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유료

Dear My Hero

Dear My Hero

미도리×치아키

소설 / 27850자 / 170107 발행

전연령 / 3000P

유성대의 드림페스는 성황리에 마쳤다. 선배들이 보러 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미리 연락을 해두었지만, 끝내 그들은 오지 않았다. 아이돌이란 애초에 바쁜 게 축복인 직업이다. 우리도 이제 그들의 사정을 이해해주지 못할 어린아이는 아니었으니 아쉬움은 뒤로 하고 드림페스를 잘 마친 데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배의 정리를 돕고 나오려니 벌써 날이 어둑했다. 드림페스가 끝난 지 제법 시간이 지난 탓에 교내의 인적도 드물다. 밤길을 무서워하는 내게 생각이 미친 건지 테토라 군이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평소라면 그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를 물리고 홀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른 멤버를 먼저 보낸 나는 천천히 교정을 둘러보았다. 어둑한 하늘이 역시 혼자 견디기엔 조금 무섭다. 그런데도 혼자 남기를 선택한 것은, 그보다 더욱 끔찍한 감정이 앞서려 했기에. 나는 차라리 공포를 택해야만 했다.

그들과 나는 아무래도 달랐다. 테토라 군이나 시노부 군이라면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해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들처럼 순수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부재에 금방이라도 투정을 부릴 것만 같았다. 커다랗게 부풀린 이 몸 안에는 저 밖에 모르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나는 나의 한심함에 절망해 고개를 떨어트렸다.

“최악이야, 정말.”

탓하는 말은 온전히 나를 향하는 것이었지만, 그러고서도 선배들에 대한 서운함은 지울 수가 없었다. 큰 목소리를 더욱 크게 울려 우리를 응원해주리라 믿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분수대도 미루고 우리를 보러와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공연 내내 그들은 없었다. 무대에 집중하느라 못 본 것이려니 싶어 무대에서 내려 온 후에 다급하게 선배에게 물었다. 물론 내게 돌아온 대답은 나의 실망을 촉진했을 뿐이다. 눈에 띄게 실망한 내 모습에 안절부절못하는 시노부 군과 말 없이 나를 올려다보는 테토라 군에게 아무렇지 않은 행세를 하기 위해 겨우 웃어보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밖으로 토해내지 못하는 감정은 금세 상한다. 나는 상해버린 감정을 팽창하는 껍데기 아래에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감정을 어떻게 처리했던가.

그때에는, 아무렇지 않게 뱉어냈다. 아무렇지 않은 행세를 하지 않았고 그런 행세를 할 필요도 없었다. 쉽게 우울을 말했고 죽음을 원했다.

그걸 전부 부정했던 것이 모리사와 선배였다. 나의 상한 감정들을 전부 웃어 넘기고 없는 일 취급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뱉어내도 괜찮았다. 전부 없는 일이 될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래서는 안되었다. 테토라 군이나 시노부 군은, 그 사람과 달랐다. 그들은 이런 내게도 신경써주고 말 테니까. 이젠 나의 우울을 웃어넘겨줄 사람이 없다.

그게 분했다. 우리를 생각해주었던 것도 결국엔 자기 만족, 졸업한 뒤에는 결국 나몰라라 내팽개칠 것이었으면서 그는 나를 길들였다.

겨우 1년. 짧은 시간이었다. 나는 그에게 길들여졌고 매일 아침 그의 방문을 기대하며 눈을 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기대할 수 없다. 동시에 기대해서도 안 되었다. 졸업한 사람에게 왜 졸업했냐고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애초부터 화를 낼 이유 같은 것은 내게 없었는데도.

“타카미네!”

발치만 내려다 보며 걷고 있으려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퍼뜩 고개를 들고 눈을 부릅떴다. 내가 그 목소리를, 잘못 들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은 교문 근처였다. 하지만 나무의 밤그늘 탓에 그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걸음을 서둘렀다. 인영도 나를 향해 다가왔다. 숨이 벅차올라 이를 앙다물었다. 드디어 그가 밤그늘 아래에서 벗어났다. 그의 윤곽이 선명하다. 겨우 그를 마주한 나는.

