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32

-out

현장 곳곳에 야전 작업들이 켜지고 불빛을 밝힌 상황실 텐트에서는 의료진이 늦은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의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제 막 숟가락을 들었던 상현이 그대로 일어나 달려나갔다.

들것에 누워 숨을 헐떡이는 노동자의 가슴에 커다란 주삿바늘을 찌르자 폐에 차 있던 바람이 주사를 통해 빠져나왔고 그러자 환자의 호흡이 안정을 되찾았다.

그렇게 그 환자의 손목에는 노란색 비표가 걸렸고 상현은 안도했다.

그렇게 한 사람이 더 살아났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건물 입구를 막고 있는 콘트리트 더미 때문에 아직 구하지 못한 구조자들이 많았고 그 탓에 저녁은커녕 점심도 먹지 못한 군인들이 로프 도르래를 설치한 콘트리트를 들어올리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로프를 당겼다.

하지만 도르래는 무거운 콘트리트 벽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고 결국 빠그라지고 말았다.

삑! 삑! 다급한 호각 소리와 함께 안 쪽에서 구조작업을 진행하던 군인들이 황급히 달려나오자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약간이나마 들어올려졌던 콘트리트 더미가 주저 앉았고 이번엔 기둥천장까지 2차로 내려앉아 건물 입구는 더욱 두텁게 막혀버렸다.

그렇기에 그 앞에서 구조자가 나오길 기다리던 모연은 부디 내부의 사람들이 살아있기를 속으로 빌면서 단번에 몸을 돌려 다른 환자를 향해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팔을 잡아세우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모연이 몇 분 전 어깨에 드레싱을 해준 환자였다.

의사인 자신을 붙잡은 이유가 혹시나 더 다친 곳이 있어서인지 살필려는 모연에게 환자는 말없이 자신이 신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워커를 내밀었다.

엉망인 현장 속에서 엉망으로 뛰어다니던 모연의 발은 이리저리 채이는 돌과 건물 잔해들로 인해 엉망이었는데 그것을 본 것인지 환자는 망설임없이 자신보다 더 필요해보이는 그녀에게 자신의 워커를 양보한 것이었다.

모연은 그제서야 자신의 까지고 다쳐서 엉망이 된 피투성이 발을 내려다 봤고, 그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지만 꾹 눌러 참고 환자가 내민 낡은 원커를 받아들면서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를 표했다.

워커 위로 뚝하고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했다.

그렇게 어둠으로 물들었지만 야전등으로 빛을 간신히 밝히던 밤이 지나가고 해는 다시금 그들에게 빛을 비춰주기 위해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 하늘에서 수송 헬기 한 대가 희망의 메시지처럼 날아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잠들어 있던 군인과 의료진이 모두 일어서 눈을 비비며 하늘을 쳐다봤는데 그 수송 헬기에는 한국군 부대 마크가 선명히 표시되어 있음이 보였다.

수송헬기는 지상에 착륙하지 않았고 헬기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 있던 특전사 대원들이 레펠 고공 강하했다.

땅으로 내려와 두 발로 딛고 선 특전 대원들은 프로펠러 먼지바람 속을 뚫고 씩씩해 보이는 걸음으로 다가왔는데 그들 중에는 먼저 본국으로 귀환했던 시진과 대영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보는 이들 중에는 윤슬도 있었다.

잠시 쉬기 위해 상황실 텐트에 들어왔던 참이던 윤슬은 그렇게 지원을 온 특전사 병력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군인들의 움직임에서 알 수 있었다.

지쳐서 기운이 없어보이던 군인도, 부상을 입어서 치료를 받았던 군인도, 방금까지 구조현장에 있던 군인도 그들의 등장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앞쪽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슬은 처음으로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깊은 숨을 내쉬면서 상황실의 빈자리에 주저 앉았다.

"선배, 괜찮아요?"

"…아, 송선생님."

생수병 하나를 내밀면서 하는 말에 무의식 적으로 팔을 들어올리려던 윤슬은 움찔하고 말았는데 그런 윤슬의 반응에 상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어디 다쳤어요?"

"…아마?"

허허로이 웃으면서 생수병을 받아든 윤슬은 생수병을 따지 않은 채 내려놓았고 그에 상현은 말없이 생수병을 따서 다시 윤슬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물이라도 마셔요."

"…고맙습니다."

흐릿하게 웃어보인 윤슬은 단번에 생수병 하나를 비웠고 상현은 그런 윤슬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처 확인해야 할 것 같으니까 잠깐만 돌아봐요."

"지금 여기서 말입니까…?"

어색하게 웃으면서 묻는 윤슬의 질문에 상현은 단호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고 그에 윤슬은 한숨을 내쉬면서 몸을 돌려 앉았고 상현은 그 뒤에 서서 윤슬의 겉옷을 들어올렸다가 얼굴을 와그작 구기고 말았다.

"지금, 이 꼴로 현장에 있었던 겁니까?"

"…많이 심합니까?"

"하아, 선배 손목에 빨간색 비표를 걸어도 안 이상할 것 같은데요."

피로 물든 상의를 망설임없이 들어올린 상현은 등 위에 살이 터진 상처들이 선명히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서 한숨만을 내쉬었고 그런 상현의 반응에 윤슬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다치는 것도 익숙했고, 참는 것도 익숙해서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이 주변 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이제서야 깨달은 윤슬은 조용히 뒤에서 응급처치를 하는 상현의 움직임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또 움직이면 터질거 같으니까 좀 쉬었으면 좋겠는데… 안 쉴거죠?"

"…."

상현은 답이 없는 윤슬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왜 윤슬이 이 날씨에도 겉옷을 벗지 않고 있었는지를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상의와 겉옷을 내려주고 윤슬이 벗어두었던 의료팀 잠바를 건넸다.

"그럼 심하게 움직이지 마세요. 이건 지킬 수 있죠?"

"노력해보겠습니다."

잠바를 겉옷 위에 걸친 윤슬은 웃으면서 상현에게 말했고 상현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어깨에 응급 키트를 걸쳤다.

"더 다쳐서 오면 강교수가 가만히 안 있을걸요. 아마 선배를 메디큐브로 후송하고도 남을 겁니다."

"하하, 그거 참 무서운 말입니다."

"그러니까 좀 다치지 마시죠. 선.배.님."

상현의 말에 윤슬은 그저 허허로이 웃을 뿐이었고 상현은 윤슬의 반응에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서로 자신의 할일을 위해 멀어졌다.

이곳은 여전히 구조자들이 남아있는 구조현장이었고 그들은 아직 구조자들을 치료해야하는 의료팀의 의사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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