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AT FIRST GATE 上

진짜 이상한 새끼 = Fall in love

Dream by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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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운은 훌륭한 사회인이다. 국제적 합의를 거친 헌터 등급을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가진 모범 시민. 등급 중 가장 뛰어난 S급을 부여받고 착실히 웃으며 회사의 명령을 따르는 훌륭한 사회인, 그였다. 사실 일을 웃으며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를 평범한 직장인 내지 소시민 이라 하기엔 어려움이 있었지만 A급 이상 헌터치고 안 미친 사람 없었으니 이정도는 흠이랄것도 없었다.

아무튼 그가 자신에 일에 만족을 느끼는가와는 관계없이 그는 조직에 소속되어 떨어지는 일을 수행하는 위치였고, 비록 그가 미국에 있더라도 게이트 사고가 났다 하면 바로 달려나가야 할 최정상급 헌터였다. 어차피 일 때문에 온 거니 귀찮아 할 것도 없지! 서지운이 딱 한 입 먹은 입맛에 안 맞는 피자를 다시 던지듯 내려놓고 안내 받은 장소로 뛰쳐나가며 생각했다.

사고 발생지는 집 근처 상가, 사실은 더 긴 영어 이름이 있었으나 남대문 시장이니 인사동 거리니 하는 곳도 이름 외우기 힘들었던 서지운으로써는 미국식 작명 스타일을 바로 외울 수 없었다. 게이트 자체만 두고 보면 제법 위험한 감이 있었지만 주말에도 사람이 별로 없는 상가였고, 지금은 평일 오전 10시였다. 구조해야할 민간인이 많이 없을 것이라 판단한 회사 측에선 서지운 혼자 게이트를 닫으라 지시했다.

바로 게이트 닫고 집 가서 밥 먹어야지. 상가 입구에 도달한 서지운은 발 밑에서 그를 빠르게 이동시켜주던 물 보드-정말로 물+보드.-를 없앴다. 아니, 먹고 들어갈까? 한식당이 있었나. 서지운이 이렇게 딴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이 너무 쉬웠다. 좀 위험한 게이트라고 해도 S급 헌터에게는 식은 죽 먹기, 어 피스 오브 케이크였다. 회사가 굳이 그를 부른 건 그냥 그가 너무 근처에 살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10분이면 끝날 일이란 걸 회사도 서지운도 알았다.

그러니까 우연히 평일 오전 10시에 하필 이 상가에 있던 민간인으로 인해 이 잡무가 S급 헌터도 몇 시간씩 발목 잡힐 업무로 승격되는 건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하필 그곳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던 민간인 남성을 포함해서.

FUCK! 상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욕설에 서지운의 얼굴이 굳어졌다. 젠장! 그가 한국어로 욕을 하며 다시 발 밑에 물 바닥을 만들어냈다. 마치 모아나의 물 처럼 서지운의 발을 감싼 물 웅덩이는 그를 순식간에 게이트 앞으로 데려다주었다.

게이트 바로 앞에는… 놀랍게도, 게이트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남성이 있었다. 더 놀랍게도, 그는 미국에 온 지 이주도 안된 서지운이 알고 있는 몇 안되는 미국인 남성이었다. 가장 놀라운 사실, 그는 지난 번 형사들과 협업해 마약 조직을 털었을 때 붙잡혀 있던 옆 조직 보스였다. 경찰 관계자들도 알고 있는, 미친듯한 악명을 자랑하던 조직의 보스! 그를 바로 알아본 서지운은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그를 구출하는데 실패했고, 그 옆 조직 보스와 눈이 마주쳤다. 

"아 씨발! 살려주세요!"

실상은 옆 조직 보스도 뭣도 아니고 옛날에 대마 좀 피웠을 뿐인 백수 민간인이 소리쳤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서지운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게이트의 파아란 안개가 일순에 그 둘을 삼켰다. 안개가 그의 다리를 타고 눈 앞까지 올라타 시야를 흐리게 만든 순간 서지운의 척추를 타고 한 가지 예감이 뇌로 전달되었다. 아 이거, 제대로 망했다.

