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 도위소병

[도위소병] 밀물이 썰물을 앞지르는 때 - 1

이거 다시 재연재를,,,해야하는데

골판지상자 by 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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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9 2022년 11월에 썼던 글입니다. 언젠가 뒷 이야기를 다시 이어야 할 텐데...

환생현패au로 잔잔물을 목표로 간단히 쓰고 있는 썰을 백업합니다. 길어질 것 같아서 숫자로 나눕니다만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오탈자는 나중에 수정하고자 하니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후 내용 수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채워줘요... 당신의 사랑으로 ... 나에겐...

 

오래된 라디오에선 철 지난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블라인드가 반쯤 걷혀 햇살이 살며시 들어오는 사무실의 안에는 청소를 잘 하지 않는 건지 서류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고, 그 사이에 한 남자가 낡은 쇼파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잠에 들어있었다. 이는 사무소 – 녹림의 평소와 다르지 않은 풍경일 터지만, 오래간만의 손님이 찾아온 것인지. 얇은 철문이 번잡스럽게 밀리는 소리와 함께 요란스러운 현관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울려펴졌다.

 

“으,헛차.”

 

몸을 한껏 구겼다가 인상을 쓰며 기지개를 편 남자는 이 사무소의 주인, 임소병으로 쉽게 잠을 못 자는 것인지 눈 밑에 짙은 기미가 드리워져 병자에 가까운 안색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간만에 든 깊은 잠을 방해받았다는건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겠으나. 이 구석자리의 사무소에 손님이 오는 일 또한 녹림의 업종이 바뀐 후로는 드문 일이었기에. 임소병은 눈을 비비고 주변을 몇 번 둘러본 후 제 앞에 선 번듯한 옷을 차려입은 짙은 검미의 미남자에게 조금만 기다리시라 언질하며 자본주의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인스턴트 커피로 한 잔 괜찮습니까? 둥굴레차나 녹차도 있긴 한데, 입으신 차림이 그쪽 선호하실 분은 아닌 것 같고. 또 에스프레소 캡슐 같은거는 여기서 취급을 안해서. 아니면 생수?”

 

“커피로 충분합니다.”

 

쇼파나 책상에 옷을 대충 내던져놓는 버릇이 있는 임소병은 거의 쓰지 않은지 오래라. 먼지가 내려앉은 옷걸이 위에 남자의 고급 자켓을 걸며 이게 얼마일까 임소병은 잠시 생각했다. 힐끔거리며 쇼파 쪽을 보자. 남자는 자리에 앉아 생김새로써는 입에는 대지도 않을 것 같은 하나에 백원짜리스틱으로 만든 물이 가득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옷으로 보든 얼굴로 보든 이런 곳에는 오지 않을 사람으로 보이는데. 무슨 일로 녹림을 찾아왔는지 의문이군. 아까부터 시끄럽게 재잘대던 라디오의 전원을 눌러 끄고서, 임소병은 남자의 건너편에 걸터앉았다.

 

청소를 조금이라도 해놓을 걸 그랬나. 침묵하는 분위기 사이 형광등 아래로 먼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책상 끝을 툭툭 건드리고 있는 남자의 손에도 먼지가 묻어나지 않을까 신경쓰였지만. 지금 와서 행주로 빡빡 윗판을 닦는다고 한들 좋은 인상을 주진 못할 것이다. 자기 몫의 녹차를 한 모금 머금어 마른 입을 축이고선, 능란한 말솜씨로 이 정적을 깨고자 임소병을 입을 떼었으나, 상대방이 한 차례 빨랐다.

“제 이름은 남궁도위라고 합니다, 녹림을 찾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오라, 부탁할 일이 있어섭니다만. 여전히 사람 찾는 일을 하시는지요.”

 

사람 찾는 일이라, 예전의 녹림에게 사람을 찾는 일이란 흔히 생각되는 탐정이나 경찰 등의 실종자 찾기 등의 일이 아닌, 이른바 묻는 일에 가까운 것이었다. 여기서 묻는 것은 말이 아닌 사람이었고. 하지만 녹림의 전 수장이었던, 이른바 뒷세계에서 ‘녹림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임소병의 부친이 차차 조폭 일에서 손을 떼고. 후계인 임소병이 부동산 사업과 일을 연결해주는 하청 쪽으로 완전히 직종을 바꾼 후로는 그런 목적으로 임소병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십년 전쯤엔 년에 한 둘 정도에, 최근에는 아예 없다시피 했는데. ‘이 쪽’ 이라기엔 새파란 어린애가 녹림을 알고 찾아왔다는 건 임소병에게는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관계자인가, 아니면 선대에 연이 있었나? 남궁도위라는 이름에서 단서를 찾아보자면. 남궁의 성씨로 대표되는 기업은 창천 말고는 없으니, 아마 남궁황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이 자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뜻 보이는 얼굴이 제 아비를 똑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남궁이라는 사업체와 뒷세계가 엮인 적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 후계의 독단이겠지.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대고는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임소병은 손을 설래 내저었다.

