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글

동인녀는 사칙연산의 꿈을 꾸는가?

2차 장르 커플링/논커플링 표기에 대한 개인의견입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개인의 의견을 정리하기 위한 글이지 타인을 공격하거나 저격하기 위한 글이 아님을 알립니다. 또한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2차 장르 연성이라는 특정 분야에서 쓰이는 언어가 다수 사용되고 있는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어느날 탐라에서 트친분이 울고계셨다.

트친님… 어찌하여 그리 울고 계신가요.

트친분이 말했다.

뫄뫄솨솨(논CP)라고 하길래 논CP인줄 알고 봤는데 둘이 키스했어요….

아아…….

이 예시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리라고 생각한다.

A. 맙소사 논CP를 CP표기랑 같이 붙여놓고 키스를 시키다니 동인계의 기강이 땅에 떨어졌구나

B. 고작 키스한걸 가지고 왜 그렇게까지 반응하시는지…. 사귀지 않는데 키스할 수도 있죠.

나는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A의 입장이다. (뒤로가기 눌리는 소리가 벌써 들린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B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뒤로가기 눌리는 소리가234) 이 무슨 이랬다 저랬다하는 인간이냐 하는 악평을 피하기 위해서는 내가 취하고 있는 연성 표기를 소개하겠다.

커플링 표기 : 뫄뫄솨솨 

논커플링 표기 : 뫄뫄+솨솨

그리고 커플링 연성과 논커플링 연성 사이에는 반드시 스킨쉽의 묘사 차이를 둔다. 예를 들어 뫄뫄솨솨 커플링 연성이라면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그 이상의 얼렐레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뫄뫄+솨솨 논커플링 연성이라면 기준이 엄격해진다. 손잡기는 가능하다. 포옹도 된다. 뽀뽀도 가능하다. 근데 그게 입술 뽀뽀면 묘사 삭제하거나 커플링으로 넘어가야한다. 둘이 좀 의미심장~ 약간 두근두근~하는 분위기라도 마찬가지다. 아니 사귀지 않으니까 논컾인데 둘이 사귈 것 같은 기류 풍기고 있으면 논컾이냐 커플링이지! 하는 훈장님인 것이다. (매우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이렇게 묘사를 구분하는 것으로 커플링과 논커플링을 구분하는 슈퍼 꼬장꼬장러인 나같은 경우에는 표기가 매우 쉬운 편이다. 아무튼 사귀었거나 사귀고 있거나 사귈 예정이면 커플링이고, 그런 기류가 일절 없으면 논커플링. 앞뒤를 거꾸로 뒤집어도 똑같다. 커플링이니까 사귀었거나 사귀고있거나 사귈 예정이고, 논커플링이니까 스킨쉽이나 사귀는 거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나에게 이 둘의 구분은 깔끔하다.

하지만(여기서부터 복잡해짐)

동인계에는 아주 많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나처럼 두 사람이 아예 사귀지 않는 맛으로 논커플링을 보거나 연성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귀지는 않지만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미묘한 분위기를 보고 싶어서 논커플링 연성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연성은 연성일 뿐이라고 보고 논커플링과 커플링의 구분을 엄격히 두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대체로 논커플링 표기와 커플링 표기가 같이 쓰이곤 한다.

뫄뫄솨솨(논컾)

뫄뫄솨솨를 좋아하거나, 커플링이나 논커플링 구분 없이 둘 다 잘 먹는 사람에게는 이런 표기가 별 문제 없을 것이다. 문제는 딱히 두 사람의 스킨쉽이나 로맨스 기류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발생한다. 소위 「논컾러」라 호칭되는 이 사람들은 커플링 연성이 주류를 이루는 2차 장르판에서는 소수자의 영역에 속하며, 거의 인지되지 못한다.

나 역시 모 장르에 입덕하기 전까지는 논컾 연성에 손도 대지 않았기에 속 편하게 남 얘기나 할 처지는 아니다. 애초에 논컾 연성이라는 건 솨솨뫄뫄롸롸를 베이스로 서로 이야기만 나누는 솨솨와 롸롸의 이야기 같은거 아닌가… 라고 인식한 때도 있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말하자면 솨솨X뫄뫄와 롸롸X뫄뫄를 합쳐서 솨솨뫄뫄롸롸라고 적은 것입니다) 일단 사귀지 않는 두 사람이 나오면 논커플링 아닌가? 하지만 이 베이스에는 뫄뫄른이 깔려있는데…. 얼랄라…. 결국 그 연성은 뫄뫄른으로 대분류되어 올라갔다. 

