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ing of the Innocents 2부 - 01

크립미라 장편 소설

Ode by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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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성난 등이 씩씩거렸다. 나는 그 꼴을 보고 있다가 결국 노트북을 덮고 말했다.

“엘리엇.”

“…….”

그가 입을 다무는 건 좋은 전조는 아니었다. 평소 말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남자였으니까.

“엘리엇 위-”

“아, 피도 안 마른 꼬맹이 소리가 들리네.”

돌아보지도 않고 툭 던지는 말에 심지가 있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히 해.”

“그래, 꼬마야.”

옛날의 우리를 보는 것 같았다. 서로 무시하기 일쑤에 게임 내에서 멱살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던 시절. 관계라는 게 없었을 때의 우리. 크립토와 미라지라고 서로를 부를 때의 우리.

꽤 오랫동안 우리의 관계는 잘 숨겨졌다. 엘리엇이 저도 모르게 게임이 끝난 내게 달려와 ‘현, 혀언, 괜찮은 거지?’ 라고 할 때까지. 그때 르네의 표정이 참으로 볼 만했었다. 몇몇은 알 만하다는 얼굴로 자리를 떴다. 나는 엘리엇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으니까, 숨 쉬어.’

‘아니, 위에서 보고 있는데 미친 자식이 네 등에다 피스키퍼를, 아.’

엘리엇은 사색이 되어 입술을 달싹였었다.

‘나 다 망쳤어? 방금?’

나는 그런 그에게 픽 웃었다.

‘그래.’

언젠가 밝혀질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개의치 않았었다.

“그래….”

후우. 다시 한 번의 한숨이 내 입술을 떠났다.

“네가 그럴 때야? 난, 진짜….”

“….”

“어떻게 또 속일 수가 있냐고. 또? 또.”

피곤했다. 나는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길게 신음했다. 지쳤다. 힘든 나날이 계속됐다. 신디케이트는 자꾸만 물밑 작업을 하고 나는 이런 사소한 말다툼에 또 엮여 있었다. 적어도 이번에는 각방은 쓰지 않았다. 엘리엇은 부루퉁한 얼굴로 내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노트북을 열고 데이터 처리를 시작했다. 이걸 끝내면 적어도 근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 꼴이 불을 붙였는지 엘리엇이 하, 하하…얼빠진 웃음을 냈다.

"이제 무시하시겠다? 그래, 난 갈게. 이 미라지는 그런 존재니까, 응?"

"엘리-."

벌떡 일어난 그에게 뻗은 손은 허공만 애처롭게 휘저었다.

“적어도 난 내 두 발로 나갈 자신은 있어.”

텅, 문이 닫혔다. 그에 나는 그저 마지막으로 본 그의 뒷모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뭐라고 대답했어야 그가 떠나지 않았을지 생각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지만, 적어도 이유만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패드를 내려놓고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며칠 전만 해도 엘리엇은 내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더 붙지 못해 아쉽다는 듯 굴었던 게 생생했다. 그런 그가 이제 내 얼굴만 봐도 고개를 돌렸다. 정신이 아찔했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뜯겨나가는 기분은 처음 느껴본 차였다.

이 감정에 어떤 꼬리표를 붙여야 하는가. 나는 눈을 힘껏 감았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에이펙스 게임의 전장으로 뛰어들었고 그들 중 몇몇은 레전드 칭호를 얻어 함선 내에 자신만의 공간을 얻었다. 셀 수 없는 날들이 지났다. 전장의 모습도 변했다. 마치 변이체 같았다. 우리는 그저 새로운 땅-혹은 공중 정원 따위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플라이어 고기가 뷔페식당에 등장하는 빈도가 늘었다. 아마 매기의 소행일 것이다.

‘야생에서는 가죽 장화라도 뜯어먹어야 한다고, 알아?’

‘또 저러네. 누가 좀 말려.’

‘이 고상한 새끼들 같으니.’

그런 매기를 퓨즈가 어떻게 보는지는 뭐…상상에 맡긴다. 아니, 사실 퓨즈는 그런 일에 더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의 옆에는 항상 하운드가 있었으니. 매기의 곁에는 놀랍게도 에이제이가 자주 맴돌았다. 실바 제약회사와 관련한 일이 있었고 그건 다른 이들은 모르는 정보였다. 그러니 퓨즈가 그런 그에게 매기의 악명을 전하는 것도 놀랍지 않았다.

‘에이제이, 그 여자는 말이야. 말 그대로 미쳤다고.’

‘그런 이야기라면 더 듣고 싶지 않은데요. 저도 성인이라서.’

‘그치만, 체.’

옥타비오의 말을 끊은 에이제이는 그대로 다시 매기의 방에 찾아갔다. 두 남자를 황망히 둔 채로.

 


몇 시간 후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엘리엇의 방은 내 생체 인식 정보로도 쉽게 열렸다. 침대에 앉아 있던 그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턱을 괸 채였다.

"…얘기 좀 해."

"싫은데? 난 솔, 솔, 열린 사람이 좋거든."

울화가 치밀었다. 대체 언제까지.

"그럼 그 영감한테 또 가던가."

"뭐, 어, 어, 어거스트?"

"어거스트라고?"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건데? 치기 어린 질투심으로 보이기 싫어 뒷말은 숨겼다. 그러나 엘리엇은 눈치챈 듯 은근슬쩍 내게 다가와 어깨를 디밀었다.

"네가 말하면 안 갈, 음, 수도 있는데."

"언제는 애새끼 말은 안 듣겠다며?"

나도 모르게 욕설이 삐져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2개월째였다. 엘리엇이 꽁해있는 것이. 대체 그 숫자놀음이 그에게 무슨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엘리엇. 그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난 이제 우리가 전부 털어놨다고 생각했어."

"…."

"그런데 어라? 내 남자친구가 사실 완전 어린애였지."

"…."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래간만에 찾아오는 편두통 신호에 나는 금방 재킷 안에서 진통제를 꺼내 깨물었다. 액체형 캡슐은 금방 효과가 돌 거였다.

"…아파?"

금세 눈치를 보기 시작한 엘리엇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아프지는 말고. 나보다 어린 주제에.

"네가 스트레스를 주잖아."

"거짓말 안 했으면 되지."

빙빙 도는 대화였다.

"아프라고 한 건 아냐."

멋쩍은 듯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그의 모습에서 결국 또 깊은 감정이 올라왔다. 나는 내 아래쪽 배에 남은 작은 흉터를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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