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우와 백합꽃

조각글 모음

오르히카, 아이히카

  • 포스타입 글 재업로드 / 글 최초 작성일자 : 20.08.19

  • If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 57렙 메인퀘스트 ㄱㅎㅊ 스포일러, 홍련 마지막부분 스토리 스포일러가 함유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 짧은 조각글 모음

  • 여기서 나오는 히카센(빛의 전사)는 저희집 빛전이자 드림주지만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빛전을 칭할 땐 그, 모험가, 영웅, -(이름), 벗 등 자유롭게 부릅니다. 저희집 빛전의 종족은 여 미코테(달의 수호자) 또는 여 아우라(렌)...인데 글에 빛전의 종족적 특성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 사망소재 有



1. 오르히카

ㄱㅎㅊ 이후. 칠흑스토리까지 끝낸 빛전이 임무 다시하기 기능을 통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왔다는 설정.

"왔구나!"

항상 타고 다니는 하얀 페가수스의 등에서 내리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험가는 고개를 돌렸다. 눈발이 휘날려 시야가 많이 가려짐에도 불구하고, 용케도 이쪽이 오는 것을 알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엘레젠의 청력이…….

"다녀왔어요, 오르슈팡……경."

"매번 딱딱하게 굴지 말라고 해도, 너는 늘 시종일관 그리도 무뚝뚝한 태도로군."

"……천성이니 그러려니 해줘요."

모험가의 무심한 대꾸에, 오르슈팡이라 불린 은빛 머리칼의 엘레젠 남성은 고개를 끄덕이곤 그를 안으로 이끌었다. 아무리 괜찮다고 사양을 해봐도 굳이 모포를 둘러주고 꿀에 절인 생강차를 손에 들려준 뒤에야, 그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모험가로부터 들어야 했던 보고를 듣는다.

"…………그래서, 일단 알아낸 것은 거기까지예요."

"그렇군. 고생 많았다. 눈밭에서 흩날리는 너의 땀방울과 강인한 육체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이정도의 수확이라도 얻었으니 만족해야만 하겠지. 오늘은 묵고 갈건가?"

물어오는 말에 멈칫한 모험가가 잠시 침묵을 지키는 사이, 제멋대로 결론을 내린 오르슈팡이 익숙하다는듯이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너도 꽤나 바쁠텐데 그런 바쁜 몸을 내 이기심으로 붙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곧 돌아가나?"

모험가는 그 질문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당분간 급한 용무는 없다. 오늘은 더이상 별다른 일도 없으니 하루만 신세 질게요. 예상 외의 대답에 놀란듯, 눈을 크게 뜨고 잠시 굳어있던 오르슈팡이 이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아! 곧바로 쉴 방으로 안내해줄테니 같이 가지!"

기다렸다는듯한 반응에, 모험가는 어쩐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

"저녁식사시간은 아직이니, 편히 쉬었으면 좋겠군. 그럼 이따 보자, 벗이여."

오르슈팡은 아직 일이 남았는 모양인지 그 말을 끝냄과 동시에 문을 닫고 방을 나갔다. 한참을 그 닫힌 문을 바라보던 모험가는, 인기척이 사라진 것을 알아챈 순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리도 좋아할 줄 알았으면……, '그 때'도 한 번쯤은……, 권유를 받아들이는 거였는데……."

어쩐지 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모험가는, 이내 품에서 부서진 방패조각을 꺼내든다.

너를 잊지 못해서 너를 다시 보러왔어.

내 후회를 되짚으며 네가 살아 숨쉬던 시간대를 돌아봐…….

이곳에서의 너는 그토록 환하게 웃으며 따스하게 나를 맞아주는데…….

내 시간대의 너는 더이상 나에게 따스함도, 그 환한 웃음도 주지 못하지…….

그것이 이토록 그리워 자꾸만 시간을 거슬러 너를 만나러 온다는 것을 안다면, 너는 기뻐할까? 아니면 슬퍼할까……?

"─! 이쪽이야!"

"……─, 오늘은 어때?"

"─……!"

아아, 오르슈팡…….

네가 내 이름을 부르던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그리워서, 나는 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아…….


2. 오르히카 - 57렙 메인퀘 던전 ㄱㅎㅊ의 If 

만약 빛전이 시간을 되돌려 돌아와서 대신……했다면?

