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너머 남겨진 것
신극 이후 카이바+유우기
요코님의 트윗의 3차창작입니다: https://x.com/bangmaware/status/1580595407536934912?s=20
눈동자는 마음의 창窓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대체 이 창 너머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카이바 세토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름이 돋는 것과 비슷한, 사고보다는 반사의 영역에 가까웠다. 자신이 온전한 주체로서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 어떠한 현상이나, 혹은, 재해처럼 ‘일어난’ 것이었다. 그렇다, 재난이나 재해에 가까웠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무토 유우기의 보라색 눈동자는.
몇 년만에 사용하는 육체이므로 감각이 착각을 일으켰다고 치부하기에는, 카이바는 너무나 이성적이었다. 육체는 어디 한 곳 무뎌진 데 없이 부드럽게 작동했다. 어젯밤 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애써 의식하지 않아도 폐는 숨을 담고 눈꺼풀은 비정기적으로 열렸다 닫히길 반복했다. 겨우 몇 분만 더 지나면 스스로 몸을 일으킬 수 있을 테고, 또 몇 분 지나면 오래 쓰지 않았던 육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걸음걸이로 복도를 누빌 수 있을 터다. 그러니 카이바가 느낀 모든 감정은 오롯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이었다.
열린 창 같다,
라고 카이바는 생각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열려 있기만 한 창문이었다.
물소리마저 죽은 고요한 밤 아래 망망대해를 표류한다면 이런 기분이 들까? 지평선은커녕 제 발 디딘 곳조차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을 헤맨다면? 유우기의 눈동자 속은 꼭 그러했다. 안도나 평온함 같은, 이전에 카이바가 유우기의 눈에서 읽어냈던 것들, 바닥이 보이지 않아 영영 마르지 않으리라 확신했던 그것이 흔적도 남지 않은 채 휘발되어 있었다. 다정함이. 그리고 영혼마저.
카이바가 볼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들어차 있었던 만큼 비어버린 동공뿐이었다. 어쩌면 갈취당했다거나 유실되었다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유우기의 표정은 어딘가 결연한 듯 굳어 있었고, 아주 약간 비스듬한 눈썹은 화난 것처럼도 보였으므로. 그것은 필시 빼앗아간 자에 대한 분노일 터다. 혹은 책망이거나. 그러나 어째서 그런 표정을 자신에게 보이는지 대한 의문에 닿기도 전에, 유우기가 마침내 입술을 열었다.
“……어제까지였어.”
떠나기 전보다 조금 낮아진 어른스러운 저음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금을 그어두는 것 같았다. 유우기는, 겨우 그 말을 하고는,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애써 붙잡았다. 무너지다 만 눈매는 화난 것처럼도, 웃는 것처럼도, 우는 것처럼도 보였다. 다 막지 못한 감정이 맥락 없이 뒤엉키며 새어 나오고 있었다. 카이바는 언젠가 유우기가 이런 표정을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가 언제였는지 기억해내며, 따끔거리며 아파오는 눈을 잠시 감았다 뜨는 그 찰나의 시간을, 유우기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장례식은, 어제 끝났단 말이야."
남겨지는 것들이 항상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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