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위소병] 청무 - 1
청룡도위 x 이무기소병
+ 2024.01.19 이전완료, 도소배에 들어갈 글은 아마 얘가 아닐까...
그것에게는 날개가 없어 땅 위를 기어다닌다. 몸 앞에 돋아난 팔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며. 인간이되 인간 아닌 모습으로 둔갑하여 죄 없는 이들을 죄 홀리고 다닌다. 그것이 지나간 곳은 시취와 폐허만으로 가득하고, 그 흉한 것과 마주치면 타죽는 것이 더 나을 고통을 받고 죽게 된다.
그 이름 이무이며 악룡이라 하여, 그것이 하늘 오르지 못하게 막아야 마을에 변이 생기지 않을지니...
임소병은 산길 아랫마을에서 태어났다. 사냥꾼인 아비, 큰 가문의 몸종이었던 어미. 계곡물에 깎인 조약돌마냥 희고 투명한 피부에 부모 양쪽의 외양이라곤 새까만 흑발밖에 남지 않은 괴이쩍은 생김새였으나. 그 꺼림직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모는 그를 사랑했다.
임소병의 이상한 점은 외양뿐만은 아니었다. 해봐야 일곱살 먹은 아이가 유교의 경전을 본 것 만으로 달달 외웠으며. 또래 아이들하고 모여있으면 이상하리만큼 어른스러운 면모가 강했다. 그럼에도 임소병의 잔망스러움이나 어리광같은 그맘때 어린이다운 태도는 퍽 귀여운 것이었으나. 임소병의 부모를 제외한 마을의 어른들은 임소병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마을에 온 어떤 무당의 탓이었다. 처음 그가 형산촌에 왔을 때 잡귀를 몰아온다며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으나. 그의 훌륭한 말솜씨 때문인지. 이어진 가뭄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점차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임소병의 가족들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비극이 도래했다. 처음은 아비의 죽음이었고, 둘째는 어머니의 병환이었다. 기껏해야 일곱살 먹었을까. 언제나처럼 산으로 떠났다 짐승에게 물려 죽은 아비를 대신해 임소병이 할 수 있는 것은. 마을로 내려가 의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해보는 것밖엔 없었다. 늘상 어른스러웠던 아이가 울며 매달리는 것에 가슴아파할만도 하건만. 의원은 그 요청을 무시하고 아이를 매정하게 떨쳐내었다.
자기 전 항상 자신을 쓸어주던 다정한 손이 차갑게 굳어버렸다는 걸 깨달은 날. 임소병은 가만히 그 손을 끌어안은채로 자지도 않고 밤을 지새웠다. 머리에 손을 얹고 있으면, 다시금 그 손이 머리를 쓸어줄 것만 같았다. 어머니의 무덤은 아버지의 옆에 만들었다. 무덤을 만든 후 꽃을 두고 떠난 임소병의 손은 살이 까지고 찢겨 상처투성이였다.
불행은 끊이지 않았다. 임소병의 아비와 어미가 그렇게 된 후로도 흉년은 계속 이어졌다. 벌써 몇 년도 더 된 일이었다. 쇳비린내가 나는 털이 숭숭한 손을 소매 아래 숨기고, 머리에 천을 뒤집어 쓴 무당은 그 아이를 잡아 제사에 올려야 한다며, 캥캥거리는 소리가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이 머리에 스친 것은 기묘한 예지였다. 임소병은 재빨리 집을 나가 산을 타고 올랐다. 아비를 앗아간 산이라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난 이후로 임소병을 숨겨주고 먹여주는 것도 산이었다. 아버지의 시체에서 발견한 짐승 입 자국이 여우의 것이었던 것이나. 어머니의 병환이 특정한 병보다는 마치 저주에 걸린 듯 원인을 알 수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거리낄 것도 없었다.
