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27
-out
그 날 밤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돌담에 걸터앉은 윤슬은 평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윤슬에게 다가온 것은 시진이었다.
윤슬은 시진에게 단 한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고 시진은 그런 윤슬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의 곁으로 가서 돌담에 등을 기댔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주무셔야 하는 거 아니십니까?"
"…잠이 안 와서 말입니다."
대위인 시진에게 있어 소장이라는 계급을 가진 윤슬의 위치는 어떻게 대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고 아무리 그가 전역했다고 해서 그의 계급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언급을 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보니 본래 하려 했던 말들이 머리 속에서 뒤엉켜 엉망이 된 탓에 한참 뒤에야 고개를 숙인 시진이 말문을 열것이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윤슬은 느릿하게 답하면서 평원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간신히 질문을 던졌던 시진은 대답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며칠 뒤면 먼저 본국으로 귀환하는 자신과 달리 이 사람은 이 곳에 남아 있을 거라는 사실에 시진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할 말 있습니까."
"…오늘 낮에 명주에게서 들었습니다. 한선생이, 전역하실 때 계급이 소장, 이었다고."
"그렇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비밀도 아니었던 윤슬은 아무 감흥이 없었지만 오히려 망설이는 기색인 시진의 모습에 윤슬의 시선이 시진에게 향했다.
"그래서 제가 불편해지셨습니까?"
"…살짝은요.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져서 말입니다."
"예전에 윤중위에게서 노인과 아이와 미인은 지켜야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선배가 있다고들은 적 있습니다."
"…명주가 그런 얘기도 했습니까?"
"아시는 이야기입니까?"
"그거, 제가 했던 말입니다."
"그럼 잘 된거 아닙니까. 저는 노인에 속하니까 그렇게 대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진의 말에 윤슬이 웃으면서 말하자 시진은 그런 윤슬을 얼굴을 바라보면서 윤슬의 말에 답했다.
"…그런 모습으로 노인이라 칭해도 아무도 안 믿을 겁니다."
시진의 단호한 음성에 윤슬은 웃음을 터트렸고 그런 윤슬의 모습에 시진의 시선은 윤슬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명주를 편하게 부르시네요."
"…예전에 직속부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알게 됐습니다."
웃음을 거둔 윤슬이 다시 평원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하자 시진의 시선도 평원 쪽으로 돌아갔다.
풀린 분위기에 시진은 본래 그를 찾아 왔던 용건에 대해 입에 담았다.
"저 며칠 뒤에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다른 분들 보다 이르게 귀국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 한선생님에게는 먼저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
시진이 윤슬을 칭하는 호칭이 미묘하게 바뀜은 윤슬에게 감흥없는 일이었지만 시진의 말에게 묘함을 느낀 윤슬이 가만히 시진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런 윤슬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진의 시선은 윤슬에게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런 시진의 행동 때문에 그의 옆선만을 바라보던 윤슬은 문득 시진의 얼굴에서 누군가를 연상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그 이름은 더이상은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것이었기에 윤슬의 입에서는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단 한 장 남은 사진이 머릿 속에서 아른거리는 기분에 윤슬은 시진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지만 타인에게 다른 사람의 탈을 씌워서는 안 되는 것이 옳다 생각하는 윤슬은 곧 시진에서 시선을 떼고 정적을 깼다.
"조심히 귀국하길 바라겠습니다."
"…예. 한선생님도 건강하게 돌아오시길 바라겠습니다."
"예."
그 뒤로 두 사람 사이에 불편하지 않은 정적이 흘렀지만 그것은 두 사람이 각자의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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