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monde Cinema (O'Connell Street and Stephens Street, Dungarvan)
(4-b-3) / 자잘한 설정풀이에 가깝습니다.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언제부터였던가? 황무지를 산책하고, 항구에서 일출을 구경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던 니므 레드몬드의 습관에 영화관을 오가는 것이 포함되었던 때는. 여름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늘 그렇듯 대기는 습했고, 가끔은 바다의 짠 내가 코끝을 자극했으며, 예기치 못하게 비가 쏟아지고는 했다.
니므의 집 근처에는 아주 오래된 영화관이 하나 있었다. 40년대에 문을 열고 70년대에 문을 닫았다가, 80년대가 되자 다시 문을 연 곳이라나. 아무튼 집 근처에 영화관이 있다는 것은 몹시 운이 좋은 일이었다. 특히 그 영화관이 고작 2파운드로 하루 종일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니므는 방학 동안 서점에서 일을 했지만 매일 같이 서점으로 출근하는 것은 아니었다. 네가 매일 출근을 했다간 네게 급료를 주느라 서점이 폭삭 망할 것이라는 데클런 영감의 주장에 따라, 니므는 일주일의 절반만 출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니므는 서점에서 일을 하지 않는 날이면 아침부터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낡은 영화관은 가격이 싼 대신 시설이 노후했고, 최신 영화는 상영해 주지 않았지만, 니므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책 외에 볼 것이 있다면 뭐든 상관없었다. 게다가 낡은 장소인 만큼 사람이 없는 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상영관 안에 들어서면, 늘 관객은 많아 봐야 열 명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아침에 티켓 부스에 동전 두 개를 내밀고, 표를 받으면 니므는 하루 종일 아일랜드를 벗어날 수 있었다. 어두침침한 상영관 안에서, 푹 꺼진 의자에 앉아 몇 번이고 재생해 늘어진 필름으로 상영되는 오래된 흑백 영화를 눈에 담으면서.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봐야 했고, 가끔은 필름이 불타는 바람에 상영이 중단되는, 90년대에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사고도 있었지만, 니므는 정말이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들은 전부 호그와트에 돌아가는 순간 없는 취급을 받는 것들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무엇이든 있는대로 전부 흡수해 두어야 했다.
스크린 너머 세상이 아름다웠느냐 물으면 니므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힘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스크린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졌다. 허구로 현실을 폭력적으로 제압해 버리는 그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험프리 보가트가 창문에서 인사하고, 한 미국인 여자가 커튼을 찢어 드레스를 만들었다. 열두 명의 남자가 끊임없이 말싸움을 하고, 과학자들이 토마토에게 죽임을 당했다. 열차 사고가 나고, 택시 기사가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철없는 공주가 스쿠터로 광장을 누볐다. 할리우드 드림을 꿈꾸던 여자아이가 성공과 사랑을 교환했고, 그리피스 천문대로 차 한 대가 돌진했으며, 가끔은 한 고등학생 남자애가 50년대의 프롬 파티 무대에서 기타를 난사했다. 이 모든 것들을, 이보다 많은 것들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것들을 눈에 담으면서 니므는 이윽고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은 외로웠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고독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영화를 보기 시작하는 순간, 그 외로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스크린 속 세상의 일부가 되어 나 자신이 아니게 될 수 있었다. 내 것이 아닌 수백수천 가지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결국에는 그것들이 전부 내 이야기가 됐다.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는 결코 겪을 수 없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할 수 있었다. 허구 속 존재인 그들의 삶이 실제가 되어 니므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니므는 아일랜드인이자 영국인이고, 마녀이자 머글인 육체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들은 가끔 영화에서 튀어나오기까지 하며 현실을 부쉈다. 페이드 아웃 없이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니 현실은 얼마나 낭만적이냐는 말 따위를 하면서.
그 길로 니므는 영화관을 제 집처럼 드나들기 시작했다. 티켓 부스의 직원과 안면을 텄다. 서로 눈인사나 짧게 나누고 고개만 적당히 까딱일 뿐, 이름조차 몰랐지만, 그들은 서로를 분명히 인식했다. 서점 일이 있는 날이면 퇴근 후 밤새 영화를 보러 오기도 했다. 그렇게 영화를 본 뒤면 니므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먼지 쌓인 영화 각본집들을 읽고 또 읽었다. 영화를 보고, 각본을 읽는다. 반복과 독서.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가 가장 잘하는 것. 모두가 잠든 밤, 침대에 기대 각본집을 읽으며 자신이 본 영화 속 장면을 떠올렸다. 상상하고 재현하고, 가끔은 음악 소리가 함께 들렸다. 데클런이 구해다 준 각본집을 읽고, 영화 속 음악이 담긴 레코드판을 모으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집에 있는 오래된 턴테이블에 레코드판을 올리고, 각본집을 펼쳤다.
아일랜드도, 영국도, 머글도 마녀도 상관없는 세계를 만드는 것, 그곳으로 떠나는 것. 그것이 니므가 찾은 해답이었다. 앞으로 몇 번이고 돌아올 여름을 견디기 위해 고안해 낸 방법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적막했지만, 비가 쏟아지는 하늘 아래에서 가로등을 붙든 채 춤추고 노래하던 이들을 떠올릴 수 있기에, 그들의 세상에 슬쩍 발을 걸치면 괜찮아질 것이다. 창밖에서 쉬지 않고 내리는 여름비가 창문을 두들겼다. 더는 아일랜드의 여름이 끔찍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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