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재판 드림 작업물 - 두 번째 페이지

종이비행기

Commission by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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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루기 레이지는 알았다. 그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건을 재판하는 검사여서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아니, 하나의 인간으로서도 아니다. 미츠루기 레이지, 그 사내는. 나나후시 빌리에게 무늬만 가족이었음을. 너무나도 뒤늦게, 깨달았다.

 

눈앞의 소녀가 이리도 제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을 보며, 사내는 그만 눈을 질끈 감을 뻔했다. 빌리 양, 잠시 대화 좀 할까. 내 방으로 오게. 네, 미츠루기 씨. 그 간단하고도 짧은 대화 속에서마저 소녀는 저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연연했다. 제가 뭐라고. 제가 그리 어려운 사람이던가. 아니, 아니다. 제가 어려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제가, 이 소녀에게. 어려운 사람처럼 대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생각까지 미치자, 미츠루기 레이지는 정말. 눈을 꾸욱 감을 수밖에 없었노라고.

 

미츠루기 레이지의 정돈된 방 안에서,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길어지는 침묵 속 사내는 생각했다. 무어가 이렇게 어색한 건지를. 양육하기로 해 놓고 잘하는 짓이다, 미츠루기. 나루호도가 보면 뭐라고 하겠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사내는 소녀를 바라본다. 제가 먼저 입을 열지 않으니 소녀 또한 말문을 트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 이렇게 답답하지. 왜, 제 눈치를 보는 거지? 물론, 대화를 하자며 소녀를 방으로 부른 것은 저다. 하지만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것이던가, 이 소녀에게는. 그것도 자신을 양육하기로 한 사람의 앞에서.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다. 팔짱을 낀 손에 힘을 준다. 검지 손가락을 들어올려 팔을 톡, 톡 친다. 그러면 나나후시 빌리는, 그마저도. 힐끗 시선을 들어 올려 저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눈길을 끌어내린다.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 건가.

 

합당한 사고였다. 이보다 더 논리적일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녀는 제게 사과하지 않았던가. 납치된 것은 자신임에도. 죽을 뻔한 것은 나나후시 빌리다. 목숨을 아깝게 여길 줄 몰랐던 건, 나나후시 빌리란 말이다. 그런데, 왜! 이 소녀는, 제게 사과를 한 거고. 왜 제가 화가 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며, 왜 이렇게 제 눈치를 보는 것인지. 왜, 왜, 왜……

 

 

 

그러다 문득 드는 사고.

 

아.

 

우리는,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구나.

 

 

 

미츠루기 레이지는 언제나 뒤늦게 깨닫고 마는 사람이었음을.

나나후시 빌리가 한참을 쭈뼛거리고 있을 무렵, 먼저 고요의 장막을 거둔 것은 미츠루기 레이지였다.

 

 

 

“빌리 양.”

 

“……네, 말씀하세요.”

 

“지금부터 내가, 빌리 양에게 중요한 것을 물을 거야.”

 

 

 

대답해줄 수 있나? 이어지는 말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사내는 눈을 감았다. 서늘한 날붙이에 베일 것만 같은 긴박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미츠루기 레이지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내게 말해줄 수 있겠나?”

 

 

 

빌리 양이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해 왔는지를. 빌리 양이, 무슨 감정을 겪어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내게 말해주게.

 

내가, 빌리 양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나나후시 빌리는 망설였다. 미츠루기 레이지가 어째서 제게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하여. 한 번도, 단 한 번도. 이렇게 대화를 나누어 본 적 없었으면서. 우리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사건의 해결책을 타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그런데 왜. 눈앞의 사내가 제게 긴박함 등등이 느껴지지 않는,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 들 지경이었던 일말의 다정함을 내세우면서. 이렇게 다가오는 것인지를, 소녀는 알 수 없었다.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나후시 빌리는 사내의 눈치를 살폈다. 살펴야만 했다. 살피지 않으면, 안 되니까. 나를 양육하기로 해 준 사람이잖아. 유일한, 내 주변 사람이잖아. 실망하게 해서는 안 돼. 그러니까……

 

 

 

“……저희 아버지는, 천재셨죠.”

 

“그렇지. 천재 마술사, 아루마지키 잭.”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마술은커녕. 종이학 하나 접지 못해요, 미츠루기 씨. 고개를 숙인다. 두 손을 내려다본다. 원망스럽다. 종이접기 하나 하지 못하는 제가. 만약, 만일, 제가 아루마지키 잭을 따라 마술의 천재였다면. 마술의 대가였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뜬 소녀는, 고개를 들어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미츠루기 씨는, 재판에서 패소하셨을 때.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

 

“저는…… 두려워요. 타인을 실망시키는 게.”

