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마카] Aftermoon

커미션 작업물

크로나는 어디도 외출하려 하지 않았다. 마카가 인적이 드문 밤에 단 둘이 하는 산책을 제안해도 마찬가지였다. 크로나가 본래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정이 아니었으므로 그것 자체는 걱정할 게 되지 않았다. 마카가 걱정한 건, 크로나가 두 발로 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신의 상태를 불안정하다고 느끼는 점이었다. 그또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최후의 월면 전쟁이 있기 전까지, 새까만 달 안에서 크로나는 철저하게 혼자였고 그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지 마카가 알 방법이 없었으니까.

마카가 시무룩해지는 지점도, 마음에 들어할 수 없는 것도, 미안해지는 지점도 전부 그거였다. 크로나를 너무 오래 혼자 뒀다. 달에 닿기 위한 준비가 생각보다 더 오래 걸렸다.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크로나에게 그게 의미 있어지는 게 아니란 걸 마카는 잘 알았다. 크로나에게 말하면 크로나는 “미안하다”며 할 게 뻔했고, 마카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으므로 크로나에게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영혼의 공명이라도 되면 좋을 텐데, 크로나를 귀신으로부터 구출해내고, 그것을 토벌해 이전 사신님이 그랬듯 옛 지배자가 아닌 철저한 관념의 형태로 돌려놓은 이래로 마카는 크로나와의 공명을 좀체 할 수 없었다. 이유가 짐작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에 괴로워하지 않기도 불가능했다.

소울에게 이 건을 의논하자 그의 오랜 파트너는 선뜻 이렇게 말했다. “내가 비켜줄게.” 그거면 충분했다. 가타부타 자세한 설명도, 속앓이에 대한 터놓음도, 말하기 어려운 것을 형상화하는 일도 필요하지 않은, 익숙하고 편안한 대화. 마카는 소울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 “응, 알겠어.”라고 대답했다. 그들 사이에는 고마워하거나 미안해할 게 별로 없었고 그들 둘 다 그렇게 생각했다. 고양이는 마카와 떨어져 지내는 걸 몹시 아쉬워했지만 세찬 포옹으로 그의 결심을 응원해 줬다.

 

우리 집으로 오라고, 소울은 데스사이즈로서 할 일이 있어 오랫동안 집을 비운다고 말하자 크로나는 흔들리는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대조적일 정도로 조그만 목소리로 아주 희미하게 대답했다. 목소리는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았고, 그렇게 길지도 않았지만 마카는 어쩐지 크로나가 ‘너랑 있고 싶어’라고 말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로서는 도리어 고마운 일이었다. 마카야말로 크로나를 다른 어딘가에 머무르게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러는게 옳지도 않다 생각했지만, 그와 별개로 크로나가 자신과 거리를 두고싶어 한다면 존중해 주지 않기 힘들었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이 오래간 생활한 집이 괜찮을까 싶었으나 다행히 크로나는 그 점은 개의치 않은 듯했다. 정확하게는 타인의 흔적이라던가 생활감 같은 걸 인식하지 못하는 쪽에 가까웠지만. 인기척에만큼은 그 누구보다 예민했으므로 마카가 손님방에서 쑥 고개를 내밀며 방 정리가 다 됐다고 말한다거나,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는 일을 못 견뎌해 멀리 가달라고 하기는 했으나 그게 다였다. 크로나는 자주 가구에 부딪혔고, 카펫의 존재를 의아해했으며, 공복과 식사 행위, 포만감을 어색해하고 불편해했다. 때문에 크로나와 단 둘이 지내게 된 뒤로 사나흘이 흐른 뒤, 마카는 대대적인 집 정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불필요한 가구는 전부 처분했으며, 빠질 수 없는 집기들의 모서리는 전부 라운드 처리를 요청했다. 이 결심은 어떤 결심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마카는 소울이라면 틀림없이 이해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 둘 다 성인이었고, 마카에겐 익숙한 것을 떠나 새로운 것을 맞이할 용기가 충분했다.

