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小明

이소명

이소명 李小明

먹먹하게 흐린 하늘, 먼지처럼 흩날리는 눈송이, 살갗이 찢어지는 듯한 추위. 오늘도 안전지대의 최전방을 수호합니다. 네, 맞습니다. 이소명은 크리처로부터 세계를 지키는 AOC의 일원이자 최강의 인류. 이소명은 안전지대의 최전방을 수호합니다. 이 정의에 오점은 없습니다.

산탄총의 방아쇠를 당기자 소명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얇고 긴 흑색 머리카락. 공중에서 흩날리는 그것을 보고 있자니 가벼운 까마귀 깃털 같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그 애는 정신 사나우니 좀 묶으라는 잔소리를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소명은 콧잔등을 찌푸리며 웃었다. 부정의 미소. 상부에서 시키는 일이라면—아마 살인이라도— 앞뒤 따지지 않고 해내는 최강의 인류. 그런 소명이 고집하는 것이 딱 세 가지 있었는데.

첫째, 머리카락을 자르게 하지 말 것.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뒷목에 출처 불명의 화상 자국이 있더랬다. 평소 목 위로 올라오는 전투복을 착용하면서도, 칼처럼 뺨 베고 지나가는 바람 앞에서는 긴 머리카락도 소용없었다. 겨울 내 사이로 보이는 붉고 진득한 모양의 자국은 아마 허튼 소문은 아니었다지. 둘째, 그녀와 내기를 하지 말 것. AOC 내에서도 유명한 행운의 아이콘, 이소명. 내기란 내기는 모조리 이기기로 유명했다지. 특히 그녀의 주머니 속 100원짜리 동전은 소명의 주특기였다. 앞면, 뒷면? 혹시 소명이 동전에 장난이라도 쳐둔 건 아닐까, 동전을 몇 번이나 바꿔치기 해 봤지만 결과는 그대로였다. 이 ‘행운’은 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소명이 동전을 꺼내 그 애에게 던질 때면. 내가 이겼어. 소명의 승리였다. 셋째, 과거에 대해 묻지 말 것. 어라, 잠깐. 과거요?

소명은 피웅덩이 속에서 깨어났다. 어깨의 벌어진 상처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고, 사방으로 흩어진 흑색 머리카락은 어느새 핏물에 젖어 축축했다. 몸에 꼭 맞는 검은 군복이 끔찍하게 무거웠다. 생명줄처럼 쥐고 있던 총은 저 멀리 날아간지 오래,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꿈벅 두어 번 감았다 뜨자.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오래된 라디오의 잡음 섞인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안심하십시오. 안전지대의 최전방은 최강의 인류에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소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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