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연성

페네트라와 젤리사건

2022.02.09 파비우스 가의 남매들에 대해서

“야! 파비우스!”

 

페네트라는 화들짝 깨어나 땅에 책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의아해하며 떨어진 책을 보았다. 왜 떨어졌더라? 아, 저걸 읽다가 누워버렸고, 빛이 거슬려서 자연스럽게 얼굴 위에 덮었지. 그리고 순조롭게 잠들었지.

 

페네트라가 잠기운이 덜 가신 상태로 책을 주워들었고, 겉표지를 확인해보고 친구가 보내준 책이 아님을 확인했다. 다행이었다. 친구들의 책을 함부로 다루고 싶지 않았다. 책을 조심스럽게 털어내는데 어디에서 다시 외침이 들렸다.

 

“너 어디 있어!”

 

맞아. 그런데 누가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깨어나 버렸지. 그나저나 어떤 녀석이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야?

 

“안토닌 파비우스! 너 어디 있어!”

 

그 어떤 녀석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페네트라는 그제야 상황을 얼추 이해했다. 아하, 이거 우리 언니 카렐이 안토닌을 쥐잡듯 잡으려고 하는군? 물론 페네트라는 관련 없는 일이다. 고로 페네트라는 다시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문득 곤란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카렐이라면 안토닌이 보이지 않는다면 곧장 내 방에 들어와서 문을 부술 듯이 열고 안토닌 그 자식 어디 갔냐고…….

 

그 순간 쾅! 하고 문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페네트라! 안토닌 그 자식 어디 갔어?”

 

예상이 쓸데없이 정확하게 맞아 들었다. 페네트라는 속으로 거친 체코어 단어 몇 개를 주워섬기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가에는 위풍당당한 황소와 같은 기세의 카렐이 서 있었다.

 

여기서 잠깐 카렐에 대해 말해보겠다. 카렐은 페네트라의 오랜 동맹이자 적, 등을 맞댈 수 있는 아군이지만 잠시만 방심하면 등에 칼을 찌를 원수, 무수한 맹세를 한 친구이자 수없는 맹세를 깨뜨린 배신자, 돌고 도는 채권자와 채무자……. 한 마디로 요약하면 페네트라의 징그러운 언니다. 이름은 카렐 파비우스.

 

참고로 페네트라 파비우스에게는 위와 같은 관계의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오랜 동맹이자…. 생략하겠다. 그 녀석은 안토닌 파비우스. 페네트라의 남동생이다. 파비우스 남매는 총 세 명이고 페네트라는 그 사이에 둘째로 끼어있다.

 

하여튼 시끌벅적한 이 남매들 사이에 잘못 끼어서 이런 일이 가끔 발생한다. 페네트라는 하품을 하면서 카렐에게 손을 내저었다.

 

“안토닌 일을 왜 나한테 물어,”

“네가 안토닌 숨겼지? 내놔. 그 자식 내 젤리 훔쳐먹었다고.”

“젤리? 엄마가 가져온 그거? 그게 왜 아직 남아있어? 다 같이 먹었잖아.”

“그때 내가 몇 개 챙겨두었거든.”

“어이가 없네. 다 같이 뜯어서 먹기로 하던 걸 왜 따로 챙겨놔? 아니, 그건 둘째치고, 왜 네건데?”

“내가 챙겨놨으니까!”

 

태도는 당당했고 페네트라는 협력할 의사가 사라졌다. 페네트라는 귀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난 몰라. 내가 그 등치를 어떻게 숨기냐? 학교에서 아직 안 돌아온 거 아니야?”

“넌 숨길 수 있잖아! 등교할 때까지만 해도 있었다고!”

“그럼 발이 달렸나. 잘 찾아봐. 어디 선반에서 안쪽으로 굴러 들어간 거 아니야?”

 

그때 카렐의 눈이 일순간 날카로워졌다.

 

“페네트라. 내가 젤리를 선반에 놓은 건 어떻게 알았어?”

 

아, 이런 젠장. 예리하기는. 페네트라는 눈을 굴렸다. 그러자 카렐이 한 걸음 확 다가왔다.

 

“내 젤리 털어먹은 게 너야?”

“......아닌데?”

“저번에는 사탕도 훔쳐 가더니 이번에는 젤리에도 손을 대?”

“아니, 내가 언제 사탕을 훔쳐 갔다고 그래?”

“아빠가 사놓은 사탕 네가 가져간 걸 모를 줄 알아?”

