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위소병] O파썰에서 혼인까지
이름이 이렇지만 에로한 내용은 아닙니다
+2024.01.19 열심히 백업하기...
이 썰 플롯이 하나도 없이 썼기에 저도 얘네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차 오타 점검했지만 이상한 점이 있을 수 있어요 그땐 마음의 눈으로 봐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첨벙, 물소리가 울렸다. 남궁도위의 시선에 노곤히 물에 몸을 담근 임소병이 보였다. 불긋불긋하게 온몸을 전부 물어뜯겼으면서 손으로는 물장구를 치며 장난치는 모습이 한가로워 보였다.
“왜 안 씻으시고 장난이십니까?”
“몸 까딱할 힘도 없는데요.”
그러면 지금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장난치고 있는 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찌푸린 남궁도위의 얼굴 위로 임소병이 물을 튀겼다. 남궁도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임소병의 쪽으로 몸을 옮겼다.
임소병의 머리카락은 얇고 가늘어서 손에 감기는 촉감이 좋았다. 숱이 굵고 뻣뻣한 남궁도위의 것과는 달라서 그리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남궁도위는 이 순간을 꽤나 좋아했다.
머리카락을 만지던 남궁도위의 손 위로 임소병이 머리를 기댔다. 자연스레 머리를 타고 내려온 손이 살짝 열이 올라 미끈하고 말랑한 볼 위로 다가가 붙었다. 기분 좋다는 듯이 살짝 볼을 비비는 이 사람과 그 사람의 시중을 드는 저 자신을 누가 녹림의 왕과 가주로 볼까. 남궁도위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둘은 사귀는 관계는 아니었다. 전쟁 중에 달아오른 몸과 쌓인 감정들을 서로 풀어내기 위해 몸을 잠시 붙이고 섞었고, 나름대로 서로 호감도 있는 관계지만 정확히 이름으로 명명되지는 않은 사이. 그 정도로 해석하면 알맞을 정도지 않을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까?”
가르랑거리며 사람 손의 온기를 즐기던 임소병의 눈초리가 사납게 올라갔다. 평소와는 달리 관계 이후에는 임소병도 꽤나 풀어지는 편이라. 평소의 느긋하고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는 일을 종종 까먹고는 했다. 아니면 그만큼 남궁도위가 편한 것이거나.
말새끼 내 힘을 다 빼놓고 시중도 제대로 안 들어? 임소병의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가만 놔두면 사람 하나 골로 보낼 아가리가 펼쳐지기 전에. 남궁도위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임소병의 입에 부드럽게 제 입술을 내리눌렀다. 혀로 입 주변을 꾹꾹 누르며 재촉하자. 입을 다물고 묵묵하던 것도 잠시 금세 졌다는 듯이 임소병이 고개를 꺾고 반응해왔다.
남궁도위의 손이 어깨를 넘어 그 아래로 훑어 내려가자 손목을 탁 치고 째려보기는 했지만. 사람을 동하게 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남궁도위가 말하자 임소병이 제 몸의 울긋불긋한 부분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어깨를 으쓱하며 모기에라도 물리신 거 아닙니까? 하자 물세례를 한 번 더 맞았다. 젖은 김에 더 젖어보자며 남궁도위가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욕조가 작았으므로. 남궁도위는 얌전히 쫓겨나서 찬 강물에 몸을 담글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난 지는 좀 되었지만. 서로의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남궁도위와 임소병의 그 관계는 순탄했다. 둘 중 어떤 이도 이어지는 관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서였다. 자연스럽게 헤어지며 멀어지길 원하시는 걸까. 남궁도위는 생각했지만, 아무튼 전쟁 중이든 그 이후든-오히려 전쟁 이후에 더 임소병과 남궁도위는 징글맞게 붙어 다녔으므로. 남궁도위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무식한 자신감이었다.
‘솔직히 그 몸으로 다른 사람 만나기도 힘들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좀 질척하고 시꺼먼 추측이 그 기저에 있기도 했고 말이다. 제 이성으로 그걸 지적하기에는 지나치게 초록 사 파에 물들어버린 남궁도위는 대수롭지 않게 임소병이 들으면 쮯쮯거리며 화낼 생각을 묻어두었다.
돌아가서 다시 자리를 잡는 게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준비를 허투루 할 수도 없고. 오히려 급히 이주하다 사고가 나는 것이 더 큰일이므로 남궁과 녹림의 귀환은 생각한 만큼 그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진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먼저 고향으로 향하기는 했지만, 이곳에서 새 인연을 만났든, 새로운 대도시가 마음에 들어서이든 섬서에 남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았기에 더욱 그랬다.