논커플링 연성이라는게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 드물던 시절의 얘기다. 어쩌면 내가 논커플링 연성을 찾아 보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객관적으로 떠올려봐도 분명 논커플링의 비중은 적었다. 그랬던 논커플링 연성이 요즘 들어서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건 분명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논커플링 연성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그  표기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뫄뫄솨솨(논컾) 표기가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 사람들은 '뫄뫄'와 '솨솨'가 나오는 '논커플링' 연성인데 저렇게 말고 어떻게 표현하냐고 되묻는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꼬장꼬장한 훈장의 마음으로 나의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요소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맞는 말이다. 다만 문제는 뫄뫄솨솨라는 표기가 동인계에서는 오랜 시간 뫄뫄X솨솨의 커플링 표기로서 기능해왔다는 점에 있다. 애초에 왜 커플링은 중간에 X가 들어가고 때로는 생략되는가…그에 대해서는 탐구하지 않겠다. 동인계에서는 너무 당연한 기호이기 때문이다. 「뫄뫄솨솨」와 「솨솨뫄뫄」가 같은 말이 아니라 리버스로 지칭되듯이, 「뫄뫄솨솨」는 「뫄뫄와 솨솨」라는 뜻과는 다른 「뫄뫄X솨솨」 의 의미로 해석된다. 나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데요? 라고 해도, 「뫄뫄솨솨」를 커플링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논컾을 붙이면 해당 표기를 『무알콜 맥주(알콜)』과 같은 모순된 설명으로 만들고 만다.

따라서 나는 『논커플링과 커플링 표기를 엄중히 구분하자』고 생각한다. 그것이 「뫄뫄+솨솨」이든 「○○조」이든, 뒤쪽에 (커플링)이라는 표기를 붙임으로서 논커플링의 요소를 확신할 수 없게 만드는 경우를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만약 커플링의 요소가 다분하다면 아예 커플링으로 표기를 고친다. 그것이 동인계에 존재하는 논컾러 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이자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또 복잡해진다)

커플링의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은 어떻게 구분해야할까? 예를 들어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일정 수위 이상의 스킨쉽을 한다"가 커플링 연성의 골자라고 하면 둘이 진짜 아무런 감정의 교류가 없는데 육체적 관계만 맺는 사이는 뭐라고 해야하지? 예를 들어 뫄뫄와 솨솨가 결혼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이 없다면 이걸 논커플링으로 표기해야할까 아니면 커플링으로 표기해야 할까? 뫄뫄가 칭찬을 요청할 경우 사심 없이 키스해주는 솨솨 연성은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로맨스 기류가 없더라도 커플링으로 표기해야 맞을까? (수위 문제로 단어를 조절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냥 스킨쉽이 있거나 일정한 관계를 맺었으면 커플링으로 표기하면 되는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젠더의 다양성과 사랑의 다양성이 제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시대의 흐름 앞에서, 스킨쉽이 있었으니 커플링 / 스킨쉽이 없으니 논커플링 이렇게 구분짓는 것은 다소 일방적이지 않을까? 아니면 이렇게 생각을 확장시키는 것 자체가 동인계의 룰을 벗어나는 월권 행동일까? 어차피 둘이 사귀는걸 보고싶은 사람과 사귀는걸 보고싶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는데 깊이 파고들어봤자 내 손해인걸까?

과거에는 남자 동성간의 연애를 뜻하는 BL과 여자 동성간의 연애를 뜻하는 GL이라는 표기와 함께 남녀간의 연애를 뜻하는 NL이라는 표기가 널리 쓰였다. 여기서 쓰이는 N이 Normal='보통의, 평범한, 정상적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다른 커플링을 보통이 아닌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는 일련의 주장이 있어, 지금은 NL 대신 '서로 다른'이란 뜻을 가진 Hetero를 사용한 Hetero Love=HL이 주로 쓰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언젠가의 미래에는 다양한 형태의 조합과 사랑을 따로따로 구분할 수 있는 표현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걸 대체할 만한 단어가 나에게는 떠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성향을 서두에 적어두고(커플링 표기 / 논커플링 표기 중 택일) 내용에 특이사항이 있을 경우 따로 적어서 읽는 사람에게 미리 고지하는 수 밖에 없다. 적어도 논컾인줄 알았다가 로맨스 묘사가 나오는걸 보고 슬퍼하는 사람이 없도록.

오직 내가 생각하는 방안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고, 그저 컾/논컾 표기에 꼬장꼬장한 사람이 고리타분한 소리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논커플링을 검색했을 때 논커플링만을 소비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이런게 꼬우면 검색하지 말고 탈장르하시던가ㅋ", "배가 처불렀네" 등으로 조롱하는 것을 볼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동인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돌아가는 측면이 크고, 그에 따라 이런저런 마찰이 생길 수 밖에 없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을 멋대로 비판하고 조롱할 권리는 없다. 동인계의 기호나 표기로 많은 논의가 오가더라도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는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크게 일어 일부러 긴 글을 쓰게 되었다. 

반은 내 안의 생각을 정리한 것에 가까운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이 글 하나로 뭔가가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일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이것만을 절대적인 근거로 받아들이거나 불합리한 의견이라 하여 막무가내로 공격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3. 05. 07.

뫄뫄솨솨라는 표기는 커플링으로만 인식된다는 생각은 커플링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며 뫄뫄솨솨(논컾) 표기는 논컾 표기의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는 의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눔. 고정된 표기법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성이 있음을 느낌. 다만 나 개인의 성향과 인식 상 뫄뫄×솨솨(=CP) / 뫄뫄+솨솨(=NCP) 구분은 계속 될 예정. 잘 부탁드립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