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 도위소병

[도위소병] 나에게로 돌아오라

저희집 강시는 콩콩 뛰지 않습니다

새벽에 졸린김에 제 이성 몰래 올리는 짧은 썰이 되겠습니다, 고로 퇴고는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맞춤법 교정도요.

뒷처리는 내일의 제가 알아서 해주지 않을까요? 

좀비랑 사랑하는거 보고싶다.. 중원 임쏘랑 죽은 도위... 근데 난 근데 현패가 좋은데.,,, 짬뽕을 하자. 택배로 온 개쩌는 남자 어때? 이런 생각을 하며 썼습니다.

+ 늦은 공지,,, 사망소재가 있습니다. (강시니까 당연하지만은..)

+ 2024.01.19 이전합니다~

비 오는 가을의 어느날, 임소병은 택배로 살아있는 시체를 받았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면, 그게 당연하다. FPS게임에서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좀비, 대충 그것이 임소병에게 배달되어왔다. 원래 수취인에 자신이 쓰여있지 않고,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이 배달되어온다면 현대인이라면 당연히 멀리하는것이 상식일 것이다. 그 물건이 관과 같은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임소병은 호기심 천국 아티스트라고 불릴 정도로 쓸데없고 위험한데에 호기심을 부려. 굳이 확인해보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사람이 서양 영화에 가면 분명 퍼스트 블러드로 죽을 테지만, 다행히도 여기는 개그비엘 속이었기 때문에. 임소병은 관을 열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관 안에는 단정하고, 그러나 오만할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한 얼굴을 가진 미남자가 누워있었다. 임소병이 생각한 관 안에 있을 수 있는 최악의 물질 100선에는 벗어났으나. 동시에 매우 기이한 일이었다.

호흡 확인하고, 심장박동 확인하고, 확실히 죽었군. 남자의 생사를 확인한 후 깨어나지 않는 시체와 꽤 오랜 시간을 대치한 임소병은 관 뚜껑을 덮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제가 살인 용의자로 지목받지 않고, 동시에 자기 집 침대보다도 큰 관을 처리하여 일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려 했다. 하지만 뚜껑을 닫으려 남자를 -그 김에 시체라지만, 눈호강도 하고- 다시 들여다봤을 때. 처음 얼굴에 홀려서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관 뚜껑은 반쯤 닫아둔 채로. 임소병은 그것을 잡고자 손을 뻗었다.

임소병의 눈에 걸린 것은 어떤 편지조각과 같은 것으로, 구깃하지만 네모낳게 접혀서 남자의 머리 위에 포개져 있어. 언뜻 보면 쓰레기로도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임소병은 호가명과 장일소와 함께하는 (그리고 호가명과 자기만 머리를 뒤지게 쓰다가 장일소가 마지막 퍼즐을 황당하게 풀어 탈출하는) 방탈출 경력이 자그마치 4년치는 되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 편지가 이 남자와 관에 관련된 어떤 단서라는 것을 짐작해낼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사람 서양 영화가면 진짜 죽는다. 

그리고 임소병이 정말로 편지를 잡은 순간, 마치 영화의 클리셰처럼. 종일 미동도 안하던 시체 미남이 임소병의 손목을 쥐고는 눈을 떠서 그를 바라보았다. 

"소병...?"

"소병입니까?"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검푸른 눈을 굴리는 남자를 보며, 임소병은 이렇게 말했다. 이름 세번 말하면 불길하니까 입 닥치십쇼! 원래 긴장 속에서 용기가 나오는 법이다. 

몸이 썩지도 않고 얼굴이 푸르딩딩하지도 않은, 혈색은 있지만 몸은 지독하리만큼 차가운 시체남은 패닉에 빠진 임소병의 다양한 미친 짓들을 저지하고선 자신의 이름을 남궁도위라 밝혔다. 장일소가 거액을 들여서 준비한 중원의 시체남과 하룻밤 같은 깜짝카메라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남궁도위는 정말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누가 보면 백치라고 착각할 정도로 현대에 대한 지식이란 구름 놓고 창천자도 모르는 중원인이었다. 창작물적 허용인지 중원, 관 어쩌고 하던 시절의 남자와도 말투는 예스러웠지만 말을 나눌 수 있었단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얼굴이 이렇게 비슷한데, 다른 사람이라니 신기하군요."