 

“우리는 뒷골목 일에서 손 뗀지는 꽤나 되어서요. 누구랑 원수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 처리해주기는 곤란합니다. 녹림을 안다면 하오문 쪽도 알겠죠. 거기가 사람 찾는데는 빠삭해요.별로 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원한다면 소개해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소개비는 따로 받겠지만요. 실실 웃으며 임소병이 응대하자, 남궁도위가 고개를 저었다. 모락하게 올라오던 커피의 김이 어느새 식은 후였다.

 

“사람 묻는 일은 아닙니다. 하오문 쪽에 의뢰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그쪽이 더 전문적이라는 건 알지만. 제가 필요한 것은 녹림의, 정확히는 임소병씨의 도움입니다.”

 

만지작거리던 잔에서 손을 떼고서 마음을 정했다는 듯이, 강경해 보이는 목소리로 남궁도위는 말을 꺼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진짜로 흔적을 찾아내어 제게 보고하면 되는 일입니다. 생사도 불분명한 사람에, 제가 드릴 수 있는 정보도 한정적이라 그리 쉬운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도와주시기만 한다면 섭섭지 않은 보수를 드릴 수 있을거라 약속할 수 있습니다. 일이 실패할 경우에도, 기간까지만 충실히 일해주신다면 보수를 전액 지불할 것이고요.”

 

실패해도 기한까지 일만 잘해준다면 보수는 전액 지불하겠다, 일도 별로 들어오지 않는 참에 낼름 물기에 좋은 건수지만. 어쩐지 찜찜한 마음에 임소병은 머리를 박박 긁으며 고민했다. 머리를 긁는 손을 남궁도위가 툭툭 치며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지만 않았어도 한참을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좋은 습관이니 고쳐야 하는데 버릇이 들어서는, 임소병이 손을 멈추자 만족했다는 듯이 떼어지는 손가락에 임소병은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

 

“그야 남궁이 빈하지는 않으니 돈이야 당연한 일이지마는, 왜 접니까? 힘 쓰는 멍청이들 고용하러 오신 건 뵈기에 아닌 것 같고. 녹림에서 굳이 찾으시는 사람이 있다면 나인 것 같은데.”

 

 

“제가 찾는 것이 당신과 관련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딸랑-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남궁도위가 나가는 소리는 맑고 경쾌했다, 아직 경첩에 기름칠 할 때는 덜 된 모양이네, 한모금 정도가 남은 커피잔과 먹다 남은 녹차잔을 치우고, 삐딱한 자세로 건들거리듯이 앉아 임소병은 남궁도위의 제안을 생각했다. 결과만 떠올린다면 받아들였다에 가깝다. 어쨌든, 임소병이 손해 볼 일은 없었으니까. 꼬박꼬박 보고하러 만나주기만 하면 선금은 물론 대금까지 다 치룬다는데, 거절하는게 멍청한 짓이지 임소병의 선택이 결코 틀렸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물론 찜찜한 구석은 존재했다. 임소병 자신과 관련된 사람. 게다가 이름은 자신과 똑같으며 한자까지 같은 것을 사용한다니 말만 돌려서 했지 임소병 자신을 찾는게 아닌가 싶었으나. 그건 아니란 말에 애써 의문을 삼켰었다. 물론 그만한 거액을 들여서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본인을 찾는 일을 의뢰한다니, 그런 정신나간 사람이 있을까 싶다는 논리에 의거한 판단이 더 강하긴 했다.

 

아무튼 찜찜하든 말든 일을 받았으니 돈값은 해야겠지. 14억 인구수에 저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없을리도 없고. 자신과 관련된 이라는 설명은 애매모호하지만 사람을 추려보면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남궁도위가 나간 후로 다시 웅크려 있느라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키고서 임소병은 남궁도위와 대화하던 사이 얻었던 미미한 정보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름은 임소병, 수풀 림에 본디 소, 불꽃 병... 성별은 남자에...

