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질

알터 그리고 호라이즌

Ode by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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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스 박사가 항상 연구에만 몰두하는 건 아니었다. 그의 현재에는 과거에만 연연할 수 없는 이유가 많았고 메리는 그 몇 가지를 수용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그의 과거 동료-지금은 살인 로봇 반열에 들어섰지만-라던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구는 어린 여자가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들이 그를 가만히 두기로 결심한 모양이었으니, 쉬기만 하면 됐다.

“뉴트, 지난번 부탁받은 일은 끝냈었지?”

대답이 들리지 않아 메리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화려한 머리칼의 주인이 뉴트를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안녕, 박사.”

“또 왔니?”

메리의 고운 미간이 흐트러졌다. 알터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등 뒤에서 그의 꼬리가 살랑대며 주인의 발걸음을 따랐다.

“매정하게 구시네. 난 응원하러 온 건데도.”

“네 도움은 필요 없어.”

“흐음, 정말로?”

알터는 한 바퀴 빙글빙글 돌아 메리의 곁에 밀착했다. 메리가 들고 있던 펜을 두고 그를 밀치려 했지만 알터는 쉽사리 밀려나지 않았다. 도리어 제 꼬리로 메리의 팔을 감았다.

“박사한테 필요한 게 뭐든, 내가 구해다 줄 수 있다는 거 알잖아.”

“그 과정에서 죽어 나갈 사람을 무시할 거라고 생각해? 난 그렇게 못 해.”

“…뉴트를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있겠지. 가여운 여자 같으니.”

“그 이름 조심해서 말하도록 해.”

“왜, 마음에 안 들어?”

이런 내가 말하는 게 마음에 안 드냐고. 알터는 미끄러지듯 옆으로 스치며 말을 흘렸다. 그 말소리가 꼭 뱀의 혀 같이 그를 옥죄어 왔다. 메리는 알고 있었다. 지난번 한숨 쉬듯 내뱉었던 한 마디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그 부품 하나를 구하겠다고 알터는 피범벅이 되어 수송선으로 돌아왔다. 끔찍한 점은 그 피가 알터의 것이 아니었다는 거다. 메리는 그 이후 말을 더욱 조심히 꺼냈다. 벽도, 문도 알터에게서 메리를 지켜줄 수 없었다. 그 모든 건 오히려 통로가 되어 알터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곤 했다.

“…….”

“다 알아, 박사.”

알터가 두 손을 뻗어 메리의 손을 쥐었다. 그의 꼬리는 이제 주인의 목에 가 휘감겼다.

“이렇게 하고 싶지?”

꽉 조여드는 꼬리에 알터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그런데도 눈부시게 웃는 여자의 모습은 가히 절규를 인간의 형상으로 빚어낸 듯했다. 그렇지만 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메리는 그가 쓰는 기술이 단순한 과학으로 만들어진 게 아님을 잘 알았다. 메리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은 걸 잘 안다는 양 알터는 뒤로 몸을 숙이며 제 꼬리에 기댄 채 자신의 숨통을 조였다.

“내가…말할 때마다, 숨…쉴 때마다 이걸, 원하는, 걸, 알아.”

그러니까 이제 솔직해져. 이죽거리는 알터의 모습에서 메리는 세계의 파멸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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