"저는 살아있는 시체가 제 눈 앞에 있다는게 가장 신기합니다만"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남궁도위는 조금 놀랐지만, 그것은 금세 납득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남궁도위는 임소병의 얼굴에 지대한 호기심을 가졌는데, 바로 그가 자신의 정인 (아마 천년하고도 몇백년 전, 혹은 몇백년 전에 묻혔을) 임소병 (놀랍게도 후에 확인해보니 한자까지 같은 이름이었다)과 굉장히 닮았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 닮았다고 해서 기분 좋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임소병은 기분이 좋진 않았다.

물론 남궁도위와 같은 미남이 전생의 자신의 연인과 당신이 닮았어요- 라고 한다면 오, 그렇다면 이번 생엔 저랑 어떠신가요? 하고 들이댈 사람들이 한 트럭을 넘어갈 것이다. 만약 남궁도위가 산 송장만 아니었더라도 임소병도 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어쨌든, 얼굴에 약했으니까. 특히 남궁도위 같은 과의 얼굴에, 하지만 죽은 사람한테 그런 말을 했다가는 같이 저승에 끌려갈지도 몰랐다... 어렸을 때 병을 크게 앓았던 임소병의 꿈은 무병장수로, 아직 싱싱한 20대 시절에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튼, 임소병이 기분 나쁘건 말건, 남궁도위가 식겁하는 반응을 보이던 임소병을 배려해서 그에게서 떨어지고는, 혼자 집을 돌아다니다 사고를 내던 말던. 아까 임소병의 목표였던 낡은 편지는 여전히 남궁도위의 머리에 매달려 있었다. 방금 관에서 시체에게 팔목을 붙잡히는 놀라운 경험을 한 편이지만. 임소병의 호기심은 아직 불길이 꺼지지 않았는지라. 임소병은 남궁도위를 부르고는 요구했다.

"거기 멀대."

"저 부르신겁니까?"

"고개 좀 숙여보쇼."

남궁도위는 찜찜한 구석이 있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이내 순종적으로 머리를 숙였고. 덕분에 임소병은 193cm짜리 전봇대의 머리를 만져보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머리결이 시체치고는 부드럽군, 엘x스틴 하셨나요? 굿보이. 이게 아닌데. 한참 머리를 쓰다듬다 (남궁도위는 얌전히 있었다.) 뒤늦게 목적을 상기한 임소병은 남궁도위의 머리에서 편지를 떼었다.

남궁도위가 임소병의 품으로 고꾸라진 것은 그때였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임소병의 위에 포개진채로 남궁도위가 넘어지자. 당연하게도 임소병은 그 몸 안에 갇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임소병은 소리질렀다. 

"미친, 아직 저희가 이 정도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전 시체하고 그런 거 하는 취미 없습니다!"

그러나 남궁도위는 그런 망언을 듣고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예 미동하지 않아 진짜 시체처럼 보였다.

아니 그냥 시체다.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방금 죽었어! 그리고 내가 추측하기론,,, 내가 죽인 것 같다. 임소병은 하루아침에 살인자가 되어버렸다. 물론 시체를 죽인 것이니 정말 죽였다고 하기는 애매했지만. 각종 B급 패러디 매체에서 좀비의 인권을 다루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가 구속될 확률도 아예 없다고 하기에는 어려웠으며 게다가 남궁도위는 얼굴이 선량하고 행동도 참했던 좋은 좀비였으니 남궁세가 직계 23대손 남궁도휘 같은 사람이 그를 단죄하러 온대도 임소병은 별로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사실이었다. 

일단 그렇게 쉽게 죽었으니, 살릴 방법도 간단하지 않을까. 편지에 손대니까 살아났었잖아. 임소병은 데구르 굴러서 남궁도위의 품을 빠져나온 채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종류의 좀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재빨리 노트북을 켜서 포털 사이트에서 좀비를 검색해보자. 쉽게 원하는 결과를 찾을 수 있었다. 강시, 전쟁터에서 죽은 시체를 부적을 붙여 움직이게 해. 고국으로 옮겨다 묻어줄 수 있게 만든 요괴이다.

