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

야미진 / 달의 뒷면

고요한 밤이었다.

거룩하지는 않은, 어떠한 기념도 아닌 날에서 어떠한 기념도 아닌 날로 넘어가는 어느 날 밤이었다.

유우기는 눈을 떴다. 맞닿은 눈꺼풀이 뭉근했으나 아침이 오고 창문을 열듯이 눈을 뜨자 시린 밤공기가 눈으로 들이쳤다.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두 손이 서로의 맥박을 재고 있었다. 유우기의 손목은 실체를 갖고 있었고, 파자마 밖으로 삐져나온 그것은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리는 걸음처럼 조금 빠르게 뛰었다.

회사에 있었을 때는 그토록 그리웠던 이불이 갑갑했다. 눈 밑이 거뭇한 유우기를 보고 제대로 컨디션 관리를 하라고 호통치며 - 정작 그는 유우기가 아는 또는 알지 못하는 이유로 하루에 겨우 서너 시간만 자면서, 카이바가 보내준 초경량 이불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유우기는 이불을 끌어 올려 다리를 내밀었다. 파자마와 이불이 스치며 사락사락 고요를 찢었다. 조각난 정적은 유우기를 찔렀고 벌어진 틈에서는 아주 약간 남은 잠기운이 샜다. 눈을 감아보았으나 애달프게도 육체는, 피로하더라도, 정신을 이기지 못했다.

천장을 바라보아도 위쪽으로 낸 창에서 길게 이어진 달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온기가 느껴질 법한 난색은 아니었다. 밤에 한색을 뒤섞은, 바이올린의 애처로운 음색 같은, 그러면서도 환한 빛이었다. 유우기는 결국 일어나 바닥에 발을 디뎠다. 달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인류의 사명을 지고 밤을 정복하듯이. 고개를 들자 창틀 안에 달이 들어와 있었다. 초점이 어긋난 사진처럼 약간 왼쪽 위로 치우쳐 있었다.

유우기는 손을 들어 눈가를 가볍게 눌렀다.

뜨겁지도 않았다. 어느새 그럴 수 있는 날이 온 것이다.

원하지 않았어도. 그가 떠났듯이.

내 기억을 모두 줄게.

이제는 줄 기억마저 없다. 단호한 눈매와 다정했던 추억만이 기억으로 뭉뚱그려져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것을 들여다볼 때면 유우기는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쓴 것처럼 그와 함께 지냈던 기억이 너무나 흐릿해서 보이지가 않았다. 누군가는 그 위에 켜켜이 새로 쌓아진 층을 가리키며, 살아있는 자의 특권이라고 했다. 배가 아픈데도 당첨된 아이스크림 막대였다. 티슈를 갖고 싶었는데 온천 여행이 당첨된 복권이었다.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이젠 없다. 유우기는 끝나지 않는 온천 여행을 홀로 하고 있는 셈이었다.

유우기는 책상과 의자가 드리우는 그림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밤에도 그림자는 윤곽이 희미할 뿐 뚜렷이 그곳에 존재했다. 유우기는 달무리 같았던 그를 떠올렸다. 그는 그림자가 없었고 그의 몸은 프리즘처럼 빛을 한껏 통과했다. 빛이 들이치는 그를 보고 있자면 그는 빛과 그림자가 한 몸이라 그림자마저 눈이 부신 것은 아닐까. 혹은 명명 이전의 실존 같은 그의 몸 자체가 달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이토록 눈물겨울 수가 있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달빛은 지금처럼 밝았고 그때처럼 그림자는 한 명뿐이었다.

있잖아, 유우기. 그거 알아?

사람의 눈으로는 영원히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대.

출처가 불분명한 문장이 떠오른 것은 불가능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까. 유우기는 달을 따 손 안에서 굴리는 헛된 상상을 해보았다. 펄럭거리는 푸른 달빛은 긴 망토를 닮았으리라.

하지만 이곳은, 발을 디디고 있는 여기는 지구. 맨눈으로는 절대 달의 뒷면을 볼 수 없을. 빛이 드는지 그림자가 지는지도 모르는 그곳에서 그는 유우기와 다르게 잠들어 있을 것이다. 바치고 싶었던 기억을 제가 갖지 않고 초승달의 텅 빈 구멍을 메우면서.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