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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slow's Witches

(4-b-5)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는 호그와트 내에서 모범생 축에 속하는 학생이었다. 수업 태도가 준수했고, 성적은 수재라 부를 정도는 아니었으나 우수했으며, 별다른 문제를 일으킨 적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먹고 있든 겉으로 보이는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는 그런 학생이었다. 얌전하고, 눈에 띄지 않는 학생. 아마 니므의 O.W.L.s 성적이 이런 인식을 더욱 굳혀주었을 터다.

그렇다면, 호그와트에 입학하기 전까지 평생을 머글로 살아온 혼혈 마녀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의 본심은?


어느 날, 또 다른 윈슬로는 호그와트에서 날아온 편지를 하나 받는다. 발신인은 딸이었다. 편지에는 기함할 만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독서 클럽에 들어갔는데, 머글 도서를 학교로 보내 달라나. 편지의 두 번째 장에는 몰래 도서관의 제한 구역에 들어가 봤더니 머글 도서가 가득했고, 도서관 곳곳에도 머글 도서가 숨겨져 있다는 친절한 부연 설명까지 덧붙여져 있었다.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는 뻔뻔하게도, 제 엄마에게 내가 학교에서 사고를 좀 칠 예정인데, 부디 협조해 주십사 요청한다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걸 받은 또 다른 윈슬로는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고?

딸을 말리고 혼내기는커녕, 딸을 돕기 위해 두 발 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두 윈슬로 모두, 그 망할 법에 불만이 아주 많았으니.

두 마녀의 협동 작전은 꽤 순조롭게 이어졌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 책 몇 권을 위장해 보내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고, 그 정도 일은 윈슬로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조금 신이 난 것 같기도 했다. 꼭 호그와트를 다니던 때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편지에 적어 보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엄마가, 혹은 데클런이 보내준 책을 받으면, 니므는 그것을 클럽원과 돌려 읽었다. 머글 도서를 몰래 반입하는 클럽원은 니므 하나만은 아니었다. 모두, 혹은 몇몇은 그렇게 비밀스러운 활동을 소곤소곤 지속해 나갔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던가? 독서클럽의 비밀은 결국 교수진에 적발됐다. 학교는 뒤집어졌고, 몇몇 교수들은 몰래 머글 도서를 반입한 장본인 중 하나가 후플푸프의 ‘그’ 니므 레드몬드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토록 성실하고 조용하던 학생이 어째서!

그럼, 위법 행태를 발각당한 니므는 어떻게 했느냐고?

뻔뻔하게 밀고 나갔다.

어디서 난 것이냐 추궁하는 교수들에게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도서관에 있던데요?

도저히 발뺌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조금 더 논리적인 대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건 우리 엄마가 쓴 책이에요. 그리고 우리 엄마는 호그와트도 졸업한 순수혈통 마녀고요. 그런데 이게 머글 도서라고요? 마녀가 썼는데도요?

평소의 흐릿한 시선은 어디 갔는지, 또렷한 눈동자로 한 마디도 지지 않으며 따박따박 따지고 드는 니므 레드몬드의 모습에 뭇 교수들은 제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레드몬드 양, 대체 뭐가 문제인가요!

이렇게 따져봤자 징계를 피할 수 없으리란 사실은 알았다. 오히려 대들었다는 이유로 더 큰 징계를 받거나, 퇴학을 당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편두통을 앓던 교수 중 한두 명은 기어코 니므의 미들네임에서 과거를 떠올렸다. 레드몬드 양의 미들네임이 분명 ‘윈슬로’였죠…? 과거를 기억하는 교수들의 안색은 순식간에 나빠졌다. 설마….

재학 시절 호그와트를 쑥대밭으로 만들던 자매들! 그 악명 높던 윈슬로! 그중 가장 고삐 풀린 망아지 같던 그리핀도르 출신 윈슬로의 딸이었다니!

니므는 교수들의 진절머리 치는 반응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엄마가 그리핀도르였구나, 같은 한가한 생각이나 했을 뿐이다. 어쩐지 뿌듯하기도 했다. 자랑스러운 윈슬로라는 이름에 걸맞은 명예를 얻은 것 같았다.

