠리는 기분이었다(어차피 시커매서 티 안 남). 광대를 꾹꾹 내려봤으나 입술 새로 웃음이 비식비식 새어나왔다.

우영은 윤호의 폭탄 발언 덕에 야자 시간 내내 집중하지 못했다(제대로 집중한 날이 며칠이나 될까 싶지만). 정작 그 커밍아웃의 당사자인 정윤호는 우영의 옆자리에서 성실하게 숙제나 해치웠다. 우영은 그런 윤호의 오른쪽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빈 공책에 강아지나 그려댔다. 묘하게 푸덩하고 둔하게 생긴 강아지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종국에는 공책 한 페이지를 꽉 채웠다. 우영은 결국 조용하고 지루한 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노트 귀퉁이를 찢어 쪽지를 날리기에 이른다.

윤호야 우리 야자 쨀까? ㅠ-ㅠ

윤호는 쪽지를 읽고 한 번 픽 웃고는 초딩 일기장 같은 우영의 글씨 아래에 더 개발새발 날아다니는 글씨를 써 넣었다.

쫌만 더 참아봐. 1교시만 하고 가자.

우영이 시계를 힐긋 봤다. 20분만 버티자. 목을 한 번 우드득 돌리더니 다시 책상에 푹 엎드렸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심장이 시도 때도 없이 두근거렸다(물론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으면 죽는다). 결국 우영은 20분을 가만히 엎드려서 윤호의 옆 얼굴을 보며 떼웠다.

종이 울리는 소리와 동시에 야자실을 뛰쳐나왔다. 가게 문 닫기 전에 가서 타코야끼 사 먹어야지. 4층에서부터 계단을 우다다다 뛰어내려갔다. 교문까지 쭉 내달렸다. 그렇게 뛰어간 교문 앞에는 개비싸보이는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엥. 누구 기다리나. 이렇게까지 교문을 막고? 우영이 다가가자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와 진짜 화려하네. 그때 우영의 뒤로 뒤따라 걸어오던 윤호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홍중이 형?"

우영은 그제서야 남자를 제대로 봤다. 푸석푸석한 탈색모에 번쩍거리는 피어싱에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그리고 키가 좀 작고, 쌍꺼풀이 진한 건 아닌데 눈은 크고.

아 씨발. 고삐리 정우영의 주제가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사랑이 좀 어려워. 어째 좀 쉽게 풀린다 싶었다.

"얘는 윤호 네 친구야?"

"아, 네. 중학생 때부터 친구예요."

"안녕. 너도 태워줄까?"

윤호는 이미 홍중의 옆에 서서 우영을 빤히 쳐다봤다. 같이 타고 가길 원하는 눈치였다. 우영도 평소 같았으면 그냥 탔겠지만 왠지... 그러기 싫었다. 자가, 자차, 자산 고루고루 따져봐도 앞에 선 이 남자에게 질 것 같았다. 가진 건 자아 뿐인 정우영 17세, 이렇게까지 후달려서 쫀심 상하는 건 처음이었다.

"아뇨? 괜찮은데요?"

우영은 최대치의 띄꺼움을 끌어모았다. 눈도 땡그랗게 뜨고.

"그래?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먼저 갈게."

홍중은 우영이 띄껍고 싸가지 없게 굴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자존심 최종 멸망. 정우영은 엉엉 울고 싶었다.

윤호는 그 홍중이형의 차를 타고 사라졌고 우영은 타코야끼고 뭐고 집에 가서 혼자 펑펑 울었다. 무슨 사랑이 이래. 나 아직 청춘인데 그럼 로맨스 드라마 같아야 하는 거 아냐? 그 형이 뭐길래. 뾰족뾰족하고, 푸석푸석하고, 키는 좀 작고, 쌍꺼풀은 없는데 눈은 크고. 그 놈의 홍중이 형 얘길 하며 붉게 달아올랐던 정윤호의 귀가 떠올랐다. 정우영이 깨물었을 때나 빨개지던 귀를, 그 형은 걔의 생각에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붉게 만들었다. 짜증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가? 나랑 좀 닮지 않았나? 어케 잘 뜯어보면 닮은 것 같기도 한데. 정우영은 그날 밤을 새며 그 홍중이 형의 얼굴을 곱씹었다. 창 밖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해를 보며, 시험 전날에도 안 하던 짓을 했다는 걸 깨달은 정우영은 정말... 정말정말 짜증이 났다.

고삐리 정우영은 그날 처음으로 어떤 사랑은 불면을 동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영을 교문 앞에 혼자 남겨두고 떠난 정윤호는 다음 날 등교를 할 때도 그 형의 차를 타고 나타났다. 정우영 기분은 바닥을 찍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우영은 종일 한숨만 쉬었고 윤호는 잘못한 게 없으면서도 종일 우영의 옆에서 낑낑댔다. 우영은... 그냥 모른 척했다. 윤호가 제 옆에서 낑낑대는 게 좀 좋은 것 같기도 했다. 하 씨발 나 이상성욕인가. 근데 나보다 고딩 만나는 홍중이(어느 새 말 놓음)가 더 변태 아닌가?

"그 형은 어떤 사람인데?"

"누구?"

"어제 데리러 왔던 그 형."

"아... 우리 형이야."

"...어?"

"우리 형이라고."

우영의 머리가 다시 팽글팽글 돌아갔다. 공부 머리는 없어도 눈치는 빠르다고 자부해왔다(본인 피셜).

"...그럼 정홍중이야?"

"아니 김홍중인데..."



마저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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