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wth

Family Tree

(4-b-4) / 자잘한 설정풀이에 가깝습니다.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니므에게 평생 가족이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애쉴린 뿐이었다. 친척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만나본 적 없었으며, 그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살아온 세월이 훨씬 길었다. 그런 만큼 ‘친척’의 존재란 니므에게 몹시 낯선 것이었다. 그러니 대뜸 이모들을 만나러 가자는 엄마의 제안에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몇 명쯤 있는 것 같다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있었다고? 엄마는 놀란 니므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대신, 공항으로 향한 후 온 가족을 미국행 비행기에 태웠다. 뒤늦게 확인한 비행기 티켓에 적힌 도착지는 아주 익숙한 이름의 도시였다.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뉴욕 시티, 맨해튼. 1996년 겨울. 6학년이 되어 맞은 홀리데이 연휴의 일이었다.

*

생전 처음 와본 미국, 난생처음 밟은 뉴욕 땅은 익숙한 듯 낯설었다. 세계 어디든 도시의 모습은 전부 거기서 거기인 법이다. 다만 유럽이나 영국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니므는 런던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가도, 아주 사소한 차이점을 발견하고 현실을 자각하길 반복했다.

사실 도시의 생김새 따위야 니므에게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막 존재를 알게 된 이모들이라면 모를까. 엄마에겐 무려 네 명의 자매가 있었다. 나이도, 사는 곳도 제각각인 그들은 자식은커녕 결혼한 이조차 없었고 하나뿐인 조카를 처음으로 보기 위해 맨해튼에 살고 있는 둘 째의 집에 모이게 된 것이라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이 많고, 쾌활했으며 붙임성이 좋았고, 니므에게 말 한마디라도 더 걸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엄마 같은 사람이 세상에 네 명이나 더 있을 수 있다니! 니무에, 니므헤, 니므! ‘니므에’라 부르는 게 맞는 거 아냐? 아니, 내가 맞을걸? 니므는 부산스러운 애정 속에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좋은 사람이었고, 마녀였으며, 머글인 형부 내지 제부에게도 살갑게 굴었다.

그 광경 속에서 니므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거실에 모인 시간, 라디오 채널에서는 소울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모두가 적당히 상기된 얼굴로 회포를 풀었다. 대각선 위치에서 소파 헤드에 걸터앉은 채 칵테일 잔을 들고 웃고 있는 엄마는 요근래 중 가장 기분이 좋아 보였다. 며칠간 이모들과 지내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윈슬로 자매들은 몹시 가깝고, 사이가 좋은 가족이라는 것이다. 그런 가족을, 자매를, 그들이 속해있던 세상을 버리고 머글 사회를 덥석 선택해 버린 엄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대체 무슨 심정으로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아빠의 손을 잡았던 걸까? 어째서 무언가를 포기하고, 그 사실을 홀로 삼키면서까지 남편과 딸이 있는 세상에 끝까지 남기로 마음먹었을까.

한참 동안 생각을 곱씹던 니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집을 빠져나왔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겨울밤, 하늘에서는 눈송이가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지도 모르겠어. 내일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서 데클런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엽서를 살까. 호그와트 친구들에게 보낼 것도 같이 사는 게 좋겠지. 새카만 하늘을 올려다본 니므는 슬쩍 웃음을 흘렸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축축한 감각이 생경했다.

*

니므가 겨울에 윈슬로를 만났다면, 그다음 여름에 만난 것은 레드몬드들이었다. 그들은 아일랜드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고, 이름을 전부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가 많았다. 덕분에 세 사람에게는 조금 넓다고 여겨지던 집이 북적북적하게 꽉 차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들은 전부 머글이었으며, 하나같이 아빠를 닮았고, 진저색 머리카락을 가진 이들이 많았으며, 주근깨와 곱슬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과 니므가 공유하는 공통점이라고는 곱슬머리와 ‘레드몬드’라는 성씨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난생 처음 보는 친척 동생에게, 조카에게, 아무런 거리감을 느끼지 않는 듯 다가왔다. 아빠는 즐거운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아일랜드어로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니므는 알지 못하던 가족의 역사를 듣고, 그들과 얼굴을 마주했다. 레드몬드들은 윈슬로와 정반대의 사람들이었다. 대체 이렇게나 다른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어쩌면 이 둘이 머글 사회의 런던에서 만났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런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우연이, 이방인이었던 아일랜드 청년과 이방인이었던 젊은 마녀를 연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법사도, 머글도, 아일랜드인도 영국인도 전부 상관 없을지도 몰랐다.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었으니. 이렇게 두 갈래의 역사가 자신에게 이어져 있으니. 덕분에 니므는 다소 가벼워진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부르는 친척들을 향해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머글 친척’들은 오늘, 니므의 머리카락 일부를 자신들과 같은 진저색으로 물들이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준비 다 됐어. 얼른 와, 니브!”

“지금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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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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