하지만 니므가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든, 호그와트는 결정을 내렸다. 그것도 니므가 가장 바라지 않던 최악의 방향으로. 모든 클럽 활동이 전면 폐지되었다. 니므는 퇴학은 면했으나 징계를 받았다. 감시는 이전보다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결정은 학교만 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니므 또한 결정을 내렸다. 순응하지 않기로. 클럽 활동이 폐지된다면 비밀리에 이어갈 방법을 찾으면 된다. 이 시점에서 니므의 불만과 반항심은 결국 최고조에 달했다. 이대로 물러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아. 어떤 책을 모두가 읽게 만드는 방법은 그 책을 금서로 지정하는 것이라지. 얌전히 고분고분하게 고개 숙일 생각은 조금도 없어. 이 세상은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아. 불만이 있다면 나서서 저항하고, 아무리 밟혀도 맞서 싸우며 사라지지 않은 채 아득바득 자리를 지켜야 해.

*

그렇게 혼란과 불만, 그리고 결심 속에서 학기를 마치고 돌아간 집. 7학년이 시작되기 1주일 전, 엄마는 니므에게 폭탄 같은 고백을 던진다.

“사실은 너를 호그와트에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어.”

요약하자면 이랬다. 엄마는 자신을 본래 마녀가 아닌 평범한 머글로 키울 생각이었지만 비 마법적 표현 금지법의 제정과 머글들 사이에서 살아가던 마녀인 자신의 특수한 사정, 때마침 도착한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로 인해 모든 사실을 밝히고 니므를 호그와트에 보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넌 어릴 적 눈에 띌 만한 마법적 현상을 일으키지 않았고, 호그와트 입학 여부는 선택할 수 있으니 니므 너는 평범한 머글로 살아가도 좋으리라 생각했어. 평범한 머글의 삶이 주는 행복을 내가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 바보 같은 법 때문에 생각이 바뀌었지. 마법을 쓸 줄 아는 쪽이 훨씬 안전할 거야. 그게 네게 권위를 안겨주진 못해도 힘은 부여하겠지. 권력이 아니어도 돼. 단순하지만 명료한 힘의 차이에서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하니까.”

곧 끝을 보일 것만 같았던 고민은,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던 해답은, 또 한 번 자취를 감췄다. 이제 막 자신을 정립하고, 스스로가 마법 사회의 일원임을 받아들여 가며 있을 곳을 찾아가려던 니므는, 창밖에서 쏟아지는 장대비를 망연히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있었던 어떠한 삶의 가능성, 내가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평화롭고, 어렸던 내 세계가 산산이 부서지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삶의 방향. 이젠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연이 끊긴 어릴 적 머글 친구들, 평범했던 머글 학교생활, 반드시 잊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이라는 다짐, 단 한 번도 찾아가 보지도, 연락해 보지도 못한 주소들….

하지만 또 동시에 떠오르는 상반된 것들이 있었다. 6년의 호그와트 재학 기간, 그동안 있었던 사건 사고들, 추억이라 부를법한 기억, 주고받은 편지와 우정의 증표, 기숙사와 새로운 친구들, 마법, 저항, 투쟁심, 반쪽짜리 기간제 소속감….

나는 어디에 속했으며, 어떤 존재인지. 결국 열일곱 살의 니므는 끝까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름, 또 이 지독한 섬의 끔찍한 여름이었다. 비가 쏟아지는 수요일. 수요일의 아이. 니므 윈슬로Wednesday 레드몬드. 창문을 두드리는 요란한 빗소리가 만드는 소란을 견딜 수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폭풍우가 멈추지 않아, 이 섬의 모든 이들의 발이 묶였으면. 부질없는 바람을 되뇌었다. 다음 주부터는 마녀 니므 레드몬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너무 많은 생각이 엉겨 붙은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니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1995년의 여름이 다시 한번 피어올랐다. 그렇게 폐를 꽉 죄고, 영국인 마녀를 일깨운다. 이 땅의 여름에서 벗어날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난 아일랜드인인 동시에 영국인이고, 마녀인 동시에 머글이야. 난 내가 양쪽 어디에든 속하는 것만 같은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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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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