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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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진씨가 말했던 그 다음 날 나는 그가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잠시 한가해져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내밀어진 커피에 놀라서 그 손의 주인을 쳐다보자 웃으면서 서있는 그가 보였다.

"…뭡니까?"

"음, 그냥 드리는 선물? 아니면 뇌물? 옆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상관은 없는데, 옷이 더러워질 겁니다. 괜찮겠습니까."

"예, 괜찮습니다."

그렇게 커피를 받아든 나는 옆에 앉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시금 하늘로 시선을 돌리면서 물었다.

"제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강모연 선생님이 알려주셨지 말입니다. 지금 옥상에 있을거라고."

"아아…."

그럼 그렇지 라는 마음으로 그에게 받은 커피를 한 모금 머금은 나는 입 안에 감도는 씁쓸함을 인지하면서 조용히 하늘을 바라봤다.

"식사는 하신 겁니까. 아까 전에 강 선생님이 밥 안 먹었으면 밥 좀 먹고 오라면서 말하던데."

"……그랬습니까?"

초면에 가까운 사람에게 무슨 말하는 건지 한숨만이 나왔지만 그렇게 만든 이가 자신이기에 불만을 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쪽도 식사 아직이면 같이 가시겠습니까."

"환영입니다."

그렇게 나는 그와 점심을 먹기 위해 병원 근처에 있는 분식집으로 향했다.

"임선생님은 분식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익숙한거죠. 먹기 간편하기도 하고. 혹시 불편하시면 다른 가게 가시겠습니까?"

"아뇨, 저도 분식 좋습니다."

"그럼 다행입니다."

그렇게 분식집에서 김밥과 떡볶이에 김치볶음밥까지 먹고 나서 나는 그와 헤어질 수 있었다. 아니,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급하게 들어온 콜 때문에 나는 바로 응급실로 달려가야 했고 그는 그런 나를 조심히 가라면서 인사했으니까.

그런 만남이 매일 이루어지니까 나도 어느새 당연하게 점심 때만 되면 그가 오는 것만으로도 밥 먹고 오라면서 떠밀려졌다.

"어째 표정이 안 좋으십니다? 괜찮으신 겁니까?"

"예, 뭐…."

예전이라면 밥을 먹으라고는 해도 이렇게 떠밀리듯이 나온 적은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표정을 풀어낸 나는 오늘은 오프라서 저녁에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보자면서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수긍했다

하지만 퇴근 직전 들어온 교통사고 환자로 인해 다급하게 수술방에 들어가야만 했다. 늑골 골절로 인해 장기 손상이 일어난 케이스여서 한시라도 빨리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래서 검사와 함께 바로 수술에 들어간 나는 두시간 정도 흐르고 나서야 수술방을 나설 수 있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환자의 바이탈을 확인하고 차트 작성까지 끝내고 나서야 한숨 돌린 나는 문득 시간을 보고 멈칫하고 말았다.

이미 예상했던 시간보다 3시간 가량이 지난 상황이었고 그에 대해 따로 연락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 그는 아무 이유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머리 속이 복잡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나는 머리를 헤집으면서 가운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알림에 뜬 정보에는 부재중 전화가 1통 있었고 남아있는 문자 메시지가 2통 있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끝나면 연락주세요.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에 나는 의국 사람들에게 퇴근해 보겠다고 알린 뒤 서둘러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것에 대해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던 탓에 곧바로 통화를 건 나는 금방 통화를 연결한 그의 행동에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말을 내뱉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지금 끝났습니다. 어디 계십니까." 

-"아, 바로 근처라 제가 입구 쪽으로 가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후 얼마 흐르지 않아 사복 차림의 그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고 나도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안합니다."

"아뇨. 임선생님이 미안할 게 뭐 있습니까. 하셔야 할 일을 하신 것 뿐이잖아요. 그것보다 이제 저녁은 어떻게 할지 정하는 게 어떨까요?"

"유시진씨만 괜찮다면 오늘 저녁은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오, 요리도 하실 줄 아십니까?"

"…뭐, 간단한 정도라면 가능합니다. 근데 집에 재료가 없어서 마트 좀 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마트부터 갈까요?"

"예."

아무래도 집 근처 마트보다는 대형마트가 좋을 것 같아서 유시진씨의 차를 타고 마트에 갔다가 멀미 때문에 고생했지만 무사히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메뉴는 가장 무난한 토마토 파스타와 목살 스테이크 그리고 가벼운 샐러드로 정했는데 그는 나쁘지 않은 것인지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어떤 것도 괜찮다는 그의 말에 파스타는 스파게티 면으로, 스테이크는 레어로, 샐러드 드레싱은 집에 남아있던 키위 드레싱을 써서 준비했다.

오랜만에 하는 요리였지만 익숙하게 하나 하나 준비해서 테이블에 올리자 그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그저 나와 음식을 번갈아 보고는 했다.

"강 선생님이 임 선생님한테 매일 식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치고는 요리 솜씨가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뭐 예전에는 자주 했었습니다. 요즘은 딱히 요리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안 했을 뿐입니다."

"그럼 제가 그 영광적인 요리를 먹는 주인공이 되는 겁니까?"

장난기를 담아 묻는 그의 모습에 그저 웃으며 먹으라고 권한 나는 그가 맛있다고 하는 것을 들으며 나도 내가 한 요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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