임소병의 눈에서 비가 흐르고. 하늘에서는 분노하듯 천둥이 쳤다. 쟁기와 낫을 들고 낡은 집에 쳐들어온 마을 어른들은 영문을 몰랐지만. 임소병이 사라지니 마을에 다시 풍요가 찾아왔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환호도 잠깐이었다. 비는 이주일하고도 오일을 더 갔다. 곡식들은 죄다 물에 쓸려서 사라지고. 지속된 장마에 역병이 돌았다. 마을 어른들은 무당에게 항의하러 그를 찾아갔으나 무당이 있던 곳에는 그 욕심으로 무거운 몸을 어떻게 이끌고 도망갔는지는 몰라도 여우털만이 듬성듬성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없이 달리며 산을 오르던 임소병의 몸에 힘이 빠져 점차 느려졌다. 몸을 찌르는 찌릿찌릿한 통증과 인간에 대한 원망만이 임소병의 안에 자리했다. 삐죽하게 난 여린 검은색 비늘이 임소병의 몸을 발 끝에서부터 천천히 덮어왔다. 자신이 인간 아닌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임소병은 그저 이대로 죽는다면 내세에서만이라도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 같은 소망 따위를 생각했다. 이윽고 임소병이 정신을 잃자. 거대한 범이 임소병의 옷깃을 물고 깊은 산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로 이틀을 더 꼬박 앓았던가. 깊은 산 속에서 정기를 흡수한 임소병이 다시금 눈을 떴을 무렵. 임소병은 흰 백로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임소병이 깨어 눈을 마주치자 이제 되었다는 듯이 백로는 퍼덕 날개를 펴서 날아가 버렸다. 백로가 날아 사라진 곳을 쳐다보다 눈을 돌리자, 제 앞에 작은 연못이 있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타는 듯이 말라오는 목에 임소병은 연못으로 기었다.
물을 마시자 몸에 활력이 차오르는 듯도 하였다. 임소병이 잠시 숨을 돌리던 순간. 수면이 일렁이더니 다시 거울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가만 본 연못에 비친 제 모습이 이상하게 자기 같지 않았다. 볼을 긁으니 딱딱한 것이 발톱에 부딪혔다. 수면에 스쳐 사라진 임소병의 눈동자색이 인간의 것이 아닌 푸른 빛을 띄었다. 임소병은 가만히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인간 아닌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예로부터, 새 용이 탄생해 땅에 내릴 때가 되면 신탁을 받은 용을 모시는 수행자가 그리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몇백 년 전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무엇의 소행인지는 몰라도 수행자들이 전부 갈기갈기 찢겨서, 심장만 빼먹히고 돌아오는 일이 빈번하였다. 용의 거처는 신탁을 받은 해당 수행자가 아니면 알 수 없음이라. 뒤늦게 발견한 어린 용이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시체로 발견되거나, 아니면 제 때에 하늘문 올라 용이 되지 못하자 얼마 안 되어 목숨이 거둬진 채로 발견되었다.
이는 왜냐하면 수행자들이 용의 성장을 돕기 때문인데, 사람의 깨끗한 바람과 소망등을 먹고 자라는 용은 그것을 관리하고 돌봐줄 인간을 필요로 하며 그것이 수행자이다. 수행자와 함께하며 바르게 자란 어린 용은 성룡이 되어 다시금 세상에 내릴 시 축복을 내리며 세상을 무사태평하게 만드는 일에 기여하게 되고 용을 잘 길러낸 수행자는 평생의 행복과 안정을 약속받게 된다. 이것이 올바른 순환에 해당한다.
용의 수호를 받지 않는 땅은 금세 불안정해지며, 요괴나 잡귀에 시달리기가 쉬워진다. 그렇기에 중원에서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각 땅을 수호하기 위한 용을 길러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선택받은 수행자들은 전부 목숨을 잃기 마련이니. 용이 여의주로 새로운 수행자를 선택하여 자라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인위적으로 맺어진 인연이 효용이 있을까 하여 의혹도 많은 일이었으나. 백년전의 청문과 매화검존과 같이 뛰어난 합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어. 여의주를 통해 맺어진 인연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진 후로는 그런 말들도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임소병과 같이 발견되지 못한 채로 오로지 인간의 악의만을 여의주 안에 담고, 어떤 소망도 바램도 바라지 못한 채로. 수행자의 도움 없이 죽어가는 용들도 당연히 있는 법이다. 선한 기운으로 만들어진 용들은 그런 기운들과는 상극이라, 당연히 모두가 그렇듯이 죽어가기 마련이건만...
임소병은 살아남았다. 인간이되, 인간 아닌 모습으로. 용 아닌 이무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임소병이 악룡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무는 하늘문 오를 때가 되었으나 용 되지 않은 것들을 지칭하는 말로, 말하자면 덜된놈이다. 임소병의 용답지 않게 체구가 비교적 작고 쇠약한 것은 어린 시절의 저주 때문이겠으나. 동시에 형산의 정기를 산신의 자비로 혼자 독식해 취한 것 덕분인지. 임소병은 자신의 몸 안에 도는 탁기를 억누르고 용 비슷한 정도로는 자랄 수 있었다.
