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연성

페네트라와 흰 옷

2022.02.12 깊은 생각을 할 나이에 대해서

페네트라는 숲을 달렸다. 이 지점에서 바위를 뛰어넘고 바닥에 착지. 다섯 걸음을 내디뎌서 내리막을 미끄러지고 완전히 바닥에 내려왔을 때 잠시 멈춰서 바지를 털어낸다. 이 옷이 자신의 옷이 아니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일단 넘어간다. 그리고 물소리가 들릴 때까지 달리다가 좌측으로 튼다. 그곳에는 기다란 나무가 쓰러져서 시냇물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들고 있다. 신발을 적시고 싶지 않으면 그 나무 위로 건너간다. 이어서 물길을 따라가면 작은 오두막이 있다. 오랜만인데 까먹지 않고 잘 기억하고 있었다. 페네트라는 그 집 앞에 섰다. 주위는 적막했다. 작은 산새의 속삭임,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있었으나 사람의 소리는 없었다.

 

페네트라는 문을 살짝 밀었다. 문은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사정이 매우 급했으니 누구도 문을 잠글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열쇠가 지금 어디 있는지 누가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피알라씨? 마레크씨?

 

페네트라는 조심스럽게 오두막 안으로 들어섰다. 오두막에는 생활감이 가득했다. 의자는 조금 삐져나와 있고, 찻주전자가 탁자 위에 있었다. 그 옆에는 찻잔이 있었는데, 안의 차가 말라서 갈색 얼룩을 그리고 있었다. 반나절 정도 오두막을 비우신 것 같다. 그러나 페네트라는 안다. 이 집은 비워진 지 일주일이 넘었다. 페네트라는 의자를 더 빼고 걸터앉았다. 의자가 차가웠고, 다리가 어설프게 바닥을 디뎠다. 와서는 안 될 장소에 온 기분이었다. 전에는 아주 제집인 양 눌러앉았는데. 그래도 된다고 하셨는데.

 

오두막의 주인은 파츠코 마레크와 그분과 부부인 밀카 피알라였다. 두 분은 함께 숲 지기 일을 하셨다. 보헤미안 숲에서 이어지는 이 인근의 숲은 슈마바 국립공원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넓이를 자랑하는데, 그 숲 중 마을 인근에 닿은 곳을 관리하셨던 분들이다. 연세는 70대였지만 굉장히 정정하셨다. 등에 도끼를 차고 숲을 한 바퀴 도시거나, 산속 깊이 들어간 아이를 찾아 데리고 오시는 모습은 듬직했다.

 

따라서 파츠코 마레크 분이 경증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였을 때 그럴만한 연세라고 여기는 사람보다는 정정하신데 그럴 리가 있나, 라고 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어쨌든 이리병이 만연한 시대이므로, 이리병의 전조일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그분은 완고하게 거부하는 대신 검사를 받아보셨다. 결과는 양성이었다.

 

1단계에서는 감염자가 감염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 병이 진전될지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어떻게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배제할 수 있단 말인가? 상황은 빠르게 흘러갔다. 피알라도 검진을 받아보고 다행하게도 음성 판정을 받으셨고, 두 분은 긴밀히 의논하셨고, 마레크씨의 안드로이드 화가 결정되었다. 의사들의 허락하에 그분들의 자녀나 친척, 오랜 지인이 찾아왔고, 마을 사람도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그다음, 마레크씨는 사망을 맞이하셨다.

 

생물학적으로 사망 선고가 나기 전에는 안드로이드 화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안드로이드 되기 전에는 죽음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병원에서 안락사가 시행된다. 그다음에는 각 지역의 공무원이나 장례서비스와 연계하여 장례를 치르는 한편, 안드로이드 화를 진행한다. 시신은 알코노스트로 보내고 비어있는 관으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다. 그 두 가지에서 모두 국가의 지원이 이루어진다.

 

이 관례는 오래되지 않았다. 안드로이드가 상용화가 된 것이 1996년이므로 이제 대략 15년이 조금 넘었다. 죽음에 대한 무거운 전통을 바꾸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추측이 있다.

 

첫째, 체코는 최초의 이리병 이후로 국민의 2/3를 잃었다. 그러니 국가와 사회를 유지하는데 안드로이드가 꼭 필요했다. 따라서 국가가 나서서 안드로이드 화를 권장하였다. 그러면서 안드로이드 화를 지원하였는데 이때 비용 및 이송 등의 지원이 장례 지원 쪽에 포함되어 책정 및 운영되었다. 마침 장례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체코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당신의 존엄한 죽음을 도울 것이나, 안드로이드 화 역시 당신에게 주어진 존엄한 선택이라는 선전이 있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끌어당겼다.

