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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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다운타운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잠시후 내가 말한 장소에 도착하자 그는 묘한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굳이 그런 반응에도 관심을 주지 않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기다리실 겁니까?"

"어느 쪽이 편하시겠습니까? 어차피 돌아가시는 것도 태워다 드릴 생각이라."

"…같이 들어가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그녀와 내 대화 사이에 그가 끼어들 수 없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눌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걸음을 옮긴 나는 가게로 들어서자마자 곧장 카운터로 걸어갔다. 카운터에는 익숙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어린 티를 벗은 여성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닐!]"

"[오랜만이야. 발렌타인.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

"[물론이죠. 내가 항상 편지했잖아요. 나는 괜찮다고.]"

밝아보이는 발렌타인의 모습에 나도 웃으며 답을 했고 내가 눈짓으로 뒤에 서있는 그를 알려주자 발렌타인이 알겠다는 듯이 그린 미소를 지어보이며 안 쪽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를 향해서는 바에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나를 향해 시선을 주었지만 나는 태연하게 몸을 돌려 발렌타인을 따라 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 쪽에는 휴게실처럼 간소하게 테이블과 의자만이 놓여있었는데 나는 망설임없이 비어있는 의자에 앉았다. 이 방은 내가 발렌타인을 잭에게 맡길 때 왔던 방으로 그 때와 전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잭은 나이가 있었던 이였다보니 내가 발렌타인을 맡기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뒤 발렌타인을 통해 죽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잭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온 적은 없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날이 작전을 떠나기 전 날이기도 했지만 내전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우르크에 방문할 수 없었던 탓에 말이다.

"[미안해. 잭한테 인사하러 왔어야 했는데.]"

"[아니, 잭도 이해할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어째서 올 수 없는지 대략적으로는 알고 떠났거든요.]"

"[…기밀일텐데?]"

"[닐, 그때 당신이 잭에게 나를 맡긴 이후로 나도 많이 성장했어요. 당신을 돕기 위해서, 그러니까 당신의 정보에 귀기울이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 말에 나는 씁쓸함을 삼켜야만 했다. 인신매매 대상이었던 여자아이를 구한 것은 단순하게 아이가 행복하길 바래서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커서 하는 말이 나를 돕기 위해 뒷세계의 정보를 다룬다는 것이라니… 그리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그저 네가 행복하게 자라길 바랬어.]"

"[닐, 나는 행복해요. 당신 덕분에 이렇게 살 수 있고, 나에게는 힘이 있어요.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

"[그만큼 네가 위험해진다는 말이기도 하잖아.]"

"[괜찮아요.]"

발렌타인의 웃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그저 웃어보일 수 밖에 없었다. 발렌타인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은거고, 나는 그런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줘야만 했으니까.

그게 내가 그녀를 잭에게 부탁하면서 말한 이야기니까.

그러니까 난, 발렌타인의 선택을 옳지 않다고 칭할 수 없다.

"[얼굴 봤으니까 이만 가볼게]"

"[보름 일정이라던데 가기 전엔 꼭 연락하고 가요. 그동안 답장 안 보내준 건 그걸로 봐줄게요.]"

"[그래.]"

기분 좋게 웃으며 그녀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걸음을 옮기기 전 오래된 테이블의 표면을 한번 쓸어내고는 몸을 돌려세웠다.

추억이 떠올라 돌아본 그 테이블엔 여전히 거뭇한 얼룩이 남아있었다. 그것을 확인했기에 나는 미련없이 몸을 돌릴 수 있었다. 그 얼룩의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는 증거였으니까.

밖으로 나오자 바에 앉아있던 그가 벌떡 일어서는 모습이 보였지만 태연하게 발렌타인에게 인사를 하고 그에게 걸어간 나는 그에게 이만 가자고 말했다.

"아…, 예."

얼떨떨해 보이는 그의 상태가 의아스럽긴 했지만 깔끔하게 무시한 나는 바로 가게 밖으로 걸음을 옮겨서 차에 올라탔다. 날씨 탓인지 차 안은 약간 더웠지만 그가 운전석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시키자 창문을 통해 바람이 불어오는 것으로 열기는 금방 가셨다.

"…그, 발렌타인이랑 아는 사이였습니까?"

"예전에 한 번 만난 적 있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꽤 친해보이시던데…."

"유 대위님."

"예."

"이건 제 개인적인 사항이지 의료팀과 관련된 사항이 아닙니다. 그러니 전 유 대위님께 이것에 대해 설명도, 납득도 해드릴 의무가 없습니다.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럼 더이상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는 걸로 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 뒤로 침묵 속에서 차는 모우루 부대로 향했고 나는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그에게 감사인사를 건넨 뒤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에게 일부러 매정하게 대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 뿐만이 아닌 발렌타인의 과거도 얽혀있기에 딱 잘라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본인의 허락도 없이 타인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 중 하나니까. 그것은 이야기의 주인이 자신에게 분노를 표해도 할 말이 없는 부분이기에 나는 지켜주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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