임소병은 생각했다. 만약 이 허접한 것이 부적이고, 그것이 남궁도위의 시체를 움직이게 한 것이라면. 이것을 다시 한번 붙이면 남궁도위는 다시 살아 움직이지 않을까 하고. 뭐 사람 머리에 종이 하나 붙인다고 자기까지 죽는 건 아니었으므로. 임소병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바닥에 엎어져있는 남궁도위의 머리에 구겨진 편지를 살포시 올려놓았다. 그러자 자석처럼 찰싹 머리에 종이가 달라붙더니. 남궁도위가 몸을 일으키고는.

"저도, 아무리 정인을 닮았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하고 그러는 취미 없습니다!"

하고 일갈했다.

남궁도위를 두번째로 죽인 댓가로, 임소병의 집에 남궁도위(시체, 겉만 보면 멀쩡함.)이 얹혀 살기 시작했다. 얹혀 사는 댓가로는 남궁도위를 임소병이 가르쳐서 집안일을 시키기로 하였고. 그의 고풍스러운 옷가지는 세워 둔 관짝에 쳐박아 둔 후, 남궁도위의 의식주 중 의는 번충의 옷을 빌려오는 것으로 (남궁도위는 이제 일주일의 반은 호피무늬 바지를 입고 다녀야만 한다) 해결했다. 나머지 식은 그가 딱히 인간의 음식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보류되었다. 괜히 사람 음식에 맛들였다가 남궁도위가 사람 간이나 뇌를 찾을까 염려했던 임소병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남궁도위는 유능했다, 누구 수발이라도 들어본 경험이 있는진 몰라도 대부분의 행동이 처음엔 어설펐지만 익히기만 하면 곧잘 완벽하게 해냈고. 시킨 적 없는 장보기도 머리에 모자를 쓰고 가는 것으로 처리해. 감쪽같이 해냈다. (너무 건강하고 싱싱한 식재료만 사온 덕분에, 임소병의 가계에 조금 애로사항이 생겨 머리채를 뜯길 뻔한 건 덤이다.) 임소병의 집에는 침대가 하나밖에 없었으나. 전쟁을 하던 때에는 길바닥에서 잔 적도 많았는데, 방바닥은 안락하다며 남궁도위가 생긴 것과 다르게 많이 굴러온 포스를 풍기며 바닥생활을 수용하였기에, 임소병의 침대를 사수하고자 했던 ppt 5장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겉만 보면 평화로운 생활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임소병은 남궁도위의 침범 이후로 안락해진 몸과는 다르게, 남궁도위의 침범 이후로 불편해진 정신 때문에 고통을 호소했다. 남궁도위의 얼굴 때문에 콩콩 뛰는 가슴이 그러했고, 남궁도위의 다정함 때문에 애틋해진 가슴이 그러하였으며. 남궁도위의, 가끔 정인을 그리는 듯이 하늘을 보는 모습이. 임소병을 괴롭게 만들어서... 그러했다. 

임소병은 남궁도위의 정인이라는 임소병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남궁도위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저와 같이 눈물점이 있는. 자신과 똑 닮은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어쩌면 성격도 조금 닮은 듯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임소병은 괜시리 서글퍼졌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목표가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을 죽여가면서까지 임소병은. '임소병'이 되고 싶은 생각까지야 없었으나.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그 임소병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남궁도위도 조금은 제게 맘을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순간도 있었기에 녹림왕이 누군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물어본들, 그와 함께한 시간이 어느덧 달이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남궁도위는 '임소병'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정말정말 사랑하는, 지금도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정인이라는 것을 빼면. 진짜로 아무 정보도 없었다. 그리하여 임소병은 비겁한 수를 쓰기로 한다. 가제: 니가 안 말하면 내가 찾는다 작전. 남궁도위가 아무리 옛날 옛적의 사람일지라도. 녹림왕이라는 호칭과 이름 정도만 있으면 인터넷 사회에서 죽은 사람 하나 찾는건 아무 일도 아니다. 남궁도위에 대한 마음을 제하더라도, 이제는 '임소병'이라는 그 사람 하나가 궁금해진지 오래였기에. 임소병은 겁 없이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녔다.