다람쥐들에게 도토리를 나눠주는 것 정도의 쓰임이겠으나. 권능도 어느 정도는 부릴 수 있었다. 비록 어린 용이었던 어린 시절만큼 날씨를 조정하는 능력까지는 되지 않으나. 임소병이 관할하는 곳의 나무열매들은 질이 좋고 크기가 커서, 꽤 값을 좋게 받을 수 있었다. 인간의 소망 대신 정기를 필요로 할 뿐 딱히 먹고 자는 것이 필요치 않은 몸이라 임소병은 종종 그것으로 시전에 나가 책을 사거나 붓 등 각종 사무용품을 구입해 오곤 하였다.
다만 그의 두번째 아비라 할 수 있는 산신은 이것을 꽤 못마땅하게 보았다. 제가 살린 목숨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산신은 임소병에게 애착이 깊었으며, 그렇기에 임소병이 제대로 된 용으로 성장해 형산을 다스리기를 바랐다. 산신 -녹림왕- 자신이 나이가 많이 들어 후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임소병에게 대는 핑계긴 하였으나. 임소병은 그 안의 걱정과 애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임소병 딴에는 답답한 것이. 임소병의 여의주는 비록 정기로 연명한다지만 이미 탁기로 더럽혀져 제 역할을 할 수 없었기에. 설령 산 밑에서 수행자의 원석을 발견한대도 여의주를 통해 연을 맺을 수 없어 문제라는 것이다. 이무로 사는 것은 하늘의 명을 배반하는 것과 같았기에 그 수명이 길지 않다. 형산을 떠나 헛짓거리를 한다면 더더욱 짧아질 터고. 임소병은 산신과 산도깨비들과 같이 남은 생을 보내고 싶었다. 어디서 후계 안 나타나나. 몸 좋고 건강한 것이면 더할나위 없을 테지.
그러나 변화는 생각지도 않게 찾아왔다.
"뭐? 합비? 거길 내가 왜 가?"
뭔 시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황당해하는 임소병과 갑시다! 외치는 왕도깨비 번충(그리고 동글동글한 작은 다람쥐깨비들)의 옆에서, 목소리 좋은 도깨비 곽민이 나와서 말했다.
"합비에서 남궁의 소가주의 혼처를 찾는다 합니다. 아마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말하겠지만 사실상 이번 남궁의 소가주는 다음대 창천의 용이나 다름이 없으니. 사람을 불러 모아 그 중에 수행자를 찾아 연을 맺으려는 속셈이겠지요."
"내가 그걸 모르겠냐, 가도 의미가 없으니까 그렇지. 내 여의주 봐, 새까만게 어디 인간하고 닿을 수 있나. 콱 녹아 뒈져버릴걸?"
이를 짓씹으며 목을 댕강. 자르는 듯한 손짓을 임소병이 이만 가보라 하였으나. 곽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창천남궁세가는 천하제일세가라고 불리는 것만큼, 다른 가문과도 교류가 많은 편입니다. 그 손님 중에 이 참에 소가주와 연을 맺고 싶은 용들도 꽤 많이 모일 것이라 장담합니다. 그 속에 문제를 해결해줄 이 하나 없겠습니까. 이 근처 용들이나 영물들은 이무기님과 같은 경우를 본 적이 없어 방책을 못 찾은 것일지도 모르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큰 행사가 드문 일인 것을 이무기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갈 수록 안 좋아지는 임소병의 상태를 보며,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간청에 가까웠다. 하지만 산도깨비들의 말에 언제나 임소병은 지는 편이었으므로.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산신의 수명 안에서. 그나마 제가 살려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고 싶었으므로. 임소병은 한숨을 내쉬며 오냐. 알겠다. 하고 도깨비들을 물리고 채비하기 시작했다.
손 끝에 힘을 주자 손톱이 발톱으로, 그 끝에서부터가 검은 비늘로 뒤덮히며 팔을 타고 올라왔다. 본디 하얀 색이었을 용의 본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학에 하늘문을 오르는 용, 이무가 용이 되지 않고 버틴 최장기록은 약관이라 했다. 올해 열일곱이 된 임소병은 까딱하면 내일 죽을 수도, 내일이 아니면 모레가 될 수도 있었다. 혹시 몰라. 거기서 기연이라도 만날지.
우스운 소리라며 임소병은 마저 짐을 싸기 시작했으나. 임소병은 정말 말 그대로 이상한 인연을 만나게 된다.
시작은 납치당하는 길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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