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작업물 - 복수

종이비행기

Commission by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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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고 싶은대로 해 봐.

 

이번에는 흥미가 빨리 식기를 바랄게.

 

 

 

“이스첼.”

 

 

 

그날은 눈이 내리는 적막의 겨울, 고요를 품은 칠흑빛 밤이 뒤덮인 하늘. 이스첼, 하고 제 이름을 부르는 무미건조한 목소리. 함박눈이 아니면 모든 것을 빼어 닮은 저의 눈앞 순백의 천사. 하나를 제한 모든 것이 다르다. 지금 시간대에서는 볼 수 없는 물빛 푸른 눈동자, 그 얼굴을 두고 보자면 모든 것이 달랐다. 그러니 안다. 너는 나의 어머니를 대체하기 위한 소모품이었으나,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는 품어서는 안 될 감정이라 일컫는 것을 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왜 안 되지? 세상에 품으면 안 될 감정 같은 게 어디 있어. 악마가 천사에게 사랑을 고하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규칙이라도 있나? 이 세계에. 그런 것 따위는 없다. 있어도 깨뜨리면 그만이다. 이스첼, 그 악마. 오만함이란 오만함은 모두 품고 다리를 꼰 채 앉아 장난기 넘치는 웃음을 머금는 사내는. 자신이 있었다. 제 마음을 상대에게 전하는 것 정도의 간단한 일 따위. 그리고, 대차게 차였다.

 

 

 

이번에는 흥미가……

 

흥미. 고작, 흥미. 그대에게는 내 사랑이 흥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거야? 에리카. 입 안 세 글자를 굴린다. 표정 관리, 표정 관리. 우습잖아, 고백했다가 차인 악마가 상대방 앞에서 표정이 일그러지는 거. 아…… 이거 억울하네. 내 진심이, 진심 같지 않아 보인다는 건가. 평생에 진심 하나 갖지 않고 가벼운 바람을 품은 미소로 대신했던 악마가 치르는 대가란 그리도 무거운 법이었다. 제가, 좋아하는 이에게. 단순한 흥밋거리로 여겨지는 일 같은 것. 그렇게 일그러지는 것은 표정이 아닌 제 안의 욕망.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마음. 아, 가라앉는다. 콧대 높던 자존심에 금 한 줄기가 이는 순간이다. 마음이 울렁인다. 왜 부정해? 왜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왜, 왜, 왜!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까득,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에리카 한 이름을 입에 머금는다. 나를 부정하지 마. 내 마음을, 외면하지 말라고. 내 진심을, 장난 같은 것으로 치부하지 말란 말이야.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벼운 웃음으로 묻어낸다. 아, 이 괘씸함을 어떻게 씹어 삼킨다? 아니지, 아니지……. 집어삼키면 안 되지. 한입에 삼켜버리기 전에 녹여야 한다.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머금고 굴려야 한다. 네가 내게 종속되지 못할 거란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누누이 말했잖아, 그 하얀 날개를 흑빛으로 물들이자고. 자, 내 손을 잡아, 그대. 함께 날자, 날아서, 헤일로를 바스라뜨리자. 이 하늘을 누비자. 검은 날개와, 흑빛 깃털을 흩날리며. 그대와 나, 함께 날아오르자…….

 

 

하얀 손을 붙든다. 허리를 숙인다. 네가 손을 뿌리칠 리 없다는 확고한 자신감이다. 너는 누군가와 다투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평화를 자칭하는 천사였으니, 그것은 악마인 저조차 예외로 삼을 수 없음이라. 망설임 같은 건 존재치 않았다. 손등에 입을 맞춘다. 고개를 들어 올린다. 당황 하나 서리지 않은 무감정한 낯. 포슬히 내리는 눈이 쌓인 푸른 시선에 보석처럼 빛나는 보랏빛 눈동자가 파고든다. 악마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얼마든지 밀어내도 좋아. 몇 번이고 나를 내치도록 해, 그대. 내 사랑을 감히 흥미라 칭했으니 그렇게 대해주도록 할까. 네가 결코 헤어나올 수 없도록. 그래, 그대는 내 어머니가 아니야. 그것을 알고 있음에. 파고든다, 갈구한다, 갈망한다! 내 사랑을 거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주겠다는 오만함이.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내 사랑에 입을 맞대며 인사를 건넨다. 자, 날아볼까. 이제는 내 손을 잡지 않아도 좋아. 그대가, 네가. 내 손을 잡고 싶다 간청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내가, 그렇게 만들어 보일 테니까! 흥미가 빨리 식기를 바란다고?

 

 

 

“아쉽게 됐네,”

 

 

 

내 흥미는 그대를 가졌을 때 식을 예정이거든. 이 대결의 승자는, 바로 나야. 에리카. 내 사랑이 이길 거라는 것. 그리고, 네가 나를 원하게 될 때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 이 사실만큼은 불변한다. 그대,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내 사랑이, 지금만큼은. 흥미가 아니라는 걸. 그대를 가졌을 때, 온전히 식어버리게 둘 것이라는 걸.

 

 

 

이것은 일종의 복수였다.

 

나의 사랑을 밀어낸 이를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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