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03

-in

평소와 다름없이 수술실에서 나와서 잠시 화장실에 들린 나는 옆 화장실에서 나오는 김은지라는 의사와 만났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웃어주면서 인사했고 나 또한 예의상으로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뒤이어 나온 이들을 보고 멈춰섰다.

"강선생님 오늘 예쁘게 차려 입으셨는데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셨습니까?"

"아, 오늘 교수 면접 있었거든요. 한쌤은 오늘도 수술?"

"뭐 그렇죠. 아, 표선생님도 안녕하세요."

"한쌤도 오랜만이에요. 수술실 좀 그만 들어가시라니까… 그러다 쓰러져요."

"언제나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환자가 없다면 의사도 무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환자가 있으니 의사는 뛸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내가 그리 웃으면서 말하자 두 사람은 고개를 저으면서 자리를 옮겼고 콜 불린 게 없는 나도 그들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장실 앞은 좀 그러니까 싶어서 말이다.

그렇게 자리를 옮기고 나서 나는 강선생님에게 김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에 나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모르는 정치질이 이 병원 내에서도 흐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동안은 회복과 재활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병원 복귀가 확정되고 나서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미친듯이 수술과 응급상황에만 매달렸던 터라 병원 내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내 주변 사람들이 그 일들에 휘말렸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외면할 수는 없었다.

권력은 사람을 휘두르지만 사람을 망치는 것도 바로 권력이니까 말이다

부디 이 사람들이 망가지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이래뵈도 내 사람들이 된 이들이었으니까.

"그런데 한쌤 저번에 치료해줬던 그 군인 다시 만난 적 없어요?"

"군인, 말입니까?"

강 선생님의 말에 내가 되묻자 그녀는 빛나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표 선생님은 흥미롭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래요. 군인이요."

"아뇨, 만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에… 그 군인은 아닌 것 같던데. 의무대도 있는데 굳이 외래진료 되냐고 물어봤다면서요."

"그건 환자로서 당연한 질문이었고, 그 외에 저에게 관심이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저만 그렇습니까?"

내가 의아하다는 기색으로 되묻자 강선생님과 표선생님이 시선을 마주하더니 곧 나를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우리가 한쌤을 너무 몰랐네."

"그러게 말이야…. 한쌤은 자기 자신을 너무 낮춰보는 것 같아요."

"…글쎄요. 딱히 저를 높힐 필요가 없었던 터라 잘 모르겠네요."

내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두 사람은 가만히 나를 바라봤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답하고 그 뒤로 조용히 컵에 담긴 와인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두사람의 이야기를 배경음 삼아 눈을 감았다.

-out

본래 조용하던 사무실이긴 했지만 잠든 한 사람으로 인해 함께 있던 두사람 또한 조용히 그 사람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한윤슬이라는 남자는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의 실력을 완벽히 증명했으며, 병원 내에서도 실력하면 그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그 본인은 그런 타인의 시선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탓에 그는 자신이 이 병원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모르는 듯 했다.

그저 어딘가에 홀린듯이 환자들에게 매달렸으며 타인과의 교류는 일절 원치 않아 했지만 그런 그도 사람인 것인지 점차 함께하는 동료들에게는 마음을 열었고 가끔씩 방심한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그런 상황이었고 말이다.

잠든 그에게 담요를 덮어준 모연은 가만히 자신의 몫이 담긴 머그를 손에 쥐었고 그런 모연을 행동에 지수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지수와 모연보다 선배인 그였지만 그가 이 병원으로 실려왔을 때 검사를 담당한 것도 지수였으며, 수술을 집도한 것도 모연이기에 그들에게 그는 아플까봐 두려운 환자이기도 했다.

몸이 거의 난도질 된 것처럼 베인 상처는 물론이고 총상에 화상까지 입어서 그의 목 아래는 여전히 큰 흉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회복해서 의사로 복귀할 때까지 두 사람은 그가 버틴 시간들을 함께 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무리하고 있는 그의 행동을 언제나 걱정되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잠들어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시간은 그들에게 평온한 시간이기도 했다.

걱정도 불안감도 느낄 필요없는 그런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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