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에이] 첫 생일
2020 우츠키 치카게 생일 축하 연성
치카게 2019년 생일 축전.
*치카게 생일 SR 백스테이지 스포일러
*날조 주의
조직에서 임무 수행 지식의 교육을 받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실전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임무에 투입되어 수행하는 나날. 조직에 들어온 이후로 에이프릴은 매일 그런 일정을 반복하며 지내왔다. 숨 돌릴 틈이라고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 그리고 효율을 위한 최소한의 휴식 정도가 전부. 어거스트는 미안해했지만, 에이프릴은 이런 빡빡한 일정에 불평을 표한 적이 없었다. 따뜻한 거처도, 먹을 것도 주는 곳이었다. 심지어는 에이프릴의 입장에서는 집에서 지낼 때보다 오히려 이곳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모양. 숙식조차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곳에서 지내왔던 에이프릴에게는 이러한 숨 가쁜 일정조차도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보통 에이프릴의 또래들은 몇 번 이런 일정을 반복하면 투정을 부리거나 지쳐 떨어져 나가기 일쑤. 처음 봤을 때부터 에이프릴이 또래에 비해 원숙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에이프릴은 이곳에 계속 있고 싶었다. 그렇기에 조직이 시키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수행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교육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기를 한참. 조직에 들어온 지도 이제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어느 날, 드물게 조직에서의 교육이 오전에 끝나 일정이 없는 빈 시간이 생겼다. 아마도, 조직에서 에이프릴이 버리는 말로 쓰기에는 아까운 인재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터. 버리는 말이라면 얼마든지 한계까지 몰아붙이다 버려도 괜찮지만, 쓸 만한 말의 관리는 조직에게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에이프릴은 갑자기 주어진 여유가 오히려 당황스러울 뿐. 줄곧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지내왔을 뿐인 그로서는 휴일을 효율적으로 보낼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당장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더욱더.
그런 탓에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전부인 에이프릴의 상태를 눈치챈 어거스트는 그의 옆에 앉아 천천히 이야기를 나눴다. 조직에 데려온 이후로 줄곧 에이프릴의 교육과 임무로 바빠 제대로 대화할 틈도 없었던 탓에 주고받는 대화는 에이프릴을 알기 위한 자잘한 것들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 같은 것.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일조차 없었던 에이프릴에게는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이었지만, 임무나 조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퍽 밝은 기분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에이프릴. 생일이 이번 달이라는 건 아는데, 정확히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네. 지난 건 아니겠지……."
"…생일이라면. 아마, 오늘."
대화 도중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여는 어거스트에게, 에이프릴은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말에 놀란 것은 오히려 어거스트 쪽.
"…잠깐, 오늘? 15일?"
"응."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딱히. 생일이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것도 없고. 네가 물어봐서 이제 기억났는걸."
"……."
감정이 담기지 않은 에이프릴의 말에 어거스트는 잠시 굳은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아마, 줄곧 생일 파티는 물론 축하의 말 한마디조차 받은 적이 없겠지. 에이프릴에게 생일은 아까 이야기를 주고받은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에 대한 것보다도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이었을 터였다. 그렇지만, 역시 이렇게 간단히 생일을 보내버리기에는 아쉬울 수밖에. 따로 무언가를 준비하기에는 벅찬 시간이지만, 마침 에이프릴도 어거스트도 쉬는 날이었으니 충분히 축하는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어거스트는 몸을 일으켜 에이프릴에게 손을 내밀었다.
"같이 나갈래?"
"왜?"
"생일 축하, 하고 싶어서."
"축하……."
"우리, 이젠 가족이잖아. 가족의 생일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지. 지금부터 무언가를 준비하기에는 힘들지만, 조금이라도 뭔가 해주고 싶어."
"…이상한 녀석."