더군다나 임소병은 섬서에서의 사업 확장에도 꽤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으므로 누가 보면 완전 섬서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 같았다. 실제로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산적, 혹은 빈틈을 파고드는 쥐답게 녹림은 빠르게 세를 불려 나갔다. 마치 안휘에 있는 큰 도박장 마냥, 섬서에도 큰 건물 몇 채가 녹림의 이름으로 들어섰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 또한 임소병의 특기이며, 섬서의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은 청명의 눈에도 그리 불쾌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임소병은 이 산적놈이 어디서 화산파 앞에 사파 소굴을 만들어? 퍽퍽깡! 캑. 털썩. 정도로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남궁도위는 문득, 임소병이 영영 이 장소에 머무를 것 같다는 착각도 종종 했었다. 물론 말하자마자 부채로 얻어맞았지만 –심지어 남궁도위는 아직 눈치가 조금 없어서. 그것은 관계하던 도중이었다.-
아마 나는 그렇다면 남궁에 기거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겠나. 하고 생각했던 거겠지…. 지금 와서는 모를 일도 아니었지만. 당시의 남궁도위는 그만큼. 자신이 헤아리지도 못할 만큼...
... 그렇다고 지금의 남궁도위가 그렇지 않은 것이냐면. 그건 아니었다. 임소병과 가까워지면서 조금 더 그의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그의 속을 읽는 척은 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 점 정도가 남궁도위의 변한 것이었다.
대체 저 사람 대가리에는 뭐가 든 걸까 생각하던 세월이 무색하게도. 지금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자면 대체 속에 뭘 숨겼냐는 듯이 임소병이 남궁도위의 머리를 부채로 쿡쿡 찌르며 짜증을 내는 일이 더 많아졌는데. 오늘도 그런 하루의 연장이었다.
마침 두 사람 모두가 한가해, 같이 시간을 보내는 참이었다. 눈만 마주쳤다 하면 붙어먹던 그동안과는 다르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두 사람은 몸보다 말을, 말보다 정적을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다. 숲을 거닐며 산책하는 지금도 그런 시간 중 하나였다. 임소병은 침묵을 좋아했고 남궁도위는 임소병의 그 침묵을 좋아했다.
사실 그리 조용하지도 않았다. 자박거리며 떨어진 잎을 밟는 소리, 나뭇잎 사이로 깨져 산란하며 내리쬐는 햇살. 임소병의 침묵 사이로 새겨지는 시끄럽게 아름다운 자연을 남궁도위는 좋아했다. 임소병이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오직 그 사람 옆에서만 숲이 소리를 내는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남궁도위는 임소병이 눈치챌 때까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는 했다. 그러면 숲은 아우성을 멈추고, 오롯이 기분 좋은 박자로 뛰는 가슴 아래의 심장 소리 같은 것이나 조용히 느껴지고는 했는데 그러고 있다 보면 어느새 기척을 느낀 임소병이 제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곤 했다.
이 새끼 또 뭔 생각하지? 하는 얼굴로 말이다. 그렇게 한참 눈싸움하듯 쳐다보고 있으면. 임소병이 두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고 승리를 쟁취하려고 하곤 하였는데. 일부러 눈을 깜짝대며 예쁜 얼굴 –임소병의 주장이자 전 세계 사람들이 동의할- 을 하며 임소병을 바라보면 정말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저 예쁩니까?”
“그건 맞는데, 또 부탁할 거 있소? 남궁 소가주가 그런 눈깔로 쳐다보면 필시 꿍꿍이가 있는것인데….”
“제가 뭐 녹림왕입니까? 맨날 대가를 요구하게. 그건 아주 쪼잔하고 속 좁으신 녹림왕 같은 사람이시고요.”
남궁도위는 그런 순간을 정말 좋아했다. 제게 관심도 없었을 예전이라면 오히려 가볍게 짐작하고 넘겼을 제 감정을 더 생각하고 생각하느라 파악하지 못하는 임소병이 좋았다. 자신의 눈이 비추고 있는 것은 그때에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더 모르게 된 임소병이, 마치 열병에 빠지기 시작한 그때의 자신 같아서 즐거웠다.
“정 걸리면 입이나 맞춰주시지요. 끼고도는 애첩이 원하는 게 왕의 총애 말고 뭐가 있겠습니까?”
“징그럽게도 자랐구만.”
임소병이 마주쳤던 눈을 피하며 얼굴을 피하고선 발을 재개 놀려 남궁도위에게서 벗어나 멀찍이 달려갔다. 남궁도위가 허둥지둥 그 뒤를 따라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후로도 며칠이 더 지났다. 여가를 챙길 여력이 있었던 때와는 달리 쏟아지는 일에 허덕이느라 남궁도위와 임소병은 만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천우맹의 군사로써의 남은 업무와 녹림의 업무를 동시에 해결하는 임소병의 상태는 남궁도위가 언뜻 회의 사이에서 보기로, 꼭 말린 쥐포 같았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시간이 나도 불쑥 찾아가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라. 남궁도위는 이참에 시전 구경이나 갈까 하고 길을 나섰다. 섬서의 시장에는 거의 항상 사람이 가득했으나. 아무래도 수장들이 바쁜 만큼 다른 이들도 그러한지 오늘따라 사람이 적어 한적하였다.
