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 도위소병

[도위소병] 분서갱유

동도이 분서갱유 소식에 개슬퍼하면서 작성하다.

골판지상자 by 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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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9 이 당시에는 왜 이렇게 슬펐을까요? 지금은 그냥 둘 다 먹는데...

짧습니다. 길게 써보고 싶은데 지금 동인도위한테 뭐라도 쥐여줄 생각에 눈이 조금 돌아갔습니다./ 제가 두목 한 명 내어드리겠습니다. (최신화까지의 스포일러 있음)

사망소재 있음.


소병, 소병에게 하루의 시간이 남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제 남궁도위가 한 말이다, 임소병은 그것에 무어라 대답했던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그저 평소와 같이 보내지 않겠냐며.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 말에 남궁도위는 이렇게 말했다.

"과연, 소병도 그러시군요."

전쟁 이후의 세상은 평화로웠다, 가끔 자잘한 사건사고가 있긴 했지만 각 문파의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정도에 그쳤으니, 과연 다시 태평성대가 찾아왔다고 볼 수 있었다. 일이 바쁘긴 했지만, 가솔들과 자신이 이끄는 자들의 목숨이 위협받지 않으니 남궁도위와 임소병도 자연스레 이 평화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시작은 장난스러운 편지였었나. 전쟁 중에 나누었던 감정이 아직 남아있었는지, 남궁도위가 보내오기 시작한 시답잖은 편지에 임소병이 대꾸한 후로 시작된 기나긴 대화는 어느새 그것이 쌓인 만큼 차곡차곡 연심이 되어. 정사단수간의 혼인-사실혼에 가까웠지만-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임소병은 자신이 남궁도위와 평생을 함께하리란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럴 일은 없겠으나, 자신이 절맥이 도져 목숨을 잃는 일이 있으면 있는 거지. 남궁도위가 자신을 두고 떠나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흑룡왕과의 전투에서도 결국 피떡이 되긴 했지만 살아 돌아온 남궁도위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의 공백은 정말 요상스러운 일이었다. 

합비에서 기거하는 동안 남궁도위가 항상 임소병보다 늦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임소병이 항상 늦장을 부렸지. 녹채가 아닌 합비의 남궁세가에서는 녹채의 일을 전달받는다고 해도 그 정도가 평소 녹채에 기거할 때와는 달랐기에 임소병은 느지막이 일어나서 활동하는 여유를 부리곤 하였다. 하지만 남궁도위의 습관에는 나가기 전, 잠에 취한 임소병을 깨워 나가겠다고 고하는 일이 있었는데. 어째선지 오늘만큼은 공백이었다. 보통이었으면 잊어버렸나 생각하고 넘겼겠으나. 임소병은 왜인지 불길한 예감이 등을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하늘은 어제와 같이 화창할 뿐이었다, 기우였나 생각하며 임소병은 남궁도위가 수련하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곳에는 다른 창궁검대원들만 몇몇 있을 뿐 남궁도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행방을 물어봐도 모른다는 말만, 오히려 저희도 녹림왕을 뵈러 가고 있었습니다. 가주님의 일은 녹림왕이 가장 잘 아시잖습니까? 같은 되물음만 돌아올 뿐이었다. 평소였다면 그랬을 것이다. 어젯밤에도 한 몸처럼 딱 달라붙었던 사이이니. 실이 바늘을 찾고, 바늘이 실을 찾듯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바늘이 실을 찾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골몰하는 임소병을 보던 창궁검대원 하나가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뭐,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시지 않겠습니까? 우리 가주신데요! 분명 남궁세가로 돌아오시겠지요."

"맞아, 업무도 있으시니... 잠시 마실을 나가신 것 같네. 녹림왕님도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까지는 없으실 겁니다. 가주님이 말 없이 나가시는 건 드무시지만... 아-예 없었던 일은 아니니까요."

"보통 그러면 나 잡으러 오는 일 아니었나?"

"예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문제가 생겼거나, 그런 일 아니겠습니까."

더 추궁해봤자 무엇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애꿎은 세가원들을 붙들어놓았다 가주에게 한 소리 들을 수도 있는 일이니 임소병은 검대원들을 놓아주었다. 그런 임소병의 눈 끝에 무언가 걸렸다. 

"창천신검?"

가주가 이걸 놓고 다닐 사람이 아닌데.... 아침과 같은 불길한 예감이 자꾸 몸을 타고 올랐다. 그로부터 세시진가량,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할 때까지 임소병은 일도 팽개쳐두고 남궁도위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곳을 돌아봐도. 어느 곳을 보아도. 누구에게 물어도. 남궁도위의 행방에 대한 단서도, 그의 행방을 말하는 이도 없었다. 마치 남궁도위가 사라진 것만 같았다. 임소병이 등에 멘 창천신검만이 그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어제 무슨 대화를 했더라, 무슨 말을 했었지?

문득 임소병의 뇌리에 스쳐 지나간 것은, 대수롭지 않았을 어제의 말이었다. 

