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ll love do us apart 02

크립미라

Ode by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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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이 격리된 지 나흘 째 되던 날, 나는 그를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관계를 들키거나 하는 일은 이제 부가적인 문제가 되어 있었다. 제일 큰 건 역시나 그의 부재였다. 딱히 사람에게 크게 애착을 두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와 각별한 사이가 되고 난 후로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는 건 처음이었다. 조금씩 불안해졌다. 나는 지난번 내게 말을 전했던 의료 요원을 찾았다. 그는 내 모습을 보자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라지 일이시죠?”

“아무래도 같이 있었다 보니 신경 쓰여서.”

그럴 수 있다며 웃어 보인 그는 곧 패드를 툭툭 건드렸다.

“아직 무균실에 있는데 면회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지금은 상태가 안정, 아….”

말실수를 했군. 나는 그 말에 크게 동요하지 않기 위해 주머니에 넣은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 사인만 한 번 해주시면 됩니다. 다른 건 아니고 동의서예요.”

나는 그가 건넨 패드를 대충 훑었다. 내용인즉슨, 혹여 생길 2차 감염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 고개를 끄덕인 나는 펜을 들고 천천히 서명했다. 김 현. 어차피 법적 효력은 없겠지만 그들이 원한다니 해주는 것 뿐이었다.

“따로 옷도 갈아입어야 하나?”

“아닙니다. 소독 후에 들어갈 수 있거든요. 아직 접촉 감염이 있었던 적도 없고요.”

“그럼 안내 부탁하지.”

우리는 길고 긴 복도를 따라 이동했다. 마치 연구소처럼 보이는 곳에 통로 하나가 있었다. 요원이 카드를 찍자 삑 하고 승인 허가 화면이 떴다.

“여기서부터 쭉 가면 소독이 진행되니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통로를 걸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요란한 기기 소리가 심박과 함께 뛰었다. 그 끝에는 문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다가가니 저절로 열렸다.

드디어 엘리엇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위로부터 긴 천이 드리워진 방 한가운데 있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각종 선과 기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그 사이에 누운 그는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에는 지난번 화면에서 봤던 검은 촉수도 없었다. 느릿하게 다가간 나는 천을 걷고 침대 옆에 섰다. 눈을 꾹 감은 엘리엇은 자는 듯 보여서 나는 숨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다.

조금 살이 빠졌나? 그새? 기민한 감각이 평소의 그와 다른 점을 찾아내고 있었다. 계속해서 펌프질을 하는 기기에서 노란 액체와 푸른 액체가 그의 몸에 링거 형태로 주입됐다. 주변에 의자조차 하나 없어 선 채로 그를 내려다봤다. 내가 기기들을 하나하나 살필 때쯤, 엘리엇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꿈이지? 다 알아.”

“엘리엇.”

내가 입을 열자 엘리엇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묘하게 힘없는 웃음이었다.

“아닌가? 잘 모르겠네.”

“잠깐 허가받고 온 거야. 몸은 좀 어때.”

“뭐, 보이는 대로….”

묵직한 기기를 달고 있던 팔을 들어 올리던 그가 이마를 짚었다.

“으…아냐.”

“엘리엇?”

“아니, 그게, 아니라…아니….”

삑, 삑, 전도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나는 그의 팔뚝을 붙들었다.

“정신 차려.”

그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벽에 공허한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한 지점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너무 비어 있어서 나는 겁이 났다.

“그게…아니라…엄마, 그게…그게 아니라…아니에요….”

“엘리엇 위트.”

“…후….”

엘리엇의 이마에서 조금씩 땀이 배어 나왔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헛소리를 지껄이던 엘리엇은 그제야 나를 쳐다봤다. 멀쩡하게 응대하는 그 모습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고 있어서 기분이 묘했다.

“어, 크리피. 언제 왔어?”

“방금. 조금 전에 인사했잖아.”

“그래? 그렇구나, 아니, 그게 요즘 사람들이 워낙 자주 들락날락해서.”

그는 내 손을 마주 잡았다.

“와줘서 고마워.”

“….”

“진짜야.”

속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왔다. 나는 이상한 말을 내뱉지 않으려 입을 굳게 다물었다.

“물론이야.”

그 말을 하는 게 전부였다. 멍청하게도.

“다른 사람들은 어때? 다 나 걱정하고 있지?”

“시끄러웠지.”

아픈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벌써 그의 이야기를 덜 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적당히 그에 맞춰주었다. 그러자 엘리엇이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웃었다.

“아, 빨리 나가서 팬들한테 이야기해주고 싶은데. 이상한 벌레 하나한테 걸려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기다리겠지.”

“너무 각박한 거 아니야? 너도 팬이 있다는 건 알지, 현?”

이제야 내가 알던 엘리엇 같았다.

“빨리 퇴원이나 해.”

“왜, 벌써 내가 그리워?”

“….”

은근슬쩍 내 손을 만지작대는 그의 행태가 웃겨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엘리엇은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야, 이거 말도 안 되네…. 천하의 크리피가 내가 그리우시단다.”

“헛소리 그만.”

“부끄러워하기는.”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힘을 쓴 탓에 링거 선에 피가 역류하자 나는 그의 몸을 받쳤다.

“자주 아파야겠어. 크리피가 이렇게 상냥한 거 처음인데.”

“또 헛소리.”

심장이 크게 뛰었다. 나는 그에게서 멀어졌다.

“이유가 뭐라고 알려줬어?”

“그 벌레 기억나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특이 생물이라던데, 처음 보는 종류래. 우리 캠으로 보고 갔더니 온데간데없어서 자료가 없던 모양이야. 그래서 나도 이 신세고.”

“이 설비를 가지고도 아무것도 못 한다는 말이야? 멍청한 자식들.

“또 그런다. 자꾸 모르는 말 하지 말라니까, 나 흥분돼.”

“제발.”

반짝이는 그의 눈을 애써 피하고 있자 엘리엇이 내 옷깃을 잡았다.

“장난인 거 알지? 아니, 진짜 장난이야.”

“…그래.”

엘리엇은 작게 기침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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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페어
#BL

댓글 1


  • 놀라는 달팽이

    못 알아들을 말로 욕하는 거나 흥분된다고 하는 거나 하... 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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