 

둘째는 정서적인 측면의 접근이다. 지금은 인간이 이리병을 극복했다고 말 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안도로이드가 개발되기 전, 5년여간 이리병이 새긴 공포는 끔찍했다. 그 집단적 트라우마를 안은 이들은 이리병에 걸려도 안드로이드가 되니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안이 필요했고, 그 위안을 찾는 방식으로 장례식이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안드로이드가 되는 과정에서 장례식을 벌이는 관례를 거치며 특이한 인식이 생겼다. 안드로이드 화는 죽음과 아예 대치되는 관계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죽은 후에 몇몇이 안드로이드가 되는 것이다.

 

페네트라는 잠시 눈을 내리깔아 바닥을 보았다. 페네트라는 마레크씨에게 신세를 진 기간이 있다. 캠프에서 돌아온 직후, 생존자인 자신에게 수많은 관심이 몰렸고 페네트라는 숲으로 도망쳤다. 나스챠는 입단속을 시키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발언이 나스챠를 위험하게 만들 것이 걱정되었다. 이능력을 자랑하고 싶지도 않았고 캠프의 일을 별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 그런 페네트라가 숲을 방황할 때 페네트라를 숨겨주고 따뜻한 차와 식사를 나눠준 이들이 숲 지기 부부, 마레크씨와 피알라씨이다. 얼마든지 이곳에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셨으며 페네트라는 한때는 집보다 오랜 시간을 산속의 오두막에서 보내곤 했다. 그분들이 순찰하시는데 함께 나가 숲을 다니며 숲에 대해 여럿 배우기도 했다.

 

아린 추억을 목 너머로 삼키며 페네트라는 식탁, 화로, 벽에 걸려있는 숲 지도, 바닥에 기대어놓은 도끼에 한 번씩 눈길을 주었다. 모든 물건은 특유의 온기를 잃었지만 그래도 제 자리에 있었다. 페네트라는 모든 것이 변하기 전에 이 장소에 와보고 싶었다.

 

마레크씨는 돌아올 것이다. 안드로이드가 되었으니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계속 숲 지기 일을 하실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피알라씨는 몇 주 사이에 많이 연로해지셨다. 크게 고생하셨으니 오두막을 정리하고 마을에 내려가서 사실지도 모른다. 또한, 이리병의 감염 경로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몇몇은 마레크씨의 활동 반경, 즉 이 숲 내부에 이리병의 감염원이 숲이 있다고 생각하며 숲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기에 숲을 방문한 수많은 사람이 검사를 받았으나 아직 다른 이들에게서 양성 판정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숲 내부에 감염원이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 오두막은 그 누구의 손길도 닿지 못한 채, 이대로 버려질 것이다.

 

가장 큰 가능성은 사실 이것이다. 마레크씨가 우리가 알던 숲 지기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 안드로이드가 되면 사람이 달라진다고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는 안드로이드가 완벽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현대 기술로는 안드로이드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거나 알라티라니움III을 온전히 다루지 못한다고.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한 개체를 완벽히 복제하는 것은 원래 불가능하다고, 세상이 생겨난 이래 똑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죽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죽음을 겪고 변화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고.

 

죽음이란 그런 것일까?

 

페네트라는 일어나 마지막으로 오두막의 광경을 눈에 담고 밖으로 나갔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숲을 나가면 강을 만나게 된다. 마레크씨는 전통적인 장례 방식을 선호하셨다. 친인척들이 그의 관 근처를 지키다가 다음날 매장에 나살 것이다. 그다음에 이어질 장례 행렬은 강 건너에 있는 대로를 지나갈 것이다. 페네트라는 강이 훤히 보이는 곳에 주저앉고 무릎을 감싸 쥐었다. 어쩌면 부모님이 지금 페네트라를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도 친근하게 어울렸던 마레크씨의 마지막 길에 페네트라가 자리를 지키고 싶으리라 생각하신다면 말이다. 그러나 페네트라가 장례 행렬에 끼는 대신 이곳에 있는 것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아까 말했듯 마지막으로 오두막을 보고 싶었던 것이고, 둘째는 저 관 가까이에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다. 마레크씨는 안락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옛날에는 판단 착오로 정말로 죽지 않은 이들의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있었다. 그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정신이 든다면 돌아올 수 있도록 관에 못 질을 하지 않고, 숨 쉴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내놓았으며 손에는 종을 쥐여 주어 울릴 수 있도록 하였다. 페네트라는 그런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병에 걸려 죽은 줄 알았던 시신이 벌떡 일어나 공격하는 경우를.

 

아니, 이것은 그 전의 문제다. 관에는 애초에 시신이 들어있지 않다. 시신은 지금쯤 알코노스트 사로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관에 시신이 들어 있는 듯이 대한다. 사람들은 시신이 없으므로 감염될 걱정을 하지 않으며 마음껏 곁을 지키고 관을 쓰다듬는데 그 행위가 오히려 관 속에 시신이 들어 있는 상황을 연출한다. 그런 연출에 페네트라도 휘말려서 관을 피해 달아났다.

 

“제기랄.”

