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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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에게 약처방을 끝낸 윤슬은 밖에서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그 꼬마와 함께 철을 줍던 아이들임을 눈치채고 아이들을 모아서 간단하게 아무리 배가 고파고 철을 입에 넣거나 먹어서는 안 되고, 손을 꼭 씻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심각성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고 그뒤에서 시진이 아이들에게 그 말을 지키지 않으면 총을 쏠거라는 말을 덧붙이자 아이들이 폭소했다.

진실을 아는 이에게는 잔인한 소리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그저 장난으로 여겨지는 것이 씁쓸하다 생각한 윤슬은 조용히 몸을 돌렸다.

그 뒤로 두 사람은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는데 시진은 복잡한 얼굴을 한 채로, 윤슬은 덤덤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그렇게 정적 속에서 부대에 돌아온 차량에서 윤슬은 망설임없이 내렸고 시진 또한 윤슬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만."

"…예."

목례를 하면서 이야기하는 윤슬에게 힘없이 답한 시진은 또 다시 그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몸을 돌렸다.

이튿날, 시진은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다니엘을 만나기 위해 다운타운 거리에 위치한 철물전에 들렀는데 이곳의 주인인 다니엘은 지난 3개월간 입국금지로 인해 우르크 밖에서 활동하던 인물이었다.

출입금지된 분쟁의 격전지나 위험한 재난의 최전선 등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들어가 도움이 필요한 환자에게 의사의 사명을 다하는 그는 서른다섯 살의 동양계 백인 혼혈 남자로, 피스케이커 구호 의사이자 철물점 주인이었는데 시진과 그의 인연은 아프가니스탄 작전에 투입되었을 때 만들어졌다.

시진의 부하가 부상을 당했고, 그곳 의료센터에서 일하던 다니엘이 치료해줬던 것이 계기였다.

성격도 화통하고 유머러스해서 시진과 잘 맞았던 다니엘을 우르크에 와서 다시 재회하게 되었던 시진은 그와의 이야기 중에서 법적으로 그의 아내인 예화와의 혼인 스토리가 가장 인상이 깊게 남아있었다.

예화와 다니엘은 캐나다 국경지역에서 만났다 했었다.

거기서 예화는 캐나다 대사에서 국경을 넘는 것을 제지 당하는 상황이었고 다니엘은 지금 당장 국경을 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해질 예화를 살리기 위해 그 자리에서 그녀와 혼인신고를 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보니 예화는 시진에게 다니엘과 자신은 법적인 부부 사이일 뿐이라며 극구 부정했지만 그동안 다니엘에게서 들었던 예화의 이야기를 아는 시진으로서는 그저 두 사람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당분간 여기서 활동하시는 겁니까?"

"아마 국경 너머에 더 오래 있을 거 같습니다. 남우르크에서 필요 없어진 무기들이 북우르크 군벌들에게 밀거래돼서 소년병들의 손에 쥐여지고 있거든요."

간단한 이야기 정도만 알고 있던 시진은 밖에서 움직였던 다니엘에게 우르크 뒷골목과 관련된 자세한 내막을 전해들으면서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평화가 찾아온 이곳에서 수입이 없어진 갱들 간에 인수 합병이 시작된거군요. 언제나 그렇듯 구조조정이 끝나면 제일 센 놈이 살아남겠죠."

그 말에 다니엘은 수긍을 표했고 그 순간 창밖을 쳐다본 시진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한 남자를 보고 멈칫하고 말았다.

낯익은 얼굴인 그 남자는 산악도로에서 사고 났던 화물 탑차에 타고 있던 두 사람 중 살아남은 쪽이었는데 그 때 무기 밀거래를 한다는 증거와 함께 현지 경찰에게 넘겼던 시진은 버젓이 다운타운 거리에 나타난 남자를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구면인 거 같은데?]"

어느새 홀스터 안에 들어있던 권총을 꺼내든 시진이 남자에게 총구를 겨누면서 말하자 남자는 빙긋 웃으면서 시진의 말에 답했다.

"[근데 안 놀라네? 평화 유지가 목적인 파병 군인이 비무장한 민간인을 상대로 막 총 들고 위협하고,]"

"그럼 안 되지."

남자의 말에 픽하고 비웃으면서 말을 이은 시진은 말과 동시에 총을 장전해 그의 옆에 있는 자동차 바퀴를 행배 발포했고, 좁은 거리를 쩌렁쩌렁 울리는 총소리에 주변에 숨어있던 험악한 사내들이 총을 들고 튀어나왔다.

"[민간인 아니고, 비무장 아니고. 설명해. 경찰과 커넥션은 그렇다 치고, 일부러 내 눈에 띈 이유가 뭐야.]"

시진의 행동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는데 그것은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그 때 남자가 찾던 인물로 추정되는 검은 정장 차림의 건장한 남자가  험악한 사내들을 헤치고 나오더니 시진의 앞에 섰는데 선글라스를 벗고 악의적인 말투로 말했다.

"[경찰이야 늘 돈 쓰는 자의 편이지, 어느 나라나. 오랜만이야, 중위. 아, 이젠 대위인가?]"

"[캡틴, 아구스?]"

남자의 정체를 알아차린 시진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남자는 7년전 이라크 반군들에게 시진과 함께 납치되었던 델타팀의 아구스였다.

"[대체 왜…… 어떻게 여기……?]"

"[보시다시피 직업을 바꿨어. 머리 기를 수 있는 직업으로. 다행히 하는 일은 비슷해. 여전히 총을 쏘고, 돈을 벌지.]"

무심한 말투와 달리 오만하게 물든 눈빛이 번득이는 것을 보면서 시진은 여전히 당황으로 물든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신 콜사인은 아직도 델타 포스의 전설입니다.]"

"[전설은 돈이 안 돼서 말이야. 그러니까 신삥 캡틴,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여긴 나쁜 놈들 많은 동네야. 겁도 없고 룰도 없어. 명예도 없고 조국도 없지. 그래서 부탁인데, 앞으론 절대 내 일에 끼어들지마. 넌 정이 많아서 가끔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어, 예나 지금이나.]"

"…그러게. 내가 쓸데없이 신의 뜻을 거슬렀네. 죽어가던 놈은 죽어가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전우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구스를 구출하고자 했었던 것은 시진이었고, 그 작전에서 자신이 존경하던 김대위가 사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시진이 구하고자 했던 인물이 명예도 조국도 없는 갱이 되어 자신에게 충고하는 그의 모습에 시진은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이 후회된다고 생각했다.

"[나도 부탁인데, 앞으로 절대 내 눈에 띄지 마. 절대. 내가 누군가의 목숨값을 받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슬픔과 분노로 이글거리는 시진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아구스는 한음한음 힘을 주어 말하는 시진의 말을 귀에 새겼고 시진은 그런 아구스에게 할말을 끝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 부대로 향하는 내내 거칠게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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