“허 참, 카렐. 우리 먹으라고 한 거잖아. 우리 중 한 명인 내가 그걸 가져가는 게 뭐가 잘못되었는데?”

“야! 그 우리에 나는 안 들어가 있는 줄 알아? 내 것은? 네가 다 가져갔잖아?”

“다 가져갔다니! 몇 개 남겨놨잖아!”

“혼자 한 상자를 가져가고 달랑 몇 봉지를 남겨놓은 게 지금 자랑이라는 거야?”

 

물론 자랑이 아니었다. 싸울수록 밑천이 드러나고 있었으므로 페네트라는 더욱 치사하게 굴었다.

 

“안 될 이유는 없지. 아빠가 정확히 언니에게 소유권을 넘겼던가? 아니지. 그때 집에는 내가 있었고, 내가 수령했기에 나한테 소유권이 넘어간 거야. 나눠 먹으라고만 했고 그 양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았어. 그러니 나는 기존 소유자의 요청을 수행함으로써 수령자에 대한 책임 완료.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페네트라는 제 기준에서 어려운 단어를 써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한편, 법률의 문제로 넘겨 대화의 논점을 흐리려고 했다. 물론 카렐은 그런 속셈에 당하기는 너무 오래 지냈다. 턱을 약간 들고 툭 뱉었다.

 

“그 말 그대로 아빠한테 전해보자.”

 

그 집의 법과 행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이 개입하면 페네트라의 논리는 무효가 되며 사탕 압수 처분을 받거나, 사탕에 해당하는 금액을 물어내야 할 것이다.

 

“잠깐만, 친애하는 우리 언니? 진정하고 대화로 하자.”

“대화 좋지. 아빠-?”

“항복, 항복! 그만!”

 

페네트라는 목소리를 낮추며 온갖 비언어적 표현, 즉 걸리면 자신이 죽으므로 살려달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리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언니가 원하는 건 젤리잖아? 사탕이 아니라. 그렇지 않아?”

“그렇지? 그런데 네가 젤리의 위치를 알아야 협상이 될 텐데.”

“지금 안토닌 파비우스에게 있어.”

“역시 그 자식이지? 전부터 호시탐탐 내 젤리를 노리더니만! 그 자식 어디 있어?”

 

페네트라는 잠시 고민했다. 그렇지만 내 동생인데. 형제에 대한 우애와 상호 간의 신의는 소중하지 않은가? 카렐의 실력 행세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페네트라가 주저하지 카렐이 눈을 흘기며 아래층에 힐끗 눈길을 주었다. 부모님이 있는 곳이다. 이르겠다는 뜻이지? 내가 겨우 그 정도에 팔 것 같아? 페네트라는 명료하게 답했다.

 

“뒤쪽 창고에서 재포장하고 있어. 자기 친구한테 준대.”

 

팔렸다. 젤리와 사탕 몇 알의 금액으로 우애는 완판되었다. 카렐은 페네트라를 돌아볼 것도 없이 아래층으로 우당탕 내려갔다. 그러자 바깥 창문에서 큰 소리가 났다. 고함을 지르는 건 보나 마나 카렐이고 비명을 지르는 건 안 봐도 안토닌이다. 카렐? 으악! 여기 누가 말했어! 설마 그 자식! 등의 대화가 오가는 것 같았지만 페네트라는 껄껄 웃으며 창문을 닫고 다시 침대에 앉았다가 호주머니에서 작은 봉지를 두개를 끄집어내었다.

 

카렐은 안토닌를 아무리 뒤져도 다섯 봉지 중 세 봉지밖에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는 페네트라가 일찍 빼돌렸다. 다른 하나는 안토닌이 훔치는 장면을 포착해서 입막음 비용으로 받아냈고.

 

절도와 협박과 매수와 사기로 이루어지는 형제애라니. 참으로 아름답다. 페네트라는 봉지를 뜯어 임시 소유주였던 카렐이 찾아오기 전에 입안에 털어 넣어 증거를 인멸해버렸다. 트로피컬 팝핑 젤리는 톡톡 튀기며 새콤달콤한 향을 뽐냈다. 과연 세 남매가 한 번에 노릴 만한 맛이다.

 

페네트라는 젤리 봉지를 바닥에 통과시켜 숨기고는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카렐이 안토닌을 털어내는 소리가 아침의 새소리처럼 들려왔다. 이 집의 평화로운 일상이 오후의 느린 햇살과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페네트라는 문득 웃어버렸다. 젤리를 문 입에서 미소가 잔뜩 새어 나오는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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