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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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연을 재우고 나서 가만히 모연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집을 정리한 뒤 밖으로 나왔다. 늦은 밤인 탓에 공기는 어느새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고 알리듯이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나는 욱신거리는 다리의 통증에 그대로 벽에 기댄 채 잠시 멈춰섰다. 통증은 언제든 달갑지 않았지만 그것은 이미 나의 일부와도 다름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그 통증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나는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그곳에 서있는 이가 생각치도 못한 존재여서 느리게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안녕하십니까."
"…여기까진 무슨 일 이십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잠시 들렸는데, 기다리다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습니다."
그리 말하는 이의 정체는 유시진씨였고 나는 그런 그의 등장에 꽤나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와 나의 접점이라고는 고작 치료를 한 번 해주고 이후에는 상처 확인을 목적으로 집에 초대했던 것 뿐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나에게 무슨 할말이 있다고 이런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는가.
그에 나는 기대고 있던 벽에서 떨어져 제대로 서면서 천천히 그가 서있는 쪽으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무슨 말을 하실려는 겁니까."
"……임서준 선생님. 혹시 제가 부탁 하나만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무슨 부탁, 말입니까?"
조심스러운 말투에 내가 느리게 두 눈을 감았다 뜨면서 묻자 그가 굳었던 얼굴을 활짝 웃어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혹시 2주만 저랑 어울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하지만 그가 내뱉은 말의 정의를 이해할 수 없던 나는 가만히 그를 응시헀다.
"……."
그런 나의 행동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얼굴로 바뀌는 그가 점차 씁쓸함을 담아내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에 시선을 돌렸다. 저런 얼굴은 차마 마주 하기 힘들었기에 나는 가만히 시선을 피하면서 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십니까?"
"아, 그냥 시간 나실 때 식사 한번 하고 정말 여유 되시면 영화도 보고 그냥 저랑 어울려주시면 됩니다."
"…같이 다니던 분이 계시던 걸로 아는데,"
"에이, 그쪽은 전우라서 말이죠. 전 임서준 선생님이 함께 해주셨음 해서 이렇게 부탁드리러 온거지 말입니다."
그 말에 나는 느리게 그를 다시금 응시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이.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나를 찾아오는 이. 과연 내가 이 사람과 어울려도 괜찮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죄송하지만 저는 병원에서 지내는 편이라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듭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그 정도는 이해합니다."
"…따로 오프가 아니면 밖에서는 만날 수도 없습니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임서준 선생님이 오프일 때도 병원에 계신다는 말을 들었지만 2주동안만 그 시간을 저에게 빌려주시면 어떠십니까."
그의 말에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그를 응시하다가 알겠다고 답했다. 2주가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니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리 생각하면서 나는 웃으며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런데 굳이 세대도 맞지 않는 나와 어울릴려는 저 사람의 심리가 무척이나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차트에서 본 나이는 분명 모연과 같았으니까 말이다.
그리 생각하면서 몸을 돌린 나는 천천히 집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째서인지 이렇게 집으로 돌아올 일이 늘 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 그 감각이 묘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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