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X헌터 드림 작업물 - [KT] 태양과 햇무리

종이비행기

Commission by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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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다.

 

켄드릭. 둘째가라면 서러울 암살의 대가들. 어둡디 어두운, 광명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 그 속 왕족의 짐승이 바로 나다. 토코 켄드릭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상 늘어지는 그림자 밖으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했고, 변치 않을 불변의 사실임을. 그는 알았다.

부욱, 소리와 함께 곰인형의 팔을 뜯어낸다. 북, 귀도 뜯어낸다. 솜이 튀어나온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붉다. 진득히 흐른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분홍색 눈동자. 홍접초를 닮은 시선이 천천히 깜빡인다. 작은 손에 들린 칼을 털어내듯 유연하게 휘두르자 새빨간 물을 흩뿌린다. 그런 저를 당연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눈빛들. 역시, 토코야. 첫째와는 다르지. 아주 대단해. 훌륭해! 귓가에서 언제나 머무르는 격양된 목소리. 정말 대단한가? 이건 당연한 거잖아. 켄드릭으로 태어났으니, 그렇게 배워왔으면. 자랐으면. 곰인형의 다리 하나를 잡아 뜯는 것 정도는, 포크를 들어 올려 고기를 집는 것과도 다름없는. 아주 간단한 일이라는 의미가 될지언대.

 

 

 

그러니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인형을 마구잡이로 뜯어내는 것이 아니면 나는 쓸모가 없다. 사실은, 칭찬받고 싶어서 열심히 했어. 당연하지 않아. 노력했어. 잘했다고, 너는 아주 멋진 아이라고. 역시 토코 켄드릭이야, 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그래서. 그래서 노력했다. 곰인형을 잡아 뜯어내는 것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없다. 그런 것을 가질 이유마저. 그저, 나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좋았고, 칭찬이 담긴 음역대가 제게 닿는 것이 행복했을 뿐이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절대 착하지 않아.

 

 

 

이기적이다. 이기적이면 단단하기라도 해야 하는 것을, 무르기 짝이 없다.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야. 못됐어. 못돼도, 너무 못돼서. 켄드릭 가 첫째의 재능을 집어삼키고 올라섰다. 올라섰으면 당당히 고개를 치켜세울 줄 알아야 함을, 소녀는 알았으나. 그러지 못했다. 넘어지는 게 아파. 다치는 게 서러워. 칭찬을 듣지 못하면. 쓸모없는 아이가 되어 버릴까 봐, 속이 타들어 간다. 잿더미가 된 속내에 짠물이 들어찬다. 그렇게 오늘도 눈앞이 흐려진다. 평생,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이러다 내가 싫어지면 어떡하지. 아니, 이미 싫어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나는,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해? 이렇게, 이렇게…… 평생을, 살다가. 그렇게 죽어버리는 거야?

 

 

 

“바보야.”

 

“내가 누누이 말하잖아, 너는 태양이라고.”

 

 

 

붉어진 눈시울. 흘러내릴 것만 같은 물줄기. 그런 제 앞을 가로막고 선 이는, 당연하게도.

키르아 조르딕이었다.

 

 

 

내가, 태양이야? 응. 아니야, 키르. 나는 태양이 아니야. 태양이 싫으면 햇님으로 바꿔. 그러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소녀가 아는 소년은 저를 언제나 바보라 일컬었다. 제 이름이 토코가 아닌 바보라고 적혀있는 마냥.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제가, 밑바닥으로 추락할 만큼 힘들었던. 오늘은, 달랐다. 키르. 너는 어떻게 나를 이만큼이나 잘 아는 거야? 키르. 왜 내가 힘들 때마다 나타나 줘? 키르. ……키르. 키르아, 조르딕. 흰빛 머리카락의 소년을 본다. 흑요석을 깎아 만든 듯한 눈동자를 마주한다. 투명하되 반짝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림자에 기생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그런 나를. 태양이라고 부르는 네가, 나는. 그 목소리를, 저 눈빛을. 키르, 네게 손을 뻗지 않을 수가 없어서……

 

울지 마, 바보. 넘어졌으면 일어나. 다시 걸어. 그게 바보, 너잖아. 내가 손을 뻗을 수 있게 해. 내가 태양을 올려다볼 수 있게 만들어. 꽃샘추위를 닮아 싸늘하면서도 일말의 다정함을 품고 있는, 바보라는 애칭을 들으며. 소녀는 웃었다. 나는 이기적인데. 못됐고, 나약한데. 그런 나를, 너는. 태양이라고 불러주는구나. 그 짧막한 문장들에 나는 다시금 일어선다. 넘어진 몸을 일으킨다. 눈가에 맺힌 아침 이슬을 훔친다. 언제나처럼 밝게 웃어 보이는 것이다. 억지로 그려낸 것이 아닌, 키르아 조르딕 앞에서 보일 수 있는 오롯한 진심으로.

소년과 소녀는 그렇게 암영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것이 여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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