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ll love do us apart 01

크립미라

Ode by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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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아주 작은 사건 하나로 시작됐다.

“아야.”

엘리엇이 손을 휘젓자 툭, 하고 죽은 벌레 시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워낙 식생이 다양한 행성이었다지만 눈에 띄게 크고 끔찍한 모양새가 기억에 남을 정도였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별거 아니야, 모기 같은 건가봐. 이 놈의 인기란.”

그는 머쓱한 듯 웃으며 그렇게 얘기했다. 그런 그의 목덜미에는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채였다. 나는 경기에 집중하려 다시 드론을 살폈다.

경기를 오래 하다 보면 지는 일이 일쑤였다. 이상하게도 그날 그는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집중을 못 하더니 결국 홀로테크를 쓰지도 않은 채 적진에 뛰어들었고 나는 그를 엄호하다 결국 나란히 수송선으로 호송되고 말았다. 금방 회복하고 나온 나와는 달리 미라지는 로비에 없었다. 한 마디 할 생각이었는데 대상이 없으니 그 말도 길을 잃었다. 그저 같은 팀이었던 레버넌트만 기분 나쁜 기계음을 내며 제 구역으로 떠났다. 애초에 제일 먼저 돌격해 탈락한 게 그였으니 할 말도 없었겠지만.

엘리엇 ‘미라지’ 위트와 묘한 관계가 된 건 1년 전이었다. 이상하게 의식되던 그와 술김에 속내를 털어놓고 연인 비스름한 사이가 되었다. 나는 그 관계를 숨기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엘리엇은 티를 내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말렸기에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의 기행이 전무후무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그 방향이 좀 달랐다. 괴상한 말실수라거나 엉터리 소문이 아니라 판단력의 문제였다. 같은 경기장에서 뛰어야 했기에 그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었다. 당연했다. 그도 스폰서가 걸려있는 문제였으니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나는 기다렸다. 아주 오랫동안.

“누구 기다리고 있나요?”

의료 요원 중 하나가 바깥에서 서성이는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분대 멍청이.”

“아, 미라지라면…어디 보자….”

대체 아까 총을 얼마나 맞았길래 아직도 쉴드 재생이 안 된 건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패드를 건드리는 요원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위트 씨는 며칠 동안 의무실에 등록되어 있을 예정이네요.”

“뭐라고?”

저도 모르게 모국어로 툭 내뱉자 요원이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아니, 무슨 일이라도 있나?”

“그게…환경 요인으로 감염이 되었을 수 있다고 하네요. 아시잖아요, 여기 이상한 생물이 많은 거.”

환경 요인?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유였다.

“면회는? 그 바보한테 한 마디 하고 싶은데.”

“무균실에 들어가서 힘드실 겁니다. 전달은 해드릴게요.”

굳이 다른 사람한테까지 여파를 보일 생각은 없었다.

“아냐, 됐어.”

“알겠습니다.”

요원을 뒤로 하고 나는 발길을 돌렸다. 안 되면 통신 연락을 취하면 되겠지. 마음 한쪽에는 걱정이 있었다. 아무리 감염체라고는 해도 실바 제약이 뒤를 봐주는 놈들이 며칠이나 잡아 놓는다고? 말이 되지 않았다. 그제야 링 안 울창한 수풀 사이에서 그가 무언가에 물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못 보던 종이었는데, 아무래도 링 안의 특수한 장비 탓에 변형된 인자라도 있었던 듯했다. 과학자가 아니니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정말 운도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엘리엇이 없는 수송선은 꽤 조용했다. 요란하게 법석을 떨 남자가 없어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미라지가 언제 온다고?”

사람들이 종종 그의 얘기를 하는 걸 들었다. 답을 아는 사람이 없기에 곧 연기처럼 흩어졌지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삼일이 되자 나는 조금씩 초조해졌다. 통신 연락은 무슨, 운영진은 그를 완벽하게 바깥과 차단해 놓은 상태였다. 어제는 메리 서머스 박사가 불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크립토?”

“아, 서머스 박사님.”

다정한 목소리의 주인이 사뿐한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걸 전해주라고 전달받아서. 걱정하진 말고, 다 소독된 상태니까.”

박사의 손에는 아주 얇은 판 하나가 들려 있었다. 태블릿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 물건을 받았다. 궁금증이 솟았다.

“그, 박사….”

“응? 무슨 일이죠?”

“괜찮던가요? 그 녀석.”

그 말에 박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줬다.

“잘 모르겠어. 아무래도 면역체계에 장난을 치는 종류인 것 같았는데.”

손가락을 꼼지락대던 그는 내게 되물었다.

“같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그쪽은 이상 없어?”

“전 괜찮습니다.”

“다행이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박사를 불렀다.

“이런, 가봐야겠어.”

“다음에 뵙죠.”

나는 그를 보내고 방으로 천천히 걸었다. 태블릿이라. 그 판 하나가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방에 도착한 나는 일단 먼저 태블릿과 컴퓨터를 연결해 데이터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편지 하나와 영상 하나가 담겨 있었다.

[영상 재생해.]

‘어, 안녕!’

영상에 가득 담긴 건 이불이었다. 아래쪽 윤곽은 다리인지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게 딱 엘리엇 위트다웠다.

‘딴 게 아니라…아, 이런 얼굴 보여주기 좀 그런데. 내가 원래 안 이렇잖아.’

뭐야, 엘리엇? 어서 할 말을 하던가 상태를 보여주던가 해. 나는 초조한 심정으로 음성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잠깐의 정적 후, 환한 빛이 번지더니 엘리엇의 얼굴이 보였다. 목덜미에서 무언가 검고 자잘한 촉수 같은 것이 그의 한쪽 뺨을 뒤덮고 있었다.

‘그…놀라지 말고. 여기서 할 일을 해주고 있으니까.’

그것은 엘리엇이 말을 할 때마다 꿈틀대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러니까, ‘연구’ 말이야.’

“이게 무슨….”

그 중 유난히 굵은 것이 이마까지 솟아 있었는데 그것이 움찔거리자 엘리엇이 고통스러운 듯 눈을 연신 깜빡였다.

‘곧 나갈 수 있다고 해.’

엘리엇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때 봐.’

[영상 재생 완료. 다시 확인하시겠습니까?]

나는 차마 다시 영상을 보지 못한 채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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