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에이] 두 번째 생일

2020 우츠키 치카게 생일 축하 연성

2019년 생일 연성과 이어집니다. 안 읽어도 상관은 없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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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아침이야.”

“…으응……,”

저를 깨우는 목소리에 에이프릴이 눈을 떠보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익숙한 ‘가족’의 얼굴. 조직의 훈련을 어느 정도 끝낸 덕에 시간에 여유가 생기고부터는 아침에 일어나서 이 녀석을 깨우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일과였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저보다 먼저 일어난 그의 모습이 낯설어 힐긋 시계를 보면 시곗바늘은 평소 제가 일어나던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 임무가 있었던가? 아니면 아침 시장이 열리는 날이었던가. 생각을 더듬어보았지만, 아무래도 평소와 다른 상황이 된 이유를 쉬이 떠올려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잠깐 고민하는 사이, 순간 코끝에 익숙한 탄내가 스침과 동시에 어거스트가 허둥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스튜……! 불 끄는 걸 깜빡했나 봐! 자, 잠깐, 다녀올 테니까 에이프릴은 편하게 있어……!”

이 상황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을 리가 있나. 에이프릴은 한숨을 푹 내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그의 뒤를 따라 주방으로 향했다. 발을 옮길수록 진해지는 스튜 냄새와, 그것의 탄 내. …뭐, 평소보단 덜 탄 것 같지만. 언제쯤이면 태우지 않고 음식을 만들 수 있을는지. 허둥대며 불을 끄고 냄비 속을 확인하는 뒷모습에 에이프릴은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웬일이야? 네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까지 하고.”

“응? 그야, 오늘 에이프릴 생일이잖아. 오늘 정도는 에이프릴이 나한테 해준 것들, 내가 해주고 싶어서.”

“…아.”

내쉬던 한숨이 들려오는 답변에 멈췄다. 생일. 이제껏 신경 쓰지 않고 지내온 나날이 더 길었기에 완전히 잊고 있었다. 처음으로 자신도 생일을 축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이 바로 작년. ‘다음에 있을 생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들떠있었던 것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정작 그 생일이 오늘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을 줄은.

“아하하. 멍하게 있지 말고, 씻고 와. 아침밥 차려둘게.”

“…응.”

어거스트가 제 생일을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즐거워졌다. 그 결과가 탄 스튜라는 것은 유감이지만. 이미 탄 요리에 익숙해지고 만 에이프릴은 그것마저도 오늘은 기분 좋게 느껴졌다.

가볍게 샤워를 끝내고 부엌으로 돌아가면, 이미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부터 탄 스튜를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평소보다는 심하지 않은 것 같으니 괜찮겠지.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에이프릴이 자리에 앉아 이제는 익숙해진 말을 입에 올리면 식사가 시작됐다. 조금이라고는 해도 역시 타기는 탄 것인지 은근히 쓴맛이 감도는 스튜 위에 스파이스를 잔뜩 뿌리면 탄 맛도 스파이스의 향미를 더해줘 기분 좋게 입안에서 어우러졌다. 물론 타지 않은 상태가 제일 맛있겠지만. 제 생일이라고 기껏 만들어준 요리인 만큼 에이프릴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입에 올리지 않고 묵묵히 스튜를 입으로 옮겼다.

아마, 식사를 마치면 작년 어거스트의 생일 때처럼 케이크를 만들겠지. 그날은 어거스트가 빵을 잔뜩 태워버려 결국 케이크 시트를 사 만드는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어거스트에게 오븐을 넘겨주지 않을 셈이었다. 케이크같이 단 음식은 좋아하지 않으니 태워버리면 먹지 않아도 될 테지만, 앞으로도 같이 만들기로. 약속했으니까.

식사를 끝마치고 그릇을 정리하면, 어거스트는 예상대로 어느새 케이크 재료들을 테이블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설거지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생각하다, 탄 채소가 눌어붙은 냄비 바닥을 힐긋 보고는 생각을 접었다. 저걸 처리하려면 또 시간이 한참 소요될 게 분명했다.

“설거지는 내가 나중에 할 테니까. 이리 와.”

어거스트도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에이프릴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거스트의 옆으로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는 케이크 재료가 잔뜩 줄지어 선 상태.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병에 담긴 초록빛의 가루. 파슬리, 인가? 케이크에? 의문을 담은 표정으로 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거스트가 씩 웃으며 병을 들어 보였다.

“녹차 가루. 이거라면 에이프릴도, 나도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녹차?”

“응, 오늘 만들 건 녹차 케이크.”

흐응. 작게 감탄사를 흘리며 병에서 시선을 뗐다. 작년의 에이프릴의 생일에는 급하게 준비한 탓에 단맛과 매운맛이 혼재된 말도 안 되는 케이크를 만들었더랬지. 녹차라면 전에 어거스트가 타준 적이 있었다. 그걸 쓴 케이크인가. 나쁘지 않을지도.

