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네트라와 천문 이론 대백과
2022.02.10 담임 선생님의 노고에 대해서
체코의 작은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교는 지난 십여 년간 교사진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 6년 전에 외국어 교사가 추가로 부임한 일을 제외하면 그대로였다. 그러니 그들은 그 마을의 아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꽤 노련하기까지 했다.
그런 교사진 중 한 명이자, 페네트라의 담임 선생님은 드물게도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페네트라는 언젠가 자신이 학교의 커다란 화분을 깨 먹었을 때 보았던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소풍 중에 아이들과 다른 길로 새어서 일행을 잃어버리거나, 학교에서 젤리 장사를 벌여 돈이 돌게 했던 때나. 그리고 그때마다 담임 선생님은 놀라운 인내심과 지혜를 발휘해 상황을 해결해나갔었다. 비록 직후에 혼났기는 했지만, 그 상황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페네트라는 담임 선생님을 알게 모르게 의지하고 있었다. 지금 담임 선생님에게 찾아온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 담임 선생님은 페네트라의 믿음과 달리, 꽤 난감해하고 있었다. 이 작은 학급을 맡으면서 그는 어린아이들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사고와 장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와는 종류가 다른, 불이 붙은 학구열에 부딪히는 순간은 꽤 드물었기에 어찌 대답해야 할지 잠시 헤매었다. 선생으로서 그 학구열을 잘 보존하고 밀어주어야 할 의무를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잠깐 불이 붙은 듯한 학구열을 보존할 방법을 쉽게 찾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할 말은 거절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은 두꺼운 ‘천문 이론 대백과’를 되돌려주며 말했다.
“페네트라, 너는 아직 그 책을 읽기 힘들단다.”
“왜요?”
대번에 불만스러운 물음이 튀어나왔다. 담임 선생님은 페네트라가 흥미를 잃지는 않을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이 책은 아직 네 수준에서 어려워.”
“그러니까 선생님께 알려달라고 찾아온 거잖아요. 모르는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라면서요.”
“그건 맞는데……. 책을 읽다가 한두 문장이나 단어를 모르겠으면 물어보라는 거였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겠으니까 이 두꺼운 책을 냅다 넘기면서 아예 읽어달라고 하는 건 나도……!”
담임 선생님은 급하게 말을 끊었다. 하마터면 다그칠 뻔했다! 아이들의 학구열은 중요하다. 정말로 중요하다. 특히 이 시골 학교에서 이런 학구열은 100년에 한 번 피운다는 꽃만큼이나 드문 것이다. 이 자유분방한 영혼이 함부로 튀어버리지 않게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타일렀다. 그리고 다시 학생 페네트라를 찬찬히 보았다.
페네트라는 책에 가까운 학생이 아니었다. 교과서 외에 책을 펼지는 모습도, 도서관에 가는 모습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학생이 아직 이런 단계의 책을 읽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단숨에 흥미를 잃고 독서를 포기해버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단숨에 어려운 책을 들고, 어떻게 읽을지 모르니 끙끙거리다가 선생에게 찾아와서 아예 떠넘긴 것이리라. 그럼 이유가 무엇일까? 담임 선생님은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그전에……. 이 책은 왜 읽고 싶은데?”
페네트라는 명쾌하게 말했다.
“저만 못 읽잖아요!”
이게 무슨 소리이지? 자신이 모르는 새에 학교 아이들 사이에 천문 이론 대백과를 읽는 유행이 생겼나? 담임 선생님은 빠르게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취미가 돌 리가 없는데? 장난꾸러기에 순진하고 어리고 친숙한 아이들이 갑자기 대학생이 되기라도 한 건가? 그런 애들을 초등학교 교사인 자신은 도무지 이끌 자신이 없는데?
“대, 대체 누가 읽는데?”
“캠프의 아이들이요.”
“아, 다행이다.”
“네?”
“아니다. 그나저나 네가 몇 달 전에 다녀온 그 캠프 말이지.”
담임 선생님은 캠프에서 벌어졌다는 일이나 다른 소문을 떠올렸지만, 일단은 지워 내렸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사건은 이미 홍역처럼 페네트라 주위에 한참 번졌다가 겨우 사그라들었다. 한동안 학교에 빠지며 유급 위기까지 몰렸다가 모자란 수업을 들으려고 애써 웃는 얼굴로 나타났던 페네트라에게 그 일은 다시 묻는 것은 좋지 못하리라. 그리고 지금 주제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캠프의 애들이 그런 책을 읽었다고?”
“네.”
“정말로?”
“어,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요?”
“그런데 왜 너만 못 읽는다고 생각하니?”
“그야 다른 애들은 엄청났으니까!”
“엄청나?”
페네트라는 약간 들뜬 기색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떤 애는 과학을 배우러 그 캠프에 왔어요. 관련 지식도 있어 보였고요.”
담임 선생님은 맞장구를 쳐주었다.
“알코노스트에서 주최하는 캠프니 그런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지.”
“다른 아이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요! 뭔가 다른 걸 인용하기도 하고.”
“교양이 넓은 아이인가 보구나.”