 

사전에 고용된 사람들에게 매뉴얼을 철저하게 제공했으므로, 바꾸지 않기로 한 마카 본인의 방에서 낯선 사람들이 드나드는 소리와, 가구들이 뒤집어지는 소리를 듣는 내내 크로나는 마카의 침대 한구석에 숨어 이불을 덮어쓴 채로 오들오들 떨었으나 그런 크로나 하나에게만 집중하면 되는 마카에게 크로나를 달래는 일쯤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이건 기회나 다름없었다. 자기가 여기 온 바람에 바깥에서 저런 소리가 나는 거냐고 두려움에 가득찬 질문을 하는 크로나의 손을 흔들림 없이 꽉 잡은 채로, 마카는 말했다.

 

“아니. 지금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 중 크로나 탓은 하나도 없어. 만약 있다면 그건 이 안에서 벌어지는 일 정도일걸. 예를 들면, 크로나가 갑자기 내 방 창문을 부순다던지 말야.”

“그, 그런 일은 없어…….”

“응, 그렇지?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물론 내 방 창문을 부수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그래도 되고.”

“아, 안 하고싶어……. 마카의…… 방이잖아. 그, 그런 일보다는…….”

 

일보다는? 뜻밖의 말이 이어지자 마카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고, 한참을 우물쭈물하는 크로나를 끈기 있게 기다렸다. 자신을 쳐다보는 마카를 곁눈질로 훔쳐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가, 도리질을 했다가, 다시 마카의 눈치를 본 크로나는 마카가 절대로 듣고 싶다는 표정을 물리지 않자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 마카가, 왜 저 손수건을 책 위에 뒀는지, 알고 싶어……. ……물론알려주고싶지않으면미안해내가잘못했으니까죄송합니다죄송합니…….”

 

그건, 정말로 정말로 뜻밖의 말이라, 마카는 한참 동안 크로나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앗차, 이러고 있으면 크로나가 또 불안해 할 거야, 라는 생각이 들자 마자 잡았던 크로나의 손을 더욱 세차게 쥐고는 말했다. “그렇지 않아!”

외침에 가까운 소리에, 이번에는 크로나가 축 처진 눈썹 아래로 눈을 크게 떴다.

 

“얼마든지 말해줄게. 또 궁금한 건 없었어, 크로나? 지금 떠오르는 것들은? 물론, 떠오르지 않으면 물어보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나는 기뻐. 그리고 크로나가 말해줬으면 좋겠어. 어떤 것들을 생각하는지, 어떤 것들이 궁금한지, 지금 어떤 기분인지…. 크로나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

 

단호하면서도 강인한 목소리. 그것이 한 마디 한 마디 다정함을 담고 울리자, 크로나는 문득 마카에게 대답하고 싶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달에서, 공포 안에서 듣고 싶고 궁금해 했던 게 있었음을…….

그러나 그 말을 꺼내기까지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고, 마카와 달리 크로나에게는 아직 그만한 용기가 없었기에, 그는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작게.

지금은 네가 아주 오랫동안 쓴 것 같은 물건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한바탕 뒤집어진 집안으로 한사코 발을 들이지 않으려는 크로나를 끈기 있게 달랜 끝에, 마카는 야심차게 계획하고 준비한 거실과 ‘크로나의 방’을 크로나에게 선보여줄 수 있었고, 굉장히 많은 것들이 달라졌으나 구체적으로 왜 그렇게 달라졌으며 그 달라짐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체감하지 못하던 크로나는, 만 하루가 꼬박 지난 뒤에야 마카에게 말할 수 있었다.

 

“마카, 나…… 이제 집을 돌아다녀도 어디가 갑자기 아프지 않아……! 시, 식탁도, 쇼파도…… 눈을 질끈 감았는데, 아, 아무 일도 없었어……!”

 

마카는, 물론 그 말에 대단히 기뻐했다.

 

“크로나가 어디든 편히 돌아다니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어. 보람이 있네!”

 

크로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또렷이 아는 듯했다. 마카를 제하곤 누구도 자신을 위해준 적 없었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주기를 바란 지는 아주 오래 되었으니까.

 

그가 그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건 더 많은 시간이 지난 어느 밤이었다. 크로나가 집의 구조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또 편안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판단될 즈음, 마카는 한 구석에 모두 몰아두었던 소울의 LP 컬렉션이 담긴 상자를 크로나와 함께 거실로 내왔다. 소울이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은 인테리어를 엎었을 적 이미 다른 곳으로 보내두었고, 남아 있는 것들은 마카도 꽤 좋아하는 앨범들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것들을 처분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그는 이걸로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생전 처음으로 LP판을 손에 집어들고, 판 위에 올려놓은 뒤, 마카와 함께 바늘을 조심스레 위에 얹는 크로나의 표정에는 압도적인 긴장만 있지 않았다. 음악이 흘러나올 즈음에야 크로나는 그런 자신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양 어깨를 움츠렸다. 음악이 흘러나오기 전까지.