 

“다 됐다!”

“…하아.”

테이블 위에 자리 잡은 것은 녹색의 케이크. 확실히, 작년 에이프릴의 생일이나 어거스트의 생일 때보다는 먹을만하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뭐, 거의 에이프릴의 솜씨였지만, 누가 얼마나 만들었느니 따지는 게 중요한가. 같이 만들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에이프릴은 만족스러웠다.

“자, 에이프릴. 앉아, 앉아.”

어거스트가 케이크에 초를 꽂으며 에이프릴에게 손짓했다. 어거스트가 손짓하는 대로 자리에 앉으면, 꽂은 초에 불을 붙인 어거스트가 엉망진창인 음정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랫소리에 그제야, 지금 생애 두 번째로 ‘가족’에게 생일을 축하받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이런 엉망인 노래마저 기분 좋게 들릴 줄은. 누군가에게 생일을 축하받는다는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제 눈앞에 있는 가족의 미소를 보는 것이 즐거웠다.

원래의 음을 완전히 잊어버릴 것만 같은 엉망인 노래가 끝나면, 에이프릴이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고 촛불을 껐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로 언제 준비한 것인지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꽃가루를 치우는 에이프릴의 얼굴에는, 평소보다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생일 축하해, 에이프릴.”

“…응.”

부드러운 미소는, 이내 새침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직은, 저에게 온전히 쏟아지는 따뜻함이라는 것이 익숙해지지 않은 모양. 어거스트는 그런 에이프릴의 모습에, 푸스스 웃으며 말을 건넸다.

“올해는, 무슨 소원이야?”

“어거스트가 음식을 덜 태우게 해 달라고.”

“읏……, 꽤 괜찮아지지 않았어?”

“전혀.”

어거스트의 투정에 에이프릴은 고개를 저으며 케이크에 꽂힌 초를 정리했다. 사실은, 그런 바보 같은 소원을 빈 게 아니었지만.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어쩐지 어거스트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에이프릴이 빈 소원은, 이런 따뜻한 나날이 계속되기를. ‘조직’에 속해있는 이상 불가능한 소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날만큼은, 꿈을 꾸고 싶었다.

…어거스트에게 바보가 옮은 기분이네. 생각하며 케이크를 자르는 에이프릴의 얼굴에는 어느새 다시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미소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거스트는, 품에서 작은 선물 상자를 하나 꺼내 에이프릴에게 건넸다.

“에이프릴, 여기. 선물.”

“선물?”

생일에 선물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생일을 축하받은 것도 작년이 처음이었으니, 생일에 대한 추억 자체가 얕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상자를 받아들었지만, 속으로는 기뻐하고 있을 터.

제 손에 들린 상자를 잠깐 바라보던 에이프릴은, 떨리는 손을 모른 체하며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피어싱?”

“작년에, 줄라이 생일 선물 보고 부러워했잖아.”

“무슨, 전혀……!”

작년, 줄라이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던 어거스트에게 볼멘소리로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녀석이건만, 괜히 툴툴대었더랬지. 그때의 선물이 귀걸이. 그게 부러워 몰래 귀도 뚫어놓고는 아닌 척했지만, 그렇게 티 나는 감정을 어거스트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에이프릴은, 이런 단순한 디자인이 취향일 것 같아서.”

“뭐, …나쁘진, 않네.”

당황하며 무어라 둘러댈지 헤매던 에이프릴의 시선이 다시 상자로 향하고, 이내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사실, 어거스트에게 받는 것이라면 뭐든 좋았지만.

“지금 껴볼래?”

“…아니.”

어거스트의 질문에, 에이프릴은 상자를 다시 닫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거스트에게 받은, 생애 첫 생일 선물. 간단히 손대기에는 너무 아까운 물건이었다. 그렇다고 기껏 골라줬는데 끼지 않는 것도 아쉬우니, 어거스트가 고른 것과 비슷한 걸 사서 낄 생각을 하며 상자를 테이블 위에 내려두었다.

그런 에이프릴의 반응에 어거스트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써줬으면 했지만, 이미 제 손을 떠난 물건이니 어찌할지는 에이프릴이 정할 일.

“…어거스트,”

“응?”

“……. 고마워.”

“응.”

그 대신 지금은, 에이프릴이 조금씩 평범한 일상에 익숙해지기를 바라며 옆에서 지켜보는 수밖에. 어거스트는 쌉싸름한 향이 나는 케이크를 에이프릴 앞의 접시에 덜어주며 부드럽게 웃었다.

언젠가 이런 케이크도, 생일 선물도, 당연하게 느끼는 날이 오기를. 평범하게 웃고 이야기하는 일상이. 찾아오기를. 그렇게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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