 

 

 

임소병이 당당히 내민 리스트를 보며 그의 앞에 앉아있던 멀끔한 남자는 멋쩍게 웃었다. 펼쳐본 그 안에는 임소병의 생애에 옷자락 스치듯이 지나간 다른 임소병들, 혹은 임서병, 임수변... 등의 합법에서 이루어진 선까지의 다양한 인적사랑이 적혀 있었고. 이를 찾느라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의 기록을 내놔라 이 사람 정보좀 캐봐라 죽어라 갈궈진 전대 녹림왕과 녹림도들의 수고엔 유감스럽겠지만. 이것은 남궁도위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이런걸 바란건 아니었습니다. 녹림을 흥신소로 보고 의뢰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남궁도위가 그리 말하자 짜증을 얼굴에 팍팍 티내는 채로 일그러진 얼굴의 임소병이 말을 이어 왔다. 언성이 조금 높아졌으나 다행히 남궁도위가 임소병하고 약속을 잡은 이 식당은 고위층들을 위한 프라이빗 룸이 준비되어 있어서. 그의 목소리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면 뭘 바랬습니까? 아니, 도위씨. 사람 이름하고 성별 딸랑 줘놓고 이만큼 해온 것도 칭찬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는뎁쇼.”

 

부루퉁하게 볼을 부풀린 임소병을 뒤로 하고서, 남궁도위는 서버를 불러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아니, 자기 먹을 것만 주문하나? 저 쪽이 내는 거라고 해도 나도 취향이 있고 기호가 있는데. 남궁도위의 반응이 시원찮았다는 것도 있으나, 노력하였다고는 해도 만족스럽지 않은 제 일처리에 뿔이 난 임소병은 괜히 트집을 잡았다. 애들 갈군 보람도 없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녹림을 흥신소로 보지 않는다는 말에 기분이 좋기도 하였다. 대개 남궁도위와 같은 의뢰자의 입장인 사람들은 녹림이 어떤 더러운 일을 하든, 그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기에. 임소병에게는 그것이 굉장히 꼴같잖았었기 때문이다. 슬슬 주문을 마친 것 같은 모양이라, 남궁도위에게 눈짓하며 임소병은 고개를 돌렸다.

 

“뭐 시켰습니까? 여기에서 순대국밥이나 그런걸 팔진 않을 것 같은데.”

 

“이것저것요, 입맛에 맞으실 겁니다. 먼 거리에 있는데도 밥이 맛있어서 종종 오는 곳이라, 같이 먹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소병씨가 떠올라서, 이 곳을 약속 장소로 잡았거든요.”

 

“그 나이면 약혼자나 파트너 정도는 있을 것 같은데, 식당 하나 같이 갈 사람도 없다니 의왼데요?”

 

남궁도위는 놀랄 만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우습다는 듯이 낮은 목소리로 하하 웃었다.

 

“그럴 리가요, 약혼자라, 너무 구시대적인 발언이네요. 물론 요즘도 재벌 사이에서 그런 일이 횡행하는 것은 사실이고, 저희 아버지랑 어머니도 정략혼이었지만... 저는 연애 결혼 파거든요.”

 

결국 요즘도 한다는 건 사실 아닌가? 재벌 2세가 연애 결혼 파라는건 좀 의외였지만. 툴툴거리며 그 사이 나온 제 앞의 밑반찬들을 임소병은 젓가락으로 헤집어놓았다. 몇 개 집어먹어 보니 꽤나 입맛에 맞기에, 이래서 부자들이 비싼 음식만 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머리에 지나들었다.

 

먼저 나온 반찬들을 깨작이며 시간이 좀 지나니 메인이 나왔다. 다만 임소병이 생각 한 것과는 좀 결을 달리하는 것들이라. 임소병은 놀랐다는 듯이 남궁도위를 보았다.

 

“보기에는 몸이 탄탄한게, 고기만 먹을 것 같이 생겼는데. 나물 위주네요?”

 

“싫으십니까? 기호에 맞지 않으신다면 다른 걸 주문해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아니, 뭐 그 쪽이 워낙 거구라 신기했던 거지. 저는 이쪽이 더 취향입니다. 산나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고기은거 한번 잘못 먹었다가는 얹혀서 탈이 나는 몸이라서요. 따로 말해주지 않은 걸로 아는데. 이야. 덕분에 편하게 먹겠습니다.”

 

임소병이 눈을 빛내며 수저를 들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남궁도위가 말했다.

 

“누가 봐도 피부도 창백하고 안색도 안 좋으신게 기름진 걸 잘 먹으실 것 같게는 안 생기셨으니까요. 환자한테는 그런 음식은 좋지 않지 않습니까.”

 

“누구 간병하던 경력이라도 좀 있나봅니다. 잘 아시네요. 안색 하나로 골골 앓는 것도 잘 알아채시고.”

 

“그런 경력은 없지만, 오래 아팠던 사람을 하나 알고 있어서요. 한참 동안 소식이 끊겼다 근래 다시 연락이 닿았는데. 지금도 영 상태가 좋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기왕이면 건강해졌기를 바랬는데 여전하더군요.”