처음에는 정말, 구경만 할 생각이었는데…. 남궁도위는 어느새 장신구를 파는 상점에서 가판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보통 합비에서 보는 것과 달리, 온갖 문파가 모여있는 섬서의 장신구들은 알록달록 가지각색을 띠었다. 당연히 남궁의 것을 고르리라 생각하며 희고 푸르른 것들을 보여주려 준비하던 상인과는 달리. 남궁도위의 시선이 머무른 것은 유청색을 띈 귀걸이였다.
그래, 누가 봐도 나 녹림이오. 하고 쓰여있는 색 말이다. 그것도 가지각색의 풀빛을 띤 산적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학창의를 입고 다니는 누구 같은 색. 남궁도위가 홀린 듯이 그걸 주워 들려는 찰나.
“그거 뭡니까?”
하고 목소리가 내려꽂혔다. 마치 도둑질을 하려던 것을 들킨 듯이 남궁도위가 파드득하며 몸을 떨었다.
“귀걸이? 소가주가 쓰게요? 근데 영 이런 색은 안 어울릴 텐데. 맨날 시퍼런 옷만 입고 다니는 사람이…. 흰옷에 입을 때 걸려고 하나? 그럼, 우리랑 색깔 겹쳐요. 특징이 사라진다고.”
해남하고 종남하고 빙궁하고 하다못해 수로채까지 겹쳐서 힘들건 알지만, 이쪽도 당가랑 팽팽한 접전 중이란 말입니다. 임소병이 볼멘소리를 하며 툴툴거렸다. 임소병이 흰 옥에 천청색 수실을 단 귀걸이를 손에 잡아들고선, 남궁도위의 귀에 가져와 대었다. 순간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이런 게 어울리지, 소가주는.”
피식 웃은 임소병이 다시 귀걸이를 가판대에 내려놓았다. 그쪽으로 머뭇거리며 손을 향하다 고개를 젓고는 남궁도위는 말했다.
“선물용이라서요.”
분명 마주한 임소병의 귀는 뚫린 데 없이 막혀 있었지만. 남궁도위는 그렇게 말하며 봐두었던 유청색 귀걸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에 걸리는 것은 단단한 가판대뿐이었다. 다른 손님이 그새 왔을 리도 없고, 귀신에 홀린 것인지 순간 멍했던 남궁도위의 시선 너머에 셈을 치르는 임소병의 모습이 보였다.
임소병의 손 위에서 투명한 옥을 가진 그 귀걸이가 아까의 흰 귀걸이와 같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녹림왕! 그거 제 건데요!”
“내가 셈을 치렀으니 나의 것이지?”
분명 그 말이 맞긴 맞는데 틀렸다. 남궁도위의 허망한 표정을 보며 임소병이 실실대며 웃었다.
“원래 이런 하나밖에 없는 물건들은 선수 치는 사람이 임자라고요. 이참에 잘 배워두십시다.”
그러고는 휙 하며 귀걸이 하나를 던져주었다. 엉겁결에 받아내고서 손 위를 보자 천청색 수실이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선물이라면 더 그렇지. 이왕이면 자기 색을 남기는 것이 더 만족스럽지 않겠소? 나라면 그럴 것 같은데.”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곤 얄밉게 웃으며 자리를 벗어나는 임소병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임소병은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멀리 사라진 후였다. 남궁도위가 뾰족하게 상인을 바라보자. 그 기세에 움찔하면서도 자기는 팔 걸 팔았다는 듯이 상인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선물, 그래. 선물이기는 하다. 자신도 임소병에게 어울리는 듯하여 무턱대고 유청색 귀걸이를 집어 들었지 않나. 아마 그건 임소병이 쓰든, 말든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임소병에게 쥐어졌을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주인을 잘 찾아간 것일지도 모르지. 그런 면에서 임소병의 이 선물은 탁월하기 그지없었다. 남궁도위에게 맞는 색에, 항상은 아니라도 자주 쓰는 장신구이다.
그렇지만 왜?
남궁도위가 신경 쓰이는 부분은 그 부분이었다. 자기 색을 남기는 게 더 만족스럽다며, 좋다며. 그럼, 그건 나를 줘야지. 누굴 주실 겁니까. 혹시 당패형님? 아니면 녹림의 누군가? 임소병은 그걸 누굴 준다고 한 적도 없다는 걸 알고. 서로의 마음은 통해있다지만 둘이 어떤 말로 정의된 사이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욕심이 나는 걸 어쩌란 말인가? 남궁도위는 다시금 가판대를 유심히 들여다보다. 무언가를 하나 골라 값을 치렀다.
“그거 뭡니까?”