에이프릴은 어거스트의 말에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지만, 제 눈앞에 내밀어진 손을 맞잡는 표정은 묘하게 기뻐 보였다. 아마도, 에이프릴에게는 처음으로 축하받는 생일.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 축하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어거스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밖으로 발을 옮겼다. 에이프릴에게는 숙소와 조직의 거점 외의 장소로 가는 것은 오랜만이었으니 그저 밖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그저 밖을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게 전부. 그렇지만 봄기운이 완연한 따뜻한 날씨와 봄바람만으로도 산책을 나온 기분이 들어 묘하게 특별한 외출이 된 기분이었다. 강가를 걸으며 봄내음을 만끽하던 어거스트는, 이내 눈에 들어온 상점가 쪽으로 에이프릴을 이끌며 발을 옮겼다.
"혹시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생일 선물로 사줄 테니까."
"생일 선물……?"
"응. 그리고 돌아가기 전에는 케이크를 사자.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 후에 노래를 부르는 거야."
"케이크는 달아서 싫어."
"으음……. 케이크가 없으면 생일이라는 느낌이 안 나는데."
어거스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에이프릴의 말에, 조금 당황한 어거스트. 케이크를 사서 축하를 한다고 해도 본인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축하는 되지 않겠지. 그렇지만, 역시 케이크 없는 생일파티는 적어도 어거스트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잠깐 고민하던 어거스트는, 이내 묘안이 떠오른 것인지 씩 웃으며 에이프릴을 바라보았다.
"그럼, 만들래?"
"뭐?"
"에이프릴의 입맛에 맞는 케이크를 만드는 거야. 생크림에는 초콜릿 대신에 매콤한 스파이스를 섞고, 장식도 에이프릴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어때?"
"…그거,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긴 해?"
"해 보면 알겠지!"
웃으며 말하는 어거스트의 목소리에 에이프릴은 미심쩍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조금은 혹하는지 걸음을 멈추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물론 어거스트의 요리 실력은 믿을 수 없지만, 생크림을 바르고 장식하는 정도라면 아무리 어거스트라도 가능하겠지. 이제껏 생일다운 생일을 보낸 적이 없던 에이프릴으로서는 어거스트가 자신의 생일을 위해 이것저것 생각하고 제안해 준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딱히 할 일도 없었던 터라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이 즐겁기도 한 모양.
"처음부터 다 만들기에는 늦을 것 같고……. 아쉽지만, 케이크 시트를 사서 만들자."
"뭐, 네가 만드는 것보다야 사는 게 낫겠지."
"에, 너무해!"
에이프릴의 말에 어거스트는 입술을 비죽이며 툴툴댔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그 이상 무어라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케이크를 만들고 생일 축하를 하려면 빨리 움직여야 하는 상황. 어거스트는 어쩔 수 없이 에이프릴의 말에 무어라 토를 달지도 못한 채 상점가로 향하던 발걸음의 속도를 올렸다.
에이프릴의 생일 파티를 위한 외출은 어느새 케이크 재료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바뀌었지만, 스파이스를 고르는 에이프릴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 보였다. 장바구니에 담긴 스파이스들이 대부분 매운맛을 내는 스파이스라는 것에 조금 겁먹은 것도 사실이지만 처음 보는 에이프릴의 환한 표정에,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의 혀의 안위에 대한 걱정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스파이스를 사고, 생크림과 케이크 시트, 그 외에 생일 파티를 위한 자잘한 간식들을 사고 돌아왔을 때는 벌써 해가 진 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지금부터 케이크를 만들 생각에 어거스트도, 에이프릴도 꽤나 들뜬 모양새였다.
사온 케이크 시트를 자르고, 보울에 생크림을 붓고 있는 어거스트에게 적당한 스파이스를 골라 건넨 에이프릴은 조금 들뜬 표정으로 어거스트의 행동을 지켜보았지만,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요리에 전념해 그런 에이프릴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어거스트가 즐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달지 않은 케이크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네."
"먹을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지만."
"아까부터 내 요리에 대한 평가가 너무하지 않아!?"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지금도, 봐."
어거스트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에이프릴을 바라봤지만, 곧 자신의 앞에 벌어진 참사를 눈치채고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보울에 생크림을 붓고, 스파이스를 섞을 뿐인 단순한 작업. 그런 과정에서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난장판이 된 어거스트의 작업대. '그런 솜씨로 약은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건지.' 중얼거리며 한숨을 푹 쉰 에이프릴은 스파이스를 섞어 새빨개진 생크림을 케이크 시트에 펴 발랐다. 생크림의 달콤한 냄새는 익숙지 않았지만, 코끝을 찌르는 매콤한 냄새는 퍽 마음에 들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깔끔하게 생크림이 펴 발라진 케이크 시트를 만족스럽게 내려다본 에이프릴은, 그것을 난장판이 된 작업대를 닦고 있던 어거스트 쪽으로 내밀었다.
