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날
사이퍼
안개 낀 새벽은 여러 의미로 마음에 들었다. 첫 번째,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두 번째, 고요한 사위가 산책을 나가기에 적격이었다. 항상 붐비는 시장이지만 이때만큼은 아니었다. 사이퍼는 문을 열 준비를 하는 몇몇 상인들 사이를 조용히 걸었다. 그들은 그가 다가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잠깐 쳐다보더라도 곧 고개를 돌렸다. 깊게 눌러 쓴 모자에 마스크는 광인으로 보이기에도 충분했다. 덕분에 호객 따위도 당할 일이 없었다.
그는 베이스캠프에 두고 온 유류품을 떠올렸다. 커피 한 팩. 잃어버린다 해도 아무도 찾을 일 없는 물건이었다. 항상 그랬다. 그의 인생에서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했고 남기더라도 추적 당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퍼는 문득 자기가 장갑과 마스크를 끼지 않았던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했다. 몇 년 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가 가는 길에는 지문도 머리카락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미르라는 남자는 없었다. 사이퍼라는 요원만이 그 자리를 지킬 뿐.
외롭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추적이 유독 심했을 때의 그는 극도로 예민해져 주변에 누구도 들이지 않았다. 그가 쓰러지면 그 뒤에 남을 것들을 항상 생각했기에. 그런 의미에서 발로란트는 제 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섣불리 다가설 수 없었고 그와 같은 이들이 여럿 있었다. 특히나 비슷한 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오멘이었다.
그는 오멘을 종종 마주하곤 했는데, 딱히 다른 이유는 아니었고 그의 곁에 있으면 편안해진다는 게 하나였다. 혼자 예민한 이라면 방의 분위기를 죽이는 사람이 되지만 둘이라면 안정감이 있었다. 오멘은 그런 그를 내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그에게 관대했다. 사이퍼는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 질문이야말로 그 편안함을 시험대에 들게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바깥에 나와 있을 때면 가끔 오멘과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그립곤 했다. 그곳에서는 크게 걱정할 것이 없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는 모스크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했다. 기도를 올리기 위해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신앙은 모로코인이라면 태어나서부터 가지는 것이었다. 지금의 그에게는 좀 멀어진 관념이었지만 말이다. 그때, 멀리 있던 고양이 하나가 그에게 총총 걸어왔다. 자연스럽게 몸을 숙이자 고양이는 그에게 몸을 비비며 가르릉댔다. 사이퍼는 장갑 낀 손으로 녀석의 턱을 살살 긁어주었다. 마지막으로 골골거린 고양이는 제 만족을 채웠는지 금세 떠나갔다. 온통 검은색인 고양이를 보며 사이퍼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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