오래된 블로그의 찌라시같은 정보, 별로 신빙성 있는 정보라고 하긴 어려웠지만, 임소병이 찾아낸 건 그것 하나였다. 그럼에도 임소병은 그것이 매우 신뢰도가 높은, 어쩌면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정보는 입으로 구전되어 내려온 오래된 이야기와 같았다. 옛날 옛적 존재하던 남궁세가의 소가주와,  그 당시의 산적 두목이었던 녹림왕이 연애를 했다는 그런 이야기. 아마 양민들이 그들의 연애를 구경하면서 기록했을 눈꼴시린 연애담은 임소병을 질투하게도, 가슴을 먹먹하게도, 눈물을 흘리게도 하였으며. 남궁도위가 오늘의 장보기를 끝내고 호피무늬 바지를 입고 집에 돌아왔을 때엔. 임소병의 눈은 퉁퉁 부은 채로 눈물이 범벅이었다.

그러나 임소병은, 그 이야기를 남궁도위에게 꺼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 선연한 질투도, 아니면 그것이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는 것도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어째서인지 남궁도위에게 그것을 말하는 순간. 계속 의연해보였던 그가 무너질 것 같아서라는 것이 임소병의 속내였다면 속내라고 할 수 있었다. 임소병을 안고 달래는 남궁도위의 품은 차가웠으며. 그의 뜨끈한 얼굴이 닿은 곳만 마치 인간처럼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어느날 전쟁에서 죽고, 녹림왕은 그 날로 그의 측근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자취를 감추었다고. 그러고 보니, 옷을 빌려주었을 때도, 샤워기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었을때도 임소병은 남궁도위의 몸을 보지 못했었다는걸. 임소병은 문득 깨달았다. 임소병이 남궁도위의 옷을 끌어내리려 하자 남궁도위는 그 행동이 퍽 당황스러울텐데도 불구하고. 다 안다는 듯 손목을 붙잡고 임소병을 만류했다. 

더 이상 임소병은 녹림왕에 대해 묻지 않았으나, 남궁도위에 대해서 물었다. 남궁도위는 그의 말에 정중히 대답해주며 빨래를 개었다. 

더 이상 임소병은 과거의 남궁도위에 대해서 묻지 않았으나, 가끔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남궁도위는 그에 대해서 답하지 않고. 숨겨왔던 녹림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임소병이 나 질투하라고 하는 이야깁니까? 하니 남궁도위는 킥킥거리고 웃었다. 재수없었다.

더 이상 임소병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남궁도위는 침묵했다. 머리에는 여전히 종이가 달린 채였다. 그리고 가끔 남궁도위는 물었다. 합비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겠지요? 임소병이 각종 자료들을 가져다주면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됐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남궁도위는 말했다. 나는 돌아가야만 합니다. 임소병도 아는 이야기였다. 나는, 과 돌아가야만 합니다. 사이에 그에게. 라는 한 단어가. 남궁도위의 배려로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그는 진즉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술이라는 것은 언젠가 효력을 잃기 마련이다. 남궁도위는 달이 지나고, 보름이 더 지나자 행동이 눈에 띄게 굼떠지기 시작했다. 아마 배가 뚫린 탓이겠지. 옷에 가려져 있던 남궁도위의 몸을 본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궁금해하는 임소병에게 남궁도위가 징그럽지 않겠냐 물었다. 그가 괜찮다고 답하자 보여주었던 것이었다. 인터넷 선생님이 알려주기로는, 사람을 살리는 류의 주술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 생각해보면 남궁도위가 이 정도로 멀쩡하게 오래 버틴것은 어쩌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머릿결은 퍼석해지고, 눈에는 이채를 잃어가고 있었지만 아무튼 임소병은 그렇게 생각했다.

임소병은 잔뜩 울었던 그 날, 남궁도위에게 약속했다. 남궁도위를 보내주겠노라고. 무슨 변덕이었는지는 모른다. 밤마다 잠들지 못하는 남궁도위가, 눈물 흘리지 못하는 눈을 뜨고는 슬픔을 흘려보내던 것을 너무 오래 보아서 그럴지도 몰랐다. 그 눈에 담긴 그리움을, 임소병은 감히 헤아릴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달하고 보름간은 신나게 놀았다. 