"장식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해 봐."
"뭔가 입장이 반대가 된 기분인데……."
"네가 너무 못하니까 그렇잖아."
아까부터 줄곧 툭툭 쏘듯 한 말투에 어거스트는 투정을 부리려 했지만, 이내 즐거워 보이는 에이프릴의 표정에 어거스트도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아마, 에이프릴은 나름대로 부끄러운 걸 숨기려 한 것이겠지. 생일을 이런 식으로 챙기는 것이 처음이었을 테니,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일 터. 에이프릴과 이렇게 오래, 길게 대화하는 것은 그를 영입할 때 이후로는 처음이었던 탓에 이제야 에이프릴과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다 했다!"
"……. 장식조차 못 할 줄이야."
"이 정도면 봐줄 만 하지 않아?"
"하아……."
케이크는 처참한 형태였지만,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돌린 에이프릴의 입가에 은근히 미소가 걸려있는 것을 본 어거스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케이크를 테이블로 옮겼다. 테이블 정 중앙에 케이크를 두고, 그 주변에 사온 간식들을 적당히 늘여놓으니 급히 준비한 것 치고는 그럴듯한 생일상이 완성. 어거스트는 에이프릴을 의자에 앉힌 후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 후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에이프릴……,"
"풋……,"
에이프릴은 처음 듣는 노래. 그렇지만, 분명 이런 음이 아니리라는 것쯤은 바로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끔찍한 음정이었다. 생일을 축하해주는 마음이 있으니 대놓고 웃을 수는 없어 손으로 입을 꾹 눌러 막으며 웃음을 참고 있었지만, 어거스트가 노래를 끝내자 결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할 수밖에 없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풋, 푸흐……, 아하하하하하! 뭐야, 노래까지 이렇게 못 부를 줄은, 하핫……, 풋……,"
"자, 에이프릴. 웃는 건 좋지만, 초 녹기 전에 불 끄고 소원 빌어야지."
"푸흑……, …소원……?"
숨이 넘어갈 듯 웃던 에이프릴이 어거스트의 말에 웃음을 겨우 멈추고 몸을 바로 하자, 어거스트가 케이크를 에이프릴 쪽으로 조금 당겨주며 입을 열었다.
"응. 불을 한 번에 다 끄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대."
"……."
어거스트의 말에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촛불을 노려보던 에이프릴은, 이내 후, 하고 입김을 불어 불을 껐다. 깨끗하게 모두 꺼진 것을 확인하고는 조금 밝은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짓는 모습은 역시 아직 어리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어거스트는 굳이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에이프릴이 또래보다 성숙한 것은 아마 이런 경험 한번 없이, 자신을 누르고, 숨기고, 죽여 와야 했기 때문. 그런 만큼 생각이 깊은 에이프릴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면 힘들었던 이전 생활을 떠올릴지도 모른다는 판단이었다. 오늘은 힘들었던 이전 일은 잊고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즐겨주었으면 했다.
"무슨 소원 빌었어?"
"…내년에는 어거스트가 케이크를 좀 더 잘 만들 수 있게 해 달라고."
"내년?"
"이런 뭉개진 케이크는 한 번으로 충분하니까."
내년. 언제 조직에게 버려질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런 곳에서. 미래의 이야기를, 그것도 에이프릴이 먼저 꺼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과거에 얽매여 있었던 것은, 에이프릴이 아니라 나였던 걸까. 그런 생각에 어거스트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응, 힘낼게. 내년에도, 아니, 8월에 있을 내 생일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생일 때마다 같이 만들자."
"…응."
함께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가족. 조직에 들어온 이후로 조금 무뎌졌던 가족애라는 감정이, 조금씩 고개를 드는 기분이었다.
"…맛없어."
"8월에는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거야."
"기대는 못하겠는데."
4월.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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