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교환] 에바타라
사이퍼즈 에바타라
가을과 겨울 사이, 나뭇잎이 색을 갈아입기 시작했지만 떨어지기까지 아직 유예가 남은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바람에 무심코 놀라 몸을 움츠리게 되는 아침.
에바 디아스는 이런 날을 좋아했다. 더운 곳에서 태어나 그런걸까? 하지만 유학지에서 혹독한 겨울을 거쳤으면서도 이런 날을 좋아했다. 바람에 억눌린 더위, 혹은 절제된 태양의 하루를.
오늘은 오늘의 해가 뜬다. 에바 디아스는 새로 시작될 내일이 좋았다.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이 좋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몸을 쭉쭉 늘리며 새로운 태양을 보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시작이었다. 오늘은 분명히 어제와 다르다. 어제와 같은 태양도 없다. 봐라, 바람마저 따듯하던 날이 어제 같은데 오늘은 공기가 차갑다.
에바 디아스는 아침 운동을 핑계로 이 날씨를 한껏 만끽하기로 했다. 평소의 달리기 코스를 살짝 바꾸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발걸음에 즐거움이 깃든다. 입안에서 노래의 흥얼거림이 맴돈다. 느리게 떠오르는 태양이 기껍다.
그리고 시선을 살짝 옮기면, 사람이 보인다. 드문 일이다. 이 시간대에 이런 외곽을 걷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그 행인은 거기에 더해 짐을 끙끙거리며 나르고 있었다. 뭐가 들었는지 몰라도 꽤 무거워 보였는데 상자 두 개를 겹쳐서 들고 있었다. 꽤 위험해 보였다. 위에 올라가 있는 상자가 서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아마 곧 있으면 떨어질 것 같았다. 그 행인은 어떻게 잘 조절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위험해 보였다. 에바 디아스는 그 행인을 본 순간부터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거의 자석처럼 다가갔다. 뭐, 이 정도의 짐을 옮기는 건 큰일이 아니었으니까. 에바는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지도 않고 짐을 들어 올렸다.
"꽤 무겁네요. 어? 타라 씨...?"
"어머, 친절한데?"
당연히 익숙할 수밖에 없는 얼굴. 도와줘서 고마워, 저쪽까지만 짐을 좀 옮겨줄 수 있을까. 딱히 거절할 요청은 아니었지만, 에바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에바가 알기로 타라 조노비치는 어제도 늦게까지 남아 일을 했으니까. 퇴근이 어제 이뤄졌을지, 오늘 이뤄졌을지 에바는 짐작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분명 이 시간이면 타라 조노비치는 분명 잠도 자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짐들을 챙겨 어디로 가는 걸까. 에바의 머릿속에 정리되지 못한 의문이 둥둥 떠다녔다.
"어디 가는지. 그건 안 물어봐도 괜찮겠어?"
에바의 궁금증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한 말투였다. 부지런히 발을 따라 옮기지만 타라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 에바가 대답할 수 없도록. 그런 타라를 에바가 쳐다본다. 회사에서 보던 얼굴과 다르다. 어딘가 장난기 어린 표정이다. 인상적이다. 타라의 옆얼굴이 에바의 망막에 천천히 아로새겨진다.
"에바 양,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게 뭔지 아니."
"아무래도, 싸움 실력이요?"
후후, 타라는 짧게 웃었다. 그런 대답이 나올 것이란 걸 알고 있던 사람 같았다.
"그래, 분명 그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태양이 하늘 위로 떠오른다. 모노톤의 거리가 서서히 밝아진다. 햇볕은 아직 따듯하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에바 디아스는 불을 완벽하게 다룬다는 마녀의 말을 들었다.
"마음이야. 에바 양. 언제든 당신을 단단하게 묶어 놓을 수 있는 것. 너를 너로 만들 수 있는 것. 이 긴 전쟁 속에서…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것."
타라의 발걸음이 멈췄다. 에바도 이곳을 안다.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고아원. 도와줘서 고마웠어. 이제부터는 내가 들고 들어갈게, 에바 양. 아닙니다, 필요하면 다음에도 불러주세요! 습관 같은 대답이다. 아까의 표정을 떠올린다.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장난기 어린 표정, 그리고 아까의… 에바 디아스가 표현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담았던 찰나의 표정. 에바 디아스가 분명 겪지 못할 경험을 하며 쌓아 올렸을 그녀의 나이테를.
타라가 들어가기 직전에, 에바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뭘까요?"
문이 닫히기 직전이다. 타라는 뒤 돌아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어려있는 웃음은 에바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글쎄, 그건 스스로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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