“예? 귀걸이지요.”
“색이 틀렸잖아.”
“아무래도 겹치는 문파가 네 개인 것보단 두 개인 게 더 남궁에 승산이 있지 않나 싶어서….”
남궁도위가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여전히 하늘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천을 몸에 걸치고서였다. 귀에는 임소병이 뺏은 것만큼은 아니지만. 예쁜 풀색에 나비 옥으로 치장된 귀걸이가 달랑거리고 있었다.
어이없다는 듯이 임소병이 남궁도위를 쳐다보자 남궁도위는 대놓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새로 산 귀걸이를 자랑했다. 꽁지깃을 꽃 같은 것으로 치장하고 구애하는 새들이 있다던데. 딱 그 꼴이었다.
“퍽 귀여운 짓을 하셨구만?”
“녹림왕이 영역표시를 좋아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도위는 임소병에게 가까이 다가가 구멍 없는 말랑한 귓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억지로 구멍 내 자기만족에 취하기보단. 그럼, 제가 녹림왕의 것이 되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 거 어디서 배워왔습니까? 내가 알던 소가주가 아닌데.”
그러면서도 영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닌지 임소병의 입 끝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남궁도위는 그러자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선 임소병에게 고갯짓으로 요구했다. 나비 옥이 흔들거리는 왼쪽과 달리 오른쪽은 허전한 채였다. 그것을 눈치챈 임소병이 픽 웃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소매에서 유청색 귀걸이를 꺼내 걸어주었다.
“이리 녹림왕의 물건을 직접 받는 것만큼. 강제로 한 자기만족이 즐겁지도 않을 거고요.”
그러자 몸에는 하늘색, 귀에는 풀색의 부조화를 이루는 미인이 비로소 활짝 웃어 보였다.
이후로 종종 남궁도위는 밤에 풀색 옷을 입고 임소병을 방문하고는 했다. 어느 날은 수청을 들라 하였더니 옥 비녀를 가지고 와 머리를 틀어 올리곤 귀염을 떠는 적도 있어서. 임소병이 크게 만족했었다 –그리고 그 옥 비녀는 다른 쓰임으로도 유용하게 쓰였다-
임소병의 짐에도 비록 하늘 빛을 띠고 있지는 않았지만. 하얀 물건들이 이상하리만큼 많이 늘었다. 곽민이 그것을 보며 언짢다는 얼굴을 하긴 하였지만. 언제나 자신의 기분 같은 사소한 것보다는 주군의 의지를 존중하는 것이 녹림이다. 그것이 가족의 행복에 직결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앞으로 세를 불려 나가야 하는 남궁‘세가’에 있었다. 다른 가문들도 기본 반쯤은 숭덩숭덩 날아가서 제 구실을 못 하고 있다지만. 이럴 때야말로 기회를 노리는 것도 사람들의 본능 아니겠는가. 특히 천우맹의 주축 중 하나인 두 세가에게는 혼인으로 동맹을 맺고자 하는 가문이 과장치 않고 수백 수천은 되었다.
고자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남궁도위에게 매일 다발로 혼서가 쏟아질 정도로 말이다. 같은 처지인 당패는 거의 혼서에 깔려 죽기 직전이었다. 소가주들 뿐만 아니라. 검대 소속의 사람들도 소가주들이 아직이라 그렇지,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이건 엄청나게 중대한, 아주아주 중요한 사안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덤덤했다. 오늘도 대체 단어를 찾지 못한 퍼수날 –깔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비 귀걸이를 차고 온 남궁도위가 소박한 남궁 가주-장로 긴급회의에 도착해 착석하였다.
안건은 하나였다. 녹림-남궁 혼인 동맹. 부적절하고 말도 되지 않는 안건의 제목에 남궁단이 손을 들고 이의를 제기했다.
“남궁이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궁단이 먹으로 녹림-남궁 부분을 지우고 남궁-녹림으로 고쳐 썼다.
그렇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간에 남궁과 녹림 내부에서 남궁도위와 임소병의 연애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꽁꽁 숨겨서 눈치채기가 어려웠다지만 임소병이 용인한 후로는 남궁도위가 대놓고 티를 내는데 모르기도 어려웠다.
혼인을 통한 동맹이 자연스럽듯이, 동맹 내에서 혼인을 통해 결속을 다지는 것도 세가 내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궁도위가 어릴 적에는 사이가 소원해진 팽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팽가의 방계 여식과 남궁단과의 약혼이 거론된 적도 있었다. 남궁도위의 혼사가 먼일이 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지만 말이다.
당장 안휘 내의 입지가 약해지고, 각 지역의 전쟁 후 후유증으로 물류의 회복도 힘들어진 상황에 녹림과 동맹을 맺는 것은 그러므로 남궁에게는 꽤 좋은 선택지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침 그 수장이 혼인 적령기(를 조금 넘긴 나이)지 않는가.