“……누구세여.”

그렇게 되묻고 말았다.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챙겨 쓴 마스크에 모자며 선글라스는 아무래도 심한 꼴이다. 그게 제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걸 이해한다고 그와 상종하고 싶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무시에 가까운 외면의 이유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제 가슴팍을 주먹으로 치며 큰소리로 외쳤다.

“나다! 타카미네! 음, 그래! 이름을 대라는 건가! 좋은 마음가짐이다!”

당장 그를 말려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반응이 늦었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사이 그는 익숙한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빨간 불꽃은 정의의 증거! 붉게 타오르는…….”

“으아아아! 그만, 그만해요!”

그렇게 이름을 댈 것이었다면 이 이상한 분장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 그의 말을 겨우 끊은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 그는 선글라스 너머로 씩 웃어 보이며 덧붙였다.

“뭐, 이제 유성 레드는 아니지만 말이다!”

굳이 그런 말을 한다.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데 말이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더 이상 유메노사키의 학생이 아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이렇게 조우하니 어째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그가 여전히 유성대의 멤버였다면 유메노사키의 학생이었다면 이런 우스운 꼴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

나는 무심코 손을 뻗었고 선배는 어째 가만히 있었다. 그에 의문을 느낄 새도 없 이 내 손은 선배의 귀둘레를 더듬어 마스크의 끈을 제했다. 의지할 곳을 잃은 마스크는 팔랑거리며 떨어지다, 반대편 귀에 위태롭게 매달렸다. 그는 그제야 허둥대며 마스크의 끈을 붙잡아 올렸다.

“무, 무슨 짓이냐! 타카미네!”

“선배 지금 완전 이상한 사람 같거든여. 상가 사람들이라도 보는 날엔…… 으으, 생각만 해도 죽고 싶어…….”

내 말에 그는 선글라스가 무색할 정도로 과장스럽게 울상을 지었다.

“크으읏,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는 이런 꼴도 불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 모습이 이상하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그의 마스크를 온전히 제하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당신 일요일 아침 특촬이잖아여. 아이들은 가면만 기억하지 맨 얼굴 잘 기억 못하고. 차라리 맨 얼굴로 있는 게 더 눈에 띄지 않을 거라구요.”

“음, 그런가! 타카미네는 영리하군!”

곧바로 설득되어서는 그런 소리를 한다. 겨우 이런 일로 칭찬받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겨우 이런 일로도 칭찬해주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다. 이제 스스로 선글라스를 벗는 선배를 지켜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모리사와 선배 정도예요.”

“하하, 다들 칭찬에 인색하니 말이다.” 

“선배 칭찬이 헤프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여?”

마지막으로 모자까지 벗은 모리사와 선배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도 붉은 기가 짙게 도는 머리채는 졸업 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 나는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음? 이제 타카미네가 벗겨줄 건 없다만?”

“아…….”

나는 희미하게 신음했다. 그러고도 손을 무르는 대신 그의 단정한 앞머리에 손을 대었다. 앞머리 아래의 커다란 눈이 놀란 모양으로 동그랗게 된다. 변명을 생각해야 했다. 당장 죽고 싶다. 지금 죽으면 변명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데…….

“……앞머리가.”

끝내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당연하지만 그의 앞머리는 어떻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혼자서 무언가를 납득해준 모양이다. 내가 좀 더 손을 뻗어 그에게 닿아도 그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눈썹 아래로 살랑이는 머리채에 눈을 꾹 감는 모양이 손길을 견디는 강아지 같다. 물론 이 선배는 그런 작고 귀여운 생물이 아니지만. 내가 손을 떼자 곧장 그의 인사가 따라붙는다.

“고맙다!”

“그, 아니에여…….”

“밤이 늦었으니 데려다 주도록 하지!”

약간 맥락이 없다. 영문을 찾지 못한 나는 먼저 걸음을 떼는 그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다 조금 느리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는데여.”