 

 

 

제가 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렸듯이. 선택받은 미누키와는 달리, 전. 아니에요, 미츠루기 씨. 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아무것도 아니니까,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해야 해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저는. 반드시 완벽해야만 하고, 그것을 성공시켜야만 하는 의무가 있어요. 소녀의 고해는 그랬다. 네 글자로 함축한다면, 이른바 완벽주의. 그 말을 들은 사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의 행동이, 소녀가 계속해서 눈치를 살피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츠루기 씨에게, 짐이 되어서 죄송해요.”

 

“…….”

 

“……저만 아니었으면, 재판은 수월하게 흘러갔겠죠?”

 

“미츠루기 씨께서 원하신다면, 이 집에서 나갈게요. 저를 양육해 주시겠다고 해 주셔서 감사했……”

 

“그만.”

 

 

 

거기까지 말하도록. 사내는 꽤 무례하다시피 말을 끊었다.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나나후시 빌리가 무슨 삶을 살아왔고, 그동안 저와 함께 지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듣고 싶은 것이었지, 이렇게 또다시. 소녀에게 사과를 듣고 싶은 게 아니었기에. 고작 14살이다. 고작, 14살인 이 어린아이가! 어째서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고, 사과할 일이 아님에도 용서를 구하며, 갈 곳 하나 없으면서 제가 실망했다면 이 집에서 나가겠다고 하는지. 사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소녀의 음역대를 잘라내었다.

 

 

 

“빌리 양,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나는 빌리 양의 편이야. 미츠루기 레이지는 생각했다. 제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 것 같다고. 그러나 말해야 했다. 말해야만 했다. 이 소녀가, 두 번 다시는 제게 사과하지 않게끔. 두 번 다시는! 제 눈치를 보며 살아가지 않을 수 있도록. 사내가 두 번째 페이지를 펼쳐내려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나후시 빌리. 그 소녀는, 얼굴을 들어올리지 않았다. 여전히 시선은 바닥에 둔 채로,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모습에서 사내가 보게 된 것은 어린 날의 자신이었다.

 

 

 

완벽. 그놈의 완벽. 완벽하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는가? 세상 모두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왜, 과거의 소년과 눈앞의 소녀는 완벽해야만 했었고, 완벽해야만 하는지. 미츠루기 레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이제는, 말할 수 있었다. 입을 열었다.

 

 

 

“빌리 양.”

 

“……말씀하세요, 미츠루기 씨.”

 

“한 번 더 말하지. 이번 일로 인해서, 내게 사과하지 말도록. 그리고,”

 

 

 

내가, 빌리 양의 편임을. 증명해 보이겠다.

 

 

 

“어쩌면 당황스러울 말일지도 모르겠군. 허나, 나는 지금 진지하다는 걸 알아주게.”

 

 

 

소녀가 고개를 들어 올린다.

 

 

 

“나도 빌리 양과 똑같았어.”

 

 

 

스승의 밑에 있을 때 지겹게도 들어 온 말이었지. 완벽해야 한다고. 빌리 양의 앞에서 딱딱하고, 무뚝뚝해 보였다면, 어쩌면. 완벽하기 위해서 일에만 파묻혀 살았기에 그랬을지도 몰라. 소녀의 시선이 사내의 탁한 회빛 눈과 마주한다. 하늘을 닮아 푸르른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나 다름없어서, 사내는 어쩐지 웃음이 나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나는. 가족의 따스함을 알아, 빌리 양.

 

우리 아버지가 그런 분이셨으니까. 참으로 다정하신 분이셨지.

 

빌리 양도 그러길 바라네.

 

가족에게서 받는 사랑을 느껴보길 바라.

 

언젠가는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

 

그러니,

 

 

 

“나의, 하나뿐인.”

 

 

가족이 되어주겠나?

 

나나후시 빌리가 아닌, 미츠루기 빌리로서.

 

 

 

―훌쩍. 화답을 돌려주지 않은 채 고개를 푹 숙인 소녀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사내의 귓가에 닿은 소리였다. 책상에 기대앉아 있던 몸을 일으킨다. 뚜벅, 뚜벅. 구두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간다. 한쪽 무릎을 꿇은 사내는 두 팔을 가볍게 벌린다. 여전히 얼굴을 들어 올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츠루기 빌리가, 다가선다. 아버지의 앞으로. 마주 두 팔을 벌린다. 끌어안는다. 그러면 사내 또한 딸을 끌어안는 것이다.

 

 

 

그제서야.

 

미츠루기 빌리는 목놓아 울었다.

 

아빠를 외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딸의 등을, 아빠는 토닥였다.

 

 

 

나나후시 빌리는 오늘부로 안녕.

 

이제는 미츠루기 빌리가 되어.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다.

 

 

 

두 번째 페이지의 종장, 세 번째 페이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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