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글

우리의 폭력은 정당하다?

트위터와 인용알티와 사이버불링.

※SNS상에서 일어나는 사이버불링(특히 인용싸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열람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글을 읽기에 앞서, 이 내용이 사이버불링으로 피해를 입은 관점에서 서술되었음을 미리 알립니다. 때문에 객관적이지 못한 기술이나 주장 및 비전문적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느 날, 나는 사이버불링을 당했다. 그 이유가 되는 트윗은…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겠다. 내가 켕겨서가 아니라 이걸 잘못 말했다가는 또 의미 없는 사이버불링을 당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저 비유적 표현으로서 당근에 베타카로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표했고, 그 의문 자체를 넌센스로 여기는 자들에게 사이버불링을 당했다고만 표현하겠다.

그로 인해 나에게 일어난 특별한 정신적 변화는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지도 않던 신경정신의학과에 발을 옮기거나 (이미 다니고 있다), 나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내 얘기를 듣자마자 안경을 쓱 치켜올리고 140타를 치거나 (수기기록차트다) 내가 먹는 약이 한 손으로 잡기 어려울 만큼 두툼해지는 일은 없었다는 뜻이다. (적당히 두툼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분명히 사이버불링을 당했고, 정신적 상흔을 얻었으며, 지금도 그 상흔으로 약간 고생을 하고 있다. 다만 그 상흔이 내 생활을 적극적으로 망가뜨릴 정도는 아니었기에 언어화하지 않았을 뿐이다.

요 며칠 사이에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이 일에 대해서도 구체화하는 것이 해당 피해자 분들에게 공연한 괴로움을 주는 것일 수 있기에 간략히 표현하겠다. 어떤 사람이 감에는 베타카로민이 풍부하다는 의견을 표했고, 그걸 부정하는 인용알티가 성행했다. 그리고 그 부정 의견에 대한 동의성 인용알티가 다시금 성행하면서 최초발언자의 트윗은 여기저기서 2차, 3차로 조롱받고 반박당하는 실정이 되었다. 나는 최초발언자의 발언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와는 별개로 이러한 '조롱의 확산'이 트위터 사이버불링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본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누군가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면 그로 인한 피드백이 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트위터는 개방된 공간이며, 특히 공개된 계정의 경우 누구나가 그 의견에 대해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과연 한 사람을 향한 다수의 부정적인 인용알티가 자연스러운 피드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개방된 공간에서 어떤 짓을 당하든 그건 공개된 장소에서 발언한 피해자 본인이 오롯이 감당해야하는 것일까? 

트위터와 같은 SNS가 발전하기 이전, 사람들이 소통하는 수단은 아날로그적이었다. 정보는 신문, TV, 라디오와 같은 매체를 통해 전달되었고 사람들은 그 정보를 토대로 반응하였다. 그때는 정보매체가 현대처럼 신속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지 못했고 설령 이어진다 하더라도 일정한 거리를 지나지 않으면 안됐다. 물론 그때에도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부정적 피드백들은 어느 정도 물리적·시간적인 제약을 받았다. 누군가가 연예인 A를 싫어한다 해도 그 사람의 부정적 발언이 곧바로 A에게 날아가 우편함에 꽂히지 않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전하고 SNS가 개발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졌고 정보가 확산되는 속도도 남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의견에 대해 피드백을 날릴 수 있는 방법이 매우 쉽고 간편해졌다. 이제 연예인 A는 자신과 관련된 트윗의 답글이나 알림창의 알림, 혹은 인용알티 등을 통해 사람들이 남기는 반응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게 긍정적인 반응이라면 무엇보다 소중하고 기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떨까. 그리고 A가 연예인같은게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SNS를 즐기는 일반인이라면 또 어떨까.

사람이 잘못된 발언을 하면 자연스레 그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 반응이 돌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 그렇게까지 할 만한 발언이 아닌데도 과도한 지적이 행해지기도 한다. 누군가가 짤방으로 만든 것과 비슷한 설명이긴 하지만, "사과보다는 레몬이 맛있어!"라는 개인의 의견에 "사과의 매력을 전혀 모르네ㅋㅋ", "레몬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 적립.", "레몬지상우월주의자." 같은 반응이 돌아오는 것을 그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타인이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가」와 「타인이 어떤 표현을 들어도 상관없다」는 같은 선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잘못된 발언을 했다. 그러니 조롱받아도 괜찮다.」 이러한 사이버불링의 논리가 트위터 내에서 상당히 강고한 입지를 가지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특정하기 어렵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위터의 기능 중에서도 인용알티가 "타인의 잘못된 발언을 지적하는 행동"에 도덕적 우월감이나 쾌감을 쉬이 부여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있음은 분명하다. 

잠시 설명하고 가자면 인용알티란 본래의 트윗을 그대로 인용하여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구조로서, 인용알티 자체는 최초 발언자 A가 아닌 인용자 B의 트윗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B의 발언에 대한 반응은 B의 것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이 "발언에 대한 반응이 B의 것으로 돌아간다"는 부분이다. 그 기저에 A의 트윗이 있다하더라도 인용알티한 것이 B인 이상 인용알티에 대한 주목은 B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다. 