“타카미네는 밤길을 무서워하지 않나.”

“그야 그렇지만…….”

승낙할 이유도 거절할 이유도 찾지 못한 내가 머뭇거리며 그의 걸음을 따르자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흘끗 바라보았다.

“세 녀석 모두 걸음을 떼지 못하고 널 걱정했다고? 내가 널 데려다 주겠다고 설득해서야 겨우 돌려보냈지.”

그 말에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되었다. 테토라 군이나 시노부 군과 엇갈렸기에 그가 나와 만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신카이 선배도 우리를 잊어버리거나 귀찮게 여겨서 오지 않았던 게 아니다.

두 사람은 찾아와줬고 결코 엇갈리지 않았다. 내가 멍청하게 굴지만 않았으면 모두와 만날 수 있었다. 함께 웃으며 돌아갈 수 있었다.

“뭐, 나도 사랑스러운 후배를 밤중에 홀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맥락이 없던 권유는 처음부터 이 융통성 없는 남자가 나를 위해 준비했던 것이었을 테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째 얼굴이 모조리 근지럽다. 참을 수 없어 입가를 감싸쥐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더 감동에 젖어 있고 싶었건만, 이 눈치 없는 사내는 이야기를 잇기에 급급했다.

“오늘의 무대가 마음에 차지 않았던 거냐?”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러면?”

나는 그를 흘끗 쳐다보았다, 이내 나를 빤히 바라보는 두 눈과 시선이 마주쳐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내 옆을 걷고 있었다. 여지껏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나지막이 투덜대었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선배가 없었으니까, 같은 대답, 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는데, 해버렸다. 선배가 나를 바라보며 반사에 가깝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조금 당황한 표정을 했다.

아.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 말은 이렇게 둔하고 무신경한 사람마저도 당황시킬 말이었구나. 안 된다. 우울하다. 당장 죽고 싶다. 나의 우울이 치닫기 시작한 순간 선배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타카미네! 말솜씨가 굉장해졌구나!”

진지하게 대응해오면 정말 혀라도 깨물 생각이었지만 그는 다행이도 빈 소리로 넘기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 말엔 어째 대답할 기운이 나지 않아 나는 말 없이 걸음만 더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으면 선배도 말이 없었다. 평소에는 혼자서도 잘 떠드는 사람인데.

그런 생각을 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의 평소를 상정하기엔 함께 지낸 시간이 너무 멀었다. 최근의 그는 조금 덜 수다스럽고 보다 온순해졌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내 생각이 무섭게 선배가 나를 불렀다. 

“타카미네.”

“뭐예여.”

“음, 타카미네. 네가 졸업하면…….”

그 답지 않은 망설임이 섞인다. 그를 바라보자 흠칫 시선을 피한다. 문득 짚이는 구석이 있어 입을 열었다. 나는 아무래도 기다리는 것이 서툴렀다.

“함께 특촬을 찍자고 하려는 건 아니죠?”

“후하하하!”

나의 물음에 그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너무 앞서 간 것일까. 그제야 생각이 미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 사내라면 그런 말을 할 법도 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내 착각에 지나지 않았고, 지금은 그저 당장 죽고 싶다.

달아오른 얼굴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그의 눈치를 보면 모리사와 선배 역시 어색하게 눈을 굴리며 제 턱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 또한 무얼 민망해하는 기색에 가깝다.

그건 또 의외의 반응이다. 나는 입을 벌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나보다도 더욱 허둥대는 모습은 외려 나를 침착하게 만든다. 그 사이 죽고 싶은 심정도 조금 사그라들었다. 어쩔 줄 몰라하던 그가 이내 결심한 양 한숨 섞인 웃음을 토했다.

“하하, 들켜버렸구나……. 타카미네는 정말 눈치가 빨라.”

내가 맞았다.

“물론 타카미네는 잘생겼고 키도 크고 목소리도 좋고 조금 소극적이라 그렇지 춤도 나쁘지 않아. 졸업하고 나면 특촬 외에도 타카미네를 원하는 곳이 많을 거다.”

