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28

05. 지진

-out

시진이 윤슬에게 본국 복귀에 대해 말한 그 날 이후로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서로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종종 시진은 윤슬이 자리하는 평원이 보이는 뒷길에 찾아와서 조용히 윤슬의 곁을 지켰고 그런 시진의 행동을 윤슬은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진이 떠나는 날이 다가왔고 윤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에게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 흔한 조심히 돌아가라는 말도 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윤슬의 태도를 그를 항상 주시하는 상현과 모연은 알아차렸지만 두 사람도 그들에게는 섣불리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게 타인이면서도 가까운 윤슬과 다른 이의 사이에서 그들을 대하는 방법이었다.

비밀이 많은 윤슬은 언제나 그들이 모르는 일들을 품에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섣불리 무엇이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윤슬에게 독임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시진이 부대를 떠나는 그 날까지 변치 않았다.

시진이 떠난 이후에도 의료봉사팀은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의 일을 하면서 남은 봉사기간을 채워 드디어 그들이 모우루를 떠나기 전날 윤슬은 차량을 끌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보조석에는 검은 가방을 둔 채로 차량을 모는 윤슬의 얼굴은 매우 평화로웠다.

잠시 빌렸던 물건을 돌려주기 위해 다운타운 거리에 들어선 윤슬은 차를 세우고 잠시 한 쪽을 응시했다.

전쟁이 끝나고 찾아온 평화 속에는 언제나 암흑으로 불리는 뒷골목 상인들이 들끌는 건 윤슬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국가를 지키고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군인이 아닌 일개 민간인 신분의 윤슬은 그들의 일에 나설 의무도 자격도 없었다.

잘못 꼬인다면 불리한 것은 윤슬의 쪽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윤슬이 가만히 응시하는 것은 그런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그 세력에 손댈 수 있는 자가 된 이가 건물에서 나와 차에 올라탄 인물이 사라진 방향이었다.

"아구스…?"

델타포스팀은 고작 단 한 팀만을 엮어서 연합 작전을 펼치지 않았기 때문에 윤슬 또한 그와 연합군의 입장으로서 만난 적이 있었다.

애송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력이 짧았던 윤슬과 달리 이미 현장에서 능수능란한 센스에 감탄했었던 인물로 인식하고 있던 아구스를 이곳에서 보았다는 사실에 놀란 것도 있었지만 그의 차림새와 곁에 함께하는 이들의 모습에 그가 직업을 전향했음을 알아차리고 그 점에서 더 놀랐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가 그리 자랑스러워 하던 델타포스팀에서 나와 이런 뒷세계에 발을 들였는지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놀람으로 물들었던 윤슬의 눈이 점차 싸늘하게 식어갔다.

자신의 정의를 버린 이는 결국 좋지 않은 결말만을 떠안게 되리라는 걸 그 또한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길을 걷는 데에는 그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을 걸음으로 인해 자신과 마주 보고 서야한다면, 윤슬은 망설임없이 그를 제거할 것이다.

그렇기에 윤슬은 조용히 차 안에서 숨을 죽이고 아무것도 없는 거리를 바라보다가 평소의 얼굴로 돌아와 짐을 들고 차에서 내려섰다.

"[발렌타인.]"

윤슬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서 이름을 부르자 그의 부름에 눈을 돌렸다가 그의 모습을 본 발렌타인이 활짝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왔다.

"[닐, 어서와. 내일 돌아간다면서?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어.]"

당연하다듯이 바 옆자리에 앉은 발렌타인은 웃으면서 윤슬에게 말했고 윤슬은 그런 발렌타인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역시 네 말대로 정보를 장악했나보네.]"

"[응, 네가 충고해준대로 했더니 앞길이 보였거든.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온거야? 단순히 인사를 하러온 거 같진 않은데.]"

여유로운 듯이 웃어보이는 발렌타인의 눈을 바라보던 윤슬은 자신이 들고온 검은 가방을 그녀에게 건네면서 답했다.

"[돌려주러 왔어. 다행히도 쓸 일이 없었어.]"

"[흐응- 이것만 돌려주러 온거야?]"

"[…내가 확인할 필요, 없지 않아?]"

"[난 꽤 기대했는데. 닐 당신이 칭찬해주는 그 날을.]"

발렌타인의 말에 윤슬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그녀의 어깨를 톡톡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의 너도, 지금의 너도 나는 믿고 있으니까 나의 칭찬은 필요없어.]"

"[…고마워.]"

"[그럼, 잘 있어.]"

"[다음에도 연락해줘. 나는 언제나 이곳에서 기다릴 테니까.]"

발렌타인의 말에 그저 웃어보인 윤슬은 몸을 돌려 가게를 나갔지만 그의 뒷모습을 그녀는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게 그녀에게 가장 익숙한 그의 모습이었다.

자신을 지켜주던 때도,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다 줄 때도 그는 언제나 자신의 뒷모습만을 보여주었고 그저 그녀에게 자신을 믿고 따라와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리고 발렌타인은 그런 그의 말을 믿고 따랐던 이들 중 한명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구원받았고 살았으며, 이곳에서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면서도 뒷세계에서 한손 내밀 수 있는 이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자신과 달리 민간인이 된 그는 더이상 자신을 지켜줄 수 없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그저 이제부터는 자신이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지켜줄 차례라고 다짐했다.

복수는 철저하게, 하지만 은혜는 배로.

그게 그녀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도움 받았던 이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뒷세계의 정보상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정보를 모을 뿐 팔지는 앉는다.

그래서 더욱 그녀를 아는 이들이라면 섣불리 그녀에게 다가서지 않는다.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 모았던 정보지만 그녀는 그 정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이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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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페어
#BL

댓글 1


  • Nil 창작자

    발렌타인은 과거 인신매매 부대에서 다루는 인신매매 대상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단체는 과거 테러 위험 부대로 판단, 전원 소탕대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인신매매 대상들은 구출 되었고, 단체는 해체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었던 발렌타인은 윤슬의 인도를 받아 한 가게에 취업했다. 그게 지금 일하는 가게이다. 그때 윤슬은 발렌타인에게 말했다. "[강해져서 강자가 되면 그 누구도 너를 건들 수 없어. 그러니 너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 그게 정보던, 힘이던, 지식이던 너의 힘을 길러서 스스로를 지키렴. 다른 누가 너를 구하길 기다리지 말고. 힘들다면, 기댈 사람을 찾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나는 네가 강해질 수 있다고 믿어. 그럼, 잘있어.]" 윤슬이 떠난 이후로 가게에서 주인의 보호 아래에서 발렌타인은 정보를 무기로 삼기로 마음먹음. 그리고 뒷세계 정보망을 장악하고 있는 발렌타인을 누구도 함부로 못 대함. 그리고 발레타인 부하들도 있는데 이들은 발렌타인 보호가 우선이고 가게에도 항상 자리하고 있음. 그래서 발렌타인을 노리는 이들이 함부로 손을 못 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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