남궁도위가 사랑 때문에 속을 썩이며 갈등했던 지난날, 아직 남궁도위와 임소병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던 남궁명이 남궁세가의 임소병에 나이에 맞는(이라지만 대다수 어린) 여식들의 초상화를 가지고 남궁도위에게 만남을 청한 적이 있었다.
조용히 그 초상화를 보던 남궁도위가 그것들을 죄다 서탁의 반대쪽으로 밀어버리고 눈물 흘리며 속내를 털어놓았을 때 남궁의 장로로써의 남궁명은 혼란하였지만 동시에 숙부로서의 남궁명은. 언젠가 꼭 알았던 듯 한.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눈치채지 못한, 눈치채지 못한 척했던 것이지 남궁도위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항상 같았다는 걸 이미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수라는 것이 문제가 좀 많이 되기는 하겠지만 녹림과의 정략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까짓거 제가 한번 설득해보죠! 하며 장로들한테 향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남궁을 위해 그런 감정은 놓으시는 게 맞는다는 지극히 이성적 판단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궁도위가 남궁을 사랑하는 만큼. 남궁은 남궁도위를 사랑한다. 워낙 가주한테 맹목적인 집안이라지만. 분명 그 속에는 진심 어린 서로에 대한 충의가 있다. 피투성이로 곤죽이 되면서도 남궁을 위했던 사람이 또한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그저 놓으라 하지 않아도 되는 길이 있는데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그만인 거고.
임소병의 의사가 있거나 말거나 그렇게 남궁은 임소병을 받아들였다.
다시 남궁-녹림 혼인 동맹 회의로 돌아와서, 회의의 내용은 이것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혼서를 보낼지. 애초에 혼서를 보내는 게 산적식으로 맞긴 한지. 산적식으로 안 맞으면 소가주님이 녹림왕을 납치해서 납치혼을 해야 하는 건지. 그럼 섬서의 남궁 전용 전각으로 납치해도 되는 건지 아니면 합비까지 가야 하는 건지. 그런 것 말이다.
남궁명과 단은 임소병의 성정을 생각하여, 아마 섬서의 남궁 전용 전각 정도로 납득하시지 않을까 의견을 주장하였지만. 갑자기 보초를 서다 회의에 끼어든 남궁혁의 근데 그러시면 성의가 너무 없다고 차지 않으실지? 의 발언으로 납치 장소는 합비의 남궁세가로 정해졌다.
이 과정에서 먼저 합비로 돌아가서 세가의, 특히 가주 침소에서 안주인의 처소를 정비할 인원이 차출되었다. 그 다음은 납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공법은 솔직히 남궁에서 녹림왕을 따라갈 사람이 없는데? 발언이었다. 하지만 남궁도위가 그건 문제가 없을 것이라 단언하였으므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정사 후 녹림왕은 정말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원인은 남궁도위다.
그 후로 이런저런 회의가 오갔다. 혼수 패물이라던가. 녹림왕이 방화를 시도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와, 녹림의 침략에 대비한 일흔 가지 예방책이라던가. 혹시 초야에 소가주님이 가모님한테 피습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라던가.
그리고 그걸 밖에서 쫑긋거리며 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회의 시간을 늦은 시간대로 잡은 것은 남궁의 패착이었다. 부채 끝에 흰 수실을 단 임소병이 부채를 부치며 십영과 장로들을 한 자리에 불러들여 모았다.
“녹림-남궁 혼인 동맹 회의, 너희들을 불러 모은 건 이거 때문이다.”
임소병이 큰 소리로 말했다. 번충이 두목 혼인하십니까? 외치자 어! 나도 몰랐는데 그런다더라! 하고 임소병이 대답하였다. 예상은 했는데 벌써 거기까지 진도 나갔을 줄은 진짜 몰랐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남궁을 습격합니까? 아니면 남궁 소가주를 납치할까요.”
담담한 목소리로 수염이 긴 약삭빠른 장로가 말했다. 다른 장로들은 머리에 흙이 잔뜩 묻은 채로 얼굴을 뚱하게 찌푸리고 있었다. 왜냐면 임소병이 일단 혼인 안건에 대해 말하기 전에 단수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 을 물은 후 그들을 전부 거꾸로 묻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녹림은 전부 열린 녹림이 되었다. 애초에 동성연애가 없는 곳도 아니라 나이가 많은 이들을 제외하면 그리 거부감이 많은 사람이 적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임소병은 발을 탁탁 가볍게 구른 후에 입을 열었다. 어쩐지 즐거워 보이는 기색이었다.
“그냥 혼서 넣을 건데? 세가식으로 깔쌈하게. 어때?”
당장이라도 남궁에 쳐들어갈 준비를 하던 녹림도들이 움찔했다. 십영 중 하나가 코끝을 찡긋거리며 물었다.