변명처럼 튀어나오는 부담스러운 칭찬에는 어째 내가 말려들어가는 기분마저 들었다. 필사적으로 헤어나온 다음에야 겨우 질린 얼굴을 하고 그를 바라보면, 아무래도 농담조의 얼굴은 아니다. 애초에 언제나 이상할 정도로 진면목인 사람이니까 농담을 할 리도 없다. 하지만 어째서였을까. 익숙할 터인 웃는 얼굴이 어딘가 어색하다.

“……미안하다. 방금 건 내 욕심이었다.”

그건 너무나도 덤덤한 목소리였다. 그 말 한 마디에 시야가 무너져내리는 듯 했다. 정말 뭘 사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서둘러 부정했다.

“그런…… 그럴 리 없잖아여…….”

억지로 짜낸 목소리가 밤공기를 헤치고 희미하게 울렸다. 내 말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그런가! 이제 춤도 적극적으로 추는 건가! 좋은 일이다!”

큰 소리로 소리치며 내 등을 두들기기에 나는 몸을 숙이고 그의 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좋게 생각하는 데에도 정도가 있어야지 이건 심하다. 겨우 그를 떨어트린 나는 고개를 젓고 투덜대었다.

“으, 선배는 바보임까……. 아냐, 선배를 의심하면 안 되지. 선배는 바보예여.”

그런 무례한 소리를 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씩 웃기만 하고 말았다.

“나를 원하는 곳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여. 선배도 너무 듣기 좋은 말만 하니까 못 믿겠어.”

“사탕발림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만.” 

“나도 알아여.”

그렇기에 더욱 질이 나쁘다. 그 말은 억지로 삼켰다. 이 남자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정도는 알았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무심코 작년의 봄을 떠올린다. 실수로 아이돌과에 들어와 우울해하던 나를 이 사람은 어떻게 했던가. 나를 이끌어 주었다. 아껴주었다. 칭찬해주었다. 그렇게 그가 없이는 제 구실을 할 수 없도록 길들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하지만 역시, 선배와 함께 하는 건 싫어요.”

물론 그런 말은 심술에 지나지 않았다. 선배는 어떤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놀라거나 상처받은 표정을 하고 있을까. 어떤 표정을 상상하든 마음이 무겁다. 어쩌면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마주할 수가 없어, 외면한 채로 계속 말을 이었다.

“선배가 더 이상 나를 길들이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요.”

“으음.”

그는 내 말을 듣고 있다는 제스처를 가볍게 취했을 뿐 나의 말을 자르지는 않았다. 그 침착한 반응이 오히려 나를 화나게 했다. 나는 높아지려는 언성을 억눌러가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다듬어지지 않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1년 간 당신은 매일 아침 찾아와 나를 아침 연습으로 이끌고 유성대 같은 강호 유닛의 멤버로 만들었어여. 처음엔 귀찮을 뿐이었지만 금세 길들여졌죠. 강호 유닛의 이름과 선배의 도움이란 건, 이 유메노사키에서는 확실히 특권이었으니까.”

소위 약소 유닛으로 묶이는 친구들을 보며 알았다. 유메노사키에는 여전히 특권이랄 것이 존재한다. 1학년끼리 만든 약소 유닛으로는 일을 따내는 것조차 어려울 때도 많은 모양이다.

물론 그건 전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실수로 아이돌과의 입시를 보고 우연히 모리사와 선배의 눈에 들어 유성대에 소속됐다. 그게 기점이 되었다. 분명 나보다 더욱 노력하던 녀석들이었는데, 모든 것이 귀찮고 지루하고 우울할 뿐인 내가 앞서기 시작했다. 그 무엇도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강호 유닛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실력 좋은 선배들이 이끌어주었기 때문에. 그걸 특권이라 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특권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1년이 지나고 당신이 졸업한 뒤에 홀로 남겨진 나는…….”

아침에는 오히려 일어나지 못했다. 못했다기 보다는 않았다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릴는지 모르겠다. 눈을 떴다가도 힘주어 다시 감아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는데 그건 이제는 나를 깨우러 오지 않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깨우러 올 수 없는 선배에 대한 반항과 아주 유사했다.

