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작업물 - 정의

종이비행기

Commission by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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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감.

 

그에게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었나, 허무함이었나.

 

그것들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아론, 너는 내게 어째서 그랬는지. 그래야만 했는지.

 

묻고 싶다.

 

―사내는 눈을 감았다.

자고로 전장이라는 목숨이 걸린 위치에서 제 등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상대란 세상에 몇 없는 법이다. 그리고, 아이언 폰 데스몬드는 그러할 수 있는 상대가 있었음을 세상이 알았고. 세상이 알았으니, 저는 더더욱 모를 수가 없었다. 그만큼 믿었다. 그렇기에 닥쳐오는 것이 배신감이자 증오라 일컫는다. 잠시라도 치고 올라오는 원망을 통한 상념에 빠져들라치면 목의 상흔이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욱신댄다. 손을 들어 올린다. 붕대가 감긴 목덜미, 아론이 남긴 흔적이 자리한 곳에 가져간다. 붕대를 쓸어내린다. 눈물 같은 것은 흐르지 않는다. 소나기도, 장마도 내리지 않았다. 지글대듯 뜨겁게 불타오르는 자리를 감싸지도, 그렇다고 손을 내리지도 못한 채. 사내는 허망히 웃었던가. 그것은 울음을 삼킨 웃음이요, 따라 사내는 넋 놓고 울지 못했다.

 

 

 

사경을 헤매던 사내가 눈을 뜬 건 며칠이 지난 이후였다. 저를 찌른 이, 아론은 종적을 감추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너의 얼굴을 기억한다. 창백하게 질린 낯. 겁먹은 듯한 눈동자. 얼굴에 진 노을 뒤 그림자를 제가 한 걸음 더 빨리 눈치챘더라면, 아론. 너는 나를 이리 아프게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목숨을 겨눈 칼질. 망설임이 깃들어있던 시선. 그 망설임을 파고들었다면. 내가, 파고들 틈이라도 주었더라면. 너는 내게 평생 지고 갈 고통을 주지 않아도 되었을까.

 

 

 

웃음이 났다.

 

여전히 빗줄기 하나조차 떨어지지 않는다.

 

너를,

 

믿었는데.

 

 

 

나는 너를 믿었어, 아론.

 

정의로운 사람으로 자라라. 아버지, 그런데요. 평생을 함께 정의를 추구하며 살 것이라 믿었던 상대가 저를 배신했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버지.

 

 

 

그러고 보면 아론, 네게는 이상한 점이 종종 있었지. 그리고 저는. 그것을 외면했다. 그게, 정의의 사이를 갈라놓을 시점이 되었을까.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정의를 정의라 부르지 못하고, 친구를 친구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일까. 한 번 뿌려지기 시작한 의심은 모든 땅에서 싹을 틔운다. 비가 내리지 않는 하늘에도 의심이란 것은 자라기만 하더라. 먹구름을 비로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내는 웃었다.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여전히 붕대 근처에 아우르던 손을 말없이 내린다. 두 손을 펼쳐 바라본다. 그것으로, 제 얼굴을 감싸 덮었다. 몇 번이고 부르고 싶은 이름을 입 안에서 꺼내지도, 삼키지도 못한 사내. 우리는 분명 신뢰하는 사이였으나, 그 사이는 나 혼자만이 품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찰나의 생각이 가려진 두 시선을 둘러싼다. 너는 동료 이전의 친구였기에. 나의 등 뒤를 맡길 수 있고, 옆을 돌아보면 늘 있을 거라 믿었던 너였기에. 우리는 정의를 향해 함께 걸어가고 있다고 믿었으므로. 그 믿음이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아프다. 지독하게 아팠다. 경동맥이 찔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사내는 운 좋게도, 운 없게도. 살아남았다. 아론,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살아남아서 후회돼? 너를 두고 죽지 못한, 그야말로 너의 최종적인 실패를. 살아버린 나를, 두고두고 원망하고 있어? 아팠다. 상처가 터진 것만 같았다. 혈흔이 새롭게 생기지 않고 있는데도, 뜨거운 무언가가 흐르고 있는 듯싶어서. 사내는 손가락을 세워 제 얼굴을 짓눌렀다. 가슴이 아팠다. 네가 깊숙이 찌른 상흔보다, 네가 노리지 않은 심장이. 너무 아파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 고통을 뜯어내고 싶을 만큼.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벌린 입속에서 나오는 것은, 아론. 너의 이름 두 글자뿐이었다.

 

 

 

퇴원하고 나서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데스몬드는 그저 정의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탐정으로서 일하는 것이 전부였다. 누군가는 말했다, 그만큼 다쳤으면 조금은 쉬어도 된다고. 누군가는 전했다, 퇴원하기 이른 시점이라고. 또, 누군가는. 조언했다, 네가 다친 것은 몸뿐만이 아닌 마음도 포함된다고. 그러나 아이언 폰 데스몬드. 이제는 버려야 하는 이름 중 하나. 체스의 혼이자, 체스의 마지막 보루. 폰. 네가 지어주었던 이름. 그것을 버릴 때가 되었다고, 그는 알았다. 그리고, 버리지 못했다.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문다. 불을 붙인다. 들이마시고, 내쉰다. 흩어지는 것은 복잡한 머리를 잠시나마 게워내는 연기. 그리고, 너를 향한 생각들. 이럴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둘이서도 어려웠던 사무소의 실상. 아무리 자리를 잡았어도 둘에서 혼자가 된 사내가 모든 것을 이끌어가기에는, 그 몸으로는 역시 무리였음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그래, 또 외면했다. 그때도, 지금도. 너를 생각해서, 너를 생각하면서. 외면하고, 외면한다. 재떨이에 담뱃재를 툭, 툭 떨군 그는 다시 입에 물고서. 사건 파일의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너에 대한 감정을 하나씩 뒤로 넘긴다.

 

 

 

다음 장. 또 다음 장. 넘긴다. 이 쓰라린 배신감과 원망. 아픔. 고독. 증오를 모두 뒷장으로 넘겨 버린다. 그렇게 드러나는 것은 아론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정의. 너는 정의라 부를 수 없다며 거절할, 그럴 이름. 사내는 정의를 놓지 못했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일말의 정이 남아 있어서와 같은 이유였을까. 까닭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보고 싶다. 내게 그리 칼을 겨누고 너는 어디로 도망쳤는지. 내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도 등을 돌려 달음박질 한 너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론, 어디에 있어. 후회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 고개를 돌리면 근처의 책상에 네가 앉아 있을 것만 같아서. 데스몬드, 왜 그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도 있어? 그리 말하며 다정히 웃어올 것 같아서. 숨을 들이쉰다. 다시금 내뱉는다. 흩어지는 것은, 그래. 너를 향한, 생각들. 너는 내게 정의였고, 그런 너를 동료이자 친구로 생각했기에. 비록 너는 나를 친구라 생각하지 않았더라고 하더라도. 너는, 내게 정의였다. 그것만큼은 부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사내는 다시 한번 파일을 뒤로 넘긴다.

 

그리움 한 장, 원망 한 장.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것은, 애증.

 

 

 

두 글자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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