과연, 소병도 그러시군요.

그건, 남궁도위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랬을 것이라고, 혹은... 이미 그 순간이 닥쳤다면. 그랬을 것이라 이야기하는 말이었다. 

임소병은 이런 비논리적인 상황에 닥쳐본 적이 거의 없었다. 뭔가 실마리가 있으면 모를까, 뿅하고 사람이 사라져버렸댄다. 정황상으로도 그게 맞고. 그런 게 말이 돼? 싶지만. 그건 임소병에게 닥친 상황이었다. 정확히는 남궁도위에게. 남궁단에게 알리기 위해 다시 남궁세가로 돌아온 순간 임소병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바뀌었다. 아마도 임소병은, 지금의 임소병은 알아챌 수 없는 것들이.

그러고 보니, 남궁의 복식이 이리 화려했던가?

남궁도위의 실종 이후로 며칠, 남궁에서는 대대적인 수색대를 꾸려 탐색에 들어갔다. 하지만 남궁도위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상황은 미궁에 빠져 있었다. 마침내 임소병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남궁도위의 실종은 정말로 이 세상의 이치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섭리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모든 남궁이 수색을 위해 밖으로 나가 있을 때, 임소병은 남궁 안에 남아있는 '남궁도위'의 것들을 서서히 모으기 시작했다. 

옷은 안돼, 장신구도 안돼, 이것들은 이미 '다른' 것들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임소병이 가지고 있는 남궁도위와 관련된 것들은 무엇일까. 어떤 섭리에 휩쓸리지 않은 '그'의 것들은?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 같긴 하지만. 그것은 임소병과 나눈 정표들이었다. 그리고 계속 임소병이 지고 옮긴 창천신검 정도. 

솔직히, 임소병도 이것들을 모은다고 뭔가가 해결되리라 생각지는 않았다. 그저 충동이다. 남은 남궁도위라도 그러모아보기 위한 발악. 어쩌면 이것들도 날이 지나면 사라질지 모른다. 흔적은 쌓아 올려진 나날에 쉽게 흐려진다, 그럼 흐려진 흔적은 그저 과거의 추억만으로 남게 되는 것인가? 임소병은 그런 결말을 원하진 않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주인이 있었던 자리 옆에 임소병은 누웠다. 임소병이 남궁도위의 흔적을 흐트러트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수색을 위해 몇 번 손이 오간 것 치곤 침상의 모습은 보존되어 그대로였다. 한 사람의 무게를 빼면 말이다. 마치 옆에 사람이 있어 대화하는 것처럼, 임소병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게 하루의 시간이 있었다면, 가주처럼 굴지는 않았을거요. 뭐라도 남겨두었겠지. 작별 편지 같은 거 말이야."

편지는 어디에 숨겼을까, 가주가 생각 못할 아주 놀라운 장소에 숨겼을 거요. 원래 그런 일은 비밀스럽고 재밌어야 하니까. 나무 위나 서탁 안은 너무 식상하고. 집무실 안은 어떨까. 아니면 침상 아래? 그것도 흔한 수법인가? 아니면...

임소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창천신검은 변하지 않았는가? 남궁도위와 관련된 물건 중에 전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건 옛날 나누었던 서신들이나 패물과 같은 정표들 뿐이다. 그리고 창천신검은 그런 것들에 속하지 않는, 온전한 남궁도위의 물건이었음에도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

임소병과 남궁도위가 소유를 함께하는 물건들만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 창천신검은, 어쩌면...남궁도위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 이 검에 남아있는 것은 아니겠는가. 임소병은 창천신검을 검집에서 빼어들었다. 과연 임소병의 생각대로 검날의 끝에 편지가 한 장 묶여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잡아 빼자 창천신검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그러나 분명히 임소병의 기억 -아마도 덮어씌워졌을 것-에 남아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임소병은 편지를 펼쳐들곤, 가만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남궁도위를 데리고 돌아오는 창궁검대의 눈에 활활 타는 전각이 보였다. 아니, 가주님을 드디어 찾았는데 이게 무슨 난리야! 

"가주님, 불입니다! 불! 게다가 가주 전각에 났다고요! 아니, 무슨 일이래요. 설마..."

"녹림왕의 짓이겠지. 불 보듯 뻔하다. 아마 내가 오래 자리를 비워서..."

머리를 짚는 남궁도위의 옆에서 갑자기 마치 귀신처럼 인기척 없이, 부채를 휘휘 부치며 임소병이 튀어나왔다. 

"맞소, 심사가 꼬였습니다. 꽈배기마냥 돌돌."

"그렇다고 본채에 불을 붙이시면 어떻게 합니까-!" 

"에잉, 새로 지으면 되지, 남궁이 쪼잔하게! 게다가 저기 너머로는 불타지 않게 다 수를 써놨다고. 가주 침실 좀 무너지고 말 겁니다. 안 그래도 꾸밈새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새로 꾸며보는 건? 녹림에서 호랑이 가죽 좀 가져올까?"