빛나는 창이 복부를 꿰뚫는다. 한순간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눈 앞이 붉어지고, 입 안에서는 비릿한 쇠맛이 느껴진다. 도망치는 교황을 잡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가야 하는데……. 왜 내 몸은 바닥을 향해 기울어지고 있어……? 복부가 꿰뚫리며 느꼈던 고통만큼이나 아픈 표정으로 잔뜩 일그러진 너의 얼굴을 문득 본 것 같았다.

"─…!!"

"─공……!"

"어이, 파트너…!"

아아, 나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들려……. 그런데 창에 꿰뚫린 부분의 감각은 느껴지지 않아……. 피가 역류하는 모양인지 자꾸만 입에 비릿한 무언가가 고이다 흘러넘친다.

……그때의 너도, 이런 아픔을 겪었을까?

"─, 정신차려!"

……어째서 너는, 나를 보며 그렇게 울고 있어?

매번 벗이라고, 맹우라고만 부르던 너는, 이제와서야 내 이름을 불러주는구나…….

"─, ─……!"

……있잖아, 오르슈팡.

일을 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전진기지의 총 책임자답게 냉철하면서, 나를 볼 때면 바보같아 보일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어주던 네 얼굴이 좋았어. 나를 위해 화를 내주던 그 얼굴도, 나를 대신해 슬퍼해 주던 그 얼굴도……, 나는 당신의 모든 얼굴을 다 좋아했어……. 그렇지만 역시, 당신은 웃는 얼굴이 좋아……. 웃어줘, 나를 위해 웃어줘……. 내가 사랑했던, 내가 사랑하는 그 얼굴을 나에게 보여줘.

내가 너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할 수 있게…….

당신은 내가 없어도 늘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모험가들을 만나고 떠나보내고, 전진기지에 있는 네 사람들을 살뜰하게 챙기면서, 그렇게 웃는 얼굴로 살아갈 수 있겠지.

나는 그저, 당신이 만나왔던 그 수많은 모험가들 중 하나였을 뿐이야.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아줘.

"웃어, ……줘, 오르, 슈팡……."

나를 위해서…….

내 말을 들은 네가, 나를 보며 웃는다. 아, 역시 나는 너의 그 얼굴이 제일 좋아……. 나는 네 그 웃는 얼굴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해…….

부디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하지마. 내 죽음을 오랫동안 슬퍼하지 말아.

잠깐의 슬픔으로 남기고 웃으면서 지내줘.

부디, 내 죽음으로 네가 오랫동안 아파하지 않기를…….

사랑한다고, 결국 말하지 못하고 떠나지만, 나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해…….

*

오르슈팡의 뺨을, 그 눈물젖은 눈가를 애틋하게 어루만지던 손이 이내 힘을 잃고 추락했다. 가늘게 맥동하던 심장박동은 호흡과 함께 멎었다. 커르다스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았던 여린 몸은, 이제는 점점 그 온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새벽의 등불이자 영웅이었으며, 동시에 에오르제아의 영웅이었던 그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스러지고 말았다. 하이델린의 가호조차,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영웅을 지켜주지 못했다. 더이상 이름을 불러도 대답해주지 않는 이를 보며, 영웅의 말 한마디에 겨우겨우 얼굴 근육을 움직여 웃고 있었던 오르슈팡은, 결국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오열을 토했다.

"─……!"

단 하나, 목숨을 다 바쳐 지키고 싶었던 단 하나뿐인 사람이 제 눈 앞에서 목숨을 잃었다. 저가 대신 막아내어 지킬 수 있었을 목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키지 못했다. 이 영웅은 저가 그를 구해내는 것을 어째서인지 허락하지 않았다. 방패를 들려던 저를 밀쳐낸 것은 그 작고 여린 몸이었다. 천상 마도사였던, 건장한 성인 남성을 밀쳐낼 힘이라곤 전혀 나오지 않을 것 같아보이는 그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올 수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궁금하지 않았다. 그가 궁금했던 것은 그저 단 하나.

왜 너는 그 목숨을 그리도 허무하게 버려야만 했나…….

왜 너는 그리도 빨리, 내 곁을 떠나야만 했나…….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이번의 일만 끝나면 크게 마음먹고 너에게 말해주고자 했었다.

그러나 나는 영원히 그 기회를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너에게서 영원히 대답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너에게 마지막으로 기억되었을 나의 얼굴은, 제대로 웃는 얼굴이었나……?

어떤 결정을 내리던 확신을 가지고 내려왔었던 나는, 아직도 그것만큼은 제대로 확신할 수 없었다.