 

페네트라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다가가지 못하는 페네트라 자신이 한심했고 마레크씨에게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충분한 장례를 치렀음을 믿는다. 캠프의 아이들의 지녔던 마음처럼, 마을 사람들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붉은 개양귀비를 눈앞에 잔뜩 펼쳐 보이듯, 흰 백합을 놓듯, 죽은 이의 입에 사탕을 물려주듯, 거울 안에 온전히 보존하려고 하듯. 죽은 이를 생각하는 방법은 달라도 마음은 같으니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체에 둘러싸여서 장례를 치러야 했던 아이들보다는 무리 없이 해낼 것이다.

 

세 번째 이유를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게 페네트라가 거기에 있지 않아도 될 세 번째 이유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장례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참석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 번째 이유는 이러하다. 페네트라는 죽음과 파멸을 분리하지 못하겠다. 두 번째 이유와 같지 않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리병이 없다고 해도 떨쳐내지 못하는 온전히 죽음에 대한 이미지이다. 죽음은 의식을 잃으며 피가 쏟아지고 몸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알던 얼굴이 차갑게 굳고 그대로 일그러지는 것이다. 사지가 굳고 뒤틀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죽음의 기운이 만연한 장례에 참석하는 것이 힘들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굉장히 두려운 것이기 때문에.

 

때문에 페네트라는 강 하나를 두고 장례식을 떨어져 보고 있다. 강은 건너편이 전부 보이지만, 충분히 넓어 장례장과 거리를 만들어준다. 그곳에서 페네트라는 읊조린다. Přijměte prosím moji nejhlubší soustrast. 바로 곁에서 전하지는 못하지만, 이 마음도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나 죽음은 왜 이렇게 슬프고 두려우며 아득한 것일까? 미소를 지으며 떠나신 분의 이미지에서도 비명과 울음을 떼어놓고 볼 수 없는 걸까?

 

폐네트라는 부모님에게 말했다. 나는 죽음이 너무 두려워요.

부모님은 말했다. 죽음은 무조건 두려워할 것이 아니야. 당연한 것이란다. 너무 슬퍼하지 말렴. 사람이 태어나고 아이가 자라고 어른이 되고 어른이 늙어 노인이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야.

페네트라는 다시 이어 물었다. 그렇지만 죽음에는 다음이 없잖아요.

부모님은 말했다. 안드로이드가 있잖니.

페네트라가 말했다. 그러나 죽잖아요. 죽음이 너무 허망하며 슬프고 깊게 여겨져서 안드로이드가 되는 것이 충분하다고 여겨지지 않아요.

부모님이 말했다. 페네트라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죽음을 비롯한 이런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어른이 되고 있다는 증거란다.

 

아이가 어른이 될 때 어떤 문화권에서는 성인식을 벌인다. 그것은 그들 삶의 통과 의례다. 이런 의례에는 자질을 시험하는 고난이 있고 넘긴 자들에게 축복과 인정이 있다. 그러면 안드로이드가 되는 일에 이리 죽음과 장례식이 벌어지는 건 그들이 통과 의례를 지나는 것일까?

 

페네트라가 말했다. 제가 자라나요? 자라면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나요?

부모님이 말했다. 그럼. 페네트라는 자라지. 크고 어른이 되지.

페네트라가 말했다. 그럼 어른들은 매번 이런 생각을 하며 사나요?

부모님이 말했다. 그렇지는 않단다. 자라는 시기에 네 눈과 마음이 세심하고 세상을 볼 거란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그 상태에 익숙해지거나 무뎌질 거야. 그러니 지금 네가 떠오르는 생각을 소중히 여기며 잘 가다듬어보자.

 

어른이 되어서도 이전의 아이가 아이와 똑같을 수는 없다. 자라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가 되어서도 생전과 같을 수는 없다. 죽음을 겪기 때문이다. 살고 자라고 변한다는 게 그런 것일까? 마레크 씨 그저 인생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인가?

 

망연한 목소리가 페네트라의 머리에서 울렸다. 사람은 죽음으로서 한차례 성장하는 걸까? 나도 이렇게 자라고 끝내 그러할까?

 

그러나 죽음은 여전히 검은 벽처럼 도사려서, 난폭하게 손을 뻗어 생존자를 데려가는 악마와 같아서. 상처를 입고 비명을 지르는 희생양을 즐기는 것 같아서. 그런 죽음이 그저 무섭기만 하여. 자라고 싶지 않아서. 오두막의 밤에 화로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들으며 깔깔거렸던 그 시절에 머무르고 싶어서. 언제까지나 제 남매들과 함께 시시덕거리고 싶어서. 익숙한 장소와 순간이 나를 지나가지 않기를 바래서. 텅 빈 오두막을 배회하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라고 변하고 싶지 않아서.

 

멀리서 종소리가 들렸다. 페네트라는 강 너머를 보았다. 흰옷을 입고 손에 촛불을 켠 장례 행렬이 강 너머의 큰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페네트라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제 흰옷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행렬을 향해 고개를 약간 숙여 묵념하였다.

 

다시 한번 행렬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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