“읽은 책을 이야기하는데 카프카 말고 막 다른 책을 읽은 아이들도 많았고요.”
“카프카는 거기서 왜 나왔니?”
“누구는 벌써 글을 쓴댔어요!”
“어린 작가니? 멋지네.”
“다른 애는 어린이 기자였고요.”
“열심히 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구나.”
“다른 애는 열심히 배워서 돈 많이 벌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했어요.”
“공부만이 훌륭해지는 방법은 아니지만, 일단 그 꿈은 응원해주고 싶구나.”
“또 다른 애는 유명해질 거라고 했고요. 의사가 되어서 간판을 크게 걸거나, 블로그를 쓰거나!”
“오…….”
“어떤 아이는 패션 디자이너가 된댔어요! 다른 아이는 이미 선수였고요!”
“그…… 렇구나.”
“어떤 아이는 음악 홀을, 어떤 아이는 20층짜리 빵집을 가질 거라고 했고요!”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끊어서 미안하다, 페네트라. 네가 그런 훌륭한 아이들과 만나 동기를 받은 건 칭찬하고 싶단다. 그런데 그게 이 천문 이론 대백과와 무슨 관련이 있니?”
페네트라는 잠시 고민해보았다.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없는 것 같네요.”
“뭐?”
“그렇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 그런 애들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페네트라, 잠깐만?”
담임 선생님은 방향성은 없으나 열정은 가득하여 이미 아무대로나 튀어 나가고 있는 이 어린 학생을 보며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저게 장난치겠다고 튀어 나가는 거면 단순히 옷을 잡아서 끌고 들어오면 되는 건데. 그는 차라리 애들이 사고를 쳤으면 좋겠다는 불손한 생각을 억누르며 애써 페네트라를 타일러보았다.
“그 애들은 저마다 멋진 꿈을 가지고 있구나. 그러나 그건 방향과 그 길로 가기 위한 방법과 그들이 해온 일은 전부 다르단다. 단순히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이 해법은 아니야.”
“그럼 책을 읽는 건 방법이 안 되나요?”
“......안 되지는 않지.”
“그럼 저는 이 책을 방법으로 삼을게요.”
어라, 바람직한 방향 같기는 한데. 이게 아닌데?
“그……. 그 전에 이 책은 왜 골랐니?”
“표지가 완전 박사들이 읽을 것 같이 생겨서요.”
어떤 면에서 눈치는 좋다. 박사들이 읽을 책이 맞다. 그런데 아직 초등학생이 읽긴 어렵다는 점은 짐작하기 힘든 건가?
“천문학에 대해 그간 관심을 가진 적 있었니?”
“아니요?”
대답은 해맑았다. 담임 선생님은 그 해맑음에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우주나 별에 대해 아는 것은?”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돌고, 달이 지구 둘레를 돈다는 거요?”
천동설에서 지동설까지는 나아갔구나. 대략 20세기에 걸친 천문학의 중요한 논쟁을 받아들이는 데는 성공했구나. 그래, 많이 알고 있네…….
담임 선생님은 고개를 짚고 절레절레 내저으며 결론을 내렸고, 단호하게 말했다.
“페네트라야. 이 책은 아직 네가 읽기는 어려워.”
“왜요?”
“이 책을 읽는 것에는 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해. 그리고 어려운 책을 읽는 연습도 필요하고. 선생님이 보기엔 페네트라에게는 아직 그것이 충분하지 않단다.”
“캠프의 애들은 읽었다니까요?”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정확히 그걸 읽은 게 아닌 것 같은데. 담임 선생님은 그렇게 대답하는 대신 손을 벌리며 말했다.
“그렇지. 읽을 수 있는 애들도 있어. 그간 책을 많이 읽었고, 지식을 많이 쌓았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단다. 더 나아가 글을 쓸 수도 있겠지. 그런데 페네트라, 너는 그간 책을 읽었니?”
이에 대해서 페네트라는 정곡이 찔리는 모양이었다. 페네트라의 시선이 창밖으로 도망가는 모습에 담임 선생님은 인자하게 웃었다.
“안 읽었지?”
“그렇……죠.”
“그러면 페네트라는 일단 책에 흥미를 붙이고 가벼운 책을 읽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아. 운동처럼 말이야. 운동은 어려운 것부터 하면 많이 다치고 재미도 없지? 그런 거야.”
그러자 페네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에 비유를 드니 이해가 되는 모양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함께 도서관에 가볼까? 같이 책을 한번 골라보자.”
페네트라는 눈을 반짝이며 일어났지만 앉은 자리를 돌아보고 고집스럽게 그 두꺼운 책을 끌어당겼다.
“그래도 이 책은 읽어보고 싶어요. 정말 안 돼요?”
“정 읽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으마. 원하는 대로 해. 그럼 도서관에서는 그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을 중점으로 찾아보자꾸나.”
담임 선생님은 문을 열어주었다. 페네트라는 ‘천문 이론 대백과’를 총총 안고 앞서 나갔다. 정확히 네 시간 뒤에 페네트라는 대백과를 침대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포기해버리지만, 그것은 잠시 후의 일이며 지금 도서관으로 가는 걸음은 경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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