트위터에는 인알 외에도 타인의 특정한 트윗을 아예 자신의 탐라로 옮겨올 수 있는 리트윗 기능과 소위 '마음'을 누를 수 있는 좋아요 기능이 있다. (답멘 기능에 대해선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겠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든 트윗에 대해 리트윗 혹은 마음, 더 나아가서는 인용알티로 반응한다. 따라서 이러한 기능들은 트윗의 인기 뿐만 아니라 해당 트윗을 쓴 작성자를 향한 지지/비난을 가늠하는 지표로서도 작동한다. 이러한 부분을 숙지하고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A가 어떠한 잘못된 발언을 하고, B가 그걸 인용알티하여 지적의견을 달았다고 가정한다. 그것이 합당한 말이라고 생각하여 사람들은 B의 인용알티에 동의의 흔적을 남긴다. 여기까지는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만약 C라는 사람이 자신 또한 B와 같은 인기 지표를 얻고 싶다고 생각하여 / 혹은 B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이유로 그와 비슷한 맥락의 인용알티를 걸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걸 본 D가 있다면? E와 F와 G와 H가 B와 똑같은 생각을 한다면? 

B와 H에 이르는 6명은 자신에게 A를 사이버불링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다만 잘못된 발언이 보였기에 그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A에게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6명의 지적이 차례차례 쏟아진 셈이 된다. 누군가는 잘못된 발언을 했는데 고작 6명 정도의 피드백이 뭐 어떻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트윗에 걸릴 수 있는 인용알티의 갯수에는 한계가 없다. 만약 이러한 사람들이 10명을 넘으면 어떨까. 50명을 넘으면? 100명을 넘으면? 잘못된 발언을 했으니 1000명 정도에게 조롱을 받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재판소가 아니다. 타인의 죄에 대해서 비난이나 비판을 할 수 있을 지언정 멋대로 재판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트위터에서는 단지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유죄 판정을 내리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여기서 말하는 유죄 판정이란 앞에서 말한 「이 사람은 잘못된 발언을 했다. 그러니 조롱받아도 괜찮다.」 는 논리를 가리킨다. 따라서 A에게 사이버불링이 가해진다. 끝없는 조롱과 비난, 지적의 인용알티들이다. 하지만 가해자들에게는 자신이 사이버불링을 가한다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먼저 잘못된 발언을 해놓고 자신이 사이버불링당한다고 주장한다」 는 괘씸죄 논리도 준비되어있기 때문이다.

설령 A가 자신의 트윗을 삭제하더라도 B의 인용알티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B는 A의 잘못된 발언을 지적한 도덕적 강자이자 승리자로서 전리품(알티와 마음 갯수)을 가진다. A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정신적으로 몰렸는지는 B의 알 바가 아니다. A는 스스로 트윗을 삭제하여 자신이 잘못된 의견을 가졌음을 인정했으므로. 설령 A가 끝까지 트윗을 삭제하지 않더라도 B는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생각하지 않는다. A가 변하지 않는데 왜 자신의 의견이 지워져야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C, D, E, F, G, H,그들 이후의 10명, 50명, 100명, 1000명이 이와 동일하게 생각한다.

거기서 A의 맥락은 지워진다.

괘씸하고 처벌받아 마땅한 작자만이 있을 뿐이다.

인알싸불을 당하기 전, 나는 어떤 경솔한 트윗을 올려 ("푸딩은 과일이다.")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그때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트윗을 올렸다. 하지만 그 트윗은 문제가 되었던 트윗에 비하면 주목받지 못했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알티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내가 제시한 의견이 논란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내가 전에 올린 사과문을 끌어올리며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전에도 이런 식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 행동에 담긴 함의가 무엇인지는 나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은 다수의 사람들을 향해 나에게 사이버불링을 가해도 괜찮다는 (그들 입장으로 보자면 이 자식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 계정을 터뜨렸다. 심리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현생에서도 신경써야할 일이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크게 실망한 탓이었다. 인용알티를 전부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내가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된 건 분명했고 사이버불링을 가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았다. 설령 내가 이 건에 대해 다시금 사과하거나 그들에게 사과를 요구한다해도 티끌만큼의 동조도 이끌어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사이버불링은 그런 식으로 피해자들의 정신력을 깎아내고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물론 자료를 준비해서 고소를 실행하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그 준비라는 것도 사람의 정신력을 소모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사이버불링하는 그 상황 자체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계정을 없애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럼 가해자들은 자신의 정당성에 피해자가 알아서 꼬리를 말고 도망친 것이라는 승리 신화를 만든다. 자신들이 단체로 타인에게 사이버불링을 가했다는 사실은 온데간데 없이 감춘 채.

그렇게 말하는 너는 얼마나 깨끗하고 고귀하냐는 지적이 들어올 수도 있겠다. 나 역시 과거에는 누군가의 조롱성 인용알티를 알티하거나 논란이 될 발언을 한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인간은 뭐든지 직접 겪어봐야 알게 되는 법이다. 아이러닉하게도 나는 자신이 사이버불링의 대상이 되고나서야 사이버불링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되었다. 굳이 굳이 오타쿠질을 하는 이 공간에서 텁텁한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정당성을 추구한다. 요즈음의 사람들은 (혹은 인용알티 기능이 나온 이후로) 트위터에서 문제 발언을 한 사람이 불타는 것을 「업보」라 여기는 듯하다. 그런 식으로 가해자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짓는 사이버불링의 폭력성은 은근슬쩍 사라지고 피해자가 얻는 피해와 고통만이 업보라는 이름 아래 보기 좋게 포장된다. 사람들은 이 권선징악적 과정과 결말을 몹시 마음에 들어하고 또 모든 일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자신이 정당해지기 위해, 정당한 폭력의 고귀한 대행자가 되기 위해서.

사람의 의견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전부 폭력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무언가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하여 답변을 얻고자 할 때 그저 자신의 「톡 쏘는」 의견을 선보이고 싶은 것은 아닌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은건 아닌지, 인용알티 외에 다른 의견 제시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요약하자면 단순한 '재미' 혹은 '정당성'에 취해 사이버불링을 해선 안된다는 뜻이다.

이 글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문제 트윗을 인알하거나 알티하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덧글로 알려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끝.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