 

LOVE AT FIRST GATE

Love at first sight : 첫 눈에 반하다

서지운은 일렁이던 푸른 안개가 걷히자 바로 뒤를 돌았다. 원래 게이트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상가의 풍경이 이어졌다. 하늘은 해도 달도 뜨지 않고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경험 많고 능력 좋은 S급 헌터 서지운은 처음으로 게이트 초동 진압에 실패했다. 게이트에 들어온 이상 이제 그는 정석대로 보스를 잡고 나가야했다.

"으…."

등 뒤에서 낮은 신음이 들렸다. 그 미쳤다던 보스, 본인을 제이로 소개한 그 남성이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제이! 괜찮아요? 특별히 불편하신 곳 있나요?"

"예? …아니… 좀 어지러운데… 그것 말고는 딱히."

확실히 어지러운 듯 미간을 찌뿌린 제이가 바지를 툭툭 털었다. 서지운은 안도했다. 어지럼증은 던전에 들어올 일 없는 민간인이 처음 던전에 들어왔을 때 겪는 가장 평범한 증상이었다. 그에게 5분 내로 괜찮아질 테니 잠시 앉아있으란 말을 전한 서지운은 잠시 고민했다. …근데 이 사람 민간인 맞나?

헌터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민간인이라 한다면 맞았다. 하지만 글쎄, 그건 조직원 수십을 거느린 마피아에게도 해당 되는 말일까? 그의 앞에 앉아있는 마피아, 제이가 하얀 숨을 내뱉었다. 던전에 들어와 기온이 급격하게 낮아진 탓이다. 서지운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그에게 외투를 벗어주었다. 그는 한 쪽 눈썹을 치켜올렸으나 일단은 외투를 받아 걸쳤고, 고민에 빠진 서지운은 그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 했다. 

조직 소탕을 마친 날 서지운은 제이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경찰서로 돌아갔다. "미친 놈이랑은 엮이지 않는게 제일입니다." 핑크 도넛을 씹던 경부가 막 돌아온 그에게 충고했다. 눈을 크게 뜬 서지운에게 경부는 기다렸다는 듯 미친 보스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수십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약한 척을 좋아해서 인질극을 즐기는데다가, 범죄를 감추는데엔 도가 터서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미친 사람이라는 내용이 주였다.

서지운은 그날 밤새도록 그 이야기를 들었다. Yugyo-Boy 서지운의 훌륭한 듣는 태도 덕인지 그는 경부에게서 도넛까지 얻어먹고 집에 갔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서지운은 제이에게 특별한 악감정은 없었다. 그렇게 좀 많이 돌아버린 마피아라고 해도 어쨌든 서지운은 무력으로 그를 30초 내로 제압할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는 5초도 안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날 납치당해 욕 먹던 그 모습이 좀 불쌍하기도 했다. 약한 척을 좋아해서 인질극을 즐겼다… 라기엔 그냥 빡쳐보였다. 의도한대로 안 된건가? 아니면 그것까지 의도였나? 만약 그것까지 연기라면 서지운은 기꺼이 그에게 박수를 쳐줄 의향이 있었다.

물론 연기고 뭐고 그는 그냥 납치당한 민간인이었다.

서지운이 그와 얘기를 나눴을때 정말 수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어도 범죄를 저지를만한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의 직감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특히 헌터들은 사지에 많이 내몰려서 그런지 그런 쪽 감이 꽤 좋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서지운은 본인의 감을 믿고 그를 얌전히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그의 감, 그거 하나였다. 서지운의 직속 상사가 들었으면 '제대로 미쳤네….' 하는 욕을 먹을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서지운은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땅에 와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상사의 가르침을 아예 잊어먹지는 않았기 때문에 서지운은 마침 근처에 사니까 그를 주시하려고 했다. 혹시라도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른다면 일이 크게 벌어지기 전에 본인이 막을 수 있도록, …혹은 그를 구해주기 위해서. 어쨌거나 그의 머릿속에는 납치당해서 짜증부리던 제이가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는 수상한 피해자, 그정도였다.

"저기요."

서지운이 고개를 돌렸다. 안색이 좀 괜찮아진 그가 그의 코트를 어깨에 두른 채 앉아있었다.

"그쪽 헌터라고 하셨죠?"

