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53

-out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온 8시쯤 메디큐브 발전기에 문제가 생기면서 전기로 돌아가는 많은 의료기들이 일지에 중단되었다.

그 중 가장 시급한 것은 중환자들이 착용하는 호흡기였다.

그 증거로 격리병동 중환자실에서 괴성이 들려왔고, 그 소리를 들은 치훈이 초를 찾던 것도 내팽개치고 곧장 중환자실로 뛰어갔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진소장은 숨을 헐떡이며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단단히 고정했음이 분명한 링거바늘이 빠진 것인지 팔뚝 피부에서 핏방울이 흘러나와 사방팔방으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치훈은 그대로 베드 위로 뛰어올라 진소장의 양팔을 붙잡아 제압하려 들었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상현을 비롯한 다른 남자 의사들은 모드 의심 환자로 격리된 상태이기 때문에 형재 메디큐브에서 힘을 쓸 수 있는 남자 의사라고는 치훈뿐이었다.

그리고 치훈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정제요!"

뒤늦게 방역복을 입은 자애가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오자 치훈은 다급하게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다시피한 목소리로 말했고 자애는 그런 그의 말에 알겠다는 말을 하고는 바로 약품 캐비닛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런 의료진의 긴급함이 보였는지 격리병동 문 밖에서 무장한 군인이 무슨일이냐고 소리쳤지만 그것을 들은 치훈이 다급하게 말했다.

"들어오지 마세요! 감염 위험 있어요!"

정작 그리 말하는 치훈은 방역복도 착용하지 않은 채로 진소장의 몸 위로 올라가 양팔을 잡아 올렸다.

"이건 의사들 싸움입니다. 여긴 우리가 통제할 테니까 전력 복구나 서둘러 부탁합니다!"

무장한 군인들에게 소리치던 치훈은 그 순간 눈을 번뜩이며 그의 팔뚝을 물어뜨는 탓에 이를 악물며 살이 뜯기는 고통을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이윽고 진정제 주사기를 진소장의 팔뚝에 꽃은 자애 덕분에 진소장의 몸에 힘이 빠지며 늘어졌고 그에 치훈은 자신의 상처는 눈에 담지 않은 채 청진기를 들어 진소장의 상태를 확인했다.

"박동 너무 약해요!"

"물렸어요?"

의식을 잃은 진소장의 심장소리를 듣던 치훈이 인상을 찌뿌리면서 말하는 것에도 치훈의 팔뚝에 난 잇자국을 본 자애가 그에게 소리치듯이 물었지만 치훈은 그 말에 답하지 않은 채 그녀에게 다른 말을 내뱉었다.

"얼른 앰부 짜주세요!"

그리 말한 치훈은 진소장의 흉부에 두 손바닥을 올리고 CPR을 시작했고 자애는 그의 말대로 치훈과 호흡을 맞춰 진소장의 입에 앰부백으로 인공호흡을 넣어주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그의 상처에 머물러 있었다.

"물렸잖아요. 지금 이럴 때 아니에요."

그 때 방역복을 입은 모연이 뛰어 들어오더니 치훈의 팔뚝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고 언성을 높였다.

"어떻게 된거야? 너 괜찮아?"

"두 분 다 말 시키지 마요. 힘들어요.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CPR을 이어나가는 치훈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그 땀이 흘러내림에도 치훈은 진소장에게서 단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두 번 다시 환자를 두고 도망가지 않기로 다짐했던 치훈은 이를 악물 뿐이었다.

이번에도 여기서 도망치면, 자신은 다시 이 자리에 설 수조차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치훈은 그렇게 메디큐브에 전기가 들어오고 나서 인공호흡기와 바이탈 기계들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멍하니 진소장의 심장박동수가 정상으로 회복되고 바이탈 기계의 그래프가 안정적으로 자리하는 것을 쳐다보던 치훈을 향해 모연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녀의 기척을 들었는지 그대로 몸을 돌려 모연과 마주한 치훈은 모연이 들고 있는 소독약품을 보고 그제서야 자신의 팔뚝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상처 나서 감염 위험이 더 높아진 건, 알지?"

"…네."

"너 아니었으면 저 환자 죽었다는 것도, 알지?"

"……."

"의사 다 됐네, 이치훈. 채혈할게."

팔뚝 상처에 드레싱을 해준 모연이 채혈을 위해 고개를 숙인 탓에 모연은 볼 수 없었지만 치훈의 얼굴은 그녀의 말에 더욱 일그러진 상태였다.

하지만 모연이 채혈을 끝내고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치훈의 얼굴은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사람, 전염병 걸려요, 이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격리병동으로 가기 위해 치훈이 모연과 함께 병실을 나왔을 때 갑작스레 나타난 강군의 질문에 치훈은 고개를 푹 숙이며 그의 시선을 피했고 모연은 덤덤하게 답했다.

"안 그러길 바래야죠. 일단은 격리해야 하고."

그 말을 들은 강군은 치훈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툭 하고 말을 내뱉었다.

"정신차렸나 봐요. 아깐 좀 의사 같던데."

그리 말하고 곧바로 몸을 돌려 가버리는 강군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치훈은 곧 입술을 꾹 문 채로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너 왜 울어. 아파? 어디 딴 데도 다쳤어?"

그런 치훈의 모습에 당황한 모연이 안절부절 못하면서 치훈의 몸을 살폈지만 치훈은 고개를 저으더니 울음을 참는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을 내뱉었다.

"아뇨, 괜찮아서……. 이제 괜찮아서, 이제 전화도 할 수 있어서……."

"무슨 말이야. 왜 그래, 이치훈."

모연의 입장에서는 영문 모를 말이었지만 격리 병동 한쪽에 자리하고 있던 윤슬은 그런 치훈의 모습에 흐릿하게 웃어보이며 등을 돌렸다.

이제 치훈은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서 빛 한 줌을 얻었고, 그 어둠 속에서 나오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저리 울면서 기뻐하는 치훈의 모습에 윤슬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치훈은 그 어둠 속에서 당당히 걸어나올 것이다.

자신만의 길을 찾아냈으니.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댓글 1


  • Nil 창작자

    [상현을 비롯한 다른 남자 의사들은 모두 의심환자로 격리된 상태였다. 메디큐브에서 현재 힘을 쓸 수 있는 남자 의사라고는 치훈뿐이었다. -원작소설일부-]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