“세가 도련님한테 거부당하실까 봐 그러시는 겁니까?”
굳이 녹림이 멋진 약탈혼을 놔두고 그렇게 얌전하게 갈 필요가 없을 텐데. 이 참에 한 번 날뛰면 전쟁 끝나고 몸에 쌓인 피로도 풀리고, 남궁 도련님들도 겸사겸사 짓밟아주고 상쾌할 텐데요. 그냥 가기에는 우리 두목이 아깝지 않습니까!
주변의 산적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동안 남궁과 녹림의 혈투를 따졌을 때 신체적인 건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남궁이 압도적으로 많이 피해입었을 테지만. 아무튼 그 아니꼽고 친근한 이들한테 맨입으로 두목을 넘겨주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이다.
“언제부터 약탈혼이 멋진 관습이 됐는지 모르겠는데…. 음. 그러면….”
이렇게 할까? 임소병이 입을 열었고. 산적들은 비로소 만족스럽게 동의하였다.
“오늘따라 지나치게 집요하지 않습니까?”
누구 하나 골로 보내려는 것 마냥. 평소 하던 시간을 넘긴 이후로도 자꾸 달라붙어 오는 남궁도위의 얼굴을 임소병은 꾸욱 손으로 밀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는 듯이. 아니면 진짜 재워서 납치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남궁도위는 오히려 그 손가락을 날름 핥아 제 입에 물며 우물거렸다.
“어차피 한동안은 한가할 텐데 좀 더 어울려주셔도 되지 않습니까.”
그러고선 남궁도위는 다시금 임소병의 젖은 살에 제 몸을 붙였다. 아까까지 꼭 한 몸처럼 붙어있었던 탓인지. 오히려 제 자리를 찾았다는 듯이 두 몸이 하나처럼 엉겨 붙었다. 옅은 신음이 흐르고 다시금 살에서 떨어지는 이슬이 점점이 천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쿵,
임소병을 덮고 있던 거체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오래 약을 먹어서 내성이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나도 같이 쓰러졌겠군?‘
역시 당가놈들은 믿을 게 안돼. 임소병의 요청으로 남궁도위에게도 비밀로 하고 수면제를 만들어주었던 당패가 들으면 억울하다고 뒷목을 잡고 쓰러질 말이었다. 짭짭대면서 입 안의 쓴맛을 달래던 임소병이. 서둘러 쓰러진 남궁도위를 제 몸 위에서 굴려 치웠다. 이제 이걸 옮겨야…. 모포는 적당히 남궁에서 준비한 걸 대신 쓰면 될 것이고. 것이고.
비록 정신은 잃었지만, 여전히 힘을 받고 빳빳하게 서 있는 것이 임소병의 눈 끝에 걸렸다. 가기 전에 잠깐 먹고 갈까? 제멋대로 움직이지도 않을 게 딱 좋은데 슬금슬금 임소병이 남궁도위의 몸 위로 올라탔다.
그 시각 남궁도위 없는 남궁에서는 녹림에서 도착한 혼서를 보고 복잡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혼서 먼저 보내자고 했잖습니까! 지금 어! 남궁 소가주가 남궁에 혼서 보낸 내자(예정)을 상대로 납치를 강행하는 미친놈이 되어버렸는데요.”
“그렇다고 지금 격렬히 운우지정을 나누시는 중일 텐데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산적식으로 깜짝 놀라게 해드리려고 행사 하나 준비했다고 하면 안 돼요?”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남궁 협찬의 검은 모포를 걸치고 남궁도위를 들쳐 업고 밤거리를 달리고 있는 건 임소병이였다. 전말은 이러하였다.
“녹림도 데릴사위제도를 채택하는 건? 겸사겸사 지들이 하려고 했던 것처럼 소가주를 데려오면 되지 않나 말이지. 물론 인도적으로.”
인도적이고 개뿔이고 사람 하나 재워서-그 후에 이런저런 짓도 조금 하고- 납치하는 길이었다.
“술 조금 나눠 마시고 초야 치르고 하면 혼인하는 거 아냐?”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정통파 순혈 산적들도, 그리고 산에 올라 전직한 산적들도 딱히 산적 생리도 제대로 모르는데 세가 생리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으므로 임소병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런가 보지 뭐….
남궁도위와 임소병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비록 신부-신랑의 습격으로 가주를 빼앗겼지만, 아무튼 녹림에서 혼서가 도착했고 남궁은 받아들일 테니 이걸로 혼인은 성사될 것이라며 남궁에서 축배 (정신을 놓은 것에 가까웠다.) 를 들던 와중. 남궁도위가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눈을 떴다.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감옥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남궁도위는 직감적으로 이 짓이 녹림의 짓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들킨 건가, 몸을 운기 하여 상태를 확인하자 독에라도 당했던 건지 저릿한 감각이 일부 남아있었다.