 

“그야 아픈건 병도 있지만 체질도 있어서 쉽게 나아지지는 못하니까요. 태어날때부터 강골이었을 것 같은 그 쪽은 잘 모를 것 같지만. 그나저나, 인적사항같은 정보를 원하는게 아니라면, 나한테 원하는게 대체 뭡니까?”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임소병이 말했다. 그런 류의 정보를 통해 사람을 특정하는게 아니라면 이 넓은 땅에서 사막에서 바늘찾기도 아니고 누군가를 찾는다는 일은 요원할텐데, 남궁도위의 반응은 정보를 구한다는 것 치곤 애써 정리해온 것들을 몇 번 넘기고는 읽지도 않은채 아니다 한 것이 전부이니. 그 행동이 임소병에게는 의뭉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남궁도위가 멋쩍은 듯이 손을 뒤로 넘겨 살짝 목을 쓸었다.

 

“제가 일전에, 소병씨와 제가 찾는 사람이 관계되었다고 했었지요.”

 

“그렇죠?”

 

“아마 소병씨는 잊었겠지만, 소병씨와 그 사람이 조우한 적이 분명 있을겁니다.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근거를 알려드릴 수도 없지만요. 그리고, 정보 수집 쪽으로 사람을 찾는걸 원하지 않았다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뭡니까? 평범한 건 아닐 것 같은데.”

 

임소병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남궁도위는 의미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 끝에는 애상이 서려 있는 듯도 하였고. 아니면 그저 별 볼일 없는 평범한 겉치레 같기도 하였다.

 

“꽤 오래 전에 죽었거든요. 저는 그 흔적을 찾아다니는 중이고요.”

 

평소의 임소병이었다면, 진즉 말했어야지! 시간낭비만 잔뜩 했지 않습니까! 하면서 오만 신경질을 낼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임소병이 마주한 누군가의 죽음을 말하는 남궁도위의 눈이 위에서 비치는 전등의 불빛에도 불구하고 까맣게 침전되어 가라앉아 있었기에, 임소병은 그저 침묵해주기로 했다. 식사가 끝난 후로 둘은 털레털레 밖으로 나섰다. 겨울이 다가오는 날씨에 찬 바람이 겉 옷 속으로 파고들어 따뜻한 실내 공기에 데워졌던 몸을 차갑게 식혔다.

 

날이 저물어 어두워진 하늘에 가로등과 건물들이 하나 둘씩 불을 올리며 저녁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밥을 먹었으니 산책하는 겸 주변을 걷자는 남궁도위의 제안에 임소병이 응했기에, 둘은 인적이 드문 공원을 걷는 중이었다. 묵묵히 남궁도위의 옆을 걸으며 임소병은 남궁도위가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저는, 남이 기억하는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습니다. 근데 저 말고는 아무도 그 사람을 떠올려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더군요. 그것이 너무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정보를 찾던 와중. 임소병씨가 걸린 거고요.”

 

“...”

 

“처음에는 기억하실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 기대를 해봤는데, 아무래도 아니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기회라도 잡아보고 싶어서 의뢰를 하게 된 겁니다. 저는...임소병씨가 저랑 같이 있는 2개월동안 최대한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찾아줬으면 합니다. 계약이 끝난 이후론 부담주지 않을겁니다. 이미 저한테만 미련이 남은 사람이라면. 잊는 것이 더 나은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

 

입에서 하얀 김을 내뿜으며, 후우 하는 한숨을 쉬더니 마저 남궁도위가 말을 이었다. 애수에 젖은 미남이라, 쉽게 보기는 어려울 광경이겠으나 임소병은 그게 썩 달갑지는 않았다. 애초에 기억을 찾으라, 뭐니 하는 말도 신빙성이 가지 않았다. 기억을 되찾는다니 뭐니 하긴 했어도. 결국엔 그거지. 남을 덮어씌워보는 것. 같은 이름에 같은 성별. 그리고 정확하지는 않아도, 그 병약한 몸에 대한 이야기도 ‘임소병’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러니 저 도련님은 지금 내 위에 다른 사람을 덮어씌워서 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을 터이다. 허약하고 병약한, 오래 전 소식이 끊겼을 때 죽었을 누군가를 대신해 그저 비슷한 사람일 뿐인 자신을 택해, 기억을 찾니 어쨌니 하는 것이겠지. 접촉에 스스럼이 없던 것도, 묻지도 않고 취향을 확신하던 태도도. 그에서 비롯되었다면 설명이 된다.

 

뭐, 평생도 아니고 2개월 동안 도련님의 시체놀음에 어울려주는 것이 의뢰라면, 그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도 없다. 임소병은 말을 마치고서 침묵하는 남궁도위를 끌어다 다시 걸으라 재촉하였다.

 

“뭐, 알겠으니 걷기나 하십쇼! 기껏 소화하러 나왔는데 얼어 뒤지겠습니다.”

 

어쨌든, 그 후의 일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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