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

카이아메 /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모쿠바가 너에게 이것을 받았다고 했다.”

카이바 세토가 내민 것은 장난감 로봇이었다.

세계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장이라면 장난감 한두 개 정도는 갖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카이바의 손에 쥔 것은 달랐다. 싸구려 플라스틱이 반쯤 녹은 데다 흙먼지를 뒤집어써 색이 바랜, 조잡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결벽적일 만큼 새하얀 코트나 티끌 하나 없이 잘 닦인 구두와는 평생 교집합으로 묶일 일이 없을 터다. 사정을 모르는 메이드나 집사가 봤다면 깜짝 놀라며 당장 쓰레기통으로 가져갔겠지. 감히 세토 님께 이런 쓰레기를 보여주어 심기를 거스른 놈이 누구인지 속으로 욕을 하면서.

“……맞아.”

아메르다는 기어코 자신에게로 돌아온 장난감을 바라보았다. 증오스러운 손 위에 얌전히 누워 있는 동생의 유품을.

다츠의 계획은 이름 없는 파라오와 선택받은 듀얼리스트들이 저지했다. 바론이 살던 시설에서 일어난 방화, 라펠이 타고 있던 여객선의 침몰, 그리고 미르코를 영원히 잃어버린 아메르다의 비극 역시 다츠의 짓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메르다의 적의가 향해야 할 표적은 카이바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는 미워할 이유가 없는데도, 몇 년이나 곱씹어 온 증오는 나쁜 버릇이 되었다. 파라디우스가 무너지고 KC에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되어서도 날 선 태도는 고쳐지지 않았다.

“또 쓰레기라고 말할 셈인가?”

이렇듯 자신도 모르게 카이바의 말에 비아냥으로 받아치고 나면 아메르다는 아주 잠깐 후회했고, 그보다 더 짧게 카이바를 동정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아메르다의 분노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양 받아들였으니까. 누군가의 책망에 익숙한 모습은 연민을 일으키곤 했다. 설령 그게 카이바를 비난한 장본인이라 해도.

“설마.”

카이바는 훗, 하고 작게 웃었다. 무뚝뚝한 인상 탓인지 언뜻 비웃음처럼 보였기에, 아메르다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카이바는 재밌는 농담을 들은 사람처럼 태연하게 대꾸했다.

“너에겐 소중한 물건일 텐데?”

약간 느슨한 저음 속에는 특유의 문학적인 표현도 고상한 은유도 없었다. 소중한 물건을 자신의 동생에게 줘도 괜찮냐는 물음 이외의 뜻은 없었다.

이번에는 아메르다가 힘 빠진 미소를 지었다.

“네 동생도 그 말을 하던데. 형제가 똑같군.”

장난감 로봇을 건넸을 때 보았던 모쿠바의 커다란 눈동자가 기억 속에 선명했다. 정말로 괜찮아? 아메르다의 보물이잖아. 내가 받아도 되는 거야? 당혹스러움과 기쁨으로 들뜬 표정도 함께 떠올랐다. 아메르다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는 모습에서 더는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남동생이 보였다.

미련이 남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전쟁터에서 겨우 건진 단 하나뿐인 유품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증오하는 버릇도, 목적 잃은 복수도 포기할 결심을 해야 했다. 장난감 로봇을 모쿠바에게 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흠…….”

카이바는 제 손 안에 있는 장난감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설마 버릴 셈은 아니겠지? 목 끝까지 올라온 빈정거림을 아메르다는 간신히 참아냈다.

이윽고 카이바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아메르다는 본능적으로, 저 손에 든 것이 곧 내동댕이쳐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카이바는 목에 걸린 카드 모양 로켓을 빼낼 뿐이었다. 긴 손가락과 모양새가 아름다운 손바닥 위에서, 금속으로 된 로켓 가장자리가 빛났다.

“뭐, 하는 거야…?”

아메르다가 당황해하자, 카이바는 오히려 차분하고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

“그것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한다만.”

비싸 보이지 않는, 아니, 오히려 곳곳에 흠집이 난 오래된 목걸이였다. 아메르다는 똑같은 목걸이를 모쿠바가 걸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결론을 도출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 순간, 아메르다는 상반된 두 감정이 한꺼번에 치솟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는 나를 동정하는 거냐고 저 손을 쳐낸 후 로켓을 밟아버리고 싶은 충동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비행기 안에서 듀얼했을 때 느꼈던 공감과 이해, 즉, 신뢰였다.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어야 하는지는 명확했다. 아메르다는 전혀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니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말했다.

“필요 없어. 너에게 준 것도 아니니까. 내가 주고 싶어서 네 동생에게 준 것뿐이야.”

“그렇군, 알겠다.”

카이바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겨우 대여섯 살은 되었을까 싶은 어린아이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불규칙하게 뜯어진 단면은 이 조각이 한 장의 사진에서 찢어져 나온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거지?”

아메르다의 목소리에는 아직 다 털어내지 못한 집념이 묻어 있었다. 형제가 ‘카이바’가 아니었던 때의 사진은 아메르다에겐 변명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카이바는 아메르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되새기듯이.

“나는 이때로 되돌아간다 한들 같은 선택을 하겠지. 그 의지에는 흔들림이 없어.”

‘선택’이라고 하면 카이바 가문의 양자로 들어간 일일 테지.

아메르다는 쓴 침을 삼켰다. 카이바가 무고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메르다는 거세게 날뛰는 증오의 고삐를 종종 놓치곤 했다. 놓친 것인지, 놓아준 것인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럴 때면 카이바 세토, 이 결백한 남자는 제 것이 아닌 죄도 뒤집어쓰기를 자처했다.

“아메르다, 너는 이 사진을 볼 자격이 있다.”

목걸이를 줄 의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의 사진을 보여준다는 것.

그것이 카이바 세토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아메르다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단지, 이 로켓 목걸이가 카이바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망가진 장난감 로봇과 낡은 사진이 든 목걸이. 두 사람이 지켜냈고 지켜내지 못한 과거들.

단단한 광석 같은 깊은 푸른색 눈동자를 보며, 아메르다는 어떤 예감이 들었다.

카이바에게 향하는 감정이 서서히 다른 방향으로 변하리라는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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