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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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몇일이 흐른 후 정말 누나의 연락대로 공식적으로 해성병원 봉사단 신청에 대한 홍보가 올라왔고 나는 가만히 그것을 보면서 누나의 연락이 있었던 그날부터 가만히 생각했던 것을 다시금 곱씹었다.

"뭐야, 선배 여기 갈려고요?"

어느새 옆으로 온 송선생님의 말에도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가만히 서있었고 송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이 그러는거 아닙니다. 선배가 가면 후배들은 무슨 면목입니까."

"저 송선생님이랑 고작 두살 차이입니다?"

내가 장난끼를 담아서 하는 말에 그는 질색하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어디 나가서 그 말 해봐요. 다들 내가 두살 더 많아보인다 할걸요."

"그게 그렇게 신경쓰이십니까?"

내가 웃으면서 투덜거리는 그에게 말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더니 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이 얘기는 더 할수록 나만 불리해지니까 그만하고,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가서 간식이나 먹읍시다."

"다들, 말입니까?"

"그래요~ 나는 선배 데리러 온 것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그가 나를 데려온 곳에는 그 바쁘다는 강선생님마저 모인 자리였는데 다들 봉사단 이야기가 신경쓰이기는 했는지 그 얘기를 하고 있었다.

"말이 좋아 봉사지. 누가 갈진 몰라도 돈 없고 빽 없는 애들만 뺑이 치게 생겼다."

그렇게 말하면서 빈자리 중 하선생님 옆에 앉은 송선생님 덕에 내 존재를 알아차린 이들은 모두 나에게 빈자리를 권유했고 나는 굳이 그 자리를 거절하지 않았다.

"라고 하다보니 딱 나네. 돈 없고 빽 없고 운도 없고 복도 없고. 완전 어이없네."

자리에 앉아서 포크를 집어들었던 송 선생님이 바로 들었던 포크를 내려놓으면서 하는 말에 옆에 앉아있던 하선생님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정은 있어. 인물도 좀 있고.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오~ 하면서 분위기를 몰아갔는데 나는 그저 저렇게 티가 팍팍 나는 두 사람이 왜 아직도 싱글인지 의아했지만 조용히 뒤로 물리고 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동참했다.

두 사람은 좋은 사람이니까.

"아, 내가 또 그래~?"

"응."

짜증이 가득했던 얼굴이 금세 해맑아진 송선생님을 향해 덤덤하게 수긍한 하선생님의 모습에 미소를 지은 나는 곧 이어진 이선생님의 말에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전 의료봉사 꼭 갈거예요. 장닥한테 허락도 받았어요."

"얘가, 장닥 곧 만삭인데 가길 어딜가!"

"장닥이 널 사랑하면 허락할리 없을 텐데…."

이선생님의 말에 강선생님과 송선생님이 말했지만 이선생님은 그저 기대감이 가득찬 얼굴로 그들에게 말했다.

"애기 태어나면 기회 없을거라고 갔다오래요."

"허참, 부잣집 도련님이 왜 슈바이처에 꽃혀가지고. 빌게이츠에 꽃히면 인생 얼마나 쉬워."

"강교수."

그런 이선생님의 말에 합리적이지 못 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강선생님은 황당하다는 감정을 가득 담아 답했고 그 순간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봤다.

그렇게 시선을 돌리자 서있는 것은 바로 이 해성병원의 이사장인 한석원이었다.

내 사촌형임에도 불구하고 병원 내에서 단 한번도 만나러 가지 않았던 그를 이런 식으로 마주할 줄은 몰랐던 나는 잠시 멈칫 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다른 이들처럼 조용히 그와 모르는 사이처럼 행동했다.

"저녁에 시간 비워요. 나랑 저녁 같이 합시다."

그렇게 말하고는 가버리는 그의 행동에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과연 저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은 한 것인지 고민했고 그 순간만큼은 사촌형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 마주하지 않았던 그에게 잠시나마 궁금증이 생겼다.

내 사람이라고 받아들인 그녀에게 무슨 생각으로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한걸까.

그것도 같은 직장 동료들이 모인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거절도 할 수 없도록 자신의 말만 내뱉고 가버리다니….

가만히 생각에 빠진 사이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그녀와 그가 결혼한다는 듯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만약 진짜라면 반대다.

아무리 혈육이라고는 하지만 병원 꼴을 이렇게 만든 저 인간이 결코 옳은 인간은 아닐거라 생각하니까 말이다.

저 사람을 만날거라면 차라리 내 동생을 소개 시켜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다음날 의료진 회의에서 나온 봉사단 팀장을 강선생님으로 하자는 이야기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강선생님. 잠시 시간 괜찮겠습니까."

회의가 끝나고 하나 둘 나가는 의료진들과 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강선생님에게 다가간 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런 나의 행동에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와 함께 표선생님이 계시는 사무실로 들어간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어제, 이사장과 무슨 일 있었습니까?"

"…때렸어요."

"예?"

"때렸다고요…. 내가 이사장을…."

"강 선생님, 설명이 부족합니다. 왜, 때리신 겁니까?"

내 물음에 사무실 안에 있던 표선생님은 가만히 우리 둘을 바라볼 뿐이었고 강선생님은 말문을 닫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하아, 어제 제가 간 곳은 호텔룸이었고요. 그런 매너없는 행동에 질렸거든요. 남자들은 그런 생각 밖에 없어요? 기대한 제가 바보예요?"

차분했던 음성이 화난 음성으로 바뀌는데도 모른 채로 와다다 말을 내뱉는 강선생님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굳은 얼굴로 서있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서 사무실을 나섰다.

역시 혈육은 쓸모없었다.

사람이 됨됨이가 되지 않았는데 병원 운영?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이사장실로 걸음을 옮기던 나는 한순간 나타난 강 선생님의 모습에 우뚝 멈춰섰고 그런 나의 모습을 강선생님은 당황과 놀람이 뒤섞인 얼굴로 심호흡을 하면서 말을 하려고 애썼다.

"후우, 지금, 어디 가세요?"

"이사장실입니다."

"지금 이걸 따지러 가시겠다는 거예요?"

"그럼, 안 합니까? 이런 부조리한 대우를 받았으면 항의하는 게 맞는 일이지 않습니까."

"아니 그래도…. 이사장님한테 뭐라고 하실려고요?!"

"당장 팀장 맡기신 거 취소해달라고 말씀드릴겁니다. 그리고 강선생님한테 한 행동에 대한 사과도 받을 생각입니다."

"됐습니다. 하지 마세요. 전 괜찮으니까… 선배가 나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이건 제 일이지 선배의 일이 아니잖아요."

"…."

강선생님의 말에 한숨을 깊게 내쉰 나는 힘을 주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고 내 기색을 알아차린 것인지 강선생님은 단숨에 내 몸을 돌려 등을 두 손으로 밀면서 다시금 표선생님 사무실로 밀어넣었다.

"그렇게 걱정되시면 같이 가시는 건 어때요? 뭐, 사실 한쌤은 여기 남았으면 했는데 두고 가면 저 없는 사이에 이사장실 쳐들어갈 것 같아서 말이에요."

"…그럼 부팀장으로 부탁드립니다. 할거면 확실하게 합시다."

내가 강선생님의 손에 강제로 의자에 앉으면서 하는 말에 표선생님은 한숨과 함께 웃음을 내뱉었고 나는 짜증으로 물들었던 머리 속을 최대한 비우기 위해 노력하면서 저릿한 손을 몇번 쥐었다 폈다.

그렇게 나는 우르크 의료봉사단에 합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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