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14
-out
VIP 환자 상태는 의료진들의 생각이상으로 위독했는데 그 탓에 환자는 곧장 산소호흡기와 각종 바이털 장비가 갖춰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무라바트는 69세의 할아버지로 검은 터번을 둘러쓰고 있었는데 모연은 그 터번을 벗긴 뒤 환자의 동공체크를 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그런 모연의 행동은 자연스러웠지만 진료실 안을 빼곡하게 채운 무라바트의 경호원들과 그들을 경계하는 부대원들로 인해 진료실 내부는 무거운 공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이들이었기에 그런 분위기보다는 바로 눈 앞에 누워있는 환자가 더욱 중했기에 분주히 움직였다.
"혈압 175에 110, 맥박수는 100이요!"
바이털을 체크한 자애의 말에 이어 치훈이 자신의 소견을 말했다.
"BP(혈압) 높고, 펄스(pulse,맥박) 불규칙한 데다 드라우지(drowsy,기면상태)하니까 저혈당으로 보입니다!"
"차트에 당뇨 있다고 나왔잖아. 인슐린 문제 아닐까?"
"일단 그것부터 해결합시다. 정맥주사 잡아서 50DW주세요!"
치훈의 소견에 이어 상현이 의견을 내자 모연은 팀장답게 의료진을 통솔했고 모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려던 의료진들은 곧 무라바트 경호팀장으로 추정되는 이의 제지에 멈춰섰다.
"[멈춰요. 주치의로부터 처방입니다.]"
"니트로 글리세린…?"
"혈관이완제를 왜? 이 환자 당뇨고, 인술린 부작용 아니에요?"
경호팀장에게서 받은 약병에 적힌 이름을 읽은 모연의 말을 들은 이들 중 치훈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차트 믿을 거 없다고 했잖아. 진단과 증상을 바꾸면 말이 돼. 저혈당으로 인한 고혈압이 아니라, 심장문제로 인한 저혈당이야. 투약해주세요."
모연에게서 약병을 받아든 자애가 투약을 시도하는 그때 갑자기 바이털이 오동치기 시작했고 투약을 멈춘 자애가 다급히 소리쳤다.
"혈압이 갑자기 너무 떨어져요!"
"수액 풀 드랍(full drop, 빠른 속도로 주입) 해주세요! 뭐지? 복부팽만?"
황급히 환자의 상의를 벗겨 확인하던 모연에게 본진과 무전을 주고 받던 시진이 모연에게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고 그에 모연은 자신의 소견을 중얼거리듯이 내뱉었다.
"복부팽만에 혈압저하… 헤모페리(Hempperi)! 복강내출혈이에요. 이 환자 뭔가 숨긴 게 더 있어. 일단 열어봐야 알 것 같아. 개복수술 합니다! 수술실 준비해주세요."
모연의 마지막 말에 의료진이 일제히 움직였는데 그것을 무라바트 경호팀장이 막아서는 걸로 진료실 안의 분위기는 더욱 경직되었다.
"[손 떼십시오. 당신들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수술은 허가할 수 없습니다. 약 한 시간 후면 주치의가 이곳에 도착합니다.]"
"[무슨 소리예요. 지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이 환자, 한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 20분도 못 버텨요.]"
"[아랍의 지도자 몸에 아무나 칼을 댈 수 없습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자꾸! 20분 안에 수술 안 하면 이 환자 죽는다고요!]"
그 순간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고, 모연의 머리에 장전된 총이 겨눠졌다.
"[손뗍니다! 무라바트 의장님 수술은, 오직 우리 아랍 의사만 할 수 있습니다!]"
경호팀장의 총이 내세워진 순간 부대원들이 총을 들어올릴려했지만 중대장인 시진의 제지에 모두 경계만 할 뿐 한걸음 뒤에서 긴장하며 대기했다.
그리고 시진의 손이 허리춤에 달린 권총 홀스터에 닿은 순간 흔들렸던 두 눈을 바로한 모연이 두 손을 들며 단호하게 말했다.
"다들 손 떼고 물러서요."
의료진이 베드에서 떨어진 걸 확인한 모연은 굳은 얼굴로 경호팀장을 마주하면서 말을 이었다.
"[알겠어요. 난 세계사를 책임질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지금 손 떼면 이 환잔, 죽습니다.]"
단호한 모연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진료실 안은 요란하게 울리는 바이털 소리를 제외하면 정적이 흘렀는데 그 순간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진료실 문이 열리더니 아까까지 의료진 내에 없었던 윤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은, ….]"
"[오랜만입니다. 팀장]"
싸늘하게 굳은 얼굴의 윤슬의 기색을 알아차린 의료진 모두가 윤슬에게 어떠한 말도 걸지 않았고 윤슬 또한 그들의 안전만을 힐끔 확인하고는 모연에게 향했던 권총에 손을 올려 아래로 내리 눌렀다.
"[그 수술, 내가 맡으면 허락할 겁니까.]"
"[….]"
"[시간 없습니다.]"
"[…허락합니다.]"
장전되어 있는 총에 다시금 안전장치를 걸고 홀스터에 넣는 것까지 확인한 윤슬은 긴강하고 있던 의료진을 향해 말했다.
"집도는 제가 하겠습니다. 수술실로 베드 옮겨주세요."
"…베드, 옮깁니다."
베드가 움직이는 걸 확인한 윤슬은 굳은 얼굴로 시진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곳 대대장님은 누구십니까?"
"…박병수 중령님이십니다."
"그럼 그 분께 말씀 좀 전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군에서 개입할 필요 없다. 만일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은 집도의인 한윤슬에게 넘기라고.' 말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윤슬의 말을 무전으로 전하는 시진을 뒤로한 윤슬은 가라앉은 음성으로 경고하듯이 경호팀장에게 말했다.
"[팀장, 내가 저기서 나올 때 의장님과 함께이길 빌어야 할 겁니다.]"
"[그러지.]"
그렇게 말하고 휙 하고 수술실 안으로 걸음을 옮긴 윤슬은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뒤 손을 씻은 윤슬은 진지한 눈을 한 채로 수술복 위에 수술용 가운을 걸치고 마스크와 써지컬 캡까지 쓰더니 망설임없이 수술대 앞에 섰다.
그 과정에서 수술복이 반팔인 탓에 드러난 왼팔의 흉터는 본래 알고 있던 수술실에 있던 이들에게는 별로 감흥이 없었지만 그의 흉터로 얼룩진 왼팔을 처음 본 이들은 서로 조금씩 놀란 기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술을 허락한 무라바트 경호팀장은 그런 윤슬을 그저 무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서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무라바트 의장의 수술이 시작되었고 피로 물들어가는 수술실의 풍경에 반응하는 것은 그런 풍경이 익숙치 않은 부대원들과 경호원들 중 일부였고 그 풍경을 아무말없이 바라보는 이들은 의료진과 무라바트 경호팀장, 그리고 알파팀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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