 

천천히, 마카와 함께 놓은 바늘이 레코드판의 검은 색으로부터 선율을 읽어냈다. 그것이 소음이 아니라 어떠한 곡조임을 크로나가 알아챌 수 있던 건, 의심의 여지 없이 마카 덕분이었다.

 

“♪, ♬ ♪……. 아, 크로나, 봐. 여기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간이야.”

 

흘러나오는 소리에 맞춰 마카가 자연스럽게 멜로디를 흥얼거렸기 때문이다.

반응이 없는 동거인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즐거움을 나즈막히 표현하는 마카를 보며, 크로나는 문득 이 느낌을 어디에선가 받은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였을까?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실 그는 달이라고 불리는 암흑에서 벗어난 이래로, 그 이전의 기억들을 올바르게 정립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마카에 관한 것도, 마검에 관한 것도, 귀신에 관한 것도, 메두사에 관한 것도…. 모든 것들이 아주 멀리 있었고 모든 것들이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없는 듯했다.

마치 그림자 없는 사람을 보는 기분이야. 그런데 그림자라는 게 뭐였더라? 달 속에서 자신을 보며 한 생각이었다.

 

“…… 라고 작곡가가 인터뷰에서 그러더라. …크로나? 크로나. 내 말 듣고 있어?”

 

퍼뜩, 크로나는 상념에서 깨어났고 마카는 의아하단 듯 크로나를 보며 눈을 꿈뻑거렸다. “왜? 노래가 별로였어? 다른 거 틀까?”

크로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았으니까. 음악은, 지금 들리는 이 소리는, 굳이 따지자면 ‘싫음’에서 매우 멀었다. ‘싫지 않음’과 무척 가까울 정도였다. 그렇게 말하자 마카는 기쁜 듯 웃었다. “다행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거든. 달에서 크로나에게 손을 뻗을 때도 생각했어. 이 곡처럼 나도 내 소중한 사람에게 닿았으면 좋겠다고.”

 

쿵, 하고 마카의 그 말이 메아리처럼, 바위처럼 울렸다. 명쾌한 답이 거기에 있었다. “아.” 크로나는 바보처럼 입을 벌려 소리 하나를 뱉었고, 마카는 다시 응? 하고 크로나를 바라봤다. 그가 다시 무언가를 물어왔으나, 크로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느낀 기시감의 원인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건 아마도 마카가 수많은 레코드판 사이에서 자신과 함께 처음으로 듣는다면 이 곡이 좋겠다고 한 이유와 같을 것이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자신은 없었지만, 틀림 없다는 확신이 크로나의 안에서 들었다.

지상이라고 불리는 공간을 딛은 뒤 처음으로 느끼는 확신이었다.

 

“마, 마카.”

“응? 크로나.”

“나,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응. 뭔데?”

 

무엇이냐는 물음에 어째서인지 답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는 설명할 방법을 몰라 다른 수단을 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언젠가 사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틀림없이 자신의 탓일 거라 확신했던 때 상대가 자신에게 그래주었던 것처럼, 마카의 손을 있는 힘껏 쥐고 마카에게 다가갔다. 왜소한 어깨가 그렇지 않은 어깨와 닿을 때까지, 자신의 입술이 마카의 어딘가에 닿을 때까지.

 

그리고 어? 하는 표정을 지은 소중한 사람을 보며 이야기했다.

 

“여, 여, 여기는…… 마카의 방이 아니니…… 이, 이, 이건, 내 탓이 되는 거야? 마카.”

 

그건 ‘그렇다’는 대답을 바라는 질문이었다. 한 번도 사고뭉치가 되고 싶은 적은 없었는데도. 아마 착한 아이가 아니어도 너를 떠나거나 버리는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을, 수많은 시간에 걸쳐 상대가 주었기 때문이겠지만, 크로나는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마카의 눈부신 미소에 넋을 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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