 남궁도위는 산에 묻어주기로 했다, 사실 합비에 묻어주고 싶었다는 것이 임소병의 마음이었지만. 합비에는 너무 사람이 많았고. 임소병은 땅주인이 되기에는 돈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또한 남궁도위의 의사가 그랬다. 산이 남궁도위에게 있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임소병은 자조하면서도 그러기로 결정했다. 

"내가 죽어도 내 시체는 남아있을텐데, 아쉽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난 시체 취향은 없거든요."

"제가 좋아졌지 않습니까."

"말이나 못하면... 그리고 집이 비좁은 탓에, 관 같은거 계속 두기는 불편하거든요. 시체같은거 뒀다가. 모르는 사람이 보고 신고할 수도 있고..."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로군요."

움직이는 시체와 함께 관을 들고 산에 오른 후, 깊게 구덩이를 파고 (임소병이 15cm 정도를 파고선 지쳤기에, 남궁도위가 알아서 했다.) 그 속에 관을 밀어넣은 후. 남궁도위와 임소병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수려한 얼굴을 마지막으로 맘껏 구경하고는 . 임소병은 관 뚜껑을 덮고, 헉헉거리면서 흙으로 그것을 덮었다. 

"숨 안 막힙니까?"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당연하게도. 임소병이 남궁도위를 세번째로 죽였기 때문이다. 손에는 종이쪼가리가 들려있었다. 임소병은 집에 산을 내려가며, 그것을 읽어내렸다. 

무지막지한 악필이었다, 필체는 임소병이 메모할 때 쓰는 것과 사뭇 비슷했다. 내용은 단순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대, 나에게로 돌아오라.

그 한 문장이었다. 임소병은 그 엉성한 글이 부적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으나. 그 글을 썼을 산적 두목이자, 남궁도위를 매우 사랑하고 그리워했을 그 사람의 염원이 남궁도위를 살려 그에게로 '돌아오게' 했을 것이라는데에는 한치의 이견이 없었다. 아마 그 감정이 담겼기에 이 편지이자, 부적은 아마추어 제작자가 만들었을 텐데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거겠지. 임소병은 대충 짐작해보았다.

임소병은 싸구려 라이터를 켜서, 편지에 불을 붙인다. 주술도, 글자도 불에 불타 쓸려나가고. 살아있는 시체는 영면에 들 것이다. 임소병은 남궁도위는 보지 못했을, 더 높은 산 위에 있던 구덩이를 떠올렸다. 딱 남궁도위의 관만큼의 크기였다.  합비에는 사람이 많아, 산은 적당하지. 비가 오면 땅이 물러져서, 파고 나오기가 좋을 거야. 편지의 주인이, 어쩌면 과거의 제가 바래왔을 것. 잠적한 녹림왕은 그 구덩이의 근처에서 평생을 살아갔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부적이 효력을 너무 늦게 발휘해, 남궁도위는 그 생에 녹림왕을 다시 보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부적은 그 대신 관을 흙에서 솟게 하여, 특급배송으로 아파트 현관 앞에 배달해주었다. 현대 문물을 몰라 미아 좀비가 될 뻔했을 남궁도위에게는 다행이었을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임소병은 머리에 편지를 달고 두발로 콩콩 뛰어 저승길을 건너, 자신의 정인에게로 돌아가는 남궁도위를 생각할 수 있었기에, 산길을 다 내려왔을즈음에는 눈은 부어있어도. 얼굴에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기왕 돌아간거, 행복하십쇼! 하고 행운을 빌어주는 건 덤이었다. 그 다음 산행에서 임소병과 남궁도위가 팠던, 애매한 무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걸 본 후로는. 오, 정말 지독한 사랑이군. 금방 갔구만... 하고 감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임소병은 다시, 한 1년쯤 후에, 땅이 물러지고 비가 많이 오는 가을에 다시 남궁도위를 만나게 된다. 이번에는 단정하고, 오만할 정도로 아름답고, 몸이 썩지도 않고 얼굴이 푸르딩딩하지도 않은, 혈색도 있고, 몸도 따뜻한 남자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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