’형님인가.‘
사파랑 결탁하다니, 역시 당가는!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남궁도위는 탈출로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금세 어둠에 적응한 눈이 제 눈앞의 쇠창살을 향했다. 손쉽게 쇠창살을 잡아 우그러트리고 남궁도위가 창살이었던 것의 밖으로 발을 뻗자 갑자기 반월 모양 선기가 들이닥쳤다. 남궁도위가 살기 어린 선기를 가볍게 받아넘겼다.
“이러시면 나오실 것 같았습니다.”
“이 방 대여란 말입니다!”
과연, 임소병의 너머로 방의 주인이 토끼 눈을 하고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남궁도위가 원래 가지고 다니던 전낭은 임소병이 남궁도위를 납치할 때 슬쩍했기에. 중원에서 색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특별 객잔 (무려 산적왕에 의해 감옥에 갇혀 혼인을 협박당하는 가련한 남궁의 미인 같은 설정을 위해서 맞춤 식사도 제공해준다. 콩밥) 의 수리비는 어쩔 수 없이 임소병이 낼 수밖에 없었다.
“멀리 가기는 힘드니까, 내 딴에 신혼여행이다. 생각하면서 준비한 거였는데요.”
내 마음도 몰라주고. 한껏 오리입을 한 임소병을 보며 황당하다는 듯이 남궁도위는 변론했다.
“어떤 신혼여행을 감옥에서 합니까? 식단 요청표에도 최대한 옥이랑 가깝게 허접한 식사를 제공해달라 쓰셨다고 들었는데요.”
“그 주인 오래 장사하긴 글렀구만, 입이 이렇게 가벼워서야. 신뢰의 상징 매화도주 같은 사람을 본받아야지!”
“그거 녹림왕이잖습니까!”
“72채를 제 손에 두고 호령하며, 말 하나로 천우맹의 군대를 움직이는 책사 임소병이면 더 좋은 귀감 아닙니까? 자, 이거나 먹으십쇼.”
하는 말마다 족족 막혔다.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임소병의 납치 이후로 먹은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남궁도위는 임소병이 건네준 꼬치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큼직한 고깃덩어리 몇 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물오물 잘 받아먹는 남궁도위를 보고 임소병은 얌전히 꼬치를 몇 개 더 사서 손에 들었다.
“...내 실수였소, 콩밥 먹다간 굶어서 죽었겠구려. 불쌍한 내 내자….”
“직헙 너흐헛잔습히까.”
“먹는 중에 말하는 거 아닙니다.”
“흥.”
삐진 모습도 귀여워 보이니까 큰일 났지... 그러니까 내 거로 만들었지만. 임소병이 불퉁한 남궁도위를 보고 생각했다. 어쨌든 임소병이 남궁도위를 만족할 만큼 배불리 먹인 후. 많이 먹고 말랑해졌다며 하도 잡아당겨 빨갛게 부은 볼을 한기가 도는 손으로 냉찜질해주던 와중. 남궁도위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러면 저희 혼인하는 건가요?”
“그렇죠?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아무튼 안정되는 대로 어떻게 하게 되겠죠. 약식으로는 어제 치렀고.”
“그 논리면 저희는 해남에서 혼인을 한 게 되는데요….”
“그때는 서로 심적인 쌍방 동의가 없었잖아.”
“...그러셨습니까?!!”
뭐야, 그때부터 진심이셨소?!! 설마! 아니, 진짜로...? 진짜? 정조와 함께 마음을 뺏겨버린 겁니까? 임소병이 놀리자 남궁도위가 얼굴을 푹 숙이며 수그러졌다. 아니요, 그런 진실 없습니다…. 하고 꿍얼대는 소리와 함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궁에 미인계로 산적 하나 투입하는 거였는데.”
“그게 지금 혼인한 내자한테 할 말입니까….”
“이잉, 울지 말고. 울면 거시기에 털 납니다.”
...잠시 남궁도위가 임소병의 얼굴부터, 고간을 눈짓으로 훑었다.
“나야 뭐, 어릴 때부터 워낙 씩씩하게 자라서 말이지”
임소병의 너스레에, 남궁도위가 울적하게 얼굴을 가렸던 손을 치우고 킥킥대며 웃었다. 임소병은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사히 넘겼구만.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으신 거겠지, 남궁도위는 생각했다. 해남이라, 그 당시에는 임소병도 자신도 마음에 대해 확신이 없었을 때이다. 술에 취한 얼렁뚱땅 일어난 해남에서의 정사였다지만 임소병도 남궁도위도 자신의 자리에 책임이 있는 수장이기에 그 당시의 판단 또한 결코 가볍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늘 주변을 의심하고 계산하며 살아왔을 임소병이 그 순간에 자신을 선택한 것도, 오히려 자신이면 몰라도 임소병이 그 순간에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뛰어들기를 선택했다면. 그 인연은 만들어진 필연일 것이 틀림없다.