대화를 한다고 하면 언제나 대답만 고수하는 그가 무려 질문을 했다. 하지만 그와 대화한 건 배웅을 가장한 취조 뿐이었기에 이 놀라움을 모른 채 서지운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아무래도 묻기만 하는 건 실례겠지.

"네. 저번에도 말했지만 한국에서 온 S급 헌터 서지운이라고 합니다. 24살이고, 마침 근처에 살고 있어서 게이트 사고 수습하러 왔습니다."

"아, S급…."

그런 말은 저번에 안 했는데요, 미친. 날 터뜨려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잖아. 그가 서지운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폭소를 할만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서지운에 대해서 아는거라곤 방금 본인 입으로 방금 말한 문장 뿐이었다. 게다가 사고까지 같이 휘말렸는데 비협조적으로 굴었다간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다. 그는 일단 이 안에서만이라도 최대한 사리기로 했다.

"예…. 저는 이재현이고요, 여기 상가 근처에 삽니다. 데려다 주셨으니까 알겠지만요. ……28입니다."

좀 쫄렸던 이재현은 제이라는 가명을 바로 버렸다. 동양인들은 나이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떠올린 제이, 이재현은 나이도 덧붙였다. 이재현, 28. 서지운은 기꺼이 그 정보를 기억했다.

"이재현씨, 이름 멋지네요! 한국 이름이 있으셨군요."

"네, 뭐."

"말씀 편하게 해주셔도 됩니다. 제가 더 어리니까요."

서지운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흠, 그래도 싸가지는 있군. 이재현이 무심코 생각했다. "그래." 바로 나오는 대답에 서지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S급 헌터라고 밝혔는데도 바로 말을 까는 걸 보면 어느정도 배짱은 있는 사람이었다. 하긴 납치당한 그날에도 무섭다거나 하는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이전에 던전에 들어오신 적은 없으신 것 같은데, 혹시 여전히 불편하신 곳 있으세요?"

"아니, 없어."

"그렇군요. 나중이라도 불편하신 곳이 생기면 바로 말해주세요. 이런 말씀 드리기가 정말 죄송스럽지만… 아무래도 저희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아서요. 지금 당장 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음."

"…저, 괜찮으세요?"

"어."

이재현은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서지운은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속은 당혹스러웠다. …진짜 미친 보스인가? 보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사실 던전에 들어온 적이 있어서 던전에 들어온 적 없다는 말에 대답을 의도적으로 피한건가?

지금 일은 확실히 서지운의 실수가 빚어낸 상황이었다. 서지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마피아 보스에게 쌍욕을 먹을 각오정도는 하고 있었다. 딱히 피해자가 마피아 보스가 아니고 헌터의 실수가 없었더라도 이쪽 일에 휘말린 민간인들은 보통 겁에 질리거나, 헌터에게 비난을 하거나, 아니면 계속해서 질문을 하던가, 그 정도 바리에이션이 있었다.

이재현은? 여전히 좀 정신없어 보이긴 했지만 뭔가를 더 물어보지도 않고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다…. 어쨌든 그냥 이상하다는거지 헌터 입장에서는 조용하고 지시에 잘 따르면 확실히 좋았다. 서지운은 이재현에게 설명할 말을 골랐다.

그리고 지금 이재현은, 서지운의 생각보다 더 정신없는 상태였다. 심부름을 시켜서 이 사달을 만든 혈육에게 화가 났으면 났지 서지운에게는 생각보다 관심 없었다. 이재현은 그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걸치고 있는 코트를 다시 고쳐 걸쳤다. 그리고 S급이라 쫄린 것 뿐이지 사람은 착해 보였다.

불편한 곳? 없었다. 지금 당장 나가기 힘들다? 뭐 S급이니까 적당히 잘 해결하겠지. 괜찮은가? 일단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착실히 대답했다. 그는 착실히 잘 대답했다. 너무 착실히 대답했다는 사실이 그를 미친 보스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분개하겠지만, 그가 그것을 깨닫는 건 먼 미래였다.

…이러쿵 저러쿵 하여 여러가지 이유로 이재현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협조적인 미친 보스'가 되었고, 서지운은 '싸가지는 있지만 날 터뜨릴 수 있는 S급 동양인 헌터'가 되었다. 참으로 잘 어울리는 두 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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