"이익-!"

한참만에 만나시는 건데 두 분은 여전하시네, 창궁검대원 하나가 생각했다. 아무튼 녹림왕이 그리 말했으므로, 가주 침실 외에 다른 피해는 없을 것이 확실하다. 이미 반 넘게 불탄 것으로 보이니 돌이킬 도리도 없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면 원하시는 대로 두는 것이 낫겠지. 가주님도 그걸 원하시는 듯 보이니 말이다. 

근데 가주님을 어디서 찾았었나... 잠시간의 의문이 머릿속에 스쳐 갔으나. 이내 잊혔다, 지워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들은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다시 남궁의 일상은 평화롭게 돌아왔고, 새로 지은 남궁 본채에는 이왕 짓는 김에 방음재를 덧대었는데, 창궁검대원들의 직장 피로가 조금 줄어드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를 본 남궁혁이 이참에 밖에도 방음재를 두면 저희가 조금 편하지 않을까요? 같은 소리를 했다가 남궁단에게 검집으로 맞았고. 남궁도위는 모른 체 했다. 옆에서 녹림왕이 눈을 흘기며 가주는 양심도 없쏘? 같은 소리를 해댔지만 별로 사파새끼한테 할애할 양심 같은 건 없었기에 괜찮았다. 

그리하여- 모두가 평안하였다.

남궁도위의 편지의 내용은 터무니 없었다. 더 이상 세상이 저를 원하지 않기에 자신은 사라져야만 하며, 다시 이 세상을 원래로 돌리기 위해서는 자신과 관련된 '남은' 물건들, 임소병과 함께한 흔적들을 태워 없애야만 한다고. 그리한다면 분명 자신이 다시 소병에게로 돌아갈 터이니 부탁한다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 하지만 임소병은 기꺼이 따랐다. 그것이 남궁도위가 원하는 일이었기에. 

따스한 흔적들이 뜨거운 불길에 차례차례 녹아간다. 금도 은도 철도 종이도 가리는 것 없이 화마는 며칠은 굶은 것처럼 물건들을 삼키고 삼켜, 마침내 흔적도 없이 불태워버린다. 손에 감긴 마지막 증표, 가락지마저도 그 안으로 던져버린 후에 임소병은 말했다. 

"가주, 혹시 분서갱유라고 압니까? 진나라의 왕은 옛 책들을 태우고 학자를 땅에 파묻었다고 하지, 새 것으로 갈아 끼우기 위해서 말이요."

"아마 가주는 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나 또한 그대를 잊고 살아가리라 생각했겠지만. 아직 남궁도위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화마에서 나를 구할 사람은 없단 말이요."

"사람이 살아있다면 학문은 남아 역사가 되는 법이지... 그렇다면, 그대를 아는 나는 어떻겠소?"

임소병의 머리 위 천장이 무너져내린다. 이상하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 순간, 창궁검대는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남궁도위와 조우하게 된다. 이 세상의 임소병은 남궁세가에 남궁도위가 따로 지어둔 창천각-채-에서 잠들어 있다 깨어났으며, 자신에게 말도 안 하고 오래 자리를 비운 남궁도위에게 열이 받아 안쪽이 이미 타서 무너진 줄은 모르고 바깥쪽에 마저 불을 지를 예정이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순리대로 돌아간다. 아무 일 없이.

그리고, 저 너머, 아주 멀리멀리의 여전한 곳에서. 불타지 않은 세상에서는 어떤 남궁도위와 임소병이 눈을 뜨고- 서로를 더듬어보다, 기쁘게 웃은 후에. 그렇게 변해가는 세상에는 하나도 맞물리지 않은 채로 장막의 너머에서 살아갈 예정이다. 

끝! 


동도위한테

임소병을 주자

임소병을 주자.

하면서 썼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쥣드위치를 먹으려고 한 달 전부터 존버했는데, 마음은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군요. 

이 글은 분서갱유가 주제로, 학자를 파묻다... 그럼 소병이도 파묻어야지! 하면서 시작되기는개뿔그냥너무슬퍼서도위야... 하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오래 멀리한 상태에서 플롯도 뭣도 없이 그냥 쓰기 시작해서 글 퀼리티도 에바고,,, ㅎㅎ... 하지만 일단 썼으니 올립니다. 금방 지울 듯 해요.

아무튼 동도위가 갈아끼워지기 위해서는 동도위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았을 소병이도 함께하는 것이 옳겠지요. (아니? 그냥 동도이한테 공소병을 솔로몬해서 주자. 동도이한테 소병이 주자주자.)  

원래는 영원인연이 제목이었는데 쓰다 보니까 분서갱유를 설정에 넣는 게 좋겠다! 하면서 넣어버려서 분서갱유가 제목이 되었네요.  

해삐엔딩 아니면 참을 수 없는 오타쿠기에 아무튼 결말은 해피엔딩입니다. 

하...동도위한테 임소병 줘라...공도위야 니가 좀 양보해바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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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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