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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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카페로 돌아온 시진이 굳은 얼굴로 윤슬에게 돌아왔고 윤슬은 그런 시진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그대로 차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윤슬의 행동에 추도식에서조차 나지 않았던 눈물이 핑 도는 느낌에 고개를 푹 숙였던 시진은 잠시후에야 몸을 돌려 윤슬이 올라탄 차에 올라탔다.

"계속 카페에 계셨던 겁니까?"

"예. 유대위님이 언제 돌아오실지 알고 움직입니까."

"…그렇군요."

"잘 다녀오신겁니까."

"…네."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수면 유도제 정도는 처방해드릴테니까요."

"…티났습니까?"

두눈을 감은 채로 앉아있는 윤슬은 자조적으로 웃는 시진의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만큼은 어렴풋이 느꼈기에 윤슬은 픽하고 웃으면서 답했다.

"안 났습니다. 그냥, 그럴 것 같았습니다."

"…."

시진은 운전 중임에도 옆으로 돌아가려는 시선을 애써 앞으로 고정했고 그런 시진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슬은 그저 자신의 말에 답하지 않는 시진의 행동에 더이상의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부대에 도착한 차는 조용히 멈춰섰고 시진은 시동을 끄고 잠든 것 같아보이는 윤슬을 불렀다.

"부대 도착했습니다."

"…오늘 고생많으셨습니다."

"…예."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천천히 두 눈을 뜬 윤슬은 졸음기 하나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시진을 바라보면서 그리 말하고는 차에서 내려 자신의 막사로 발걸음을 옮겼고 시진은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차에서 내려 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시진은 윤슬의 말대로 그날 밤 악몽과 다름없는 과거의 기억을 꿈으로 꾸면서 새벽에 깨어나고 말았다.

그 꿈의 내용은 7년 전 IS 무장단체에게 피랍된 난민들을 구하기 위해 다국적 연합군이 작전에 투입되었던 임무에 대해서였다.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연합군 중 일원이었던 알파팀 소속 시진과 미군 델타팀의 소속인 아구스가 납치되는 일이 발생했다.

납치된 두 군인은 연합군을 노리고 덫을 놓은 무장단체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이때 알파팀의 팀장을 맡고 있던 김진석 대위가 대원들을 이끌고 벙커에 잠입해 시진과 아구스를 구출하는 것으로 좋게 마무리되는 듯 했었다.

하지만 헬기를 타고 그곳을 벗어나려던 순간 무장단체와 총격전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고문으로 인해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시진과 아구스를 보호하려던 김대위가 총을 맞고 시진의 위로 쓰러졌다.

김대위의 목을 관통한 총상은 당연하게도 시진에게 상처를 남겼지만 치명상이 아니었던 시진은 살아남았고 치명상을 입은 김대위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기억은 시진에게 정신적인 외상으로 남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과 같이 시진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억에 무뎌졌다.

하지만 오늘 추도식에서 본 과거의 전우의 얼굴을 본 시진은 다시금 그때의 기억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너무나도 아프게 느껴졌고 자신의 아픔을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막사를 나와 걸음을 옮기다가 우연히도 아무도 없는 평원을 바라보는 윤슬을 보고 말았다.

지금 이런 자신의 모습을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몸을 돌리려던 시진은 그 순간 자신을 부르는 윤슬의 부름에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저 때문에 들어가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거짓말이 일상이라도 이런 순간에까지 거짓말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윤슬의 시선이 평원에서 시진의 뒷모습으로 옮겨지자 시진의 몸이 돌아갔고 곧 윤슬에게로 시진의 시선이 닿자 윤슬의 자신이 걸터 앉아있는 돌담 위를 가르켰다.

"앉을거면 여기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을 한 윤슬은 다시금 평원 쪽으로 시선을 옮겼고 시진은 그런 유슬의 행동에 편안한 마음으로 윤슬과 사람 하나 정도의 거리를 두고 돌담에 기대듯이 섰다.

"한선생은 왜 안 자고 여기에 있습니까?"

고민을 하던 것인지 잠시 아무말이 없던 시진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자 윤슬은 덤덤하게 시진의 말에 답했다.

"잠이 안 와서 산책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평소에 잠을 잘 못 자는 겁니까?"

"그런 편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렇게 피곤한 안색인 겁니까?"

"…그래 보입니까?"

헛웃음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대답에 시진은 조금이나마 자신을 감싸고 있던 슬픔이 밀려난 기분이 들었고 그에 평소처럼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시는 겁니까? 일하시는 게 쉬운 것 같지는 않던데."

"뭐,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잠들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죠."

"여기서는 그렇게 한계까지 몰아붙일 일이 얼마 없을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첫날부터 에프피콘 발령에 총구 앞에 의료진이 서야 했고 무라바트 의장의 수술까지 맡은 입장에서 딱히 공감은 안 되는 말씀입니다."

"…하긴, 그랬었죠."

"우르크에 이렇게 오게 되니 많은 일을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본래 타지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그렇긴 합니다."

이후 윤슬과 시진의 사이에서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해가 떠오를 때까지 윤슬과 함께한 시진은 깨어났을 때의 아픔은 더이상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시진의 상태와는 별개로 평원을 바라보는 윤슬의 시선은 어둠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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