임소병의 어깨 너머로, 불긋하게 노을지는 창천이 보였다. 아마 제 얼굴도 하늘의 빛을 받아 예쁜 빛으로 물들어 있겠지. 나를 선택한 그대가 언제나 이 얼굴을 보고 당신이 좋아해 준다면 좋겠다. 남궁도위는 생각했다.
다른 건 다 알아도 제가 혼인시 녹림에 하뎃수-뎀에데르식 데릴사위가 되어 녹채와 남궁세가를 오가게 될 미래가 오로지 남궁명과 임소병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건 모르는 깜찍하고 발칙한 새신랑 남궁도위가 임소병의 손을 붙잡고 납치 하루 만에 남궁으로 돌아왔고 밤이 되자마자 또 임소병의 처소로 홀랑 떠났다.
이거 그냥 원래도 반쯤은 녹림에 위탁하고 있던 게 아닌지? 밤낮이 반년이 될 뿐인 거 아닌지? 저희가 저희 (소)가주를 녹림에 위탁? 하고 혁이 맹랑한 발언을 하였지만. 그게 사실이었기 때문에 남궁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앞으로 신혼이라 더 잦아질 거란다. 기대하렴! 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남궁명은 입을 꾹 다물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아니면 청명이.
그러고는 시간이 흘렀다. 꽤 많이. 남궁도위의 서탁에 이거 이혼 숙려 기간을 가졌으니 이참에 이혼하고 새 첩을 들이겠다며 난리를 치는 욕구불만 상태의 임소병의 서신이 산처럼 쌓이고. 남궁도위의 침실에 얼마나 들여다보았는지 종이가 노화되어 삭은, 임소병이 새벽에 적어 유령문 특송으로 보냈다 후회한 정성을 담아 한 줄 한 줄 써 내린 서신들이 한 수레 정도 쌓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잠깐 이혼 숙려 기간 –서로의 공무에 집중해야 하는 기간을 뜻하며, 임소병이 별명을 붙였다-를 지냈던 녹림왕과 남궁 가주가, 이혼을 포기하고 다시금 임소병과 남궁도위가 되는 날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남궁 가주의 까다로운 취향에 맞추느라, 엄청 고생했소. 무슨 단수면서 그렇게 남자 취향이 까다로워? 적당히 번충 정도면 만족할 것이지.”
“소병은 항상 볼 때마다 저를 놀라게 하십니다….”
혼례식 전날 임소병의 깜찍한 장난에 많은 나이에 창천신검을 들고 녹채로 향할 뻔한 남궁도위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임소병을 쳐다봤다. 과연 나이 들고 주가가 다섯 배로 상승한 미남답게 얼굴의 파괴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미인계를 써서 홀려오려고 보냈다가. 도리어 내가 당한 것 같구만.”
남궁도위가 준비한 탕에서 뜨끈하게 목욕을 마치고 와 다소 말랑말랑해진 임소병이 침의를 걸치고 한탄하였다. 그런 임소병을 오랜만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하게 들어 침상으로 옮긴 남궁도위가 말했다.
“내일이 혼례입니다. 바쁠 테니 일찍 자두어야지요.”
“자기만 하는 걸로 만족할 수 있겠나?”
“앞으로 할 일 많을 텐데요 뭐. 그동안 참았던 것만큼 앞으로 차차 늘려나갈 테니까 하루 정도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공포스러운 대사였다. 손으로 숫자를 어림잡아 세는 남궁도위가 아, 이거 백 단윕니다. 일수로요. 하고 말하자 임소병은. 내가 주기적으로 와서 풀어줬는데 무슨 미친 소리요! 하고 반박했으나 예…? 그건 육소병이잖아요…? 하는 말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런 컨셉플이긴 했다.
그리하여, 임소병의 다른 사내(육소병)과 정기적으로 육체적 관계를 나누는 사람과 다시 혼인하기 싫다는 생명의 안위를 위한 울부짖음이 남궁도위의 속삭임 하나로 정리되었을 무렵. 그리고 남궁도위가 nn년만에 자신이 데릴사위가 되어 오늘부터 녹림에서 기거하기로 정해져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때. 녹림을 향해 가던 마차에서 살짝 농밀한 접촉으로 인해 불상사가 일어날 뻔하고, 바로 남궁도위가 급히 녹림왕을 안아 들고 일행을 버리고 먼저 녹채로 떠나 버렸던 날에…. 비로소 두 사람은 부부가 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러면 이제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까요?
대체 어쩌다 썰이 이렇게 흘러간거지? 썰... 끝!
인도적이고 개뿔이고 사람 하나 재워서-그 후에 이런저런 짓도 조금 하고- 납치하는 길이었다. < 이 부분하고 이것저것 씬이 쓰여야 할 부분을 더해서 나중에 성인용으로 추가 발행할 예정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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