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강하유
팬픽을 보면 그런 장면 흔하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어느 날, 집 앞에 쓰러져 있던가 갈 곳 없이 오도카니 앉아 비를 맞고 있는 잘생긴 남자를 줍게 된다던가. 우산을 씌워 주면서, 왜 이런 곳에서 비를 맞고 계세요 하고 말을 건네며 시작되는 로맨스라던가. 여러 번 P지부에서 (뭐 또는 상업작에서도) 읽었지만 직접 겪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해본 장면이었다
하나. 교차.
내가 울건 말건, 이 세계가 종이와 2차원으로 바뀌어버리건 말건, 박제된 페이지 속에 남을까 두려워하건 말건, 이 세계가 펜선과 잉크로 직조되었건 말건 시간은 흐르고 지구는 돈다. (근데 그 만화가가 돌아가는 지구와 우주도 만화에 그렸을까? 그리지 않았다면 그 세계 밖의 부분들은 여기서도 실존할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세계가 순식간에 뒤집어지지 않는
저 너머로 저무는 해가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서글픔보다는 후련함을. 분함보다는 즐거움을. 눈물보다는 땀방울을 담아서. 도쿄 체육관 너머로는 느릿느릿 땅거미가 드리워진다. 그해의 나는 그런 것들이 아주 좋았다. 코트 위로 박차는 배구화 소리, 이쪽을 돌아보며 환하게 웃는 얼굴들. 다음에 또 보자, 하고 흔드는 손. 그래서 새삼스럽게 생각하고야 말았던
제비꽃 설탕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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