"─……."

아아, 처음 마주했던 순간부터 언제나 지독할정도로 매정했던 나의 벗, 나의 사랑아……. 너는 오늘도 나의 부름에 응해주지 않는구나…….

"사랑해."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너에게 이 말을 전해주었을텐데…….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자주, 너를 이름으로 불러주었을텐데…….

남은 것은 못다핀 사랑이라는 이름의 후회뿐이다.


3. 아이히카

ㄱㅎㅊ 이후. 아이메리크를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그 때문에 절친했던 유일한 맹우가 허망하게 스러져버렸기에 좋아한다고 차마 말을 할 수 없는 빛전. 그리고 그 당시의 괴로워하던 빛전의 슬픈 얼굴을 눈 앞에서 봐버린 탓에, 좋아함에도 마음의 빚이 있어 고백하지 못하는 아이메리크.

'그 곳'에서 가장 사이가 좋았던 내 절친한 맹우를 잃은 뒤, 언젠가 당신이 나에게 물었었죠.

"너는 나를 원망하나?"

"너는 나를 경멸하나?"

나는 그때의 그 물음에, 무어라 답했더라…….

……아마 내 대답은 '예'도, '아니오'도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 *

1000년에 걸친 용시전쟁의 막을 내린 이후, 이제는 에테르계로 여행을 떠나버린 벗의 위령비를 다녀온 이슈가르드의 영웅은 그대로 이슈가르드를 떠나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제국과의 싸움으로 한창 바빴던 것은 그 또한 알고 있었다. 그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 전선의 전방에서 군을 지휘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가 동경하는 이이기도 하면서 그의 할로네이기도 한 영웅은 같은 전장에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그를 찾아온 적이 없다. 그저 남들의 우려섞인 시선을 조용히 등지고, 전장의 최전방에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는 소식만 간간히 부관의 보고를 통해 전달받을 뿐이었다. 얼굴을 보지 못한지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보고싶지 않다면 거짓말이었으나, 아이메리크는 그를 보고싶다고 부를 자신은 없었다. 그는 저를 경멸하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이메리크는 그 날, 보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단 한 번도 일그러지지 않았던 얼굴이, 곁에서 보는 사람들조차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일그러지던 그 슬픈 얼굴을……. 그날부터 아이메리크는 영웅을 제대로 볼 낯이 없었다. 마음 속에 품은 연심 또한, 차마 털어놓지 못하고 그저 덮어둘 뿐이었다. 그가 이 마음을 알았다가, 정말로 경멸하며 두 번 다시 저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영영 떠나버릴까봐……, 아이메리크는 그것이 두려워 제 연심을 숨겼다. 한순간의 후련함을 얻고 영영 보지 못할 바에야, 계속 저가 홀로 외사랑에 힘겨워 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의도적으로 얼굴을 마주치지 못한다면, 역시나 그라도 마음이 흔들리게 되기 마련이었다. 지금이야 벗의 죽음을 추모하느라 저를 이리도 보지 않는 것이라고, 곧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아이메리크는 속으로 그렇게 다독였다.

"……에스티니앙?!"

"부상병 후송이다. 황태자와 한판 붙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그대로 당할 뻔 한 걸 구출해왔다."

"무슨, ……─?!"

"그 황태자놈 한 방 먹여뒀으니 당분간은 잠잠할거야. 그럼 제대로 잘 배달했으니, 난 이만 간다."

"잠깐, 에스티니앙!"

생각보다 만남의 시간은 빨랐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모험가를 데리고 관저로 들어온 아이메리크는, 침상에 그를 눕혀놓고 가만히 내려다봤다. 못보던 상처가 늘었다. 흉터가 지지않고 깔끔하게 낫는 편이라고는 하나, 역시 상처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최근 최전방으로 계속해서 뛰어다니더니, 무리를 했나……? 그러고보니 최근에 새벽의 일원들이 다들 갑작스럽게 쓰러져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했나……. 같은 전장에서 얼마 전까지 같이 있었다던 알리제 또한 쓰러졌었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메리크는, 그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 모험가가 다른 새벽의 일원처럼 깨어나지 못한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하지……? 아이메리크는 심란함을 감추지 못하고 사람을 붙여 상태를 보게 한 뒤, 방을 나왔다. 계속해서 깨어날 때까지 옆에 있고 싶었지만, 그는 지휘관으로써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았기에 오래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계속 이어서 쓰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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