그러면서도 일요일 아침만은 꼬박꼬박 눈을 떠 선배가 나오는 특촬을 틀었다.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건 TV에 비치는 선배에 대한 원망을 키우기에 아주 좋았다. 나는 몸을 웅크린 채 화면 속의 선배를 바라보곤 했다.

선배는 여전히 잘하고 있었다. 어딘가 엉성해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실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굴릴 줄도 알았고 노력할 줄도 알았다. 나와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아주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 보다 못한 테토라 군이나 이제는 3학년이 된 선배들이 도와주고 격려해주곤 했다. 나는 하나도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구제불능이야…….”

그건 온전히 나의 문제였다. 그런데도 나는 나를 향해야 할 화살촉을 비틀어 모리사와 선배에게 향했다.

“졸업 후에도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아여. 당신은 또, 날 길들이고 내가 익숙해질 즈음엔 떠나버릴 테니까.”

“으음…….”

그가 희미하게 신음했다. 그는 내가 나아질 것이리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나는 이 사람의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를 저버리고 싶었다. 나는 사람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을 좋아했다. 기대를 배신하면 편해질 수 있다. 이번에도 나는 기대를 배신하게 될 것이다. 편해 질 것이다. 그러면 이 사람 좋은 선배마저도 이 한심한 내게는 무엇도 기대하지 못하게 되겠지.

“그렇군. 타카미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몇 번이고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시키면 나중에는 기대하지 않게 되니까. 편해질 수 있으니까. 그것은 일종의 자살이었다. 나는 겁이 많아서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린다든지 철로에 뛰어든다든지 하는 것은 할 수 없으니까 그 대신 상대의 마음 속에서 자살을 준비한다.

그 마음에 내 자리를 두지 말아요. 얼른 나를 절벽 아래로 떨어트려요. 더 이상 기대하지 말아요. 나는 편해질 거예요.

나는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군!”

그래서 언젠가는 그 모리사와 치아키마저도 이 구제불능의 나에게 질색하고 떠 나가길 바랐지만.

“하지만 네가 구제불능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이 사람은 학습이 안 되는 사람이다. 몇 번이고 나를 살리고 나를 믿어주었다. 그래서 나도 어느 순간엔 착각하고 말았다. 어쩌면 나도 잘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선배 말대로 나 역시 빛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한 적이 있었다.

“너는 한 번도 빛나지 않았던 적이 없으니까.”

“하아, 네…….”

“반응이 그게 뭐냐, 타카미네! 좀 더 솔직해져도 된다! 우리 사이가 아니냐!”

“에, 일단 우리 사이가 뭔지도 모르겠고……. 뭣보다 이게 저의 가장 솔직한 반응인데여…….”

나는 대충 대답하고 걸음을 서둘렀다. 그렇게 말하는 모리사와 선배야말로 나에게는 빛나는 존재였다. 마치 태양처럼 눈부신 사람이었다. 내가 만약 빛났다고 한다면 그건 내가, 이를테면 달 같은 존재였기 때문일 테다. 모리사와 선배의 빛을 받은 다음에야 드디어 빛날 수 있는, 하지만 홀로는 결코 빛날 수 없는. 뭐, 모리사와 선배는 나를 시노부 군이나 테토라 군 같은 항성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역시 아쉽기는 하구나.”

그런 소리를 하기에 나는 그를 흘끗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눈치 챈 것인지 그가 제 뺨을 긁적이고 말을 이었다.

“타카미네와 또 다시 함께 할 수 있을까 조금 기대했거든.”

어째 그의 얼굴이 눈에 잘 들지 않았다. 그의 한 마디 말로 눈 앞이 까마득해진 탓이었다. 이 사람은 나를 결코 죽이지 않는다. 무엇으로도 부서지지 않는 절대적인 기대는 너무도 무겁고, 지겨워서.

나는 무심코 그를 죽이는 상상을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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